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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 총론

 

갈라디아서의 복음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서신은 다이너마이트로 비유된다. 성경에서 로마서를 제외한다면 갈라디아서만큼 영적 부흥과 개혁의 불을 일으킨 책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개신교가 (로마서와 함께) 갈라디아서에서 태동되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마르틴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읽고 있을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복음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곧 나의 편지이다. 나는 갈라디아서와 결혼하였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존 웨슬리가 1738524일 런던의 알더스게이트에서 회심을 경험하고 영국뿐 아니라 영어권 세계 전역을 휩쓴 영적 부흥을 일으키게 된 것도 루터의 복음 중심의 저서들 때문이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역시 갈라디아서에 빚을 지고 있다. 1880~1890대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E. J. 웨고너와 A. T. 존즈를 통해 믿음으로 얻는 의의 기별을 재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갈라디아서 연구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에 무엇이 있길래 그와 같은 영적 부흥이 일어나고 수많은 이가 감동을 받는 것일까? 갈라디아서는 성경의 다른 책과 같지 않은 방식으로 기독교 사상의 핵심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이 책에서 자유, 구원 속에서 율법의 역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애의 특징 같은 주제들을 다루며 한편으로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오래된 질문과 씨름하고 있다.

물론 로마서를 포함하여 다른 책들도 이런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갈라디아서는 특별하다. 왜냐하면 폭넓은 주제들이 간결하게 압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도 하나님의 영께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도록 깊은 호소력과 목회적 열정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바울의 서신들을 개인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바울이 성령의 지도하에 서신을 전달했던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이해의 폭은 훨씬 넓어질 것이다.

다수의 학자들은 갈라디아서가 바울의 서신 중 가장 빨리 기록되었으며, 그 시기는 예루살렘 총회(15) 직후인 기원 후 49년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문서인 셈이다.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대로 초대교회는 구원의 본질에 대하여, 특히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심각한 논란에 휩싸였다. 유대인 신자들 입장에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법을 따라야 했다(15:1).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에 이방인 교회를 세우자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 신자들의 신앙을 바로잡기 위해 갈라디아 교회를 방문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소식이 전해지자, 바울은 격하게 반응하였다.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거짓 복음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폄하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힘을 다해 복음을 수호하였다. 그는 강경한 어조로 이 거짓 복음이 다름 아닌 율법주의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이번 기에 우리는 예수께 신실하게 머물라고 호소하는 사도 바울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복음을 재검토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이번 교과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들을 재발견함으로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의 심령 속에도 부흥의 불을 일으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101일 안식일

일몰: 오후 616

 

기억절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11:18).

 

연구 범위: 6:9~15, 9:1~9, 삼상 16:7, 7:1, 11:19~21, 15:1~5.

 

다소 사람 사울(회심한 후에 바울로 알려짐)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평생 율법의 중요성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구원에 대하여 배운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이름도 없는 극악한 범죄자로 처형당했다는 사상을 참으라는 것은 그에게 지나친 요구였다.

그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율법을 배반하고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가 메시야이며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났다는 그들의 주장을 명백한 반역으로 여겼다. 그같이 허무맹랑한 주장과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자들은 누구든지 용납할 수 없었다.

사울은 이스라엘로부터 이런 신념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기로 자처하였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동료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하는 자로 성경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사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 유대인은 단지 예수를 메시야라고 설교할 뿐 아니라 그 사실을 이방인에게까지 전파해야 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을 요약한다.

느끼기 : 열성적인 바리새인에서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도자로 변화된 바울의 긴장감 넘치는 삶을 조망한다.

행하기 : 우리의 재능과 생애를 바쳐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봉사한다.

 

결론: 아직 미약한 초대교회는 애국자 다소 사람 사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위한 선교에 큰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 925일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6:13).

 

질문: 6:9~15을 읽어 보라. 유대인들은 스데반에게 어떤 죄목을 씌웠는가? 이 죄목이 연상시키는 것은 무엇인가?(26:59~61 참고)

[6:9~15]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11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26:59~61]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 성전을 헐고 모세의 규례를 고치겠다고 주장한다는 죄목을 씌웠다. 이것은 예수님을 죄 할 때 사용했던 같은 방법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제출되는 죄목은 역사가 흘러도 변하지 않은 패턴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한 말씀은 전적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이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한 것이지만 이것은 대적들에게 그들의 뜻대로 이용할 말로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말을 하는 것은 영의 세계의 말이기 때문에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나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남은 자손들에게도 같은 모양으로 핍박이 이르게 될 것을 미리 가르쳐주는 사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말을 할지라도 육에 속한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증거하는 지혜를 구해야 하겠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확실하게 깨달은 진리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육신에 속한 세력은 성전이 우리 몸을 헐지라도 우리는 예수 안에서 다시 새 성전으로 부활할 것 소망으로 굳게 바르게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스데반은 율법과 성전을 무시한다는 죄목으로 순교를 당했지만, 박해자 사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둘째 날() 926일 사울의 회심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9:5).

 

질문: 사울의 회심을 담고 있는 세 개의 본문을 읽어 보라(9:1~18,22:6~21, 26:12~19). 이 경험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사울에게 어떤 자격이 있기에 주께서 그를 선대하셨는가?

[9:1~18]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22:6~21]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6:12~19]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 예수를 핍박하는 사울을 부르셔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우는 은혜를 베풀었다. 그는 자기가 배운 그 하나님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 있었다. 그가 잘못 배운 것일 뿐 하나님을 위한 열정은 정직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예수를 위하여 나타내도록 바른 길로 인도하셨다.

 

<부가설명> 바울은 당시에 엘리트였다.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유대교와 유대문화를 잘 배운 유대인이요 바리새인이었다. 또한 그가 다소에서 태어나서 헬라문화 환경에서 자라면서 헬라문화에도 익숙했을 것이다. 그는 배운 대로 자기가 믿는 바리새인들의 교훈이 진리라는 확신으로 살아갔다. 그것이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길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그의 거룩한 열정은 자기가 배운 그 교리를 파괴하는 어떤 교훈도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종교 예수의 종교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순수한 열정으로 그리스도를 핍박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정직한 마음을 귀하게 보셨다. 그를 택하여 유대와 이방의 가교를 삼으시고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자로 삼으신 것이다. 그의 순수한 그 열정을 예수를 위하여 쏟아내도록 방향을 바로잡아 주신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순수한 열정이 그릇된 방향으로 분출될 수 있다. 그때 이것이 정로니 이리로 가라는 말씀의 교훈을 들을 때 일단 판단중지를 하고 그 말씀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들리는 그 음성을 무시하고 자기의 아는 그 방향으로만 나아가다가 순수한 것이 아주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교훈: 성령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극적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셋째 날() 927일 다메섹으로 간 사울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

 

질문1: 9:10~14을 읽어 보라. 아나니아가 사울에 대하여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 보라. 그는 더 이상 박해자 사울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의 추종자요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도 바울이 되었다(26:16~18).

[9:10~14]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26:16~18]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아나니아가 사울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복하였다.

 

<부가설명> 아나니아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쿠오바디스에 보면 그리스도인을 잡기 위하여 거짓으로 침례를 바도 그리스도인의 암호인 물고기 표시를 알아내어 자기가 그리스도인인체 하면서 물고기 표시를 내 보이고 그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잡아넣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건이 있어다 해도 그것은 아나니아 때 보다는 훨씬 후의 일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 사울의 회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울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아마도 바로 아라비아로 가서 성령의 지도를 받는데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옛날 예레미야 때에 바벨론 왕이 유대 총독으로 세운 그다랴를 이스망엘이 죽였는데, 요하난이 그 정보를 사전에 주었어도 그다랴가 그것을 믿지 않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이 예레미야 41장과 왕하 25:25에 기록되어 있다. 사울이 거짓으로 개심한척 하고 그리스도인의 일원인 것처럼 하여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인을 물색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확인했기 때문에 사울을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였다. 우리는 아나니아와 같이 직접적인 계시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경우를 당할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으로 언제나 성령의 바른 지도를 받도록 잘 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질문2: 삼상 16:7, 7:1, 고전 4:5을 읽어보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영적 경험을 보는 방식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 성경절들이 말하는 기별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내린 그대의 판단이 착오였던 적은 없는가? 그런 실수로부터 그대는 어떤 교훈을 받았는가?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고전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것처럼 사람을 바르게 보는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최종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도 분별력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dl 가르치는 표준에 의하여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판단과 분별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행동의 동기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모나 나타난 행동의 모습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일에는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아무리 동기가 좋다고 해도 방법이나 나타나는 결과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면 적어도 그 결과에 대하여서는 판단하고 바른 결과에 이르도록 권고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판하는 판단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명심할 것이다.

 

교훈: 박해자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제자 바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도록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넷째 날() 928일 이방인에게 전파된 복음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13:2).

 

질문1: 처음으로 이방인 교회가 세워진 곳은 어디인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신자들이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는가?(11:19~21, 26) 구약 시대에 언제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가?(2장 참고)

[11:19~21,26]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 안디옥(수리아의),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는 것을 피하여 간 사람들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이다.

 

질문2: 안디옥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여 바나바가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는가? 그는 후속 조치로써 바울을 안디옥으로 불러들였다. 그때 교회는 어떤 상황 가운데 있었는가?(11:20~26)

[11:20~26]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 안디옥에 제자들이 많아진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파견하였다. 교회는 새 신자들이 많아졌고,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여 바나바가 바울을 불러 함께 신자들을 가르쳤으며 거기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부가설명> 이 장면에서 핍박자 사울이 바울이 되어서 진리의 교사로 등장한다. 아직 이때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울은 희망이라는 뜻이다. 그가 후에 바울로 개명을 했는데 그것은 작은 자라는 뜻이다. 사울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가 아라비아로 가서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깨달았지만 아직도 교회가 그를 공식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게 하지 않았다. 그때 이 이방교회의 필요로 하나님께서는 바나바를 감동하시고 사울을 불러 복음 사역에 임하게 하셨다. 이 안디옥 교회가 이방 전도의 본산이 된 것을 사도행전을 읽으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들은 생각과 말과 삶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입만 벌리면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이런 사실로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인(크리스티아노스)이라고 부른 것 같다. 아마 좋은 의미로 부르기 보다는 빈정거리는 의미로 불렀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 초기에 사람들이 예수쟁이라고 부른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야말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상태를 올바르게 표현한 이름이다. 성령의 주장을 받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8:9)

 

교훈: 박해를 피해 이방인 땅에 최초로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복음을 이방 백성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전초기지로서 훌륭한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다섯째 날() 929일 교회 내의 갈등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15:2).

 

질문:. 유대로부터 온 신자들은 안디옥의 이방인 신자들을 위한 바울의 사역에 어떻게 대응하려고 시도하였는가?(15:1~5)

[15:1~5]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라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부가설명> 이 주제는 지금도 우리교회 안에 있다. 비록 할례를 받아야한다고 하지 않지만 구원을 받기 위하여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초대 교회 바울의 복음을 대적한 유대인들의 주장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성경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계명을 지키라고 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으니 계명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구원을 받은 표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구원을 받는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품성이 변화되는 것, 소위 성화를 이루는 것이 구원을 받는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참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이기 때문에 생명이신 예수께서 그 안에서 행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삶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기의 공로도 아니고 자기 노력의 결과도 아니다. 예수께서 그 안에서 사시기 때문에 드러나는 삶의 모습일 뿐이다.(2:20, 2:13) 이렇게 되어야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교훈: 믿음만으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 바울의 복음은 일부 유대인 신자들에게 반대를 당하였다.

 

예비일() 93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교회 증언 3, 430~434 “개인의 독립심”, 재림교회 성경주석 11,

228~240.

 

바울은 전에 열렬한 유대교의 옹호자요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데 지칠 줄을 모르는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용기, 자립적인 정신, 끈기, 재능과 훈련 등 그는 거의 어떠한 일에도 종사할 수 있었다. 그의 논리에는 비범한 명석함이 있었고 그의 풍자는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제 유대인들은 특출하게 전도유망한 이 젊은이가 전에 박해하던 사람들과 연합할 뿐 아니라 담대히 예수의 이름으로 전도하는 것을 보았다.

주께서는 다소 사람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쉽게 죽이실 수가 있었다. 그리 하였더라면 박해의 세력은 크게 그 힘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사울의 생명을 아끼셨을 뿐 아니라 회개시키심으로 그 용사를 적진으로부터 그리스도의 편으로 옮기셨다. 단호한 목적과 불요불굴의 용기를 가진 웅변가요 통렬한 비평가인 바울은 초대 교회가 필요로 한 모든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다”(사도행적, 12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예수님을 믿는 동료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취했던 과격한 반대로부터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교과 저자가 바울이 과격한 반대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바울은 자기의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로 받은 것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밝힌다. 그러므로 그는 계시를 본대로 증거했을 것이다. 그것이 모세의 전통을 버리지 못하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큰 반감을 일으켰던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주위와 상대를 잘 생각하여 가능한 한 강한 반대의 벽에 부딪히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하는 것은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복음을 올바르게 전하지 못하는 모양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종교적인 원칙에 굳게 섬과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진리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하여 말씀의 원칙을 따라 처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날마다 말씀에 입각하여 성령의 지도를 구하며 성령의 지도를 따라 말씀을 연구하여 결코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자기를 정로로 지켜야 할 것이다.

 

요약: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과의 조우는 바울의 생애와 초기 교회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은 과거의 박해자를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화시키셨다. 바울의 복음에 난색을 표한 교회 내 무리들은 선입견과 편견이 선교에 어떤 장애가 되는지 보여 주는 좋은 실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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