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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과 감사의 예물들

  

3 3일 안식일

일몰오후 6 27

  

 연구 범위 :  6:19~21,  2:8, 벧전 4:10,  7:37~47, 고후 8:8~15, 고후 9:6~7

  

 기억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우리 하나님은 베푸는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진리는 예수님의 희생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또는 이 성경절을 읽어 보라.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11:13).

하나님은 주고 또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렇다면 그분의 성품을 반사하기를 원하는 우리도 그와 같이 주어야 한다.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처럼 모순적인 말도 없다.

우리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한 가지 방법은 헌금이다. 헌금은 감사와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제공한다. 예수님이 구원 받은 자들을 하늘로 맞이하시는 날에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영접한 자들을 볼 것이며 그러한 영접이 우리의 희생적인 헌금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헌금의 중요한 측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너그럽게 바치는 것은 믿음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방편이다.

  

학습목표

1. 깨닫기 : 감사함이 넘치는 마음과 베푸는 습관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이해한다.

2. 느끼기 : 하나님의 자비로운 친절을 경험하며 그것에 반응할 수 있는 기회를 기뻐한다.

3. 행하기 : 베풀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베푸는 일에 익숙해야 합니까?( 10:8)

 모든 것을 하나님께 거저 받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즐겨 드리는 일에는 어떤 영적인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성품을 개발하는 지름길이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에 절대 강요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고후 9:6~7)

 즐겨 내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돈과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비율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의 원칙을 따르면 된다. 

  

결론 :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런 즐거운 태도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풍성한 복을 누리면서 지속적으로 감사를 경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 25() “어디에 네 보물이 있느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6:19~20).

  

1.  6:19~21을 읽어 보라.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얽매고 있는 지상의 보화들의 강력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3:1~2 참고)

[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한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6:21). 이 말씀은 예수님의 호소이다. 이 말씀은 보물을 땅에 쌓을 것인가 아니면 하늘에 쌓을 것인가를 대조하는 앞의 두 절부터 봐야 온전한 의미를 알 수 있다. 땅을 묘사하는 세 단어, 좀과 동록과 도둑( 6:19 참고)은 지상의 보물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순간적인가를 암시한다. 지상의 사물들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상의 모든 것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불안전해서 부패, 파괴, 도난, 손실의 대상이다. 하늘은 정반대로 모든 것이 영원하며, 오래가고, 안전하며, 소멸되지 않는다. 하늘에는 손실이 없다.”C. Adelina Alexe, “Where Your Heart Belongs,” in Beyond Blessings, edited by Nikolaus Satelmajer, (Nampa, Idaho: Pacific Press Publishing Association, 2013), p. 22.

그대의 소유를 보라. 비록 적은 소유일지라도 조만간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가보는 예외이겠지만 말이다. 지혜로운 청지기라면 안전한 보관을 위해서 보물을 하늘에 두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세상과 달리 하늘에서는 불황, 도적, 약탈자들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6:19~21에는 청지기에 대한 가장 중요한 개념들이 담겨있다. 그대의 보물은 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억누르며, 다그치고, 매혹하며 지배하려고 한다. 물질적인 세상에서 그대의 마음은 그대의 보물을 따른다. 그래서 어디에 그대의 보물이 있는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지상의 필요와 이익에 초점을 맞출수록 하늘의 문제를 생각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면서 보물은 땅에 간직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말과 일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지상의 보물을 보되, 믿음의 눈으로는 우리의 헌금을 하늘의 보물로 보아야 한다(고후 5:7 참고). 비록 우리는 (은퇴를 해서도) 실제적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야 하지만 영원이라는 큰 그림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가설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보물이 무엇일까? 금은보석이 보물일까? 사람이 살아있을 동안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 이런 것들이 보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영국 작가 해거드가 쓴 솔로몬의 동굴은 사람들에게 가장 귀한 보물은 생명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모험 소설이다. 주인공들이 천신만고 끝에 솔로몬의 동굴에 들어가서 산더미처럼 쌓이 금은보석을 발견하고 너무나 좋아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동굴 문이 닫힌다. 그들은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들에게 그 산더미 같은 보물이 더 이상 보물이 아니었다. 동굴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가가 당면 문제였다. 그들은 거기서 생명을 잃을 처지에 있었다. 그 많은 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빠져나갈 길을 찾는 것이 그 순간 다급한 일이고 그들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보물이 있을까? 하늘에 쌓아둘 보물은 영원한 생명이다. 예수님을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그것을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께 감추어두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3:1~4) 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은 해로운 것이며 배설물처럼 버려야 할 것이다. 재정을 하늘을 위하여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이 생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교훈 : 물질적인 소유의 유혹이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의 보물과 마음을 하늘에 둘 수 있는 방법은 헌금을 통해 하늘의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2 26() 은혜의 청지기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8).

  

1.  2:8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무엇을 주셨는가?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은혜에 의하여 믿음과 구원을 주셨다.

  

은혜란 합당치 않은 자에게 베푸는 호의이다. 그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지상에 그분의 은혜를 부어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거절하지만 않는다면 그분의 은혜가 내려와 우리의 삶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변화시킬 것이다. 하늘의 모든 부와 능력이 은혜의 선물 안에 들어있다(고후 8:9). 천사들도 이 같은 최고의 선물을 보고 놀란다(벧전 1:12).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야말로 가장 값진 선물이다. 은혜가 없다면 우리에게 희망도 없을 것이다. 죄가 인류에게 미친 절망적인 영향력은 너무도 지대하여 인간은 거기에서부터 벗어난 적이 없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려는 노력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3:21). 만약 어느 율법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심지어 율법도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그것은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어야 한다.

  

2.벧전 4:10을 읽어 보라. 청지기 직분은 은혜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하나님께 드리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생활이 어떻게 그분의 은혜를 나타내는지 설명해 보라.

[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어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베드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벧전 4:10)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으니 우리도 받은 것을 돌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받은 것은 우리의 기쁨과 유익을 위할 뿐 아니라 복음 사업의 발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할 수 있는 한 거저 주어야 한다.

  

<부가설명> 성도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바르게 관리하는 청지기이다. 성도가 관리해야할 은혜는 첫째로 믿음과 구원이다. 그 외에 모든 성령의 은사들이 다 은혜의 청지기가 관리해야 할 은사들이다. 이 은혜의 은사들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관리 품목이다. 성도들은 삶 자체가 이런 은사를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것과 같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성도들이 은혜의 청지기 노릇보다는 문을 막고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들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정직하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교회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교회가 옛날 이스라엘처럼 사람들을 교회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올려놓았다. 청지기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진실로 선한 청지기의 직무를 잘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은혜의 청지기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하늘의 선물을 거저 줄 수 있는 사람이다.

  

  

2 27() 최선의 헌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7:47).

  

1.  7:37~47을 읽어 보라. 이 일화에 따르면 하나님의 헌물을 드릴 때 가져야 할 바른 동기는 무엇인가?

[7:37~4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 감사와 사랑이다.

  

방 안에 있던 많은 사람은 탁자에 기대고 있는 예수님을 보았다. 그녀는 값비싼 나드 향유 옥합을 깨뜨려 그분에게 부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살아온 삶을 생각하며 그녀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귀신들림에서 벗어났다( 8:2). 그리고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사는 모습을 목격한 후 감사한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그 향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소유였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했다.

이 일화는 헌물을 드리는 우리의 동기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포착한다. 그것은 감사함이어야 한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고 우리가 어떻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관대함은 우리로 하여금 나눔을 실천하게 한다. 거기에 우리의 감사함까지 동반되면 그 둘이 의미 있는 헌물의 구성 요소를 이루는데 거기에는 우리의 시간, 재능, 재물과 몸도 포함된다.

  

2.  34:26과 레 22:19~24,  18:29을 읽어 보라. 시대적인 상황이 지금과 판이하게 다를지라도 우리는 헌물과 관련하여 이 말씀들로부터 어떤 원칙을 끌어낼 수 있는가?

[34:26] 너의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22:19~24] 열납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20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21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22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23 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낙헌 예물로는 쓰려니와 서원한 것을 갚음으로 드리면 열납되지 못하리라 24 너희는 불알이 상하였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너희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치도 말지며.

[18:29] 너희의 받은 모든 예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취하여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 처음 익은 것, 흠이 없고 온전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드려야 한다. 최선의 것을 감사함으로 드릴 것이다. 

  

우리의 최선의 헌물들이 우리 눈에도 충분하지 못하게 비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들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 최상의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을 첫째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호의를 얻기 위해 예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받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우리에게 있는 것을 드린다.

감사로 충만한, 사랑으로부터 우러난 온전한 헌신과 자선은 지극히 작은 헌물, 자원하는 희생에 거룩한 향기를 더하여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예물이 되게 할 것이다”(교회증언 3, 397).

  

<부가설명> 은혜는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은혜의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베푼 사람을 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억지로 되지 않는다. 가식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감사를 억지로 나타내고 가식으로 한다면 베푼 은혜를 조롱하는 것이 된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진정한 감사와 사랑이 배어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할 것이 그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예배도 감사요, 헌금도 감사이다. 자기를 헌신하는 것도 감사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해 하신 희생을 곰곰이 생각해보라.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자기의 존재와 생명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하나의 권리처럼 생각고 있지 않는가? 청지기로서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은 자기의 존재와 생명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주어진 것이며 유지되는 것임을 감사하는 당연한 행동이어야 하는 것이다. 청지기 직무를 수행하는 동력이 바로 이 감사와 사랑이다. 

  

교훈 : 우리는 하나님께 호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예물을 드린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최선의 예물을 소중하게 여기신다.

  

  

2 28() 마음의 동기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

  

우리는 앞서 아낌없이 헌금을 드린 과부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다른 이들의 헌금에 비해 적었지만 그녀의 헌금에는 그녀의 성품과 마음의 진실함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많은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21:3)라고 말씀하셨다.(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3번 질문에 과부 이야기를 했지만 8과나 9과 안식일부터 화요일까지 이 과부 이야기는 없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실한 동기를 아신다( 4:12,  16:2; 고전 4:5 참고). 우리는 거짓된 동기로 참된 행위를 할 수도 있다. 풍요로움에서 내어주는 것은 많은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희생적인 내어줌이란 마음의 동기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고후 8:8~15을 읽어 보라. 바울은 여기서 내어줌과 내어줌의 동기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우리는 이 말씀에서 청지기 직분에 관한 어떤 원칙을 배워야 하는가?

[고후8:8~15]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 청지기 직무를 수행하는 진정한 동기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된 사랑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내어줌의 동기가 무엇이든지 그것은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의 선상에 있다. 그 어떤 영적인 투쟁보다 이기심과 내어줌 사이의 선상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기심은 한때 하나님을 향하여 불붙던 심령을 차갑게 한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이기심을 허용할 때 생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의 이기심을 정당화할 방법을 찾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렇게 한다.

핵심은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사랑이다. 사랑은 자기부인,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것을 그것도 희생적으로 주고자 하는 자발성 없이는 나타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 반영되지 않는 이상 우리의 내어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반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기적인 마음은 단지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에 할례를 행”( 10:16)하여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받은 것처럼 사랑할 수 있다.

기독교의 박애주의는 진실한 선행의 기초인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감동시킨다. 그것이 진실로 내어줌의 최상의 동기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인의 청지기 직무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책임감으로 자발적으로 행하는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두 렙돈을 넣은 과부 이야기가 공부하는 내용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누가복음 21:1~4에 기록된 과부의 두 렙돈 헌금 이야기는 감동을 자아내는 내용이다. 그는 진정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과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였다고 예수님이 증거 하셨다. 청지기의 직무를 수행하는 삶이 이런 마음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동기를 보시는 것이다. “이기심은 한때 하나님을 향하여 불붙던 심령을 차갑게 한다. 는 표현은 아주 적확(的確)한 표현이다.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인지 아니면 자기를 드러내려는 숨은 의도인지 자신이 잘 몰라도 하나님께는 드러난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맑은 양심 정직한 마음과 이타심으로 이 직무를 감당해야 한다. 이 직무를 수행할 때에 자기의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교훈 : 우리가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희생적으로 내어줄 때 그런 선행의 진실한 동기는 자기를 부인하시는 하나님의 이타적인 사랑이다.

  

  

3 1() 주는 경험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7).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계시하기 위해 오셨다면 지금쯤 한 가지는 분명해져야 한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오직 우리의 최선의 유익을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유익이 될 만한 일을 행하라고 요구하시지 절대 손해가 될 일은 요구하지 않으신다. 여기에는 받은 것을 관대하게 즐거이 주는 사람이 되라는 그분의 부르심도 포함된다. 자발적이고 너그러운 베풂은 그것을 받는 자들보다 그것을 주는 자들에게 더 유익하다. 이런 방식으로 주는 자들만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복되다는 것을 직접 깨달을 수 있다.

  

1. 고후 9:6~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내어줌을 무엇이라고 요약하는가?

[고후9:6,7]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심는 것이라고 요약하였다.

  

헌금을 드리는 일은 매우 개인적이고 영적인 행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믿음의 행위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다른 믿음의 행위와 더불어 내어줌은 믿음을 자라게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2:20). 믿음대로 사는 것, 즉 우리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들을 행하는 것만큼 믿음을 자라게 하는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우리가 거저 너그럽게 줄 때에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욱 알아간다. 이렇게 줄 때에 우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볼 기회를 얻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을 얻고 그분에게 피하는 자의 복을 누린다( 34:8).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희생적(自我犧牲的) 사랑의 영광임이 드러날 것이다. 갈보리에서 비쳐 나오는 빛으로 볼 때 자아를 부정하는 사랑의 법칙이 이 세상과 하늘의 생명의 법칙임이 드러날 것이다. 또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에 그 근원이 있으며 아무라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20).

  

<부가설명> 창조주께서는 창조하실 때부터 피조물에게 주시는 분으로 일하셨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17:24,25)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창조주께서 주시는 것을 받지 않고는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4:7) 인생들은 아무것도 창조주께 받은 것이 없다고 자랑하는 학문을 좋아한다. 진화론이 그 학문이다. 받은 것이 없이 스스로 진화되어서 지금과 같은 상태에 이르렀다고 하는 주장이 아닌가? 이런 정신의 밑바탕이 이기심이다. 오늘날 인생은 이기심의 집약적 존재가 되었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이런 정신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사명 중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그분은 섬기는 자로 오셨고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는 분으로 일하셨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오도록 하기 위한 본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사는 훈련을 하라고 사랑으로 권하신다. 주라, 주라, 주고 또 주라. 줄 수 있거든 주라고 하신다. 청지기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13:52)고 하셨다. 감사와 사랑으로 일하는 청지기가 되도록 기도하자.

  

교훈 : 하나님은 유익이 되는 일만 명령하신다. 그 중에는 베풀고 주는 경험도 포함되는데 우리는 그런 경험을 통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됨을 깨닫는다.

  

  

3 2()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관용의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며, 이기적인 정신은 사탄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드러났다. 그분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셨으며, 마침내 자신을 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복된 구주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너그러움에 호소한다. 거기에 예시된 원칙은 주고 또 주라는 것이다. 실제적인 자선과 선행으로 실천된 이 원칙은 그리스도인 생애의 참된 열매이다. 세속적인 원칙은 가져라, 가져라 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그들은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적용된 모든 행동의 열매는 재난과 죽음이다”(교회증언 4, 8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그리스도의 정신과 정반대의 이기적인 정신이란 어떤 것일까요? 타락한 존재로서 그 같은 자연스러운 태도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자기의 욕심을 지키기 위한 정신이다. 십자가 앞에서 자아를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즐겨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신약에서 단 한 번 등장하는데 그 말에서 즐거운이라는 뜻의 ‘hilarious’라는 영어 단어가 유래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내어줌의 태도에 대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내어주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태도로 하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대가 받은 것을 모두 적어 보십시오. 목록을 보며 기도하십시오. 그 목록에 따르면 우리가 받았으니 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목록에 따르면 우리가 아무리 최선의 동기로 내어준다 할지라도 우리가 받은 것에 비해 그것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보일 수 있습니까?

 목록을 만들지 않아도 존재 자체를 받은 것인데 따질 것이 없다. 줄 수 있거든 주라. 주님의 이름으로 주자.

  

 이기적인 정신이 그대를 비참하게 만드는 확실한 길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친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막아버리는 장벽이 된다. 

  

 그대의 교회에서 현재 곤궁한 처지에 있는 신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가 당장 그에게 다가가서 줄 수 있는 도움은 무엇입니까? 어쩌면 그것이 그대에게 고통스러운 희생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가능한 사랑을 베풀고 기도와 말씀으로 격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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