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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화평을 이루라
(9월 2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29분)
 
연구 범위: 엡 6:10~20, 벧전 4:1, 벧전 5:8, 사 59:17, 사 52:8~10, 살전 5:16~18
 
기억절: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6~17).
 
존 번연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경건한 고전 <천로역정>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은 왕궁 무기고로 안내되어 "주께서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한 칼, 방패, 투구, 흉갑, 모든 기도, 닳지 않는 신발 등의 온갖 무기를 보았다. 하늘에 셀 수 없는 별만큼이나, 넉넉한 양의 무기들이 주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크리스천은 길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무기고로 안내되어 "도중에 받을 공격에 대비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뚫을 수 없는 장비로 무장했다."
번연이 1678년에 쓴 이 글은 그보다 약 1,600년 전에, 번연과 같이 감옥에서 사도 바울이 기록한 에베소서를 생각하게 한다. 이 글에서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장엄한 군대인 교회가 그분의 병기고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무장을 뜻하는 파노폴리아(panoplia, 헬라어), 즉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나님의 병기고는 그분의 군대의 모든 병사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북방 강철로 옷을 입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향해 출정할 수 있게 하는 최상의 무기를 넉넉히 보유하고 있다.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이 전신 갑주를 주시는 목적은 화평을 이루기 위함이다.
- 느끼기: 하나님의 병기고에 준비된 장비들을 실재 삶에서 활용해야 한다.
- 행하기: 화평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고 동료들과 복음의 전진을 위하여 기도한다.
 
TMI 위로
2. 전쟁을 위한 무장의 은유에서 어떤 초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까요?(엡 6:18, 일요일 교과) 
*답: 기도하는 삶.
3. 진리로 띠를 띤다는 것은 삶에 진리를 어떻게 하는 것을 뜻합니까?(엡 6:14)
*답: 믿음으로 사는 삶에 진리가 힘을 준다는 것이다.
4. 무장한다는 것은 전투적인 태세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까?(엡 6:15)
*답: 세상을 그리스도와 화평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5.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어떤 실재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까?(엡 6:17)
*답: 예수님을 머리로 삼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6. 그대가 전쟁터에 있다면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시겠습니까?(엡 6:18~19)
*답: 상처입지 않는 승리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것이 적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길이다.
7. 쇠사슬에 메인 사신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엡 6:20)
*답: 그리스도의 사신의 신표(信標)라는 의미이다.
 
결론
하나님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전신 갑주를 주신다. 이 모두는 대적과의 전쟁에서 유용하며 실제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능력보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복음의 최전선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의 승리와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협력하여야 한다.
 
9월 17일(일) 교회: 하나된 군대
 
엡 6:10~20을 읽어 보라. 바울은 교회가 벌이는 전쟁이 어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바울은 신자 개개인의 영적 싸움을 주로 묘사하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가 집단으로서 악에 대항하는 전쟁을 그리고 있는가?
[엡6:10~2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답: 양쪽 다. 주로 교회가 연합하여 투쟁하는 것을 나타내지만 교인 개인의 상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리스와 로마 전쟁에서 승리는 부대 내 병사들의 협력, 특히 전투가 한창일 때 병사들이 서로를 돕는 것에 달려있었다. 전투에서 개인주의는 패배로 연결되는 미개종족 전사들의 특성으로 간주 되었다.
바울이 엡 6:10~20에서 이러한 일반적인 군사적 이해에 따라 교회가 악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1) 이 구절은 교회 공동체를 위해 보낸 편지글의 정점이다. 그런 에베소서를 바울이 어둠의 적들과 싸우는 고독한 그리스도인 전사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다. (2) 본문 마지막의 "모든 성도를 위해"(엡 6:18~20, 흠정역) 기도하라는 요청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를 강조한다. (3) 무엇보다도 서신 초반에 악의 세력에 대해 말할 때 바울은 그 상대가 신자 개인이 아닌 교회인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 3:10).
엡 6:10~20은 악에 맞서는 고독한 전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바울은 지휘관으로서 교회를 군대로 묘사한다. 그는 우리에게 전신 갑주를 입고 연합된 군대로서 힘차게 하나된 모습으로 전투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엡 1:22, 23, 엡 4:1~16), 하나님의 성전(엡 2:19~22), 그리스도의 신부(엡 5:21~33)로 이어진 교회에 대한 은유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교회로 묘사하며 마무리한다.
우리는 바야흐로 악과의 장기전의 마지막 단계인 "악한 날"(엡 6:13)에 다가서고 있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그리스도의 동료 군인으로서 서로에 대한 충성심을 흐트러트릴 때가 아니다.
 
<교훈> 전투의 은유는 악한 세력과 싸우는 전쟁이 교회가 함께하는 전투임을 보여주며 연합을 강조하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협력할 것을 요구한다.
 
<부가설명> 에베소서에서 교회는 교인 개개인의 상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교인들이라고 분명히 계시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이다.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갑옷은 교회에 입힌 것이다. 교인들이 교회의 지체로 집단이 되지만 또 교인 개개인을 생각하면 마귀와 싸우는 자가 교인 개개인도 된다. 그들도 각각 하나님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지체가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다. 지체인 교인들 개개인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담대히 서서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면 교회가 승리하는 것이다. 개인이 교회 이름으로 투쟁할 때 모든 지체가 협력해야 한다. 그래서 한 지체가 상하면 온 몸이 아픈 것이다. 교인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한 몸이 되도록 하는 것은 진리 교리이다. 교리가 철저히 성경적일 때만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다. 전신 갑주를 입고 싸울 때 상대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승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교회는 한 몸으로 연합하여 주님의 승리를 영광스럽게 해야 한다.
 
9월 18일(월) 허리띠와 흉배
 
바울은 신자들이 악과의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어떻게 나타내는가?(엡 6:14, 벧전 4:1, 벧전 5:8, 롬 8:37~39)
[엡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벧전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롬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답: 서서 허리띠를 띠고 흉배를 붙이고 깨어서 전투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바울은 격렬한 전투에 대한 경고를 통해 (엡 6:13) 신자들로 하여금 “서”도록 준비하게 하고(엡 6:11, 13), 면밀하게 무장하라고(엡 6:14~17) 요구한다. 바울은 "허리 띠를 띠"는 것을 묘사한다(사 11:5 비교). 고대의 헐렁한 옷은 일이나 전투를 하기 전에 허리를 묶어야 했다(눅 12:35, 37, 눅 17:8 비교). 바울은 가죽 허리띠와 잠금장치로 군장을 갖추기 시작하는 로마 군인처럼 신자들이 갑옷을 입는 모습을 그린다. 허리띠에는 작은 금속 원반이 부착된 여러 개의 긴 가죽띠가 나란히 달려 계급장의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허리띠는 의복을 묶고 다른 물건을 제자리에 고정하는 필수적인 기능을 했다.
진리는 신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비교). 그러나 진리는 어딘가에 잘 모셔두고 정작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추상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로 "옷 입고," 이 거룩한 선물을 누리고 활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한다면 그들을 능력있게 하고 보호할 하나님의 진리가 그 가치만큼 활용되지 않고 있다.
바울은 다음으로 신자들에게 "의의 흉배"를 입으라고 촉구한다(살전 5:8 비교). 진리의 띠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거룩한 지휘관이신 야훼가 준비한 무장의 일부이며 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사 59:17). 바울 시대의 군인들의 갑옷은 작은 쇠사슬(작고 얽힌 철제 고리나 청동, 철로 만든 작고 겹친 비늘) 또는 겹겹이 함께 묶인 작은 철판으로 만들어졌다. 이 갑옷이나 흉배는 치명적인 타격으로부터 중요한 장기를 보호했다. 이와 같이, 신자들은 하나님의 보호의 선물인 의가 제공하는 영적 보호를 경험해야 한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의를 거룩함, 선함, 진리와 연관 짓는데(엡 4:24, 엡 5:9), 다른 사람들 특히 동료 교인들을 정의롭고 선하게 대하는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교훈>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는 누리고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입고 또 하나님의 의가 제공하는 영적 보호를 경험하는 것은 신자의 특권이다.
 
<부가설명> 옷을 입고 허리띠를 매지 않으면 활동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기만 하면 싸울 수 없다. 그 갑옷이 갑옷 역할을 하려면 허리띠를 매어야 한다. 그래야 옷을 입고 힘을 쓸 수 있다. 갑옷을 입고 마귀를 대적할 때 힘을 쓰게 하는 것은 진리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진리에 익숙해야 한다. 허리띠를 매듯이 항상 진리의 말씀으로 옷을 단단히 마귀의 세력의 공격을 막고 이길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말씀에 익숙할 때 마귀의 공격을 방어하고 또 그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다. 그들을 항복하게 하여 생명의 성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또 심장을 보호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흉배는 가슴 막이 인데 원수가 불화살을 쏘아서 가슴으로 날아와도 흉배가 그것을 튕겨낼 수 있다. 그것을 의라고 했다. 성경이 의라고 하는 것은 율법의 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한 의이다(롬3:21). 로마서를 읽으면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부활로 드러낸 영원한 생명이다. 성도는 이 생명으로 생활한다. 그것이 마음을 주장하고 생활을 이끌어야 한다. 마음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야 한다. 바울은 그렇게 살았다. 그것은 사랑과 동정과 그휼로 사람을 대하는 생활태도이다. 사탄은 이런 삶을 비난할 수 없다.
 
9월 19일(화)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신
 
전투를 준비하는 로마 군인은 튼튼한 군용 가죽신을 신었다. 여러 겹으로 된 밑창에는 울퉁불퉁한 징이 달려있어 군인이 중심을 잡고 "서 있는"데 도움이 되었다(엡 6:11, 13, 14). 바울은 이 군화에 대해 사 52:7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 말씀은 사자가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대신하여 이겼고(사 52:8~10) 이제 평화를 주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순간을 기뻐한다.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평화를 여덟 번에 걸쳐 강조한 것을 살펴보라. 바울은 평화를 말하면서도 왜 구체적인 군사적 은유를 사용했는가?(엡 1:2, 엡 2:14, 15, 17, 엡 4:3, 엡 6:15, 23)
[엡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엡2:14,15,17]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6:15,23]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답: 참된 평화는 원수가 정복되었을 때 이른다.
 
바울은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엡 2:14~17) 주시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새 사람(인류)"(엡 2:15)로 이끄는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찬양한다. 구원을 주시고, 평화를 만드시는 그리스도를 생생히 경험함으로써, 또 그분께서 이미 이기셨음을 축하하고 미래 승리의 환희를 바라봄으로써, 신자들은 평화의 신을 신고 전투에 임한다. 사 52:7의 사자처럼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분의 평화를 선포하는 사자이다.
그러나 바울은 무장하라는 그의 요청을 무기를 휘두르라는 뜻으로 오해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신자들을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묘사한다(엡 6:15). 연합, 덕을 세우는 말, 부드러운 마음을 강조해 온 바울은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전투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엡 4:25~5:2 참조). 교회는 그리스도인 덕목(겸손, 인내, 용서 등)과 실천(기도, 예배)이라는 복음의 무기를 사용해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하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가리키는 목표지향적인 행동이다(엡 1:9, 10).
 
<교훈> 하나님이 주신 무장은 평화를 전화는 도구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승리와 평화를 선포하는 사자이며 화평을 이루는 자이다.
 
<부가설명> 성도는 이 세상에서 전투 중에 있다. 선악의 대쟁투의 전쟁터가 이 지구다. 우리는 다 마귀의 아들들로 출생했다(요8:44). 그래서 사망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것이 삶이다. 썩어져가는 옛 습관을 따라 활동하는 옛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 옛사람이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해서 새사람이 되도록 하셨다. 그러니 어두움과 사망의 왕인 사탄과 그의 부하들이 이 사람들을 자기 세계로 찾아오려고 힘을 다해 공격한다. 그래서 사망과 생명의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 전장(戰場)이 마로 성도들의 몸과 마음이다. 교회와 성도가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한 다음에 사탄의 세력을 굴복시켜야 한다. 그러면 평화가 이른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평안이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 이것은 사망을 이긴 평안이다. 언제나 승리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이 평안을 유지해야 한다. 예수님 밖에 나가기만 하면 사탄에게 포로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화로 항상 생명과 삶이 평안하도록 성령께서 일일이 주장해주시도록 마음을 바치자. 그러면 우리의 신발은 평안을 주는 걸음으로 살게 할 것이다.
 
9월 20일(수) 방패, 투구, 검
 
대쟁투의 군사로서 신자들은 언제 어떻게 방패와 투구와 칼을 사용해야 하는가?(엡 6:16, 17)
[엡6:16,17]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답: 사탄의 공격이 언제 있을지 모르므로 항상 사용할 수 있는 준비태세로 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의 방패는 로마 병사의 커다란 직사각형 방패이다. 나무로 만들고 가죽으로 덮은 방패의 가장자리는 안쪽으로 구부러져 측면의 공격을 방어한다. 물에 충분히 담가둔 방패는 역청에 담가서 불을 붙인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었다.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는 "믿음의 방패"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구약성경에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상징으로 방패를 사용한 것에서 온 것이다(창 15:1, 시 3:3). "믿음의 방패"(엡 6:16)를 잡는 것은 믿는 자들을 대신하여 싸우시고(엡 6:10), 최고의 무기를 공급하시며(엡 6:11, 13), 승리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우주적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편 로마의 전투 투구는 철이나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머리를 보호하는 반구에 목을 보호하는 뒤판, 귀 보호대, 이마 보호대, 뺨을 보호하는 경첩 판이 더해졌다. 투구가 제공하는 필수적인 보호 기능을 고려할 때, "구원의 투구"(엡 6:17)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와 연결된 신자들이 경험하는 현재의 구원을 상징한다(엡 2:6~10).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그 시대에 흔했던 영적 권세에 대한 두려움을 거부하고, 대신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능력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엡 1:15~23, 엡 2:1~10 비교).
마지막 무장은 로마 군사의 양날 단검에 비유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이다. 일반적인 전투 전술은 두 개의 투창을 던진 다음 칼을 뽑아 돌격하여 단검을 찌르는 방식이다. 신자들의 검은 성령에 의해 공급되는 "성령의 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바울은 지휘관으로서 앞으로 나아가 신성한 총사령관의 희망과 승리에 대한 약속을 말하면서 군사를 소집한다. 엡 6:10~20에 기록된 이 약속은 악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요 무기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복음의 광범위한 약속을 의미한다.
 
<교훈> 방패는 그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상징이며, 투구는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검은 복음의 광범위한 약속을 의미한다.
 
<부가설명>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무장이다. 그리스도인의 머리는 예수님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호할 수 있는가? 아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이 우리의 투구이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을 머리에 쓰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방패는 몸을 보호하는 무장이다. 그리스도인의 철저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진정한 교회가 되게 하는 방패다. 몸의 지체가 되는 성도 개개인이 확실한 믿음으로 자신을 주님께 맏길 때 교회는 사탄의 공격을 거뜬히 막아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인 각자가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심을 실천해야 한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검은 때때로 공격용 무기가 된다. 화살 공격에는 검도 방어용 무기가 되지만 맞붙어 싸울 때는 검이 공격용이 된다. 예수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검으로 원수를 제압하신다(계19:15). 입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검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시험의 광야에서 마귀를 물리친 것도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검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날카롭게 연마해야 한다.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항상 대답할 수 있도록 말씀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벧전3:15). 우리의 전투는 상상이 아니다. 실제적이다. 말씀으로 승리한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9월 21일(목)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바울은 전투에 대한 권면을 마치면서 신자들에게 군사로서 "여러(모든) 성도를 위해"(엡 6:18) 그리고 투옥된 사신인 자신을 위해(엡 6:19, 20) 중요하고 지속되어야 할 기도에 참여하라고 요청한다. 기도로 신을 부르는 것은 고대 전쟁터에서 흔한 관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의 요청은 군사적 표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성경의 예를 들자면, 야하시엘의 권면에 따라 여호사밧은 전투에 앞서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이끌고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대하 20:18)한다. 기도는 일곱 번째 병기는 아니지만, 바울이 군사 용어를 사용한 권면 중 핵심 부분이다.
두 가지 기도 요청 중 첫 번째에서 바울은 수신자들에게 "모든 성도를 위해"(엡 6:18, NKJV) 열렬하고 긴급하며 끈질기게 기도하라고 말한다. 교회가 악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성령에 감동된 기도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의존을 나타내야 한다.
바울의 두 번째 기도 요청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또한 나를 위하여"(엡 6:19).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올바른 기별(내게 말씀을 주사)을 적절한 때에(나로 입을 열어), 올바른 방법으로(담대히 말하게), 가장 중요한 주제인 "복음의 신비"(엡 6:19)를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요청한다. 이 마지막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함께 이방인을 구속하시고(엡 3:1~13), "한 새 사람(인류)"(엡 2:15, 엡 2:11~22 참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공개된 비밀"을 말하며, 이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엡 1:10)는 위대한 계획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다음의 "기도의 요청"을 살펴보라. 어떤 것이 당신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눅 18:1~8, 빌 4:6, 골 4:2, 살전 5:16~18)
[눅18:1~8]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골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답: 모든 말씀이 다 감동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말씀은 우리의 끈기있는 기도는 마침내 응답된다는 깊은 은혜를 전해서 감사하다.
 
신자들에게 간절하고 끈기있게 기도에 참여하라고 자주 촉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의 군사적 은유는 두 가지 답을 제시한다. (1) 초자연적인 적들과의 영적 전투의 위협은 끔찍하고 현실적이다. (2) 하나님의 영적 권능과 승리에 대한 약속이 바울의 군사적 표현을 통해 주어져 있다(엡 6:10~17). 간절하고 끈기 있는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약속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그것을 기뻐하며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자원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교훈> 악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게 한다.
 
<부가설명> 아무리 뛰어난 무장을 했어도 죽으면 소용이 없고, 적군은 그 무장을 벗겨 자기를 위하여 사용한다. 사울과 요나단과 그 형제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었을 때 블레셋 군사들이 그 갑옷과 무장을 다 벗겨갔다.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는 호흡이다. 기도는 영의 사람의 호흡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 갑옷을 입은 사람이 참으로 산 사람인지 마지막으로 묻는다.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이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말은 항상 머리숙이고 또는 무릎 꿇고 기도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의 삶이 기도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이나 말이나 감정이나 태도가 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정신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뜻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했다(삼상12:23). 기도를 쉬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기도를 쉬는 것은 생명이 멈추는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살아서 주님 안에서 원수를 대적하여 주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도록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무장을 단단히 단속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능력으로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 안에서 원수의 공격을 완전히 이기는 은혜를 누리도록 성령님 주장해주시기를 바란다.
 
9월 2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전투 중인 군대는 모두가 협력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고 약해질 것이다. 병사들이 서로의 위치와 일을 고려하지 않고 충동적인 생각대로 행동한다면, 그들은 독립적인 원자의 집합체일 뿐 조직된 몸으로서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병사들은 조화롭게 행동해야 한다. 자신만을 소중히 여겨서는 안된다. 주님의 백성들이 이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한 마음, 한 목적, 하나의 위대한 목표에 헌신하는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곳에서 시간과 능력이 낭비되고 노력해도 성과가 없을 것이다. 연합은 힘이다. 한 머리 아래서 하나의 고귀한 목적을 위해 조화롭게 협력하는 소수의 거듭난 영혼들은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다"(엘렌 화잇, Spalding and Magan Collection, 121).
바울이 자신을 "쇠사슬에 매인 사신"(엡 6:20)이라고 표현한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신은 종종 전시에 어려운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바울의 묘사는 그의 군사적 은유의 맥락에 맞다. 사신은 자신을 파견한 사람이나 국가에 걸맞게 존중받아야 했다. 따라서 우주의 최고 통치자의 사신이라는 바울의 지위와 쇠사슬이 의미하는 속절없는 미천함 사이에는 극명한 대비가 있다. 그러나 사신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직임을 나타내는 “사슬”을 목에 걸기에, 바울이 "사슬"에 대해 언급한 것은 반어법일 수 있으며, 그는 자신의 사슬의 의미를 "구별을 위해 착용하는 장식"으로 여긴 것으로 볼 수 있다"(데이비드 윌리엄스, David J. Williams, 바울의 은유: 그 문맥과 성격, 1999, 15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분열되고 전쟁 중인 세상에서 당신과 당신의 교회가 '평화를 이루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점점 더 침략과 폭력으로 특징지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화의 대리인이 될 수 있는가?
*답: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하였음을 의미한다.
2. 어떤 종류의 "불화살"이 당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가? 당신에게 그것을 소멸시킬 "믿음의 방패"가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답: 사탄은 대상에 따라 가장 적절한 불화살을 쏜다. 각자가 어떤 불화살이 날아올 것인지 확인하고 확고한 믿음으로 그것을 소멸하는 은혜를 누리자.
3. 우리는 종종 "기도의 용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면 엡 6:18~20에 근거한 "기도 사역"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답: 실행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전진하게 하실 것이다.
4. 대쟁투의 전장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전투의 열기 속에서 두려움에 도망치거나 적에게 공개적으로 항복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겠는가?
*답: 긍휼히 여기며 그들을 위하여 진정으로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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