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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주의 형제 야고보

 

104일 안식일

일몰오후 612

 

기억절 :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14).

 

연구 범위 : 7:2~5, 고전 15:5~7, 1:3, 2:5, 벧전 2:9~10, 7:24~27.

 

지금 우리는 시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기독교 초기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새싹 단계의 기독교 운동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그 당시 많은 회중이 가정에서 만났고 대부분의 신자가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는 유대인이었다. 야고보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 전개된 갈등의 안개 속에 사라지기 전, 즉 유대인 교회가 2세기부터 확산된 이방인 교회에 의하여 소외되기 전의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여준다.

여타의 서신과 달리 야고보가 서신을 기록한 이유는 어떤 교회의 문제나 긴급한 필요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야고보서의 수신인은 흩어져 있는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번 주, 우리는 야고보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저자에 대하여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한다. 우리가 제기하려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저자의 배경은 무엇인가? 그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인가? 그는 교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학습 목표

깨닫기 : 초기 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신앙을 이해하고 야고보서가 현재의 교회의 개념과 의미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 인식한다.

느끼기 : 약함을 강함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알고 의심에서 믿음으로 나아간다.

행하기 :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믿음을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A.

예수님을 반대했던 야고보는 어떻게 복음의 수호자가 됐을까요?

예수게서 부활하신 후에 야고보에게 개인적으로 현현하셔서 그의 믿음을 주셨다.

야고보서의 내용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용이 복음서와 유사한데, 야고보서가 먼저 기록된 사실이 그것을 알게 한다.

지금은 신앙을 반대하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신자가 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진리와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이치를 따지는 사람들이 이치를 깨달으면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B.

신약 성경의 기자들 중에 열 두 제자가 아닌 사람들을 헤아려 봅시다.

마가, 누가, 바울, 야고보, 유다.

성경에 따르면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수의 형제로서 예수를 믿지 않았으나 예수님 부활 후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초대교회 지도자가 된 사람이다.

그대는 야고보서가 성경 안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진 책이라고 생각합니까?

믿음과 생활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잘 가르치는 책이다.

각자의 경험을 들어 믿음을 활용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해 봅시다.

믿음이 생활이 되지 않는 것은 지식이기는 하지만 신앙은 아니다.

 

결론 : 예수님의 형제로서 야고보는 초기 기독교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됐습니다. 그는 서신을 통하여 어떻게 믿음과 행위가 함께 일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하고 왜 그것이 중요한지 설명했습니다.

 

첫째 날()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928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1:1).

 

이 서신의 저자는 교회에 잘 알려진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 서신에는 약 1:1 외에 저자에 대해서 더 이상의 특별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그의 정체에 대하여 선택의 폭을 좁힐 수 있다. 신약성경에는 네 명의 야고보가 등장한다. 열두 제자 가운데 두 명의 야고보가 있었다(3:17~18). 열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의 아버지가 야고보였다(6:16).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 중 한 명이 야고보였다(6:3). 이 넷 중 예수님의 형제 야보고만이 이 같은 서신을 기록할 만큼 오래 살았고 교회 안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신약 서신의 저자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고 확신한다.

목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13:55) 야고보는 평범한 농부보다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의 서신은 신약성경에서 문학적인 그리스어 문체를 사용한 가장 훌륭한 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오직 히브리서만이 야고보서의 풍부한 어휘와 수사적 기교, 구약에 대한 지식을 능가한다. 그의 이름은 예수님의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된다. 그렇다면 그는 분명 장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모친을 맡기셨던 사실에서 미루어볼 때(19:26~27), 예수님의 형제들은 요셉이 마리아가 아닌 이전의 혼인 관계에서 낳은 아들들이었을 것이다.

 

1. 예수님의 사역을 염두에 두고 다음의 성경절을 읽어 보라.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3:21). 7:2~5도 참고하라. 이런 말씀을 고려해 보면, 예수님은 가족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가?

[7:2~5]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 가족들에게 신뢰받고 있지 않는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족들이 그 사회적 환경에서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지 못했고 일반적 유대인의 시각으로 보았던 것이다.

 

2. 우리가 때로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오해를 받는다면 이런 말씀에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 성경의 신앙으로 살아갈 때에 이런 오해와 냉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예수께서 대처하신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도 예수를 믿지 않았으나 부활하신 후에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고 그를 신앙의 세계로 인도하셨다.(고전15:7) 그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초대교회에 기둥같이 일하는 일꾼이 되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야고보도 예수를 믿지 않았고 아마도 핍박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예수님을 핍박했으니 그를 믿는 사람도 핍박할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켰으니 그를 믿는 사람의 말도 지킬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15:20) 예수님이 식구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을 것이다.(10:21)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10:35,36)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역사의 현장에 생활할 때에 예수님이 당하신 것과 같은 오해와 고난을 당해도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께서 친히 겪으신 사건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가지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핍박 하는 사람 중에 야고보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충성하는 성도가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훈 : 신약에 등장하는 네 명의 야고보 가운데 야고보서를 기록할 만한 인물은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없으며 그는 예수님과 배다른 형제였다.

 

둘째 날() 신자가 된 야고보

929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14)

 

1. 고전 15:5~7과 행 1: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야고보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고전15:5~7]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야고보에게 나타나 보이시는 것을 통하여 그가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마가의 다락방에 초기 신자들이 모일 때에 함께 하여 마음을 같이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 그 다음 오백 명 이상의 사람 앞에 나타나셨다. 하지만 야고보는 이 오백 명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예수님은 그에게 별도로 나타나셨다. 이 만남은 분명 특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따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성경은 아무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럴지라도 야고보는 그 만남을 통해 분명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충성스러운 예수님의 제자요 교회 안에서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2. 그 밖에 우리는 야고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12:16~17, 15:13~14, 19, 21:17~19, 1:18~19, 2:9)

[12:16,17]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5:13,14,19]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1:17~19]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1:18,19]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 예루살렘 교회에 기둥 같은 일꾼으로 봉사하였으며 교회의 첫 총회인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으로 봉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야고보는 신속하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인 인물이 되었다.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이후에(기원 후 44)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야고보에게 알리기를 원했다(12:17). 5년 뒤에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으로서 결의내용을 발표하였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의 목록에서 야고보를 베드로와 요한보다 먼저 언급한다(2:9). 이 사건 이후로 몇 년이 지난 뒤에 바울은 여러 교회로부터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한 모금을 가져왔다. 각 교회의 대표자들은 차례로 야고보의 발 앞에 성금을 내려놓았다.

야고보는 사도들이 죽은 뒤에도 수십 년 동안 높은 명망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인 야고보로 기억될 정도로 그의 경건은 여러 전승의 소재였다. 야고보는 예수님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해서 초기 교회의 영적 거장으로 생을 마쳤다.

 

<부가설명> 우리 성경에는 야고보와 유다 등을 예수의 동생이라고 번역하였다. 원문은 아델포이인데 형제들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그런데 예수님을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였다는 표현으로(2:7) 인해 예수님을 맏아들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성경은 첫 태에 처음 난 남자”(2:23)라고 하여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는 다 주의 거룩한 자라고 한 것은 남자의 맏아들을 뜻하는 말만이 아니다. 여자가 첫 태에 처음 아들을 낳은 것도 포함되는 표현이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첫 태에 처음 난 아들이었다. 그러나 야고보와 유다 등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는 암시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인의 풍속을 알면 알만한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3장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3:31) 유대 풍습으로 동생이 사람을 보내어 형을 부른 일은 예의가 아니었다. 형은 동생을 그렇게 부를 수 있었다. 이 장면과 이 비슷한 장면은 예수의 형제들이 나이로는 손위라는 것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마리아가 처녀이기 때문에 예수가 맏아들이니까 예수의 형제들은 당연히 예수의 동생이라는 논리가 쉽다. 그러나 마리아가 요셉의 후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요한을 아들이라고 지적하고 요한에게 그 모친을 부탁하는 사건은 예수의 형제들이 마리아의 아들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래서 그들은 후처의 아들인 예수를 무시하고 랍비들의 편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부활 후에 야고보에게 일부러 개인적으로 나타나시고 그 형제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었고 야고보와 유다는 신약성경에 편지서를 남기는 신앙의 사람들이 된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 형제 야고보에게 별도로 나타나셨고, 그 후에 그는 초기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지도자로 봉사하였다.

 

셋째 날() 야고보와 복음서

930

 

불행히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루터의 영향 때문에 야고보서에 담긴 중요한 기별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 시대의 교회를 위한 루터의 기여를 무시하지 말되 종교개혁이 루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세상 역사의 마지막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개혁자들이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을 뿐 아니라 밝혀져야 하는 중요한 진리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The Story of Redemption, 353 참고).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나 조지 화이트필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성결의 중요성을 강조한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 웨슬리 형제를 통해 일어난 대각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개혁의 사업은 2차 대각성으로 이어졌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일으키셨다. 전 세계적인 복음의 선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성령 충만한 백성을 통해 절정에 이를 것이다(14:12).

 

1. 1:3, 2:5, 22~23, 5:15을 읽어 보라. 여기서 믿음의 기능은 무엇인가? 이 성경절들에 따르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말씀들은 믿음이 여러 명제적 진리에 대한 지적 동의 이상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2:5,22,23]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 믿음으로 사는 것은 시련을 받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믿음이 이론이나 지적 시인이 아니라 믿음은 실제적인 생활이라는 것을 강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야고보가 그 짧은 서신에서 믿음을 열아홉 차례 언급했다는 사실은 어떤 이들에게 충격이 될 수도 있다. 야고보는 행함과 의로움을 결합시키기보다 더 자주 믿음에 대해 언급했다. 사실 그는 첫 장부터 시험에 처할 때 지혜를 구하라는 권면과 관련하여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3, 6). 이는 야고보가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일정 차원의 믿음에 이르기를 기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앞으로 보겠지만 믿음의 행위는 그 자체로 어떤 공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식별 가능한 특성을 지닌다. 즉 진실한 믿음은 신자들의 삶과 품성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부가설명> 믿음은 지식적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행위요 생활자체이다. 우리는 믿음을 지식적 시인으로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믿음의 지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으로만 그치면 전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아니다. 많은 경우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행위를 계명을 지키는 삶이라고 좁게 생각한다. 믿음의 행위라는 것은 성도들의 생활 전체를 아우르는 삶을 뜻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이나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긴 것은 계명의 구체적인 조문과 직접 관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생활로 실천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 그대로 행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음식으로 돌아가라 하면 그대로 해야 믿음이다. 창조한 음식으로 돌아가라고 선지자를 통하여 권고했는데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라고 하면 믿음의 삶이 아닌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오늘 재림성도들의 삶이 과연 믿음으로 사는 것인지 깊이 성찰할 일이다.

 

교훈 : 야고보서는 결코 믿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단지 진정한 믿음의 특성은 신자들의 삶과 품성을 통해 행위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했을 뿐이다.

 

넷째 날()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10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1).

 

1. 1:1, 11:19~21, 벧전 2:9~10을 읽어 보라. 여기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란 누구인가? 어떻게 그들은 널리 흩어지게 됐는가?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1:19~21]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벧전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는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그들을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에 핍박이 이를 때에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하여 그 지방 사람들이 복음을 받게 하였다. 그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야고보는 신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처음에 복음 사역은 예루살렘에 집중되었다(24:47). 그러나 스데반의 순교 이후로 박해가 강화되자 신자들은 흩어졌고 그 결과 복음의 씨앗이 도시들과 로마제국 주변 지역에 파종되었다.

사도행전 11장에 따르면 복음은 안디옥에서부터 시작하여 꽤 이른 시기에 이방인들에게 전파된다. 그렇다면 열두 지파는 그리스도인 전체를 의미할 것이다. 당시에는 민족성에 기초한 다른 회중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할지 말지를 빨리 결정해야 했다(15:1~6).

 

2. 15:12~21을 읽어 보라. 야고보는 초기 교회가 씨름하는 문제점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15:12~21]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이 되라고 권고하지 않도록 결정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결의하였다.

 

성경적인 해결책은 연합된 교회를 보호했다.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확장에는 이방인들도 포함되리라는 아모스의 예언을 인용한다(15:16~17). 아모스의 예언은 외국인 거주자들에 대한 모세의 법에 기초를 두었다(18~20). 야고보는 자신의 독자들을 열두 지파로 부름으로써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아브라함 언약의 후사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켰다. 베드로도 유사한 생각을 염두에 두고 외국에 흩어진”(벧전 1:1)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할 때 그들을 거룩한 나라”(벧전 2:9)로 묘사한다(19:5 참고). 두 서신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디아스포라는 보통 이스라엘 영토 밖에 사는 유대인들을 언급한다(7:35 참고).

 

<부가설명> 초대교회에도 교회 내에 파당들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6장에는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의 갈등을 기록하고 있다. 15장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총회가 열린 것을 기록하고 있다. 복음은 어떤 민족의 습관과 문화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예수의 피로 형성된 새로운 피조물인 민족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문화를 창달해야 하는데, 현재 처하여 사는 세상의 환경에서 그리스도인 문화를 이루고 실천해야 한다.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 자신이 그가 출생하고 성장한 환경의 전통과 문화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그래서 전적으로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따라야 하는 것이며 말씀이 가르치면 무조건 아멘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교훈 : 야고보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아브라함 언약을 공유하는 후손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을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로 불렀다.

 

다섯째 날() 예수님과 야고보

102

 

야고보는 소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장년기에 예수님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야고보는 자신을 예수님의 형제가 아니라 이라고 부른다(1:1). 그는 분명 겸손과 참된 지혜를 배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그의 서신의 중요한 주제가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1:9~11, 21, 3:13~18, 4:6~10).

 

1. 다음의 성경절을 비교하고 공통점을 요약해 보라.

1:22 “너희는 말씀을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7:24~27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3:12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따겠느냐

열매로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확인된다는 것.

4:12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는 것.

 

야고보서가 예수님의 가르침 특히 산상수훈과 가깝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야고보서의 모든 가르침의 기저에는 예수님의 영향이 깊이 깔려 있다.”-Peter H. Davids, The Epistle of James (Grand Rapids, Mich.: Eerdmans Publishing Co., 1982), 50.

야고보서를 복음서들과 철저하게 비교해 보면, 그것이 어느 복음서에도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야고보는 청중들에게 언제나 믿음을 고취시키고 그것을 활용하도록 격려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개인적으로 익히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서신을 기록했다.

이번 기에 야고보서를 연구할 때, 우리는 그와 매우 유사한 접근법을 발견할 것이다. 야고보는 나약하고 결실 없는 우유부단한 믿음에 만족하지 않는다. 다음 주에 살펴보겠지만 야고보서 서론부의 지배적인 주제는 믿음이다. 그다음 그는 이 핵심적인 속성이 어떻게 그리스도와의 중요한 관계를 강화시키는지 보여준다.

 

<부가설명> 야고보서는 신약성경 중에 가장 일찍 기록된 책으로 간주된다.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기록되었고, 바울서신들이 기록되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에 기록된 내용이 마태복음의 내용과 유사한 것이 많지만 야고보가 마태복음을 참고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야고보가 처음에 예수를 믿지 않았으나 관심을 가지고 예수의 교훈을 들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직접 들었던 교훈들을 마침내 그가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고 자신을 예수의 종이라고 여기게 되었을 때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로 적어서 가르친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도행전 15장의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이 편지를 썼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15장의 총회에서 결의한 사실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의 핵심에서 벗어나서 이방의 풍속을 교회가 용납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려는 사랑의 배려가 내용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각각 사는 환경에 문화적 풍속적 영향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민족이 되었으니 믿음이 생활 문화와 풍속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간곡히 호소하는 편지라고 생각된다.

 

교훈 : 야고보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초로 서신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믿음의 활용을 강조하였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103

 

예수의 형제들은 종종 진부하고 시대적으로 낡은 바리새인들의 철학을 제시하여 모든 진리를 아시고 모든 오묘를 이해하시는 예수를 가르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함부로 비난하였다. 그들의 비난은 예수의 골수를 찌르는 듯하였고 그분의 심령은 기진하고 비탄에 젖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노라고 공언하였고 하나님을 옹호한다고 생각하였으나 하나님이 육신이 되셔서 저들과 함께 계셨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예수의 가시는 길을 가시밭길로 만들었다. 가정에서의 몰이해로 너무 괴로우셔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오해가 없는 곳으로 가셔서 위안을 얻으셨다”(시대의 소망, 32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야고보서는 실천적인 그리스도인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지침서입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되었을지도 모릅니다(기원후 44년에서 49년 사이). 야고보서는 신학적인 책일 뿐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해 줍니다. 왜 우리에게는 무엇을 믿는가?’만큼 어떻게 믿음대로 사는지?’가 중요합니까? 믿음의 내용과 믿음의 실천 중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예를 들면 주일 중 첫째 날을 진실하고 진지하게 지키는 신실한 일요일 준수자와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지만 그것을 온전하게 지키지 않는 안식일 준수자 가운데 누가 더 나을까요?

둘 다 틀렸다. 일요일을 주일로 아무리 신실하게 지켜도 그는 말씀을 올바르게 따르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방향이 다른 길로 달리는 것이고, 안식일을 기억하지만 거룩하게 바르게 지키지 않는 사람은 말씀대로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게으른 자가 되는 것이다.

 

일요일 소지에서 보았듯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만물의 창조주이시지만, 형제자매를 두실만큼 우리와 같은 인간이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놀라운 개념으로부터 하늘과 타락한 세계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연결하는 방법을 어떻게 이해하게 됩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희생이다.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겸손은 야보고서의 한 주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겸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십자가와 거기서 일어난 일들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오만하고 자고한 태도를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겸손은 도덕적 겸손과 차원이 다르다.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시인하고 따르는 것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2:3)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기까지 한 사실을 기억하면 어떻게 말씀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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