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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과 모세와 아론의 죄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로다.(신 3;27)

생수

근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약속의 땅 남방 경계선인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다. 그들을 인도해주신 손길도 보았고 반역에 대한 무서운 벌도 보았다. 그만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어떤 관계인지 알만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회중에게 마실 물이 없자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고약한 곳으로 데리고 왔소? 여기는 씨를 뿌릴 곳도 못 되오.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소.”

저들에게 물이 없다는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저들의 미래가 안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씨를 뿌릴 곳도 못’ 된다는 게 첫째였고 무화과, 포도, 석류와 같이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는 기호식품이 둘째였고, 현재 당면한 물은 그 다음이었다. 이 말은 당장에 마실 물은 지난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당장의 필요가 공급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기호(嗜好)를 원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현재를 걱정한다면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실 것이다’ 하며 달랠 수 있지만 미래를 염려하는 백성들 앞에서 모세와 아론은 할 말을 잃었다. 모세와 아론은 총회 앞을 떠나 회막 어귀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주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나타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너의 형 아론은 회중을 불러 모아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다.”(20:8 새번역)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총회를 바위 앞에 불러 모았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

모세는 팔을 높이 들고,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 많은 물이 솟아나왔고 회중과 가축 떼들이 충분히 마셨다. 인간이 아무리 미래를 걱정해도 하나님은 현재를 책임지신다.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 20:12)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됨을 인하여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민 12:7,3)는 말을 들은 모세가 왜 화를 내며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했을까?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리시고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고전 10:4) 공급되는 일이 거듭되자 그 일들이 ‘우리가’ 한 일로 생각했던 것일까?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말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말이요, 반석을 두 번 친 일은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일일까?

모세에게 변명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를 나일 강에 띠워 목숨을 구해준 누님의 장사를 지낸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미 20:1) 그의 슬픔을 이해해주지 않는 백성들에 대한 노여움이 폭발할 수도 있었다. 똑같은 불평을 계속 반복하는 백성들에 대해 역정(逆情)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임무가 크면 책임도 큰 법, 지도자에 대한 심판은 가혹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믿지 아니했다’는 말과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그 다음절이 힌트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싸운 것이었다. 백성들의 불평이 하나님께 대한 불평이라고 생각했다면 모세는 백성들에게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해야 했다. 지금까지 모세의 중보는 한 번도 거절된 적이 없었다. 모세가 백성들이 자기에게 불평하는 줄 알았다는 말은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우를 때리는 형을 나무라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를 향해 노하신다.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13절)

거룩이란 하나님이 인간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냄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없는 사막에서 떨기나무를 보고 불태우지 않으신다. 사람이 앞에 있어야 거룩의 불이 타오른다. 시내산은 보잘 것 없은 산이지만 백성들이 그 밑에 오면 시내산에 구름이 빽빽하게 일어난다. 거룩은 인간과 하나님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불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반석 앞에 세우기만 해도 그들을 따르던 반석은 그 속에 물을 품을 것이었다. 개역성경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8절)라고 했고 새번역성경은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라고 했다. 마른 반석이지만 백성들이 반석 앞에 섰을 때 이미 거룩의 물은 그 반석에 가득 차올랐다. 반석을 때릴 필요도 없었다. 그냥 명하기만하면 반석에 가득찬 물이 넘쳐날 터였다. 모세는 반석 안에서 거룩한 물을 펌프하실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거룩을 백성들 앞에 드러낼 기회를 놓친 것이다.

백성들 앞에서 거룩을 드러내지 않은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들을 보내 에돔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해달라고 요구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들은 사해에서 남쪽으로 아카바 만에 이르는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세가 ‘우리가 대로로 통과하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줄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통과할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했으나 에돔 왕은 통과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민 20:18,19)

통상 군대가 지나간 지역은 피폐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길을 내주지 않았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정벌하라고 명하지 않으셨을까? 우회로는 준비되지 않은 인생을 위해 급조(急造)해주시는 안전한 길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하이웨이를 달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을 통과하지 못하고 가데스로 진행하여 호르산에 이르렀다.

민수기 20장은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로 시작하여 ‘온 족속이 아론의 죽은 것을 보고 삼십일을 애곡하였더라’로 끝난다.

아주 쓸쓸한 장례식에 참석해본 적이 있다. 장례 주례를 위임 받으신 선친과 나, 둘이서 사랑하는 애인을 총으로 쏘고 자살한 청년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모친을 위로했다. 만일 그가 이웃을 위해 많은 선행을 베풀다가 죽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애곡했을 것이다. 참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죽는 순간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점검받는 마지막 순간이다.

만일 미리암이 사제였더라면 기록은 뒤바뀐다. 미리암의 삶이 애도할만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제사장직을 수행했던 아론의 삶이 귀중했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죽으매 장사하니라’로 끝날지라도 백성들을 위해 봉사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삼십일을 애곡’해야 한다. 나의 죄를 위해 봉사할 제사장이 죽는다는 것은 애곡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아론의 죽음으로 봉사가 끝난 게 아니라 그 아들 엘리아셀에게 그의 거룩한 직분이 위임 되었다.

불뱀

남방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는 말을 들었다. 아다림이 KJV에는 ‘the way of the spies'로 번역되었다. 아랏의 왕이 정찰병 몇 사람을 사로잡은 듯하다. 그 때에 이스라엘이 주님께 다음과 같은 말로 ‘서원’(2절)했다.

“주님께서 이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면, 우리는 그들의 성읍들을 전멸시키겠습니다."(민 21:2)

사실 이것은 서원이 아니다. 성경에서 서원으로 번역된 ‘나다르’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면,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이게 서원이다. ‘이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면, 우리는 그들의 성읍들을 전멸시키겠다’는 것은 하나님껜 도움이 안 되고 인간에게만 유리한 일방적인 요구다. 한데 하나님께서는 이 서원을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들을 다 멸해주셨다. 어찌된 일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읍을 멸하고 그곳의 이름을 ‘호르마’라고 했다. ‘호르마’는 ‘헌신’이라는 뜻이요 ‘호르마’의 어원인 ‘하람’은 ‘헌신하다’는 뜻과 ‘파멸시키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 단어 안에 저주스러움과 경건이 섞여 있다. 나 자신을 멸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께 헌신해야 나의 원수는 파멸된다는 불변의 진리가 함축 된 게 아닐까?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한 것은 그들이 헌신했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파멸시켰다는 뜻인지 분명치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서원을 들으시고 그 백성들에게 승리를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땅을 우회하여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며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해졌다.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느냐?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 먹을 것도 없다. 마실 것도 없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민 21:5 새번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양식’(시 78:25)을 먹었으며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고전 10:4)에 의해 물을 공급 받았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의해 냉난방이 해결되었으며 옷은 헤어지지 않았고 발은 부르트지 않았다.(민 8:3-4; 시 105:37) 매일 베풀어지는 기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는 ‘박한 식물’이 되었다. 감사해야할 것을 감사한 줄 모르는 자리에 불뱀이 찾아왔다.

“팔레스틴에는 약 35종의 뱀들이 서식하고 있다. 어떤 뱀은 독이 아주 강하며 떼 지어 다닌다. 떼 지어 다니는 독뱀에게 물리면 고통이 지독하기 때문에 ‘불뱀’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이스라엘에게서 거두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독 있는 생물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신 게 아니라 여호와께서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자 불뱀의 공격을 당한 것이다.”(프랑크 홀부룩 『전진하는 백성』 128쪽)

불뱀이 사람을 물어 이스라엘 백성이 많이 죽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하였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해 달라고 주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던 그들이(출 16:3; 17:3; 민 11:2; 14:2; 20:3) 이번에는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했다.(민 21:7) 모세를 향해 원망할 때 재앙으로 치신(민 11:31-33)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원망할 때는 저들에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동료에게 원망하는 것은 용서 받아도 왕을 향에 원망하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힘든 논리다. 한데 성경의 하나님은 동료에게 원망하면 살아남기 힘들어도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면 살 방도를 주신다. 형제들끼리의 싸울 때는 벼락같이 야단치다가도 부모를 향해 원망할 때는 자신을 자책하는 부모 같은 마음이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민 21:7)하며 구하는 백성들에게 뱀을 없애주는 대신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그리고 바라보면 산다고 하였다. 왜 기둥에 달고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때때로 어려움을 없애달라고 구하지만 하나님은 어려움을 없애주는 대신 어려움을 이길 힘을 주신다. 그 힘은 바로 예수에게서 온다. 인간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을 가져오는 노역은 필요하지 않다. 바라보기만하면 된다.

뱀에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구리로 만든 뱀을 쳐다보고 삶을 얻었다.(민 21:4-9) 어떻게 엄청난 죽음의 문제가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뱀에 물렸을 때 천적인 산돼지나 너구리나 오소리나 고슴도치의 형상이라면 몰라도 나를 해친 뱀을 바라봄으로 산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 아닌가?

사람들은 늙으면 죽는 줄 알지만 늙음은 죽음의 원인은 아니다. 세코이아 파크에 가면 셔먼장군 나무가 있다. 그 나무의 수령은 2,500년 정도이다. 예수께서 초림하시기도 훨씬 전에 태어난 나무이다. 아직도 얼마를 더 살지 모른다. 인간 역시 죽게 되어 있는 게 아니다. 전원이 끊긴 선풍기가 돌다가 멈추듯이 인간이 죽는 것은 생명의 전원에서 끊겼기 때문이다. 생명의 전원을 연결해야 한다. 뱀에 물려서 죽은 자들은 죽음의 원인이 뱀인 줄 알고 죽었을 테지만 쳐다봄으로 삶을 얻은 자들은 죽음의 원인이 쳐다보지 않은 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에 LSD를 많이 복용하고 죽은 학생이 있었다. LSD를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직시한다는 말은 볼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말이다. LDS의 해악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멀리함으로 살 수 있듯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죽음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죄의 해악과 그 결과를 앎으로 죄를 미워하고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

그로부터 1,500년 후에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장대에 달린 뱀을 예수님 자신으로 비유하셨다.(요 3:14)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이 땅에 죄가 되어 오셨다.(고후 5:21) 인간은 누구나 그 예수를 바라보면서 예수를 죄로 몰아간 그 죄를 직시하고 그 죄를 미워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죽을 인생이 삶을 얻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 곳을 떠나 여러 곳을 지나 비스가 산 꼭대기 부근,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모압 고원지대의 한 골짜기에 이르렀다. 모세가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들을 보내어 요청하였다.(민 21:21; 신 2:26-3:11)

“우리가 임금님의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밭이나 포도원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샘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임금님의 영토 경계를 다 지나갈 때까지 우리는 ‘왕의 길’만 따라가겠습니다."(민 21:22 새번역)

시혼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맞아 싸우려고 군대를 이끌고 광야로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도리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르논에서 부터 얍복에 이르기까지 그 땅을 차지하였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사람의 성읍을 모두 점령하고, 헤스본과 그 주변 모든 마을을 포함한 아모리의 모든 성읍에 자리 잡았다. 이스라엘이 아모리의 성읍들을 빼앗은 것에 대하여 시인들이 이렇게 읊었다.

“헤스본으로 오너라. 시혼의 도성을 재건하여라. 그것을 굳게 세워라.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고, 시혼의 마을에서 불꽃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고, 아르논 높은 산당들을 살랐다. 모압아, 너에게 화가 미쳤다. 그모스 신을 믿는 백성아, 너는 망하였다. 아모리 왕 시혼에게 꼼짝없이, 아들들이 쫓겨가고 딸들이 끌려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넘어뜨렸다. 헤스본에서 디본에 이르기까지, 메드바에서 가까운 노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들을 쳐부수었다."(민 21:27-30)

모세가 아모리 사람들을 내쫓은 후에 그들은 방향을 바꾸어서 바산 길로 올라갔다. 바산 왕 옥이 자기의 군대를 모두 거느리고, 그들을 맞아 싸우려고 에드레이로 나왔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와 그의 땅을 너의 손에 넘겼으니, 전에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왕 시혼을 무찌른 것처럼 그를 무찔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온 군대를 다 때려눕히고 그들의 땅을 차지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다봄으로 사는 구원의 원리를 배운 후에야 아모리 왕을 물리치고 모압을 물리치고 미디안을 물리치면서 가나안 땅 변경에 성큼 다가섰다. 승승장구의 비결은 쳐다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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