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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일 안식일

일몰오후 729

 

기억절 :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6~28).

 

연구 범위 : 1:39~55, 2:36~38, 7:11~17, 7:36~50, 10:17, 8:1~3, 18:1~8

 

누가복음은 때로 여인 복음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예수님이 여성의 필요에 얼마나 민감하셨으며 그분의 사역에 여인들이 어떻게 참여했는지 특별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일부 사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시대의 여인들은 가치 없는 존재였다. 그 당시의 유대인 남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노예나 이방인 그리고 여인으로 창조하지 않으신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그리스와 로마 사회는 여인들을 더 심하게 취급했다. 로마 문화는 거의 무제한적인 방탕이 허용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남자는 자신의 재산을 상속할 법적 자녀를 생산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아내를 두었고 쾌락을 위해서는 첩들을 두었다.

여인들을 경시하는 그러한 문화에 맞서 예수님은 그들이 진정으로 아브라함의 딸이라는 복음을 전하셨다(13:16). 예수님 안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시선에 남자와 동일한 가치 있는 존재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시대의 여인들은 틀림없이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오늘날 모든 나라의 여인들에게 주어지는 기별도 동일하다. 우리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같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이 여인들을 존귀하고 평등하게 대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그리스도인들의 사귐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의식을 갖는다.

행하기 : 이성을 평등하게 대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한다.

 

A.

누가복음에는 여인들에 대한 언급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엘리사벳, 마리아, 안나, 나인성 과부, 막달라 마리아,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다른 여러 여자, 법관에게 호소한 과부, 두 렙도 넣은 과부, 혈루증 여인, 십자가를 따라가며 우는 여자들, 십자가 주변 여자들, 부활을 전한 여자들 등등 아주 많다.

여인들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는 여성에 대한 당시의 편견과 얼마나 달랐습니까?

예수님은 여자들을 하나님의 딸들로 대하셨다.

예수님이 여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가 적용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여자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B.

누가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 가려진 여성들의 역할을 어떻게 강조했습니까?

예수님의 사역에 여자들이 많이 동참한 사실을 기록하여 강조했다.

예수님이 봉건적인 그 시대에 여성들을 제자로 수용하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예수께서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창조하신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교회가 여성들의 은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계발하고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를 따라 여성들을 적재적소에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론 : 회심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자유자와 종 사이에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누가는 이런 개방성을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에서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여성들의 역할을 현재의 교회 사역에 반영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날() 예수님의 초림을 환영했던 여인들

53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1:42~43).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아버지께서 위임하신 구속의 사명을 완수하고 백성들의 메시아적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경이로운 우주적 사건에 대한 여인들의 반응을 기록한 사람은 누가밖에 없다. 비록 그들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 이처럼 놀라운 일에 대한 그들의 말과 반응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경의를 나타냈다.

 

1.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을 기록한 눅 1:39~45을 읽어 보라.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엘리사벳의 말에 미뤄볼 때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1:39~45]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42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 구주가 탄생할 것을 알고 있었다.

 

마리아도 엘리사벳에 이어서 말했다(1:46~55). 하나의 노래로 이해되는 이 말들은 구약에서 빌려온 표현들로 가득하다. 이는 마리아가 경건한 성경 연구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친으로 적합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마리아의 노래는 성경에 기초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그녀의 깊은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그녀의 마음과 그녀의 주 그리고 그녀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소망 사이에 하나의 정체성이 나타난다.

 

2. 2:36~38을 읽어 보라. 성전에서 들은 안나의 이야기 속에서 어떤 중요한 진리가 밝혀졌는가?

[2:36~38]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 예루살렘이 구속(救贖)될 것이 밝혀져 있다.

 

바라던 소망이 예수님을 통해 극적으로 성취될 예정이었다. 한 늙은 과부는 그 기적을 알아차리고, 그 이후로 성전을 찾은 모든 사람에게 구주의 오심을 선포하는 일을 거부할 수 없는 사명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첫 번째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태초에 남녀가 평등하게 창조하셨다. 죄가 여자로부터 들어오게 되면서 아내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이 아내를 다스리는 질서가 생겼다. 이것은 질서 이야기이지 인권 이야기가 아니다. 인권과 인격에 있어서는 지금도 남녀가 평등하고 생명의 가치는 동일하다. 그러나 창조 때부터 역할은 다르다. 여자가 남자의 역할을 할 수 없고 남자가 여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 특히 생명 생산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죄의 세력이 점점 확장되면서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지금은 롯의 때보다 더 심한 시대가 되었다. 여자는 여자의 위치에 남자는 남자의 위치에 올바르게 서서 하나님이 세워주신 질서를 따를 때 안정과 평안이 있을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교회는 잘 따라야 할 것이다. 여자가 선지자로 사사로 활동한 기록은 여자의 인격과 인권이 남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사실들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탄생했을 때 목자들을 제외한다면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맞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요즘도 교회에 여자가 더 많다. 천국에 여자들이 더 많이 들어갈 것인가? 여자나 남자나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이라야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교훈 : 엘리사벳, 마리아, 안나와 같은 여인들은 믿음과 소망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초림을 감지하고 환영했다.

 

 

둘째 날() 여인들과 예수님의 치유 사역

54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7:5).

 

나인성에서 일어난 기적의 이야기를 눅 7:11~17에서 읽어 보라. 한 가난한 과부에게 독자의 죽음이라는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수많은 추모객이 이웃의 슬픔에 동정심을 표하기 위해 장례 행렬에 그녀와 함께하였다. 아들의 죽음과 함께 불확실한 미래의 삶은 그 과부로 하여금 슬픔과 절망에 빠지게 하였다.

그런데 성을 나가려는 장례 행렬은 입성하려는 또 다른 행렬과 만났다. 나가려는 행렬의 앞에는 죽은 자의 관이 있었고, 들어오는 행렬의 앞에는 전능하신 생명의 창조주가 계셨다. 두 행렬이 만났을 때, 예수님은 절망과 슬픔에 가득한 그 과부를 보셨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7:13).

울지 말라는 위로가 생명의 주 되시는 예수님에게 나오지 않았다면 전혀 의미가 없을 뻔하였다. 왜냐하면 울지 말라는 명령의 배후에는 그 눈물의 원인을 제거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앞으로 나아가 시신에 손을 얹고 일어나도록 명령했다. 시신에 접촉하는 것은 제의적인 부정으로 간주되었다(19:11~13). 그러나 예수님께는 제사보다 자비가 더 중요하였다. 단순히 제사에 얽매이는 것보다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더욱 시급하였다.

나인성은 큰 기적을 목격했을 뿐 아니라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예수님에게는 남자의 상심이나 여자의 상심이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분의 임재가 죽음의 권세를 물리쳤다.

8:41~42, 49~56을 읽어 보라. 야이로는 회당 예배와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회당장으로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매 안식일 그는 기도와 성경 봉독, 설교를 인도할 사람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는 지위가 높고 영향력이 있었을 뿐 아니라 부와 권세도 있었다. 그는 딸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이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죽은 아들을 그 어머니에게, 죽은 딸을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이었다. 이런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 특히 그 부모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기사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러한 능력에 대해 얼마나 제한된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현 상황과 관계없이 그런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자아를 포기하고 전적을 말씀에 굴복하는 것이다. 지금은 말씀 안에서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기록이 셋이다. 그 첫째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고 둘째가 야이로의 딸, 마지막이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다. 나사로를 살릴 때도 그 누이들이 있었다. 누가복음의 여자들을 이야기하면서 죽은 자를 살린 사건을 말하니까 나사로 살릴 때도 그 집안에 여자들만 있었던 사실이 생각난 것이다. 자녀가 죽으면 부모가 다 상심하고 슬프지만 어머니의 애통함이 아버지보가 극심할 것이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것으로 예수님은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증명하셨다.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는 부활의 확실성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셨다. 나사로가 나흘 만에 살아난 사실이 예수님이 부활한 것과 같은 부활은 아니다. 예수님과 같은 부활을 경험하는 것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첫째 부활이다.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나흘이나 된 시체, 썩으면서 냄새가 나는 시체를 생명을 주어 일어나게 하신 것으로 부활의 능력을 확실히 드러내시고 예수님이 생명이라는 것을 증거하신 것이다. 이런 장면에 증인으로서 여자들이 있었다.

 

교훈 : 자녀를 잃은 부모의 비애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동정에는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다.

 

 

셋째 날() 감사와 믿음의 여인들

55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8:43~44).

 

7:36~50에서 예수님은 식사 시간을 죄 많은 여인에게 존귀함을 베푸는 영적 교훈의 시간이 되게 하셨다. 바리새인이자 지도적인 인사였던 시몬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을 때 갑작스러운 소동이 벌어졌다.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37) 예수님께 달려들어 매우 비싼 옥합 상자를 깨뜨려 예수님께 붓고 그분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그분의 발을 닦았다.

 

1. 감사를 표현한 여인과 그녀의 믿음의 행위를 용납한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 예수님은 죄인을 용납하시고 사유하셔서 새 생명을 얻게 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안목으로 그 여자의 경우가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에게서 선의 가능성을 발견하셨다.구속의 경륜은 큰 가능성을 가지고 인간에게 주어졌다. 따라서 마리아에게 이 가능성이 실현되었어야만 했다. 예수의 은혜로 그는 거룩한 품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예수의 부활 후에 무덤에 제일 먼저 나타난 사람은 마리아였다. 부활하신 구주를 처음으로 선포한 사람도 마리아였다”(시대의 소망, 568).

8:43~48을 보면 구주께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가장 가련한 사람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앓은 불치의 병 때문에 그녀의 몸과 정신은 피폐해졌다. 그런데 12년 동안이나 계속된 비극 속에 어느 날 갑자기 한 줄기 소망의 빛이 비쳤다. 그녀는 예수의 소문”(5:27)을 들었다.

그녀가 들은 소문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소문을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품으시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고, 무엇보다 그녀와 같은 절망적인 백성들을 보살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소문을 들은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들음은 반드시 믿음으로 발전해야 했다(10:17). 그녀의 믿음은 예수님의 옷깃을 만지는 단순한 행동으로 그녀를 인도했다. 그녀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결의에 차고 효험이 있는 믿음에 이끌려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다. 오직 그와 같은 믿음만이 생명의 시여자로부터 은총을 받을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8:48).

 

<부가설명> 예수님 이야기는 당시에 굉장한 선풍을 일으켰을 것이다. 나사렛 촌 목수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천국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랍비들의 이야기와 다른 내용을 설교하고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이적을 함께 행하였으니 온 나라가 들썩거렸을 것이라고 짐작하기에 넉넉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 나사렛 목수 예수가 가난하고 무시당하고 병들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동정하고 도와주고 고쳐준다는 소문은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예수 만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봉사하신 팔체스타인 지역이 넓은 지역이 아니다. 강원도 보다 좀 더 큰 면적이다. 2000년 전 옛날이지만 소문은 바람처럼 퍼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예수 만나기를 어찌 소원하지 않았겠는가. 예수 발에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자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이다. 누가 7장의 여자와 요한 12장의 마리아를 비교하면 당장 알 수 있다. 증언의 말씀도 그렇게 말했다. 그가 막달라 지역에서 예수를 만나고 죄 사유함을 받고 믿음으로 깨끗함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막달라 마리아였다. 그는 요한 8장의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와는 전혀 다른 여자이다. 많은 재림신자들이 이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 8장에 이미 예수님을 수종하는 여자로 등장하는데 이때는 기원 29년 유월절에서 30년 유월절 사이에 두 번째 갈릴리 여행 때이다. 그러나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 사건은 30년 가을부터 31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유월절 사이에 있었던 사건이다. 이 여자가 예수께 용서받기 거의 1년 전에 막달라 마리아는 이미 예수님을 수종하고 있었다.(본교주석 5권 복음조화를 보라.) 예수님은 이 억울하고 죄 많은 여자를 알아보시고 구원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셨다. 우리도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찾고 만나면 예수의 생명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의 가능성을 가지고 대하시기 때문에 죄인으로 지목된 여인의 행위도 받으셨고 믿음으로 옷깃을 만진 여인도 고쳐주셨다.

 

 

넷째 날()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들

56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8:3).

 

1. 10:38~42을 읽어 보라. 이 기사에서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8:14 참고)

[10:38~42]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 세상 염려로 마음을 막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최우선 자리에 두어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마르다는 여주인으로서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10:40)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39)을 들었다. 힘든 일을 도맡아 하게 된 마르다는 예수님께 불평하였다. 물론 예수님은 섬기는 일에 마음이 분주한 마르다를 책망하지 않으셨지만 생명에 필요한 바른 우선순위의 필요성을 지적하셨다. 예수님과의 사귐은 제자도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다. 식사는 나중에 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사업에는 주의 깊고 정열적인 일꾼이 필요하다. 마르다와 같은 사람들이 열심을 다해 활동적인 종교 사업을 펼칠 수 있는 넓은 분야가 있다. 그러나 그들로 먼저 마리아처럼 예수의 발 앞에 앉게 하라. 근면과 기민성과 정력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화되게 하라. 그리하면 그의 생애는 선을 위한 무적의 능력이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525).

 

2. 8:1~3, 23:55~56, 24:1~12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사역에서 여인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8:1~3]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23:55,56]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24:1~12]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4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 8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고하니라) 11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 여자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다. 또 예수께서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이 무덤에 어떻게 누웠는지를 살피고 향품을 준비하였으며 부활하셨을 때 맨 먼저 확인하고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였다.

 

예수님은 사역의 폭을 넓히시면서 열두 제자들과 함께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8:1)셨다. 누가는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여인들과 그분의 설교에 감동을 받은 여인들, 또 부유한 여인들이 그분의 사역이 확장되는 과정에 함께했다는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다음은 누가가 언급한 몇 가지 예이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하여 악령으로부터 놓임을 받은 어떤 여인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다른 여러 여자가자기들의 소유로”(8:3)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다.

 

<부가설명> 남자들이 예수님과 동거동행하면서 예수님의 사역(使役)을 배우는 동안 여자들은 그들의 가진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다. 예수님이 생계를 위한 직업이 없었다. 그분은 천국복음을 전하는 것이 직업이었고 남자 제자들은 그것을 배우는 것이 직업이었다. 즉 제자 노릇하는 것이 직업이었다. 성경에 예수께서 의식주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기록이 없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10:10)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의 봉사를 받은 사람들이 공급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눅8:1~3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는 여자들이 자기들의 소유로 했다는 기록은 그들이 예수 일행들의 일상필요의 상당 부분을 충당했을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충성스럽게 예수를 따랐고 섬겼다. 장례를 끝까지 지켜보고 향품을 준비했고, 부활의 아침에 맨 먼저 확인하고 만나고 그 놀라운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그들은 진정으로 섬기는 자들이요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었다. 이런 활동은 예언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가 큰 무리라.”(68:11) 복음 전파에 여자들의 몫이 대단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교훈 : 예수님의 사역이 확대되면서 마리아, 마르다 외에 질병과 귀신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여인들과 부유한 여인들이 그분을 섬기며 추종하였다.

 

 

다섯째 날() 항상 기도하며 헌신적으로 드림

57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21:2).

 

누가는 예수님이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어떻게 두 과부의 이야기를 예로 드셨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경우에서 예수님은 사악한 법관에게 가로막혀 고군분투하며 공의를 찾는 가련하고 무력한 과부를 불쌍히 여기신다(18:1~8). 그녀는 불의와 사기의 피해자였지만 법과 정의의 통치를 여전히 믿는다. 하지만 재판장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백성을 무시하는 자이다. 물론 그는 과부를 도울 생각이 없다. 과부를 돌보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의무이다(22:22~24, 68:5, 1:17). 하지만 그러한 율법은 재판장의 안중에 없다. 과부에게는 단 하나의 무기, 끈기가 있었다. 그녀는 그것으로 재판장을 지치게 만들어 결국 의로운 판결을 얻었다.

이 비유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친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18:1). 기도는 상황을 바꾸고 악한 재판장의 마음도 변화시킨다. 꾸준한 믿음은 승리하는 믿음이다. 진실한 믿음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전하는 변함없는 충고는 아무리 인자가 오실 때까지 오랫동안 최후의 신원을 기다려야 할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8).

두 번째 경우에(21:1~4, 12:41~44), 예수님은 성전 근처에서 서기관과 종교 지도자들의 가식과 위선을 질타하시고 그들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즉 진실한 믿음의 본질을 나타내는 한 과부를 가리키셨다. 예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종교 지도자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20:47)며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는 성경의 명령을 거역한 자들이었다.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경건하게 보이기 위해 자선을 베풀었다. 하지만 그들의 자선은 남아도는 부를 동냥하는 정도였지 개인적인 헌신의 의미는 전혀 없었다. 반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가진 전부를 드린 과부를 진실한 신앙의 모본으로 삼으라고 요구하셨다.

경건을 가장한 이들의 동기는 보여주는 것이었다. 반면 과부의 동기는 헌신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녀로 하여금 동전 두개를 드리도록 이끈 힘은 하나님을 모든 소유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으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모든 것을 보시는 창조주 앞에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드렸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동기로 드렸느냐이고, 헌금의 액수가 아니라 헌신의 정도이다.

 

<부가설명> 꾸준히 기도하라고 가르치실 때 등장한 과부는 비유 속의 인물인데 실존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꾸준히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주기를 졸랐을 때 불의한 재판관도 마침내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이야기를 통하여 성도들이 진정한 필요를 꾸준히 아뢰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이 과부는 자기가 구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그 한 가지를 위하여 간청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무엇이 꾸준히 간구해야 할 것인지를 모르면 꾸준히 기도할 수 없다. 우리는 먼저 그것을 알도록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 위하여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그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헌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두 렙돈을 다 넣은 과부처럼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구제하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믿기 위하여 일상 필요한 재산을 처리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물질은 주를 위하여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고 먼저 자기 자신과 자기 인생을 예수님께 몽땅 바치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을 이 과부의 신행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두 과부의 이야기를 사례로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과 진정한 헌신의 모본을 가르치셨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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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사 고민하는 중에도 당신의 어머니를 기억하신 분 그리고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무덤에서 부활하신 구세주에 대한 기쁨의 첫 소식을 전파하는 사자로 삼으신 분, 그분은 오늘날 여인들의 가장 좋은 친구이시며 모든 인생사에 있어서 그들을 도우려고 하신다”(재림신도의 가정, 204).

 

주님께서는 남성들을 위해서뿐 아니라 여성들을 위하여 일을 준비해 놓으셨다. 여성들은 이런 위기에 처하여 주님의 사업에서 그들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일하실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의무감에 젖어 있고 성령의 감화 아래서 일하게 되면 그들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침착성을 갖게 될 것이다. 구주께서는 이러한 자아희생적인 여성들에게 당신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실 것이며, 인간의 힘을 능가하는 능력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그들은 남성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가정 안에서 하고 내적 생활에 미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들은 남성들이 접근할 수 없는 자들의 심령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그들의 활동이 절실히 요구된다”(복음전도, 464~46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누가복음을 포함하여 복음서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에 여인들이 맡은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복음서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은 여인들입니다. 여기서 여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전하는 역할을 당시 사회에서 귀중하게 취급받지 못한 여인에게 맡겼겠습니까? 복음서의 저자들이 당시의 사람들로 하여금 부활을 믿도록 이야기를 꾸몄다면 남자가 아닌 여성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토의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따르는 여자들은 유대 당국자들과 로마 관리들의 감시 대상에서 조금은 멀리 있는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위험 선상에서 빗겨나 있는 여자들을 복음 전달의 첨병으로 사용하셨다.

 

여자를 존엄하게 취급하지 않는 사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셨습니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여자와 남자가 평등한 동시에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까?

평등은 인격과 인권과 존재와 생명에 대한 것이고 다른 것은 역할에 대한 것이다. 남자들도 사람마다 역할이 다를 수 있다. 여자들은 여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 있다. 남자들도 남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 있다. 이것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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