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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2 15:42

제13과 도피성(12/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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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6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20분)

기억절: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히 6:18~19)

연구범위: 민 33~36장, 수 20:1~7, 엡 2장.

안식일 오후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신실히 지키셨으나 1세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신실하지 못하였고, 그들에게 주어진 땅을 유업으로 얻는 대신에 거친 광야에서 죽었다. 그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복을 주셨건만 그들은 신뢰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우리 대부분이 결코 목격하지 못했고 또한 목격하지 못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기적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다. 결코 그러지 않으셨다. 성경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주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시리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구속받은 백성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스라엘의 1세대처럼 그들을 위해 행해진 그 모든 기적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있는가?

이번 주에 우리는 민수기 연구의 마지막 과를 공부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유업을 얻기 위해 최종적으로 준비하던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볼 것이다.

핵심본문: 히 6:18~19

<학습 목표>

깨닫기: 도피성의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여기서 우리는 구원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한다.

느끼기: 우리의 피난처인 그리스도께 숨을 필요성을 느낀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신 도피성을 활용한다.

< 교과 개요 >

I. 깨닫기: 도피성

A. 레위인들을 위한 성읍들은 다른 지파들 사이에 골고루 흩어져 있었으며, 도피성은 레위 지파의 성읍들 사이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평한 복을 어떻게 묘사해 주는가?

B. 고의적이거나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을 위해 어떤 대비책이 마련되었으며, 그들은 이 대비책을 활용할 때에 어떻게 할 책임이 있었는가?

C. 이러한 공의로운 제도에 있어서 공동체는 어떻게 관여하였는가?

II. 느끼기: 우리의 도피성이신 그리스도

A. 살인자를 위해 도피성이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상징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말해 준다. 이 상징은 죄의 심각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III. 행하기: 안전한 피난처 안에 거함

A.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신속히 피신해야 했으며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이는 죄인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어떻게 나타내는가?

B. 오늘날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는 주변에 고통 받고 있는 자들에게 어떻게 피난처를 제공해 줄 수 있는가?

요점: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살게 하심으로 선물이 되게 하셨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공의와 중보에 대한 더 심오한 의미를 준다.

일요일(12월 20일) 역사의 교훈(민 33장)

1. 민수기 33장을 읽으십시오. 왜 여호와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그들이 진행해 온 여정을 하나하나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그렇게 하신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민33:1-49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관할하에 그 항오대로 애굽 땅에서 나오던 때의 노정이 이러하니라 2 모세가 여호와의 명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 진행한 대로 그 노정은 이러하니라 3 그들이 정월 십오일에 라암셋에서 발행하였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5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진쳤고 6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쳤고 7 에담에서 발행하여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쳤고 8 하히롯 앞에서 발행하여 바다 가운데로 지나 광야에 이르고 에담 광야로 삼 일 길쯤 들어가서 마라에 진쳤고 9 마라에서 발행하여 엘림에 이르니 엘림에는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으므로 거기 진쳤고 10 엘림에서 발행하여 홍해 가에 진쳤고 11 홍해 가에서 발행하여 신 광야에 진쳤고 12 신 광야에서 발행하여 13 돕가에 진쳤고 돕가에서 발행하여 알루스에 진쳤고 14 알루스에서 발행하여 르비딤에 진쳤는데 거기는 백성의 마실 물이 없었더라 15 르비딤에서 발행하여 시내 광야에 진쳤고 16 시내 광야에서 발행하여 기브롯핫다아와에 진쳤고 17 기브롯핫다아와에서 발행하여 하세롯에 진쳤고 18 하세롯에서 발행하여 릿마에 진쳤고 19 릿마에서 발행하여 림몬베레스에 진쳤고 20 림몬베레스에서 발행하여 립나에 진쳤고 21 립나에서 발행하여 릿사에 진쳤고 22 릿사에서 발행하여 그헬라다에 진쳤고 23 그헬라다에서 발행하여 세벨 산에 진쳤고 24 세벨 산에서 발행하여 하라다에 진쳤고 25 하라다에서 발행하여 막헬롯에 진쳤고 26 막헬롯에서 발행하여 다핫에 진쳤고 27 다핫에서 발행하여 데라에 진쳤고 28 데라에서 발행하여 밋가에 진쳤고 29 밋가에서 발행하여 하스모나에 진쳤고 30 하스모나에서 발행하여 모세롯에 진쳤고 31 모세롯에서 발행하여 브네야아간에 진쳤고 32 브네야아간에서 발행하여 홀하깃갓에 진쳤고 33 홀하깃갓에서 발행하여 욧바다에 진쳤고 34 욧바다에서 발행하여 아브로나에 진쳤고 35 아브로나에서 발행하여 에시온게벨에 진쳤고 36 에시온게벨에서 발행하여 신 광야 곧 가데스에 진쳤고 37 가데스에서 발행하여 에돔 국경 호르 산에 진쳤더라 3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 오월 일일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39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던 때에 나이 일백이십삼 세이었더라 40 가나안 땅 남방에 거한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이 이스라엘의 옴을 들었더라 41 그들이 호르 산에서 발행하여 살모나에 진쳤고 42 살모나에서 발행하여 부논에 진쳤고 43 부논에서 발행하여 오봇에 진쳤고 44 오봇에서 발행하여 모압 변경 이예아바림에 진쳤고 45 이임에서 발행하여 디본갓에 진쳤고 46 디본갓에서 발행하여 알몬디블라다임에 진쳤고 47 알몬디블라다임에서 발행하여 느보 앞 아바림 산에 진쳤고 48 아바림 산에서 발행하여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 진쳤으니 49 요단 가 모압 평지의 진이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미쳤었더라

답: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매 걸음마다 인도하셨음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모세는 그 모든 여정을 기록하였다.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역사이다. 수백 년 동안 다른 민족의 노예로 살아왔던 민족이 그 억압의 사슬을 끊고 탈출하여 40년 동안이나 시내 광야라는 황량한 사막에서 살아남았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기적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주목할 것은, 민수기 33:2에 그들이 “여호와의 명대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는 사실이다. 여호와께서는 광야를 옮겨 다닌 히브리 민족의 모든 이야기 배후에 당신께서 계셨음을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잊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방황한 이야기는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 중에는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한 사실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다. 또는 그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할지라도 순전히 자연적인 상황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 계셨음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2. 민수기 33:50~56을 읽으십시오. 직접적인 역사적 배경을 제쳐놓고라도 우리는 이 구절들에서 어떤 중요한 영적인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 정착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상기해 볼 때, 이 사람들을 다 몰아내라고 하신 명령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습니까?

민33:50-56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5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52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53 그 땅을 취하여 거기 거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산업으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54 너희의 가족을 따라서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뽑힌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열조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얻을 것이니라 55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 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56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답: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여 거기 거하라”(민 33:51-53)고 하셨으나 그들은 그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음으로 우상숭배에 물들고 말았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계속해서 여호와의 백성에게 “눈에 가시와 옆구리에 찌르는 것”(55절)이 될 것이었다. 우리가 세상의 악한 감화와 주변 문화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믿음을 잃고 타락할 위험 가운데 놓이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이스라엘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하여 정력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는 보증을 신뢰하고 그 땅의 거민을 완전히 몰아내는 일만이 그들에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에 실패했다. 그들은 가나안인들과 동맹을 체결함으로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신께서 그들로 가나안을 점령하도록 허락하신 조건을 성취시키는 일에 실패했다.”(부조와 선지자, 543)

<부가설명>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영적 이스라엘의 신앙의 역사의 표상적 사건들이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한 종족들을 멸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까지 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렇게 싸워서 멸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면으로는 그들의 삶의 모습이 부러웠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였든지 결과는 그들이 이방을 닮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문화를 그들에게 철저하게 주입시키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들이 이방의 문화에 물들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북방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모두가 이방 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드러내는 사건들이다. 지금 우리 교회는 어느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지금 재림교회의 남은 자손으로서 순수한 재림신앙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의식은 어떤가? 우리도 교회 역사의 발자취를 잘 살피면서 우리의 위치를 자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의 여정을 자세히 기록하게 하신 까닭은 그분의 섭리와 보호가 아니었다면 그 여정이 불가능했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월요일(12월 21일) 레위인들의 성읍들(민 35:1~8)

레위인들은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께 충성심을 나타냈으므로 그분께서 그들의 유업이 되시는 귀한 보상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유업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한 대비책을 마련해 주셨다.

1. 레위인들을 위한 어떤 대비책이 마련되었습니까? 이 사실은 레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해 줍니까?(레 35:1~8)

민35:1-8 여호와께서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얻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 사면의 들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3 성읍으로는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들로는 그들의 가축과 물산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 4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들은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면 이천 규빗이라 5 성을 중앙에 두고 성 밖 동편으로 이천 규빗, 남편으로 이천 규빗, 서편으로 이천 규빗, 북편으로 이천 규빗을 측량할지니 이는 그들의 성읍의 들이며 6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로 피케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7 너희가 레위인에게 모두 사십팔 성읍을 주고 그들도 함께 주되 8 이스라엘 자손의 산업에서 레위인에게 너희가 성읍을 줄 때에 많이 얻은 자에게서는 많이 취하여 주고 적게 얻은 자에게서는 적게 취하여 줄 것이라 각기 얻은 산업을 따라서 그 성읍들을 레위인에게 줄지니라.

답: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들 중에서 48성읍을 레위인들에게 주도록 하여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살게 하였다. 이들은 12지파 중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의 신앙과 생활을 지도할 것이었다. 아울러 12지파는 레위인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서로 의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였다.

모든 지파들이 어떻게 레위인들에게 땅이 주어졌는지 주목해 보라. 적은 땅을 분배 받은 지파는 적은 땅을, 많이 분배 받은 지파는 많은 땅을 내어놓아야 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형평성의 원칙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지파는 “그들의 얻은 기업에서”(민 35:2) 레위인들에게 성읍들을 주어야 했다. 모든 지파의 사람들이 레위인들을 돌보는 일을 분담하여야 했다. 여호와께서는 이 일을 통해 각 지파가 레위인들을 돌볼 책임이 있음을 알기 원하셨다. 어떤 의미에서 많이 가진 자는 적게 가진 자보다 더 많은 십일조를 드린다는 동일한 원칙이 여기서도 적용되었다.

한편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들로부터 성읍을 제공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이 백성을 위해 신실하게 섬겨야 할 책임이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하였을 것이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 가운데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 즉 그들은 어떤 특정한 지역에 모여 살지 않았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배교가 있을 동안에 이들의 조상이 신실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들은 백성들 가운데 살아야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신실함과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백성에게 끊임없이 증거할 수 있었다. 레위인들은 그들 가운데 살면서 공동체의 일부가 되고 그들의 괴로움과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동족에게 축복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삶으로써 배타적이거나 거만한 엘리트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섬김을 받는 대신 섬겨야 했다. 참된 섬김에 대한 얼마나 귀한 모본인가!

레위 지파에 배정된 성읍들

“레위 지파는 성소 봉사를 전담하고 있었으므로 이 분배에 들지 못하였으나 가나안의 각 곳에 있는 48 성읍을 기업으로 배정받았다.”(부조와 선지자, 511)

“레위인들은 땅이나 포도원, 감람원 등을 유업으로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거할 적당한 집이 있어야 했으므로 그들의 거처를 위하여 성읍들이 마련되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민 35:2)

<부가설명> 야곱은 레위와 시므온에 대하여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다.(창49:5-7)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 흩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야곱의 예언대로 레위지파가 흩어져 살게 되었으나 그들에게 저주 대신에 복이 임했다. 그것은 레위의 후손들이 그 조상의 잔해하는 정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신33:8-11) 성경에 기록된 저주 예언은 그 예언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자가 되도록 권고하는 하나님의 자비였다. 레위에 대한 것이 그들의 후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로 헌신했을 때 그 저주가 축복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저주 같은 책망은 그렇게 해야 그들이 회개하는 정신을 나타낼 것을 아셨기 때문에 행하신 하나님의 고육지책임을 아는 것은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이 돌이켜 사는 자리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지극한 마음이시다.

교훈: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 가운데 흩어져 살면서 그들을 섬겼는데,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좋은 감화와 모본이 되었다.

화요일(12월 22일) 도피성-1(민 35:6, 9~12)

1. 민수기 35:6, 9~12을 읽으십시오. 도피성을 지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민35:6,9-12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로 피케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11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12 이는 너희가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답: 그릇 살인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공정한 재판을 받기까지 복수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보호하였다.

이때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사법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지중에 혹은 고의로 사람을 죽였다면 희생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공의를 행사함으로 그 “피의 보수자”(신 19:12)가 되었다. 공의를 그릇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레위인들의 여섯 성읍이 특별히 지정되었는데 살인자는 그곳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수 20:1~7)

민수기 35:12에는 중요한 핵심이 기록되어 있다. 그 성읍으로 도망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영구적인 도피처를 제공해주지는 못했다. 어떤 경우에 그것은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일시적인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즉 그 사건의 진상이 확인될 때까지만이었다. 이 성읍들은 오늘날 외교관이 면책 특권을 갖는 그와 같은 영구적인 치외법권(治外法權) 지역 같은 기능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이 성읍들은 공의를 그릇 행사할 수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2. 민수기 35:9~21을 읽으십시오. 복음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형태의 처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민35:9-21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11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12 이는 너희가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13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 14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15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무릇 그릇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16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17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19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친히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요 20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21 원한으로 인하여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고살하였음이라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니라.

답: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은 고의적인 살인과 같은 사회적인 범죄가 처벌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회개의 복음이 무법의 기별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이와 같은 구절이 용서에 관한 성경 말씀이나 다른 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과 조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사회적인 범죄라는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용서와 은혜의 복음은 특히 비열한 살인과 같은 범죄가 사회에 의해 처벌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살인자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범죄가 징벌되지 않는다면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는 살인과 같은 가장 심각한 범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공평하고 공정하게 다루시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도피성이 상징하는 것

“고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지정된 도피성은 그리스도 안에 준비된 피난처의 상징이었다. 이런 임시적인 도피성을 마련하신 은혜로운 구세주께서는 보혈을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을 위하여 저희가 둘째 사망에서 피하여 안전함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피난처를 또한 준비하셨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수 20:1-9)

<부가설명> 범죄와 회개 문제를 생각할 때 영적인 것과 실정법적인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사회적으로 범죄 하는 것은 그 사회의 실정법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고의적이든 실수이든 살인한 사람은 그 국가와 사회의 실정법에 의하여 처리되는 것을 영적 법이 금하지 않고 또 금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런 죄인이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를 할 때 실정법으로는 처벌을 받을지라도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회적으로 저질러진 범죄를 영적인 것을 착각하여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살인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고의적으로 그렇게 한 사실을 진정으로 회개할 때 용서하시고 구원으로 이끄실 것이다.

교훈: 부지중에 살인한 자는 도피성에 피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러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시적 피난처를 주기 위함이었다.

수요일(12월 23일) 도피성-2(민 35:22~34)

민수기 35:22~34을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민35:22-34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23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다 하자 이는 원한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24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수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25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 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 26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27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유하였을 것임이라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29 이는 너희 대대로 거하는 곳에서 판단하는 율례라 30 무릇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31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32 또 도피성에 피한 자를 대제사장의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33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 34 너희는 너희 거하는 땅 곧 나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함이니라.

1. 이 상황을 처리함에 있어 어떻게 온 회중이 동참하였습니까? 그들의 참여는 왜 중요하였습니까?

답: 회중에 어떤 의무를 수행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없으나 아마도 그 과정은 증거 제시, 토의, 배심원들에 의한 결정 등의 법적인 일들이었을 것이다.(민 35:12, 24)

2. 고의적인 살인자와 부지중의 살인자 사이를 무엇으로 구분했습니까?

답: 고살자와 부지중의 살인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고의성의 여부였다.

3. 비록 부지중에 살인이 저질러졌을지라도 가해자는 보호를 받기 위해 여전히 도피성에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주어진 문맥을 고려해 볼 때,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부지중에 살인한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도피성이라는 법적인 보호를 벗어나지 말아야 했다.

4. 우리는 민수기 전체를 통하여 특히 배교와 죄와 반역이 일어난 경우에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신 사실을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호와께서는 직접 개입하여 판단해 주시는 대신 사람들이 유죄와 무죄를 결정하는 책임을 맡는 사법제도를 세우셨다고 생각합니까?

답: 그런 일을 통하여 사람들이 범죄의 두려움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고, 죄인을 취급할 때 정말 신중을 기하여 올바르게 대하는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공평하게 처리해야 하였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법을 깊이 천착(穿鑿)하도록 이끌기 위한 것이다.

5. 왜 단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살인자를 죽음에 처할 수 없었습니까? 이 사실은 사형 제도를 보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함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답: 한 사람의 증언만 듣고 형을 확정한다면 충분한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아 그릇된 판단을 내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두세 증인의 증언이 필요하였다.

고의적 살인자와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구분하심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신중하게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시는가! 그분은 고의적인 살인에 형벌을 부과하셨다. … 그러나 부지중에 한 사람이 생명을 취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달아날 수 있는 도피처를 마련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설교와 강연, 2권, 186-187)

<부가설명> 도피성 제도는 자신의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고 살인한 사람들을 회중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까지(민35:12) 보호하여 피해자의 가족들이 성급하게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실수로 살인한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살인자이다. 그러므로 피해자의 가족이 그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이기 때문에 고의적인 살인자가 받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하였다. 고의적인 살인, 죽 자신의 의지력을 사용하여 행한 살인은 속죄의 제사가 없었다. 그러나 실수로 살인한 자를 위하여서는 속죄의 제사가 허용된 것이다. 그는 당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서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다.(민35:32)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라도 그 실수로 살인한 자는 속전을 내야 하였다.(32) 그도 역시 죄인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속전을 내는 것은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는 행위이다. 대제사장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상징한다. 모든 실수로 저질러진 살인은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속죄되고 용서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훈: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와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구분한 까닭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계획적인 살인자와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목요일(12월 24일) 우리의 도피성이신 그리스도(삼하 22:3)

1. 사무엘하 22:3은 도피성이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한다고 말합니까?

삼하22:3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답: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높은 망대, 피난처 구원자.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제공하는 사실을 나타낸다.

2. 도피성으로 피신한 자들과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종류의 피난처와 보호를 발견하게 됩니까?(참조 요 8:10~11, 엡 1:7, 골 1:14, 히 6:18)

요8:10,11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골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히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답: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엡 1:7, 골 1:14). 도피성의 문이 언제나 열려 있었듯이 그분께서도 통회하고 회개하며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거절하지 않으신다.

“옛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지정된 도피성은 그리스도 안에 준비된 피난처의 상징이었다. 이 땅에 도피성을 마련하셨던 동일한 자비의 구주께서는 당신의 보혈을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로 하여금 둘째 사망에서 피하여 안전함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피난처를 준비하셨다. 어떠한 권세도 용서를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영혼을 그분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1, 34; 히 6:18)

도피성으로 도망하는 자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가족과 직업을 모두 버려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도 없었다.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에 안전한 땅으로 피하는 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다른 모든 이해관계를 포기해야 하였다. 피로도 잊고 어려움도 돌아보지 않았다. 도피자는 그 성벽 안에 도달하기까지는 감히 한 순간도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부조와 선지자, 516~517)

하지만 도피성도 십자가에 대한 완전한 상징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고의적인 죄, 심지어 살인죄라 할지라도 주님에 의하여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잘 닦여져 있어야 하였다. 그 길은 사람의 생명이 촌각에 달려 있는 상황이므로, 도로 표지가 잘 되어 있어야 하였고, 늘 양호한 상태로 보수가 되어있어야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15).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피난처로 향하는 '길'도 그와 같이 분명하여 아무도 실수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사 35:8).”(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신 19:3)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도피성이라는 말이다. 예수 안에서는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든 사람의 죄가 용서된다. 비록 고의적인 죄였더라고 그 고의적으로 죄를 지은 사실 자체를 진정으로 뉘우치고 회개할 때 용서는 그의 것이 된다. 도피성이 이 사실은 잘 드러내지 못한다. 우리가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오직 한 가지 죄는 회개하지 않는 죄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회개하도록 감동하시는데 그 권고를 거절하는 것은 곧 회개를 거절하는 것이다. 아직도 은혜의 문이 닫히기 전에 온전한 회개로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자. 시간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교훈: 도피성은 우리의 피난처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나 고살자(故殺者)를 보호할 수 없었던 도피성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는 모든 죄인을 용서하신다.

금요일(12월 2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제48장 '가나안의 분배'(510~520)

“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신처를 찾을 때까지는 영원한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 도피자가 불필요한 배회나 부주의로 인하여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빼앗기는 것처럼 지체함과 무관심이 영혼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대적 사단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는 모든 사람들을 추적하고 있다. 사단의 위험에 민감하지 못하고 영원한 피난처에서 보호를 받으려고 열렬히 노력하지 않는 자들은 파괴자 사단의 제물이 될 것이다.

언제든지 도피성 밖으로 나가는 죄인은 복수자의 손에 빠졌다. 그러므로 백성은 그들의 안전을 위하여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을 따라야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죄인이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도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죄인은 믿음과 순종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한다.”(부조와 선지자, 51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여호와께서 과거에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우리가 과거를 잊어버릴 때 어떤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까? 한편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과거에만 얽매이는 것은 왜 위험합니까? 어떻게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 과거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도 그와같이 인도하실 것에 대한 보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서 현재를 올바르게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2. 오늘날 교회에서는 징계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습니까? 주님께 욕을 돌리는 제멋대로인 교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한편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정죄하지 않는 태도로 대할 수 있을까요?

* 오늘날 교회의 징계는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바로 이끌려는 노력도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징계가 사랑의 실현으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인도로 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 연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수하거나 고의적인 배도자들보다 더 나은 사람들은 아니다. 다 주님의 사유하시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중에 진정한 사랑으로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3. 이번 한 기 동안 공부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십시오. 배운 내용 중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무엇이며, 내 삶에 일어난 한 가지 분명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 민수기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삶의 진행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그 매 걸음마다 주께서 인도하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경우라도 주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요약: 이스라엘 자손들은 약속의 땅 변경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셨는지 요약적인 설명을 들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들어가기 전에 도피성을 지정해 주셨는데, 이는 우리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호를 독특한 방법으로 보여 주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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