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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6-17 장

권력과 투쟁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야망

정탐꾼들의 잘못된 보고로 인해 다시 광야로 들어서게 되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가 반기를 들었다. 약속의 땅을 코앞에 두고 애굽에서 나온 1세대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리라’(민 14:33)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백성들의 불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의 살 길을 위해 제사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시고 옷단에 다는 청색 끈을 말씀하시며, 마치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탐험가처럼 그의 계획을 실천하셨다.(15장)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살길을 발표하시는 동안 모세의 사촌인 고라(출 6:21)는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대신 그러한 상황으로 끌어들인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불평했다. 고라는 고핫의 손자이며 레위의 증손이다. 엘리압의 아들인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르우벤의 손자이며 벨렛의 아들인 온도 고라와 합세하였다. 그들은 모세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이백오십 명의 족장들이 합세하여 모세와 아론에게 항의하였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민 16:3)

모세는 이 말을 듣고 엎드렸다. 기막힌 상황과 절박한 환경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민 14:4; 16:22,45) 하루하루를 견기기 힘든 환경이었다 할지라도 매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았다면 그들은 반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보다 더 높은 분이 모세와 그 백성들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무엇이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만나와 반석의 물로(고전 10:4)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도록 저들의 눈을 가렸을까? 광야라고 하지만 저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걱정할 것이 없는 환경에서 먼저 눈을 뜨는 것이 야망이다. 모세는 야망의 포로가 된 고라와 그 모든 무리들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너희들, 고라와 고라가 데리고 있는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지고 나오너라. 내일 주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거기다가 향을 피우도록 하여라. 그 때에 주께서 한 사람을 택하실 것이다. 그가 바로 거룩한 사람이다. 레위의 자손이라고 하는 너희야말로 분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다.”(민 16:6-7 새번역)

동아 새국어사전에 의하면 야망이란 ‘바라서는 안 될 분수에 넘치는 희망’이다. 지금 고라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야망이 꿈틀거린 것이다.

모세가 계속해서 말한다.

“너희 레위의 자손은 들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를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구별하셔서, 주께로 가까이 나오게 하셨다. 그리고 주의 성막 일을 하게 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너희를 회중 앞에 세워, 그들을 돌보게 하셨다. 그런데 이것이 너희에게 부족하단 말이냐? 주께서는 너의 모든 동료 레위의 자손을 너와 함께 주께로 가까이 불러 내셨다. 그런데 이제 너희는 제사장직까지도 요구하고 있다.”(민 16:8-10 새번역)

그것은 인간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었다.(민 16:11) 모세가 저들의 야망을 책망하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이 말했다.

“우리는 가지 않겠소!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이는 것으로도 부족하단 말이오? 이제 당신은 우리 위에 군주처럼 군림하기까지 할 셈이오? 더욱이 당신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지도 못했소.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지 못하였소. 당신은 이 사람들의 눈을 뺄 작정이오? 우리는 못 가오.”(민 16:12-14 새번역)

과연 애굽의 델타지역인 고센 땅은 비옥한 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의식주가 풍요로울지라도 그들의 신분이 노예라면 비옥한 땅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요구하는 존재이다. 이 땅의 어려움 때문에 노예 신분을 그리워한다면 그들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저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오해했다. 멕시코와 미국은 그사이에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문이 있을 뿐이다. 땅을 풍요롭게 하는 태양과 구름은 멕시코 땅과 미국을 자유로이 드나든다. 하지만 멕시코로 들어가는 순간 메마름이 느껴지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순간 풍요가 느껴진다. 무엇이 땅을 그토록 다르게 만든 것일까? 메마른 사막이라도 사람이 축복을 받으면 곧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른다. 지금부터 40년 전에 한국 땅은 황폐한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산이 풍요를 토해낸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신 것은 그 민족에게 복을 내리시겠다는 것이요 자유를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이스라엘 국가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반역자들은 그들이 제사장 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듯이 각기 향로를 취하여 불을 담과 향을 그 위에 두고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아놓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하자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 나타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다.(민 16:18-20)

“너희는 이 회중에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민 16:21)

모세와 아론이 엎드려서 하나님께 구했다.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모세의 지시에 따라 회중들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자 모세가 말했다.

“만일 여호와께서 ‘새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 너희가 알리라.”(민 16:30)

여호와께서 행하시려는 새 일이 무엇일까? 새로움은 시간과 관계된 것만은 아니다. 맑고 아름다우면 산뜻하다고 한다. 늘 보던 아침도 기분이 좋으면 신선하게 느껴진다. 새롭고 좋은 생각이면 참신한 아이디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좋지 않으면 그냥 아이디어이다. 새롭고 좋은 제품이 나왔을 때 신상품이라고 하지만 새롭지만 보통 제품이 나왔을 땐 그저 상품일 뿐이다. 새롭다는 말은 내리막이 아니라 올라갈 때, 소모가 아니라 생산할 때, 추함이 아니라 아름다울 때, 증오가 아니라 사랑할 때, 부정이 아니라 긍정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여기의 ‘새일’은 땅이 입을 열어 사람들과 그들의 소유물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이 아무리 초유의 사건이라 할지라도 ‘새일’이 아니다. 반역자를 산채로 삼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서도 하나님은 모엇을 꿈꾸셨을까? 인간의 반역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새 일을 꾸미시는 하나님의 희망은 무엇일까? 여기에 새 일로 번역된 ‘베리야’는 ‘바라’에서 온 말로 ‘새 일을 행하셨다’는 말은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무슨 꿈을 꾸고 계시는 것일까?

모세의 말이 떨어지자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안과 고라를 따르던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소유를 삼켜 버렸다. 전에 저들이 전혀 보지 못한 ‘새일’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합세한 모든 사람도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갔고, 땅은 그들을 덮어 버렸다. 그들의 아우성 소리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이 우리마저 삼키려 하는구나’ 하고 소리치며 달아나자 주께로부터 불이 나와 향을 바치던 이백오십 명의 야망도 살라 버렸다.(민 16:32-35 새번역)

이스라엘 중에 있었던 야망은 자유의 땅에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몰락했다. 자유의 땅은 야망이 가서는 안 될 땅이다. 야망을 자제하기를 배운 뒤에야 참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 야망이 백성을 선동하는 중에도 자유의 땅에 대한 포부를 가진 아론과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는 모세에 의해 하나님은 ‘새일’을 하실 수 있으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일러서, 불 탄 자리에서 향로들을 모으게 하고, 타다 남은 불은 다른 곳에 쏟게 하여라. 이 향로들은 아무나 만져서는 안 된다. 그 향로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죄를 짓고 목숨을 잃었지만, 그 향로는 그들이 주 앞에 드렸던 것으로, 이미 거룩하게 된 것인 만큼, 향로를 망치로 두들겨 펴서 제단에 씌우도록 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것이 경고가 될 것이다."(민 16:37-38 새번역)

누구나 한 번은 잘못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 잘못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향로를 쳐서 그것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기념물이 되게 하셨다. 그런데도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항거하면서 ‘당신들이 주의 백성을 죽였다’고 말했다.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규탄할 때에 모세와 아론이 회막 쪽을 바라보니 회막에 갑자기 구름이 덮이고 주의 영광이 거기에 나타났다. 아론이 모세의 말을 듣고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갔다. 백성 사이에는 이미 염병이 번지고 있었다. 아론이 백성에게 속죄의 예식을 베풀었다. 아론이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서니 재앙이 그쳤다. 전날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일’의 의미를 모르고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하던 일만 사천칠백 명의 사람들이 또 다시 염병으로 죽었다.(민 16:41-49)

아론이 향로를 가지고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섰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왕을 모시고 달아나던 장군이 부장에게 ‘내가 여기를 맡을 테니 너는 주군을 모시고 달아나라’고 할 때 그는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대개 수많은 적을 상대한 장군은 주군을 살리기 위해 장열하게 죽는다.

산자들을 향해 죽음이라는 무서운 대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론이 죽음을 막아서서 죽음을 이길 수 있을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죽음의 염병이 정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중보의 향로가 죽은 자와 산자 사이에서 죽음을 막아서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죽고 말 것이다. 예수께서 죽은 자와 산자 사이에서 서지 않으신다면 수천만의 양과 염소가 죽어도 새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3400년 후에 예수께서는 갈보리 언덕에서 두 강도 사이에 서셨다. 한 강도는 예수를 비방한 죽어야할 죄인이요 한 강도는 예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강도였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선 아론의 표상은 갈보리 언덕에서 이루어졌다. 이날 아론의 속죄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새 일’의 시작일 뿐이다.

하나님의 새일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민 17:10)

염병이 그친 뒤에 하나님께서 각 종족 별로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오게 하셨다. 그리고 열 두 개의 지팡이에 족장의 이름을 쓰게 하셨다. 레위의 지팡이 위에는 아론의 이름을 썼다. 그리고 그것들을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었다. 모세는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주님 앞에 놓았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레위 집안 아론의 지팡이에는 움이 돋았을 뿐 아니라,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까지 맺었다.(민 17:8) 하나님께서 희망하신 ‘새일’은 멸망이 아니라 죽은 나무에서 생명이 돋아나게 하는 부활이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베리야’였다.

모세가 아론의 지팡이를 포함한 모든 지팡이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져오자 족장들이 저마다 자신의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 놓아, 반역하는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도록 잘 간직하여라. 너는 다시는 그들이 나를 거역하여 원망하지 못하게 하여라. 그래야만 그들이 죽지 아니할 것이다.”

마른나무에 싹이 나듯이 부활한 생명을 가진 지팡이가 백성을 인도해야 한다. 죽지 않을 방도를 위해 부활의 생명을 가진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려하자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였다. 죽음과 생명은 공존할 수 없는 법, 죽은 지팡이들이 산 지팡이를 보자 두려워진 것이다.

“우리는 죽게 되었습니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가는 사람, 곧 주님의 성막에 가까이 가는 사람은 모두 죽을 터이니, 우리가 이렇게 망하는 것으로 끝장이 나야 합니까?”(민 17:12,13 새번역)

생명을 보고 두려워하는, 죽은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게 무엇일까? 죽은 자들에게 새 일이 일어나도록 무엇을 준비하셨을까?

여호와께서는 아론에게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족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가 그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민 18:1)하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뜻일까?♧

위 글을 읽으면서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셨나요?

1. 기적의 손길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 것이 무엇일까?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었나?

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오해는 무엇이었나?

4. 참 자유에 이르려면 무엇을 버려야 하나?

5. ‘새일’은 무엇으로부터 시작하나?

6. ‘새일’은 무엇인가?

7. 죽은 자에게 ‘새일’이 일어나도록 계획하신 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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