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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8 15:57

제13과 예수님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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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일 안식일

일몰오후 622

 

기억절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개역).

 

연구 범위 : 14:1~3, 16:27, 살전 4:13~18, 24:3~14, 24:42, 44.

 

신약은 300번 이상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언급한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가 가르치는 교리의 절정이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라는 우리의 정체성에 필수적인 주제이다. 재림의 교리는 우리의 이름 속에 새겨져 있고, 우리가 선포해야 할 복음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공허한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진리는 우리에게 사명감을 고취시키고 선교적 확장에 동기를 부여한다.

분명 기대했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약화되리라는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이번 주에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2:13)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의 본질을 이해한다.

느끼기 :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고 확신한다.

행하기 :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영적으로 준비한다.

 

A.

진정으로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매일을 성경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생활하는 마음이다.

그대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재림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믿으십니까?

실제로 오시는 사건이며 부활하신 사실을 온 우주에 증거하는 사건이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각자 생각해보자. 이 질문이 무엇을 묻는지 필자는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우리가 깨어서 그날을 맞이하려면 어떤 영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일상생활을 성경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사는 것 외에 다른 노력이 필요할까?

 

B.

왜 재림의 날짜는 공개되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매일 재림을 맞을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가르치는 것이며 실제로 사람들은 오늘만 자기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최근에 어떤 일로부터 재림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까?

시대적 징조는 예언된 대로 너무나 확실히 이루어지고 있다. 교황의 활동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우리가 오늘만 산다는 성경의 말씀을 깨달음으로 가깝다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기로 결심해야 합니까?

기도와 말씀으로 오늘이라 하는 매일을 거룩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결론 : 다시 온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은 실현하기 어려운 꿈이나 종교적 현실도피가 아닙니다. 재림의 약속은 사랑의 구주께서 자신의 택한 백성과 재결합하기를 강력하게 바라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지 않으려면 신자들은 매일 영적으로 준비하고 끊임없이 경계해야 합니다.

 

 

첫째날() 약속

92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최후의 만찬 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은 그들이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가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13:33). 구주와 이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의 마음은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13:36~37) 하며 물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이별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그들을 안심시키셨다.

 

1. 14:1~3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약속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해 보라. 이 말씀이 그대에게 중대한 의미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14: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 예수께서 내가 거할 집을 하늘에 예비하시면 반드시 나를 데리러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우리 각 개인에게 중대하다.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원어로 내가 다시 오겠다는 약속은 확실성을 강조하는 현재 시제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 말씀은 문자적으로 나는 다시 오고 있다.’라고 해설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재림의 확실성을 심어주셨다. 그분은 내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재림에 대해 언급하실 때마다 예수님은 그것을 확실한 언어로 말씀하셨다.

때로 우리는 최선의 결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러지 않으셨다. 그분은 여러 차례 자신의 말은 신뢰해도 좋다는 사실을 오해의 여지 없이 입증하셨다.

자신의 성육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입을 빌려 예언적으로 내가 왔나이다”(40:7)라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다(10:5~7). 초림의 실현은 재림의 확실성을 지지한다.

지상 사역 기간에 예수님은 절망에 빠진 한 아버지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8:50)고 약속하셨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야이로의 딸은 죽었다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일어나리라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정해진 때에 성령을 보내셨다. 비록 인간의 관점에서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주께서 과거에 하신 모든 약속을 다 지키셨던 것처럼 다시 오리라는 약속도 꼭 지키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재림은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신 생명 자체라는 것을 온 우주에 행진하는 영광의 퍼레이드이다. 사단과 그의 부하 천사들이나 악인들이나 우주의 선한 거민들이 다 예수님은 생명이시며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찬양하고 경배할 것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9~11) 그때 그분이 생명자체이시며 창조주시라는 것을 온 우주에 증거하는 것이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불러내시는 것이다. 그들도 위의 기록대로 다 창조주시오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께 경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부활로 다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에게 복스러운 소망이고(2:14) 온 우주와 삼위하나님께도 복된 일이 되는 것이다. 이로서 이 지구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되고 온 우주는 창조주의 뜻대로 영원히 행복한 중에 사랑과 생명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충일하게 되는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과거에 주신 모든 약속을 다 지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오리라는 그분의 약속을 믿고 확신할 수 있다.

 

 

둘째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목적

922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16:27).

 

구원의 위대한 계획은 재림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일 없이는 그분의 성육신, 죽음 그리고 부활도 우리의 구원에 소용이 없을 것이다.

 

1.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근본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무엇인가?(16:27)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인생이 언제나 공평한 것은 아니다. 사실 공평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우리 사회가 언제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악한 자들이 득세하는 동안 무죄한 사람들은 고통을 받는다. 많은 사람이 받아야 할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죄악의 지배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22:12)기 위해 오실 것이다.

이런 주장은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반드시 어떤 심판이 있어야 함을 암시한다. 예수님이 오실 때, 각자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이 같은 조사 심판의 의미를 암시하셨다(22:11~13). 우리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은 우리가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16:16, 1:12).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행위로 증명할 뿐이다.

16:27의 약속에서 중요한 것은 정의가 실현되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것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분 안에서 잠든 자들이 영생의 부활로 나아올 것이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우리는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과 그에 따른 영생의 부활이라는 소망은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부가설명> 예수님을 믿지 아니한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계시한다.(요일5:12) 생명이 없는 자에게 체벌적인 형벌을 집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은 자에게 부관참시를 하는 것은 형벌하는 자의 잔인한 모습만 드러날 뿐 죽은 자에게는 아무런 감각도 고통도 없는 것이다. “각 사람의 행한 대로라는 말씀을 이와 같은 생각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것인가? 행한 것이란 예수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으로 나누는 것이 아닐까?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을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와서 영원한 불로 화장(火葬)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화장을 해 주는 화장장(火葬場)을 불 못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닌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그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장례를 해 주는 것이 죽은 자들을 사랑으로 예우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각 사람의 행한 것은 예수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으로 구별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6:28,29) 심판을 집행하시는 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생각하면서 성경의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본 것이다. 독자들도 성경으로만 이런 문제를 한 번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교훈 :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목적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시기 위해서이다. 믿음 안에서 잠든 자들은 영생의 부활을 받고 산 의인과 함께 주를 뵐 것이다.

 

 

셋째날()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시는가?

923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24:25~27).

 

그리스도께서는 예언적 설교를 통해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에 우려를 표하셨다. 그리고 자기를 일컬어 그리스도라고 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자들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24:5, 23~26). 그분은 신자들이 속지 않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재림하시는 방식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셨다.

 

1. 24:27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방법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2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 번개가 번쩍일 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오실 것을 가르쳐주셨다.

 

번개는 감추거나 조작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공중에서 번쩍이며 빛을 낸다. 예수님의 재림도 그럴 것이다. 그것에 주목하도록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광고는 필요 없을 것이다. 선인과 악인, 구원받는 자들과 멸망할 자들 모두가 심지어 그를 찌른 자들도”(1:7) 그분의 재림을 볼 것이다(26:64).

 

2. 살전 4:13~18은 재림의 광경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살전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

 

재림의 날에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19:16)로서 모든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나타나실 것이다.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영광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53:2)도 없이 세상에 홀로 오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모든 천사”(25:31)의 호위를 받으며 큰 나팔소리와 함께”(24:31) 모든 위엄 가운데 강림하실 것이다. 마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불멸의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재림은 실제적으로 하나의 분명한 사건으로 일어난다. 그것은 호흡하고 활동하며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당시에 지구상에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 그 광경을 볼 수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사건이다. 어떤 사람들처럼 영적으로 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온다는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성경구절을 왜곡되게 사용한다. 마치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기록하였으되 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경구절을 인용한다고 모두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방법대로 또 기록하였으되를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오실 것이고 당시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오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오신다. 천만천사들이 동행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광의 부활을 함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공중에서 환영하며 맞이할 것이다. 그 자리에 함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교훈 :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목격할 수 있는 분명한 방식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천사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으로 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것이다.

 

 

넷째날() 예수님은 언제 오시는가?

924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24:33).

 

예수님이 성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4:2)고 하시자 제자들은 놀라며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24:3) 하며 물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역사의 종말과 성전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수님의 대답은 두 사건의 징조 즉 예루살렘 멸망(기원후 70)과 재림의 징조를 정교하게 결합시켰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두 사건의 차이점을 이해할 준비가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징조들의 본질과 목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이 주어진 이유는 재림의 날짜를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24:36)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징조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우며 심지어 임박했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가리킨다. 우리는 결코 날짜를 정하는 자가 되서는 안 되며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결코 간과해서도 안 된다.

 

1. 24:3~14, 21~26, 29, 37~39을 읽어 보라. 가능하면 막 13장과 눅 21장도 참고하라. 예수님은 여기서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과 얼마나 유사한가?

[24:3~14, 21~26, 37~39]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 예수님은 세상이 국가 간, 민족 간 전쟁이 이어질 것이고 지진과 기근과 재난이 잇달을 것이며 예수를 믿는 종교계에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횡행할 것이며, 그런 중에도 사회는 일상에 바빠서 거룩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종말에 대하여서는 감각 없이 지날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세상이 바로 그렇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각인시키고 싶은 가장 중요한 사상은 그의 재림이 가깝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예수님의 모든 예언 설교는 마치 제자들이 살아있을 때에 그분이 오실 것처럼 설명한다(24:32~33, 42).

사실상 우리 각자에게 재림은 죽음 직후에 일어나는 먼 일이 아니다. 죽음은 무의식 상태에 빠지는 깊은 수면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어서 눈을 감은 뒤 일 년이 지나든 천 년이 지나든 우리가 눈을 떠서 알게 되는 그다음 일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그래서 임박한 재림에 관하여 바울, 베드로, 야고보가 공유하는 사상은 일맥상통한다. 우리 각자에게 예수님의 재림이란 죽음의 순간 직후의 일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오시는 날과 때에 대하여서는 우리들에게 결코 밝혀주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기 때문에 우리가 알 바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1:7) 이 말씀에 의하면 재림의 날을 알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속히 오신다고 하셨다.(22:20) 이 말씀을 역사적 시간에 맞추어서만 생각하면 모순에 빠진다. 물론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기 때문에 인간이 계산하는 날과 그 이해가 다를 것이다. 그럴지라도 이 말씀은 인간의 죽음과 관련하여 이해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사람이 죽으면 그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가 죽는 날은 잠드는 날이다. 재림하실 때 잠에서 깰 것이다. 이것은 잠 든 그 이튿날 깨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잠든 그 이튿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연대로 언제든지 상관없다. 모든 구원받는 성도는 자기가 잠든 그 이튿날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한다. 진실로 속히 오시는 예수님이시다. 간단히 말하면 모든 진실한 성도는 내일 예수님의 재림을 맞게 된다. 왜냐하면 우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이라 일컫는 매일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늘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가 부활의

 

교훈 :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시는지 날짜를 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날은 시대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 매우 임박해 있다.

 

 

다섯째날() 깨어서 준비하라

925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24:44).

 

1.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항상 깨어서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24:42, 44)

[24:42~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우리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연도와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가 죽을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신 예언 설교의 주안점은 깨어 있으라는 명령형에 있다. 그것은 느긋하게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라 언제 있을지 모를 도둑에 대비하여 부지런하게 집을 지키는 주인처럼 능동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는 뜻이다(24:43). 그러나 주인이 집에 없는 동안 주인에게 위임 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신실한 종처럼 우리도 경계를 늦추지 말고 기다리면서 해야 할 일이 있다(24:45, 13:34~37).

 

2.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그분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조심해야 할 치명적인 태도는 무엇인가?(24:48~51, 21:34~35) 우리가 그런 태도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쉽게 그런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가?

[24:48~51]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21:34~35]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 예수께서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는 생활습관이다. 그리스도인은 방탕하지 않고 술 취하지 않고 생활에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악한 종의 비유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이 종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면서도 즉시 오시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을 대표한다. 주의 당도가 지연된다고 믿고 그들은 아직도 이기적으로 살면서 쾌락을 탐닉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재림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생각은 치명적인 덫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시지 않을지라도 우리 각자는 예기치 않게 생을 마감하도록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울 기회를 갑자기 놓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복적인 죄의 탐닉으로 말미암아 양심이 점점 굳어지고 둔감해져서 회개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마귀는 재림 준비를 미루도록 조장할 수 있는 한 우리가 이론적으로 재림을 믿더라도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 어떻게 재림을 준비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그동안 자백하지 않은 죄를 예수님께 회개하고 자백하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당하신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전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분과 교제하며 동행할 때에 우리는 그분의 의의 두루마기를 덧입는 심오한 평화를 맛볼 수 있다.

 

<부가설명> 수요일 부가설명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언제 죽을는지 모른다. 다만 아직 의식이 있는 그 시간만이 자기의 시간이다. 그것을 확대해서 오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만 산다. 내일 일은 우리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거시다. 그리스도인은 오늘만 산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한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다. 만일 내일을 맞는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오늘이지 내일이 아니다. 어제는 이미 지났기 때문에 나의 날이 아니다. 오늘만 사는 그리스도인은 그 오늘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수 있게 살아야 한다. 그 오늘에 죽는다면 그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날은 그에게는 내일이 된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내일 재림하시는 것이다. 진실로 속히 오시는 것이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3:13) 이 말씀을 잘 기억하자.

 

교훈 :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알 수 없지만 진실한 믿음과 순종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행하며 긴장을 늦추지 말고 깨어서 그날을 기다려야 한다.

 

 

여섯째날()

926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627~636 “감람산 위에서”, <각 시대의 대쟁투>, 299~316 “여명을 알리는 사자를 읽어 보라.

 

곧 사람의 손바닥 반만한 작은 검은 구름이 동쪽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두르고 있는 구름인데 멀리서는 어둠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이 인자의 징조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엄숙한 침묵 속에서 그 구름이 땅으로 점점 가까워짐을 주목한다. 그 구름은 점점 밝아지고 영광스럽게 되어 마침내 커다란 흰구름이 되는데, 그 아래는 타는 불과 같이 광명한 빛이 있고 그 위에는 언약의 무지개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강한 정복자처럼 구름을 타고 오신다.거룩한 천사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늘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분의 길에 수행한다. 하늘은 찬란한 천천만만의 천사들로 충만해진 것 같다. 그 광경은 사람의 붓으로 묘사할 수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 그 찬란한 모습을 가히 상상할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640~64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우리가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을 믿을지라도 광신주의의 위험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나 그것이 항상 쉽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정말 광신자로 생각하는 광신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성경말씀을 올바르게 항상 연구하고 매일의 일상생활을 진리의 원칙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괴짜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평범한 생활에서 진리의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재림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절대 먼 일이 아니라는 개념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산다할지라도 죽음이 결코 그렇게 먼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고는 우리 각자에게 재림이 얼마나 가까운지에 대해 어떤 사실을 말해줍니까?

이것은 수요일과 목요일 부가설명에 잘 설명했다.

 

재림 사상을 조롱하는 자들에게 그대는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반응하기 전에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십시오. 그렇게 한 뒤에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고 그대가 대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해도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죽음과 관련하여 진지하게 죽음을 정복한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다음 주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지금 그대의 삶에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오늘이라 하는 매일을 진리의 원칙을 따라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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