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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일 안식일

일몰오후 731

 

연구 범위

5:30~32, 고후 7:9~11, 5:5, 요일 1:9, 12:17, 32:1~8.

 

기억절 :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28:13).

 

성경을 보면 회개와 자백은 영적 부흥의 길을 예비한다. 하나님은 큰일을 맡길 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항상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우리가 일단 우리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면 우리는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과정에 선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회개와 고백은 성령의 능력을 풍성하게 받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이번 주 우리는 성령을 부어 주신 과정에서 진정한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도행전을 통해 살펴볼 예정이다. 그리고 참 회개와 거짓 회개를 대조해 보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회개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반사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회개와 자백이 부흥과 성령의 임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 우리를 회개와 자백으로 이끄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행하기 :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24:16) 힘썼던 사도 바울처럼 회개와 자백의 성경적 원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한다.

 

A.

진정한 회개는 죄 또는 하나님에 대하여 느끼는 어떤 마음일까요?

하나님께 조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의 죄가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할 때 자기의 허물이 구체적으로 치유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서로에게 죄를 자백해야 한다면 누구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서로가 자기의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확인해야 한다.

 

B.

부흥을 경험하기에 앞서 회개와 자백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죄가 성령 역사의 통로를 막고 있으면 부흥의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와 거짓 회개는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진전한 회개는 죄 자체를 슬퍼하지만, 거짓 회개는 죄의 결과만을 슬퍼하는 것이다.

 

결론 : 제자들은 다락방에서 회개하였고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 그리고 서로에게 자백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화해하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의 강력한 부어 주심을 받기 위해 마음을 준비했습니다. 죄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방해하지만, 회개와 자백은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도록 막힌 마음의 통로를 열어 줍니다.

 

첫째날() 회개 : 하나님의 선물

84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5:30~31).

 

오순절 이전에 몇 주 동안 제자들은 하나님께 열렬히 기도하였다. 1:14에 따르면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한마음이 되는 경험은 그리스도인 신자 사이에서 회개와 자백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강력한 연합과 조화를 말한다. 기도와 자백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켰다.

 

1. 5:30~32을 읽어 보라. 베드로의 말에서 우리는 어떤 점을 배워야 하는가?

[5:30~32]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회개를 주신다. 그리고 참된 회개의 경험을 했다면 자신이 회개의 증인이 된다.

 

베드로는 두 가지 핵심을 짚었다. 첫째, 회개는 선물이다. 우리가 성령의 권고하는 음성에 마음을 열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회개의 선물을 주신다. 둘째, 제자들 본인이 그들의 삶 속에 일어난 실재 회개의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회개를 설교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경험한 자들이었다.

제자들은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참된 회개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그들의 불신을 자복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하였을 때에 그들은 그 의미를 더욱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그분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명상할 때에, 만일 그들의 생애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증언할 수만 있다면 너무 힘들어서 하지 못할 수고나 너무 커서 못할 희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사도행적, 36).

회개와 자백은 사도행전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17:30~31, 26:19~20). 우리를 회개로 이끄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며, 용서하시는 구주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은 죄를 일깨워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성령은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채우지 않으신다(2:8, 2:38~39, 3:19). 성령은 이기적인 야망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과 개인의 영광을 구하는 동기가 사라진 빈 마음을 채우신다.

<부가설명> 회개와 용서는 용서하는 쪽에 주도권(initiative)가 있다. 용서를 빌 사람이 아무리 빌어도 용서할 사람이 용서할 마음이 없으면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은 이미 용서를 선포하시고 회개하라고 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회개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자기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다. 온 우주를 향하여 선포하신 용서가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용서를 온 우주에 공포한 것이다. 누구든지 이 용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는 죄 사함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우리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기 때문에 비로소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이미 용서를 베풀어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한 회개와 용서의 순서이다. 회개가 먼저 있고 용서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용서가 있기 때문에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성경의 회개와 용서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회개함을 주신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이미 용서해놓은 하나님의 용서를 자기에게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용서가 자기의 것이 안 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교훈 : 회개는 우리가 하나님이 베푸시는 용서와 성령의 부어 주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둘째날() 참회개의 정의

85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후 7:9).

 

1. 사도 바울은 참 회개를 어떻게 설명했는가?(고후 7:9~11)

[고후7:9~11]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했다.

 

회개란 죄에 대하여 느끼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슬픔이다. 그것은 또한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어떤 구체적인 죄라도 버리려는 결심을 포함한다(14:6, 1:4). 진정한 회개는 인간의 악한 본성과 행동 때문에 신자를 깊은 절망의 상태로 인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고후 7:10)이다.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죄가 아닌 예수의 의에 초점을 맞추도록 이끈다. 그것은 우리가 열심히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게 한다(고후 7:11, 12:2).

신약 성경을 보면 우리 죄의 크기는 그분의 은혜의 크기보다 절대 크지 않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5:20). 이는 사도 바울의 경험에서도 맞았다.

 

2. 딤전 1:14~17과 행 26:10~16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의 죄악과 예수님의 의로움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가?

[딤전1:14~17]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26:10~16]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 바울을 자기를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를 불러서 용서하시고 사도로 임명하셨다.

 

자신이 영광의 주를 핍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바울은 무릎을 꿇고 진정한 회개와 고백에 이르렀다. 그리고 평생 동안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죄악과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를 전하였다. 회개는 그를 절망의 상태에 빠뜨리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모든 이를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구주의 팔로 안내하였다. 죄에 대한 자백은 그를 이전보다 더 깊은 죄책감에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불의한지 보기보다 예수께서 얼마나 의로우신지에 초점을 맞췄다.

 

<부가설명> 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이다. 이것은 아담의 후손은 누구든지 사망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다.(고전15:22) 이런 것을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하였다.(2:3) 이 사람들의 생명은 전적으로 육체의 생명인데 이것은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생활이다.(4:22) 이 사람들은 산다는 것이 썩는 것이다. 이것이 도덕적 부패이다. 이 도덕적 부패가 다른 하나의 죄인데 복수를 써서 죄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를 믿을 때 그들은 이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던 사실을 깨닫고 그 사망을 처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구주를 바라보며 진정으로 통회한다. 이것이 목욕하는 회개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이 사람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에서 생명의 자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사단은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서 불화살을 마구 쏘아댄다.(6:16) 이 화살을 맞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짓는 죄이다. 화살을 맞으면 아프다. 아파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 상처를 내보이면서 치유의 회개를 한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도덕적 죄들에 해당된다. 이것을 고치는 것이 발 씻는 회개이다.(13:8~10) 그리스도인이 이런 상처를 입었는데도 상처 입은 줄도 모르고 아프지도 않다면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경험이 전혀 없는 이름만이 교인이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첫째 죄에서 해방된 기쁨을 누린 사람이요, 둘째 죄에서 날마다 깨끗함을 경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니, 설령 도덕적으로 또는 말씀적으로 허물을 저지르지 않았다 해도 우리의 잘못 한 것이 없는 것 조차도 예수의 보혈로 씻음으로 받아야 한다. 예수의 보혈 없이 우리는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복음의 중요 내용을 깨닫는 것이다.

 

교훈 :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죄를 슬퍼하는 마음이며, 우리를 절대 절망에 빠뜨리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의를 바라보게 한다.

 

 

셋째날() 참 회개와 자백

86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1. 우리는 레 5:5 요일 1:9, 1:16~18, 26:19~20에서 참 회개와 자백의 특성에 대하여 어떤 영적 원리들을 배우게 되는가?

[5:5]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16~18]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26:19,20]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 죄의 허물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회개의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

 

진정한 회개에는 언제나 구체적인 죄의 자백이 따른다. 성령은 우리에게 막연한 죄책감을 주시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의 부족을 확실하게 깨닫게 하신다.

진정한 자복은 항상 구체적인 특성이 있음으로 특정 죄를 인정해야 한다. 죄 가운데는 오직 하나님께만 자복하여야 할 성질의 죄도 있고 또는 해를 입은 당사자에게 자복하여야 할 허물도 있다. 또 어떤 죄는 공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에 공중 앞에 자복하여야 할 것도 있다. 어쨌든 모든 자복은 그대에게 책임이 있는 바로 그 죄들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분명하고 요점이 있어야 한다”(정로의 계단, 38).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필요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회개한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다. 회개는 오히려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더욱 감사히 여기게 한다. 우리가 자백한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우리가 그분의 용서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다고 더 사랑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덜 사랑하는 분이 아니다.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단지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변수이다.

사실 우리의 영적 동맥이 죄의 오물로 막혀 있는 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풍성한 복을 받는 데 지장이 있다. 죄는 성령의 음성에 둔감하게 하고 점점 그분께 반응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회개와 자백은 우리의 마음으로 향하는 영적 통로를 뚫어서 넘쳐흐르는 성령의 임재와 권능을 받게 한다.

 

<부가설명>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에게도 지체 가운데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지내는 동안 경험으로 축적된 것들이다. 경험으로 축적된 것은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경험한 방법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이다. 담배에 익숙해진 경험은 담배 피우는 사람 곁에 가면 자기도 모르게 입에 침이 돌고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싶은 감각이 발동한다고 한다.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잠재되어 있는 경험적 감각이 외부의 자극, 즉 사단의 불화살을 맞을 때 반응하는 허물이다. 이것을 즉시 회개해야 한다. 그냥 두면 곪게 되고 치료하지 않으면 영생의 생명을 잃게 될 수 있다. 즉 다시 사망으로 떨어지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의 세계로 옮기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발을 씻어야 하고 날마다 길르앗의 의사이신 예수님의 보혈로 치유되어야 하고 날마다 어린양의 피로 씻어 두루마기를 희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전제로 그리스도인은 항상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되는 것이다.

 

교훈 :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하여 슬퍼할 뿐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자복함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넷째날() 참 회개와 거짓 회개

8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12:17).

 

성경에는 회개하려고 했으나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 예가 몇 가지 있다. 그들은 울었으며 슬퍼했다. 그들은 죄를 자백했지만 용서받지 못했다. 바로, 발람, 에서, 유다의 이야기를 읽어 보라(12:29~32, 22:32~35, 12:17, 27:4).

 

1. 회개 또는 자백에 관하여 이야기마다 공통적으로 흐르는 맥락은 무엇인가?

[12:29~32]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 너희의 말대로 너희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22:32~35]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33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34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35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귀족들과 함께 가니라.

[12: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27: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 자기 속에 있는 욕망을 버릴 마음이 없고 나타난 두려운 결과를 면해보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12:17 한 절이 모든 것을 잘 요약한다. 에서는 축복을 이어받으려고회개하였다. 바로와 발람과 유다와 마찬가지로 에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가족과 하나님께서 겪은 고통으로 인해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과거에 잃어버린 장자권에 있었다. 그는 마땅히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것을 받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의 동기는 순수하지 못했다. 그의 슬픔은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거짓 회개는 죄 자체보다 죄의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은 하늘의 법칙이다. 사실 죄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회개는 죄 때문에 우리에게 미친 부정적인 결과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때문에 하나님이 겪는 수치와 비애를 슬퍼하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에는 언제나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슬픔이다. 우리가 슬퍼하는 이유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 분을 우리가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가 저지른 특정 죄에 대한 정직한 자백이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셋째로, 참 회개는 항상 죄에서 돌아서겠다는 결심을 내포한다. 그에 상응한 삶의 개혁이 없다면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없다.

반면 거짓 회개는 자기중심적이다. 그것은 죄의 결과에 관심이 있다. 그것은 죄 때문에 빚어진 부정적인 결과로 인해 슬퍼하는 일종의 감정적인 상태이다. 거짓 회개는 변명을 하고 남을 탓한다. 만약 변화에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행위의 변화에 관심이 없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의 설명이 너무나 적절하기 때문에 달리 부가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여 죄를 고백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참 회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이 교과 공부를 잘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이 겁이 나서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 지옥 가지 않기 위하여 예수를 믿고 소위 회개를 하는 것이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그들이 육체의 감각을 따라 죄를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옥 가는 것이 겁이 나서 예수를 믿고 소위 죄를 회개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참 회개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이 없는가? 나는 장로교회에 다닐 때 이런 말하는 사람들을 여러 사람 만났다. 어쩌면 그때 나도 그런 마음이었을는지 모른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지옥가지 않고 천국가려는 자기의 욕망을 성취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예수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마음의 자세가 어떤지를 잘 살펴보자.

 

교훈 : 진정한 회개는 죄 자체를 슬퍼하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시인하지만, 거짓 회개는 죄 때문에 생긴 일을 슬퍼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다섯째날() 치유의 힘이 있는 자백

88

 

자백은 죄의 종기를 찢어 그 해로운 고름을 짜도록 자신을 맡긴다. 자백은 여러 면에서 치유의 효과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한다. 자백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베푸신 용서를 받아들인다. 자백을 통해 우리는 은혜를 받고 치유를 경험한다. 자백은 또한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에 있는 장애들을 제거한다. 그것은 관계도 치유한다.

 

1. 32:1~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자백과 회개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는가?

[32:1~8]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 마음에 간사가 없어져야 한다. 바로나 발람이나 에서의 태도는 마음에 간사를 그냥 품고 있는 상태이다. 죄로 인하여 진정으로 아파야 한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진심을 토해야 한다.

 

2. 24:16을 읽어 보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24:16) 힘썼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 바울은 하나님 앞이나 사람들에게 양심으로 거리낌이 없는 정직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즉 죄책감 없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는 고백이다.

 

죄책감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성령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셔서 우리를 예수께로 이끌 때 생기는 죄책감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이미 고백한 죄에 대하여 계속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파괴적일 수 있다.

이런 죄책감은 갈보리 십자가 아래 내려놓아야 한다. 죄책감은 생명과 참된 행복의 샘을 오염시킨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모두 내게 맡겨라. 내가 너의 죄를 가져가고 평화를 주리라. 더 이상 자존감을 잃지 말라. 왜냐하면 내가 너를 내 피값으로 샀기 때문이다.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의 약한 의지를 강하게 하리라.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제거하리라’ ”(원고 9, 305). 죄책감을 해결할 방법은 예수님이다. 그분의 은혜는 죄가 우리에게 지운 파괴적인 죄책감을 소거한다.

때로 우리는 죄를 고백한 후에도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어쩌면 마귀가 우리에게서 구원의 확신을 뺏으려고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용서와 구원의 확신을 강탈하고 싶어한다. 둘째, 성령께서 우리가 다른 사람 사이에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계시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 사람에게 우리의 과실을 고백해야 양심의 괴로움에서 놓일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죄책에서도 자유를 얻게 해주셨다. 다니엘 9:24에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면 죄악이 영속되며 했는데, 죄악이 영속된다는 말은 죄책감에서 놓여나게 했다는 뜻이 있는 낱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끝냈을 뿐만 아니라 죄책감에서도 구원하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했으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어디선가 말한 대로 항상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는 삶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밖에 나갔다고 들어오면 손을 씻고 발을 씻으며 때로는 샤워도 한다. 영적 삶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고,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하셨다고 한 것이다.(22:14, 7:14)

 

교훈 : 회개로 이끄는 죄책감은 필요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죄책감은 주님께 맡겨야 한다. 참된 자백은 근본적으로 치유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89

 

진정한 회개와 개선이 없는 자복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생애에 확실한 변화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 거리끼는 모든 것이 포기되어야 한다. 이것이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결과이다. 우리 편에서 해야 할 일이 우리 앞에 분명 제시되어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1:16, 17).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33:15)”(정로의 계단, 3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까지 기꺼이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용서에 대하여 어떤 핵심적인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그분이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꺼이 용서해야 할까요?

상처를 준 사람이 회개하기를 기다려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용사하고 살아야 한다. 그 용서를 취하는 것은 용서받을 사람의 몫일 뿐이다.

 

그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죄의 자백은 자신에게 얼마나 축복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주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대에게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었습니까?

각자가 대답해보기 바란다. 그렇게 하면 정말 평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평강이 마음과 몸을 주장한다.

 

이번 교과에서 우리는 우리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잘못을 고백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방식에 대하여 항상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칼날이다. 우리의 언어는 그리스도 안에서 덕을 세우는 말로 훈령되어야 하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의 문을 지켜야 한다.(141:3)

 

참된 회개는 죄에 대한 포기까지 포함합니다. 그런데 어떤 죄에 대하여 씨름하다가 다시 그 죄에 빠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이전의 회개가 진실하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죄의 본성을 염두에 두는 동시에 어떻게 성경적인 회개의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까?

우리는 자주 빠지는 죄가 있다. 그것은 지체가운데 아주 잘 닦인 죄의 길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예수님은 용서하신다. 같은 허물에 매일 빠진다 해도 그것을 매일 예수님께 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나 말씀으로 죄를 짓지 않고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어도 그것도 보혈로 씻어야 한다. 성경적 회개의 특징은 본질적이거나 도덕적이거나 죄 자체를 싫어하여 건져주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것이다. 다윗이 바로 그렇게 회개했다. 그렇다고 다윗이 그런 회개를 한 후에 단 한번도 허물을 범치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언제나 회개로 그를 씻었던 것이다.

 

왜 회개가 부흥과 개혁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까? 부흥과 개혁이라는 말 속에 우리가 회개해야 할 필요성이 어떻게 담겨 있습니까?

죄를 품으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기 때문에(66:18) 부흥과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부흥과 개혁의 통로를 막고 있는 것이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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