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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20분

기억절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연구 범위: 출 32:1~6, 레 21:7~24, 22:1~18, 출 28장, 계 21:12~14, 히 4:14~15.

종교개혁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사상 가운데 하나는 “만인제사장설”이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 “제사장”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서 오늘의 기억절에서 비롯되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지상의 다른 중보자가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하나님께서 만드신 고대 히브리인들의 제사제도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하늘 제사장으로서의 봉사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은 우리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의 일부분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로 대체되었다.

이번 주에 옛 제도 속에서 제사장이 입었던 예복을 연구할 때, 우리는 새 제도 속에서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게 될 것이다.

※ 핵심 요지

➊깨닫기 : 아론의 제사장직과 예복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품성을 이해한다.

➋느끼기 :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로 삼겠다는 하나님의 성스럽고 순결한 부르심을 마음에 새긴다.

➌행하기 :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모시고, 그분이 주시는 용서와 정결함, 거룩한 생애를 가능케 하는 능력을 누린다.

결론: 아론의 제사장직과 의복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우리를 하나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완전에 연결시킨 그리스도의 역할을 상징하였다.

첫째날(일)

4월 24일 옛 언약의 은혜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출

32:4).

질문: 출 32:1~6을 읽어보라. 이 극악한 배도에 대하여 아론은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었을까?

[출32:1~6]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답: 사실 아론은 변명거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의 요구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하였다. 다음은 아론이 변명한 내용이다. [출32:22~25]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 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아론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다고 말하여 송아지가 초인적으로 나왔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부가설명> 지도자도 사람의 연약성을 다 극복한 존재는 아니다. 아론은 막중한 책임을 진 대제사장의 직임을 받았으나 여전히 연약에 싸인 사람이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잡족들과 그들에게 충동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납게 몰아붙일 때 그는 두려워졌던 것이다. 두려움은 항상 고통과 죽음에 연결되어 있다. 죽음을 이기는 사람,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을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마도 아론이 이런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굴복함으로 영생의 하나님을 올바르게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연약성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자기의 허물을 백성들에게 돌렸다. 참으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해하신 것이 분명하다. 모세의 중재로 아론은 용서를 받았고 여전히 대제사장의 중임을 위임받았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시다. 우리가 그분을 전적으로 의뢰하면 우리의 연약성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앞에 엎드릴 때 용서하시고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받으시며 제사장으로 위임하신다. 그러나 이런 사랑과 용납을 결코 남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극악한 배도에 대하여 아론은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었을까? 배도는 분명 나쁜 것이다. 그러나 아론이 배도를 묵인했다는 사실이 더욱 믿기지 않는다. 아론에게 부여되었던 특권들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아론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신성한 예복을 입힘으로써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예표하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히 8:1). 다시 말해서 비록 아론에게 끔직한 죄가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그것도 용서뿐 아니라 거룩한 직분까지 얻을 수 있는 큰 은혜를 받았다. 이렇게 아론의 생애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에게 제공된 자비와 구원의 특별한 예증이 되었다.

교훈: 아론이 용서받고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둘째날(월)

4월 25일 제사장 직분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출 28:1).

질문: 제사장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이러한 것들이 무엇을 상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레 21:7~24, 22:1~8).

[레21:7~24] 그들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 것이며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 8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그는 네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나 여호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자는 거룩함이니라 9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 10 자기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 11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말지니 부모로 인하여도 더러워지게 말며 12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13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지니 14 과부나 이혼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15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지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7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 18 무릇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못할지니 곧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19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20 곱사등이나 난장이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괴혈병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불알 상한 자나 21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아와 여호와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아와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22 그는 하나님의 식물의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23 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라 이와 같이 그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4 모세가 이대로 아론과 그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였더라.

[레2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3 그들에게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에 그 몸이 부정하고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4 아론의 자손 중 문둥 환자나 유출병이 있는 자는 정하기 전에는 성물을 먹지 말 것이요 시체로 부정하게 된 자나 설정한 자나 5 무릇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벌레에 접촉된 자나 무슨 부정이든지 사람을 더럽힐 만한 자에게 접촉된 자 6 곧 이런 것에 접촉된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니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성물을 먹지 못할지며 7 해질 때에야 정하리니 그 후에 성물을 먹을 것이라 이는 자기의 응식이 됨이니라 8 절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답: 제사장들은 혼사(婚事)나 상사(喪事)나 언제나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다. 대제사장은 부모의 상을 당해도 가까이 하면 안 되었다. 제사장의 자녀들은 정결한 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성 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 했다. 또 몸에 어떤 장애가 있어도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정결을 지켜야 했고. 먹고 마시는 것에 하나님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다. 이것들은 다 하나님 앞에 성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하심과 온전하심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어제 살펴본 바와 같이 흉악한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론을 신설된 제사장직의 우두머리가 되도록 선택하셨다. 이는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대표해야할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보여준다. 왜냐하면 백성의 대표로서 타락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 서는 것이 바로 그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한 인간으로서 아론은 그가 대표해야 할 타락한 백성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었다. 그가 자기 자신도 깨끗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죄하는 사람이 되고 싶겠는가?

동시에 제사장직은 신성한 일이었기 때문에 거룩함과 정결함을 대표하여야 했다. 제사장직은 무언가 다르고, 구별되고, 특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상징했으며, 그들의 사역은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행하실 일을 그림자와 예표로서 드러내는 것이었다.

<부가설명> 제사장은 죄를 범한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봉사를 수행하는 직임이다. 그들은 짐승의 피를 드리는 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죄를 담당하기도 해야 했다.(레10:17) 이것은 죄를 담당하시는 예수님의 육체를 표상한다. 물론 희생의 짐승들도 그렇다. 그러므로 그 짐승이나 제사장은 흠 없고 정결해야 한다. 그런데 제사장은 실수 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그 자신을 위하여 속죄하는 일이 필요했다. 특히 속죄일에 그랬다. 아무튼 제사장은 이런 이유로 절대로 정결을 유지해야 했다. 그들이 부정해질 때 하나님께서는 내치지 않으시고 정결케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주셨다. 예수님은 완전하시지만 인간 제사장은 완전하지 않았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히5:1~3)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체가 완전하시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여 속죄해야 할 이유가 없이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히7:23~28)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사장의 직임을 얻었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해 주셨으므로 이것을 언제나 정결하게 지켜야 한다. 혹시 실수 했을지라도 아론을 용납하신 같은 용납이 있는데 반드시 예수의 피로 정결하게 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두루마기를 언제나 빨아서 희게 해야 한다.(계7:14,22:14)

교훈: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가까이 하면서 동시에 그들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나타내야 했다.

셋째날(화)

4월 26일 제사장 예복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출 28:4).

질문: 출 28장을 읽어보라. 대제사장 아론이 입어야 했던 의복과 일반적인 제사장들이 입어야 할 의복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세세한 의미를 다 파악할 수 없다할지라도 우리는 여기에 나타난 사실로부터 대체로 어떤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답: 출28장은 43절까지 있다. 그 내용은 제사장들의 옷에 대한 지시들이다. 특히 대제사장의 옷에 대한 지시이다. 대제사장은 에봇과 에봇 밭침 겉옷을 지어야 하고 관을 만들어야 하고 흉배와 우림과 둠밈을 만들어야 했고 에봇에 그것들을 달아야 했다. 흉배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도장을 새기는 방법으로 새긴 12개의 보석을 세 개씩 네 줄로 달았고, 한 쪽에 이스라엘 6지파씩 12 지파 이름을 새긴 호마노 둘을 양 어깨에(견대) 넣어야 했다.

이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시는 속죄와 정결과 구속받은 백성들을 그의 품에 품고 어깨에 정사를 메신 모든 직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지상성소를 연구해보면 모든 것이 철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해야 할 분명한 지침을 주셨다. 제사장들이 입어야 할 예복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정확한 지침에 따라 이루어졌다.

<부가설명> 대제사장의 옷은 예수께서 수행하시는 구원의 사업과 그 사업의 아름다운 결과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색상들은 빛이 지닌 색의 성질들을 표상하는 것일 수 있다. 예수님은 빛을 입으셨고,(시104:2) 또한 빛이시다.(요8:12) 이 빛은 바로 생명이다.(요1:4)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옷의 여러 부분들과 색깔들은 빛이신 예수님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봉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성소와 관련된 색깔들은 다 빛이 사람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다.(전11:7) 예수님은 아름답다. 그분에게서 얻은 생명은 빛이다. 이 빛을 비출 때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충만하게 된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바로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1)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아름다워야 한다. 빛의 아름다움으로 아름다워야 한다. 대제사장의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그분을 믿음으로 얻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상태를 잘 표상하고 있다.

교훈: 제사장의 예복에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사역이 담겨져 있었다.

넷째날(수)

4월 27일 판결 흉패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출 28:29).

질문: 출 28:15~30을 읽어보라. 서로 다른 보석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가슴에 붙”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출 28:29, 계 21:12-14).

[출28:15~30]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16 장광이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지니 21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매보석에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인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 정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23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24 땋은 두 금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25 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26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편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27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띠 윗편에 달고 28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 29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계21:12~14]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답: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각 보석에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겨졌다. 그 보석들이 각각 다른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가리킨다. 즉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보석은 대제사장의 옷에 가슴 부위에 가도록 달았다. 그것은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전체를 품어 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새 예루살렘 12 성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각각 기록되어 있고 그 성은 12 기초석이 있는데 각각 다른 보석들이다. 그 위에는 12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부가설명>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12지파에 대하여 예언하고 복을 빌어준 야곱의 예언과(창49장) 모세의 예언(신33장)에 나타난 특성들을 풀이하여 새 예루살렘 성문에 기록된 이름과 계7장의 12지파 이름에 연결하여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그런 특성들을 가지고 거룩한 지파를 형성한다고 설명하는 것 같다. 나도 재림 교인이 된 초기에 그런 설명을 아주 기이하게 들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파 수를 정확하게 안 다음에는 그런 설명에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야곱은 12 아들을 뒀지만, 이스라엘은 실제로는 13지파이다. 왜냐하면 요셉의 두 아들이 한 지파씩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 지파라는 이름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바로 요셉의 아들들로 구성된 지파이다. 이 둘을 합쳐서 요셉지파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13지파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13지파라고 한 곳은 없다. 한 지파가 빠지는 것이다. 그 빠지는 지파는 레위지파이다. 그러면 레위는 이스라엘 민족에서 제외되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12지파들의 기업 안에 흩어져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12지파라고 하면 레위는 빠진다. 그런데 계시록에는 레위지파가 있고 단지파와 에브라임지파가 빠지고 요셉지파와 므낫세지파는 있다. 그래서 12지파이다. 이것이 새 예루살렘 성문에 있는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 단지파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나 에브라임지파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파의 이름보다는 12이라는 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레위는 땅 분배를 받지 못하고 성소봉사를 맡았다. 그러나 그들은 12지파 안에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12지파라고 하면 이스라엘 민족전체와 국토 전체를 뜻하는 말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문에 12지파의 이름이 있고 기초석에 12사도의 이름이 있는 것은 12사도의 전한 복음을 기초하여 참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사람들의 성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면 다 그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을 것이다.

교훈: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판결의 흉패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우리의 믿음과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의 연합을 상징한다.

다섯째날(목)

4월 28일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

질문1: 그대는 히 4:14~15에서 유혹과 투쟁이 계속되는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어떤 약속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히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답: 우리의 구주 예수님이 인간과 같이 인간이 처하여 당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는 동일한 시험을 경험하시지만 결코 죄는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경험에서 동정하시고 이길 수 있게 능력을 주신다. 그분을 믿은 도리를 굳게 잡으면 그분이 승리하신 그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된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연약을 체휼했다는 말 때문에 예수께서 육체에 죄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잇부인이 예수님은 sinful nature라고 기록한 것과 연결하여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들이 가지고 있는 죄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연약을 체휼했다는 말은 인간의 연약성을 잘 아시고 충분하고 확실한 동정을 하신다는 뜻이다. 그분이 죄성을 가졌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았다는 말은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 처하여 당하는 그런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죄의 유혹을 받을 수도 있고, 사람이면 당할 수 있는 어떤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겪은 모든 시험을 다 겪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예수님은 한 사람으로 세상에 사셨다. 그것도 33년이라는 짧은 세월이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시험을 어떻게 다 겪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사람으로서 시험을 겪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았다는 말은 어떤 시험이든지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시험들을 겪으셨다는 말이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당하는 시험을 나는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당하는 시험이 내게 이르면 나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그랬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한국에서 안식일에 학교 가지 않기 때문에 당한 그런 시험을 당하지 않으셨고, 재림 청년들이 집총이나 안식일에 하는 훈련 때문에 당하는 시험도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이 현대 한국에 사셨다면 역시 그런 시험을 당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 겪는 모든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일들을 겪으셔도 그는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다. 즉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우리도 그분을 힘입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보증이 되셨다.(요16:33)

질문2: 히 8:10~13을 읽어보라. 우리를 위한 어떤 약속들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이러한 약속들을 우리의 삶 가운데 실현시킬 수 있을까?

[히8:10~13]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답: 새 언약으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지고 생각이 하나님의 법으로 이루어지도록 해 주실 것이다. 이 약속은 실제적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을 때 우리는 이미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주께서 그것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 은혜 한에 있는 것이다.

<부가설명> 새 언약은 새 생명의 언약이다. 하늘성소 봉사와 관련하여 예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다는 언약이다. 첫 언약은 세상에 속한 성소와 섬기는 예법과 관계된 것이고, 새 언약은 하늘성소와 섬기는 예법과 관계된 것이다.(히9:1~14 참고) 첫 언약은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의 삶을 속죄와 정결 예식 등으로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나 새 언약은 십자가의 보혈을 적용함으로 과거의 속죄를 현재에 적용하면서 예수님의 봉사를 통하여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 보증된 언약이다. 이 언약 안에서 우리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주님은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고 새 생명으로 살게 하시며 생명이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경험으로 하늘까지 이르도록 인도하신다. 새 언약으로 사는 사람들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씀으로 났기 때문에 말씀이 양식이 된다. 말씀을 먹지 않으면 새 생명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새 언약 안에서 주님의 생명이 우리의 삶을 빛으로 나타나게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시며 우리는 믿음으로 얻은 그분의 의의 옷을 입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예비일(금)

4월 2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347~348 “성막과 그 봉사”, 실물교훈, 288 “주의 포도원”, 선지자와 왕, 293 “지식이 없음으로 망함”, 초기문집, 250~253 “성소”, 각 시대의 대쟁투, 416 “하나님의 성소”, 646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그리스도는 참장막에 부리는 자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대제사장이시다. 누구도 그분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그분은 교회의 대제사장이시다”(엘렌 G. 화잇, That I May Know Him, 74).

“우리는 날마다 믿음을 활용해야 한다. 그 믿음은 활용될 때 날마다 증가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기셨고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 앞에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엘렌 G. 화잇, Sons and Daughters of God, 28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우리는 실제로는 의로운 생활을 살지 않으면서 의의 옷을 입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기와 행동에 대한 평가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우리가 실제로 의의 옷을 입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 모든 도덕적 선한 행위와 생활은 예수께서 진실로 나의 생명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예수님이 생명이 되지 않아도 도덕적 수양과 노력으로 도덕적 선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이런 방면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속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잘 속는다. 예언의 신의 증언은 이런 속임수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향상의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올라갈 때에 인간의 힘을 의지하기 시작하며, 얼마 후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시야에서 놓쳐 버린다. 그 결과는 실패 즉 얻었던 모든 것의 상실이다. 도중에 지쳐서 영혼의 원수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과 생활에서 계발되었었던 그리스도의 은혜를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는 사람들의 형편은 참으로 슬프다. 사도는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죄를 깨끗케 하심은 잊었느니라”고 선언한다.”(행적 532) 우리의 생각이 그리스도적일 때 우리는 의의 옷을 입은 표가 나타난다. 새 생명은 새 의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이 영적으로 바뀌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라.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후13:5 참고)

➋일요일 내용 가운데 아론에게 주어졌던 은혜와 용서에 대하여 깊이 토론해 보십시오. 큰 책임이 주어졌던 아론은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하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에게 더욱 고상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토론해 보십시오.

*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용서하는 너그러움을 나타내어야 한다. 마가가 선교 여행을 중도에서 포기했을 때 바울을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으나 바나바는 다시 기회를 주었고 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굳게 서게 되었다. 우리에게 바나나 정신이 필요하다. 아론은 그의 말대로 백성들이 윽박질렀기 때문에 굴복했을 것이다. 마치 아담의 여자(하와)의 말을 들을 것과 같은 경우였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대속하게 하셨다. 아론의 허물이 컸지만, 그를 사유하시고 연약한 인간의 대표자로 받으시고 구주께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연약한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실 것을 잘 표상하는 자리에 두셨다. 우리는 이런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항상 그의 자비와 은혜를 호흡하면서 새 생명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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