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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2일 안식일

일몰: 오후 547

 

기억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연구 범위: 2:15~21, 2:12, 3:9, 3:10~20, 15:5~6, 3:8.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바울은 그가 옹호하는 믿음과 베드로의 일관성 없는 행동 때문에 베드로와 공개적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 이교도들과 더 이상 식사하지 않기로 한 베드로의 결정은 그들이 2등급 신자라는 암시였으며, 그들이 정말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고, 한 식솔로서 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먼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이런 긴장 상황에서 바울이 실제 베드로에게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주에 우리가 공부하려는 본문은 지금까지 상황을 정리하는 일종의 요약 같은 것이다. 이 본문은 신약을 압축해 놓은 언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본문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복음을 이해하고 갈라디아서의 남은 부분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토대가 되는 단어와 구절들을 우리에게 처음 소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펴볼 핵심 단어들은 의롭게 됨’, ‘’, ‘율법의 행위’, ‘믿음그리고 단순한 믿음이 아닌 예수 믿음이다.

바울은 어떤 의미로 이런 용어들을 사용했을까? 그 용어들은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주는가?

 

학습 목표

깨닫기 : 심판의 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설명한다.

느끼기 : 스스로 자격을 갖추려는 행위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의에 의지함으로 얻는 안식을 경험한다.

행하기 :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나의 생명이 아닌 그분의 생명으로 살아간다.

 

B.

다른 것이랑 섞이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순금에 다른 것이 섞이면 가치가 떨어진다. 믿음도 역시 그와 같다. 인간의 노력이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섞이면 그것은 이미 다른 복음이 된다.

칭의의 기초가 되는 믿음은 나의 믿음입니까? 아니면 예수의 믿음입니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칭의의 기초는 예수께서 믿음의 주가 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이루시는 구원의 사업이 많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할 것도 확신하였다. 이 확신에 의하여 우리가 그분을 믿게 되는 것이다.

칭의가 순종으로 보충되어야 한다는 유대인 신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칭의를 도덕적인 선행과 율법의 준수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겼다. 이것은 죽은 자가 선행하여 생명을 얻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유대 신자들은 인간의 본질적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것은 부활로 드러낸 영원한 생명과 그 생명의 성질과 능력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의 실상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순종의 예는 무엇입니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4:15) 구원을 받은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생명이 역사하는 생활이 이루어지게 된다.(6:4 참고) 그것이 열매 맺는 삶이다.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다 구원받은 결과들이다.(5:9, 5:22,23)

 

결론: 믿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용서와 회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분 앞에 나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자아에 대해서 죽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분의 생명으로 사십니다.

 

첫째 날() 1016칭의의 문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2:16).

 

질문1: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2:15). 그대는 이 성경절에서 바울이 말하려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 바울의 이 표현은 이방인들을 죄인이라고 말한 유대인들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16절에서 죄인인 그 이방인이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말한다.

 

질문2: 바울은 갈 2:16~17에서 의롭게 됨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사용한다. 그에게 있어서 칭의(의롭게 됨)”은 어떤 의미인가?(23:7, 25:1 참고)

[2:16,17] 사람이 1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2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3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4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23:7]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25:1]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 바울에게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은혜로 죄가 용서되고 생활로 그 용서된 상태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였다. 인용된 구약성경 구절은 생활에서 나타난 의로운 삶에 대한 말씀이다.

 

<부가설명>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하는 진리를 결코 어렵지 않은 진리인데 이해하는데 어려운 것 같다. 이유는 그 의롭다함을 얻는 사람이 자기 상태를 중심으로 하여 그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 그 의는 사람의 도덕적 의가 아니다. 그것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이다.(3:21) 그것을 사람이 행한 도덕적 선행과 성품의 변화로 생각하는 한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바르게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1,22) 이것은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이르는 생명의 의이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5:18) 이 말씀은 범죄가 하나라고 가르치고 의의 행동도 하나라고 가르친다. 우리 주석에는 원문을 직역하였는데, “So then, as through one offense, unto all men, unto condemnation, so also, through one act of righteousness, unto all men, unto justification of life.” (한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고, 또한 한 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생명의 의에 이르렀다.)이다. 한 범죄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이고 의의 한 행동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바로 이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3~25)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라.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의의 한 행동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는가.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으면 구원은 없었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일도 없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증거도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다.(17:31)

 

교훈: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위임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의롭게 되는 길은 그 특권과는 무관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영광을 티끌 속에 내던지고,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456).

 

둘째 날() 1017일 율법의 행위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2:16).

 

질문: 바울은 갈 2:16에서 3번이나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율법의 행위란 어떤 의미인가?(2:16~17, 3:2, 5, 10, 3:20, 28)

[2:16,17]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3:2,5,10]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3:20,28]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교과 참고에 있는 것처럼 모세를 통하여 주신 모든 율법의 조문을 다 시행하는 삶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한 것 같다.

 

<부가설명> 여기 율법의 행위라는 말은 행동으로 뜻하는 말이기 보다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그것은 헬라어 에르곤인데 영어로는 works이다. 행동이 아니라 일이다. 율법의 일을 통하여 의롭게 될 육체가 없다는 말이다. 율법이 가르치는 일 중에 유대인 신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할례인 것 같다. 할례를 행하기 위하여서는 생식기의 끝 가죽을 칼로 베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도둑질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그런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율법의 일은 또 양을 잡는 것과 그 피를 뿌리는 것과 모든 제사를 드리기 위한 육체적 노동이 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율법의 일의 중심내용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율법 조문을 일상생활에서 다 실천하는 것이 포함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십계명이나 십계명의 정신을 생활로 나타내게 한 모세의 법들을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십계명을 지켰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새 언약으로 하나님의 법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다고 하였다. 물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의롭게 되는 조건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얻은 사람은 그 생명이 생활하는 삶을 사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의 본질적인 정신인 사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율법이 가르치는 노동들을 행하는 것, 즉 제물을 드리는 노동, 할례를 행하는 노동 이런 것들은 결코 의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를 끼친다.(3:6) 예수께서 그 모든 실상을 십자가와 부활로 다 성취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진정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모든 것은 이미 예수 안에서 행한 것이 된다. 그것을 내가 하려고 하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2:21)고 단언한 것이다.

 

교훈: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란 구약의 모든 율법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으려는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적 자세였다.

 

셋째 날() 1018일 칭의의 기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3:9).

 

질문: 3:22, 26, 3:22, 3:12, 3:9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하나님께 대한 그분의 완전한 순종이 구원의 유일한 기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3:22,26]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 교과의 저자는 갈2:16두 번에 걸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번역된 구절은 문자적으로 예수의 그 믿음또는 그 신실함이란 뜻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행하신 그 믿음의 행함이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이 믿음으로 행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다.

 

<부가설명> 인간의 선한 행위나 율법을 지키는 노동이 구원을 이루는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인류가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사상이다. 죽은 자는 살아나기 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다만 썩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들을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4:22)이라고 단언하였다. 이 옛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을 다 지켜도 그것이 죽은 상태에서 생명의 상태로 옮겨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나 도덕적 행위가 결코 의롭다함을 얻는 데, 즉 부활의 생명을 얻는데 조금도 보탬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예수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심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셨다.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의의 한 행동인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예수께로부터 받은 부활의 생명이 그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은 결코 구원의 지극히 작은 요소라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예수께서 이루시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전적으로 예수께 맡겨야 한다. 믿는다는 말, 피스튜오는 맡긴다는 뜻도 있다.

 

교훈: 칭의의 기초는 율법의 행위나 우리의 믿음에 있지 않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행함과 그분의 신실함에 있다.

 

넷째 날() 1019일 믿음의 순종

 

질문1: 다음의 성경절은 믿음의 근본 의미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15:5~6, 3:14~16, 고후 5:14~15, 5:6)

[15: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믿음의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행하신 일에 대한 사람의 반응에 대한 것이다. 긍정적인 반응을 하면 믿는 사람이고, 부정적인 반응을 하면 안 믿는 사람이다.

 

질문2: 믿음이 하나님께 대한 반응이라면 어떤 것이 그 반응에 해당하는가? 믿음의 본질에 대하여 다음의 성경절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살펴보라(8:32, 36, 10:43, 1:5, 8, 6:17, 11:6, 2:19).

[8:32,36]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10: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1:5,8]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 교과의 저자가 말하는 반응에 해당되는 본질적인 것은 순종이다.

 

<부가설명>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과 죄를 용서받는 것은 같은 것이라고 예언의 신은 증언하였다. “용서와 칭의는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믿음과 행함, 103). 용서의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용서와 회개는 또한 떼 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하나님의 용서는 죄인의 회개로 그의 것이 된다. 그런데 회개의 근본적인 것은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성경은 계시한다.(11:18) 그러므로 진정한 용서를 경험하는 것은 예수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 잘못한 것을 용서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용서를 경험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은 사람은 예수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드러내신 생명과 썩지 않음을 얻은 것이다.(딤후1:10) 그리고 이 생명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것을 순종이라고 표현한다. 순종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반응이 생활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교훈: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으로써 우리의 정신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섯째 날() 1020일 믿음이 죄를 조장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2:17).

 

질문1: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가 죄를 부추긴다는 비난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2:17~18)

[2:17,1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고 강력하게 대답하였다.

 

질문2: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어떻게 묘사하였는가? 이 대답은 그의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비판을 어떻게 반박하는가?(2:19~21)

[2:19~21]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사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죄를 짓지 않는 한 진정으로 예수님과 연합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부가설명> 첫째 질문의 완전한 답은 둘째 질문의 성경구절에 제시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할 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런데 오래 동안 사라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지 않으니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자기가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그의 약속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몸에서 아들이 태어나게 하려고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믿음 풀러스 자기의 노력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이 아브라함의 함정에 자주 빠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진정으로 예수께서 자기의 생명이 된 경험에 이르지 못한 모습이다. 예수께서 나의 생명이 되셔서 내 안에서 사시면 예수님이 하지 않는 것을 나도 하지 않는 것이다. 운전사가 가지 않는 곳에 자동차가 스스로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할 수 있다. 나라는 자동차를 자동 운전 시스템을 만들지 말고 예수님이 운전하도록 완전히 맡겨버려야 한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었다는 것은 이런 경우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상태이다.

 

교훈: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소식은 죄를 더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로 우리를 초청한다.

 

예비일() 102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가려 뽑은 기별, 367.

 

한 백성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해 잘못된 사상들을 받아들일 때의 위험이 나에게 반복해서 제시되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사탄이 이 관점에 대하여 마음을 혼란시키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가인의 제사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과 그분과의 관계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율법이 회중들에게 크게 강조되고 제시되어 왔다. 나는 구원에 대한 잡다하고 혼란한 사상들 때문에 그리고 목사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하고자 활동해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보았다. 수년 동안 나의 마음에 강조되어 온 요점은 그리스도의 입혀진 의이다.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가장 좋은 선행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욱 열렬하게 강조하고 더욱 빈번하게 되풀이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더욱 확실하게 정립시켜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요점은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믿음과 행함, 18~1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위의 인용문에서 엘렌 화잇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보다 더 강조할 주제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권면이 오늘날에도 해당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토론해 보십시오.

 

당연히 오늘날도 해당된다. 이것은 예수 믿는 도리가 있는 한 언제나 해당되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로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신 그것을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되다.’는 바울의 말은 무슨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면 굳이 예수님이 죽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면 예수님은 헛일 하신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결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로 사망 차제를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을 드러내셔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하신 것이다.

 

요약: 안디옥에서 보여 준 베드로의 행위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이방인들은 진정한 신자가 될 수 없음을 암시하였다. 바울은 그러한 사고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행위도 의의 기초로 삼으시지 않았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는 유일한 길은 그분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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