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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1분)

기억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연구범위: 신 6:5, 마 5:43~48, 7:12, 22:39, 눅 10:25~37, 고전 13:4~7.

안식일 오후

바울이 성령의 열매인 품성의 특성들을 나열할 때 사랑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 덕성의 최고봉인데 이는 사랑이 하나님의 본성을 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근본 동기는 사랑이었다.

요한은 단순하고도 분명한 어조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고 말한다. 사랑은 그분의 품성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우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불행하게도 오늘날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무의미하게 남발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사랑스러운 날씨” “우리 강아지를 너무 사랑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인 참된 사랑(참조 고전 13장)과 비교될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와 우리의 삶의 방식과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랑의 성분은 한 덩어리이지 메뉴에서 우리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제외시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참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핵심본문: 고전 13:7~8

학습 목표

깨닫기: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느끼기: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한다.

행하기: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선물임

A. 고린도전서 13장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임을 분명하게 진술한다. 우리는 그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 사랑은 어떻게 우리 가슴에 채워지는가?(롬 5:5)

B.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에 대해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C. 사랑에 고통, 자아부정, 기쁨, 평화, 희생이 수반될 수 있는가?

II. 느끼기: 사랑은 구원의 기초임

A. 왜 우리는 소멸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가?

III. 행하기: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타냄

A. 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의심할 근거가 없는가?

B. 나는 너무 악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 치료제는 무엇인가?

C.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 어떤 손해와 손실을 보게 되는가?

요점: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것은 소멸되지 않는 사랑이다. 그것은 우리 삶에 평화, 신뢰, 자유를 가져다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타내실 때 그들의 삶은 측량할 수 없으리만치 축복과 풍요를 경험한다. 사랑스럽고 사랑을 베푸는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일요일(1월 3일) 사랑의 여러 측면들(신 6: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참조 신 6:5)

다른 서적들도 마찬가지지만, 성경은 번역본들마다 용어가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었다. 예를 들면 “작은 새”라고 번역한 것도 있고, “조그마한 새” 또는 “쪼끄만 새”로 번역한 곳도 있다. 이 모든 표현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공부할 때에 그 단어의 원어적 의미를 살피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신명기 6:5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하브타(ahabta)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느낌과 감정으로 나타나는 사랑이라기보다는 의지와 마음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을 가리킨다. 그것은 지고한 사랑으로서, 우리 마음에 어떤 느낌이 들든 간에 옳고 고상한 일을 행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다. 예수께서 사랑을 가장 큰 계명으로 언급하셨듯이, 그것은 가장 고상하고 순결하며 지극히 높은 형태의 자아희생이며, 각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가져야 할 사랑이다.

유대인들은 온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막 12:30에는 “힘을 다해”가 추가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임을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인간 존재의 네 가지 측면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의 전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1. 마태복음 7:12, 22:39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전체적인 사랑의 개념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답: 성경은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을 아끼며 돌보듯 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온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이 “둘째 되는 계명”에 언급된 사랑도 “첫째 되는 계명”의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뜻과 의도가 내포된 행동하는 사랑이다. 우리의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자신의 몸을 돌보듯 다른 사람을 보살피라는 의미이다.

사랑의 원칙의 표현

“십계명의 처음 네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큰 계명으로 요약된다. 나머지 여섯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다른 계명 가운데 포함된다. 이 두 계명이 다 사랑의 원칙의 표현이다. 둘째 계명을 범하면서 첫째 계명을 지킬 수 없으며, 첫째 부분을 범하면서 둘째 부분을 지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 마음의 보좌에 바른 자리를 차지하고 계실 때에 우리 이웃에게도 바른 자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때만 우리 이웃을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다.”(시대의 소망, 607)

<부가설명> 마가는 예수님이 하신 대답을 좀 더 자세히 적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맏12:30) 마태는 셋만 기록하였는데, 마가는 네 가지 사실을 기록하였다. 마음, 목숨, 뜻, 힘이 그것이다. 두뇌 과학을 하는 사람의 말을 빌리면 마음은 감성뇌의 작용인데, 곧 뇌의 중앙 부분의 기능이라고 한다. 목숨은 호흡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것은 간뇌의 기능이고, 힘은 소뇌의 기능이며 뜻은 뇌 전두엽의 기능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뇌의 모든 기능을 다 사용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생명 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생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사랑일 수밖에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이다. 이들의 성질을 성경은 이렇게 계시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표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사랑이 없는 자는 아직도 사망에 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은 그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예수 생명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교훈: 사랑에는 여러 측면이 있는데,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에 다 포함되어 있다.

월요일(1월 4일) “사랑은 … 하며”(고전 13:4~8)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8)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정의하는 것이 우선적인 단계일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성경에 표현된 사랑의 원칙들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1. 고린도전서 13:4~8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을 통해 사랑의 여러 가지 의미들을 살펴보십시오. 이러한 원칙들을 우리 가정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고전13:4-8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답: 이와 같은 사랑의 긍정적인 속성들이 우리의 가정들에서 실천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상의 작은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참된 사랑의 속성들을 계속 실천한다면 우리의 가정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 보라. 가족들이 서로서로 긍정적인 지지를 해주는 그런 환경에서 사는 축복을 생각해 보라. 아마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신이 먼저 이러한 원칙들을 적용한다면 그 영향력이 얼마나 힘 있게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는지 보게 될 것이다. 아무도 사랑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못한다. 사랑은 모든 창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신학이나 생활방식이나 신조나 믿음 등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께서 세상에 보여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을 그분의 은혜를 힘입어 나타낼 수 있다면 아무도 감히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매일 읽으라.

“주께서는 고린도전서 13장으로 당신의 백성의 주의를 환기시키라고 나에게 지시하셨다. 이 장을 매일 읽고 여기에서 위로와 힘을 얻으라. 하나님께서 성화된 사랑, 하늘에서 난 사랑에 부여하시는 가치가 어떠함을 배우고, 그것이 가르치는 바 교훈들을 그대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두라.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은 하늘에서 나는 것임을 배우고, 그것이 없는 다른 모든 자질들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배우라.”(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91)

교훈: 우리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 때에 거기에는 강력한 영향력이 나타난다. 아무도 무아적인 사랑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없다.

화요일(1월 5일) “사랑은 … 아니하며”(고전 13:4~8)

다시 고린도전서 13:4~8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다른 관점에서 이 구절들을 살펴보자. 사랑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보라. 비록 이러한 진술들이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지만 사실은 사랑의 긍정적인 속성의 다른 측면인 것이다.

1. 고린도전서 13:4~8에 나타난 ‘부정적인’ 특성들을 살펴보고, 거기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 적어보십시오. 또한 그렇게 하면서 나는 과연 사랑의 이러한 면들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부족한 부분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요?

투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진심으로 인정해 주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겸비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겸손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사랑은 예모 있게 행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사랑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온유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사랑은 선한 것을 생각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의를 기뻐하며

사랑장(고전 13장)에 세세히 묘사된 사랑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우리는 사랑의 화신(化身)이신 하늘 아버지의 품성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세상에 널리 통용되고 있는 사랑이라는 말이 그분의 사랑을 바르게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사랑은 원칙이며 능력이다.

“사랑은 충동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원칙이며, 영원한 능력이다. 우리의 영혼은 결코 다함이 없는 샘물 같은 사랑 곧 그리스도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순결한 사랑의 시냇물을 먹고 자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40)

<부가설명> 성경이 계시하는 사랑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일까? 고전13장은 사랑을 그리스도인 윤리적인 면에서 자세히 설명했다고 생각된다. 사랑은 윤리적인 사실 이상이라고 성경은 계시한다. 월요일 교과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생명이다. 육체의 생명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은 그 생명의 성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생명의 성질인 사랑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이 교과의 저자처럼 사랑을 실천하기 전에 사랑의 정의를 알아야 실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요일4:9은 이 사랑의 구체적인 의미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사랑은 살리려는 것이다. 즉 생명을 주는 성질이다.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18:31,32)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려는 이 간절한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하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성경 사랑의 본질이다. 우리도 형제를 살려주려는 정신으로 살면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말과 감정과 행동으로 형제들을 실망시키고 정서적으로 형제를 죽이는 것을 살리는 것보다 더 자주 하지 않는지? 사랑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갚이 살펴볼 것이다.

교훈: 고린도전서 13장에 자세히 묘사된 사랑의 속성들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품성의 면면들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도 그분의 모습을 닮아가자.

수요일(1월 6일) 사랑의 시금석(마 5:43~48)

1. 마태복음 5:43~48을 읽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자신의 말로 적어 보십시오. 예수께서 사랑에 관해 하신 말씀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마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답: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에는 차별이 없고 한계도 없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참된 사랑의 은사를 소유한 자이다.

만일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면, 원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만 원수라고 정의한다면 이 본문의 말씀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에 나의 목숨을 위협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수란 반대자, 적수, 경쟁자, 도전자, 다투는 자 등으로 정의될 수 있다. 원수는 나를 미워하거나 나를 핍박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배우자나 가족들 중에도 원수가 있을 수 있다. 가족이 나를 사랑하기는커녕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보복하려 하거나 옹졸하게 대하기가 쉽다.

때때로 직장에서 다툼을 경험하거나, 수년 동안 함께 일해오던 사람이 나를 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사람이 원수로 변할 수 있고, 심지어 교회 안의 어떤 사람도 원수가 될 수 있다.

예수께서 언급하신 원수는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보복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모든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2. 잠언 15:1, 25:21, 베드로전서 3:9을 읽으십시오. 이 본문들은 사랑에 관한 중요한 원칙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잠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25: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벧전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답: 나를 해하는 자에게 보복하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원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본

“우리 구주께서 하늘의 집을 떠나신 것은 원수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가져다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분께서는 비록 요람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중상과 핍박을 많이 받으셨지만 그 때마다 용서와 사랑만을 나타내셨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사 50:6). … 당신을 죽인 자들을 위한 기도와 죽어 가는 강도에게 전한 소망의 기별은 갈바리의 십자가를 통해 각 시대로 전달되고 있다.”(산상보훈, 71)

<부가설명> 위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 생명을 주려는 것임을 잘 표현하였다. 베드로의 권면도 생명의 권면이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라는 말씀은, 복이 바로 영생이라는(시133:3) 말씀을 알면 아주 쉽게 깨달아지는 말씀이다. 그들을 욕하고 복수하려고 하지 말고 영생을 얻는 사람이 되도록 도우라는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복, 곧 영생의 생명을 가졌다는 증거로 나타나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같은 말씀이다. 비록 원수라도 그를 영생의 생명을 얻도록 마음으로부터 기도하고 그렇게 되도록 도운다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우리를 살려주는 것을 나타났다. 우리는 이런 살려주려는 정신으로 살고 있는가? 이 정신이 바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되는 정신이다.

교훈: 참된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뿐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최종적인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목요일(1월 7일) 행동하는 사랑(눅 10:25~37)

어느 신학대학 교수가 좀 특별한 방식으로 설교법 강의를 이끌어 갔다. 그는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게 하였다. 매시간 강의실을 옮겨 다니면서 그들로 하여금 사랑과 동정에 대해 설교하게 하였다. 강의와 강의 사이에는 아주 짧은 시간만이 주어졌기 때문에 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뛰어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학생 설교자들은 강의실로 가는 복도에서 걸인과 마주쳐야 했는데, 이 교수가 일부러 배치해 놓은 사람이었다.

그 결과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학생 설교자들 중에 가던 길을 멈추고 그 걸인을 도와 준 사람은 극히 적었는데, 특히 시간에 쫓겨 달려가던 학생들은 더욱 그러하였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설교하기 위해 달려가는 동안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비유의 핵심인 걸인을 돕지 않고 지나치고 말았던 것이다!

1. 어제 교과에서 우리는 누가 우리의 원수인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에 대해 공부해 봅시다. 누가복음 10:25~37에서 예수께서는 누가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비유는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대답으로 주어졌습니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왜 예수께서는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셨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눅10:25-37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답: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6~37). 자비를 베푼 사람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다.

다음의 글을 숙고해 보라. “내가 굶주릴 때에 너희는 박애클럽을 만들어 토론했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너희는 범죄율의 증가에 대해 불평했으며, 내가 헐벗었을 때에 너희는 나의 모습을 보며 도덕성을 논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는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으며, 내가 거처를 잃었을 때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의 피난처에 대해 설교했더구나. 너희는 너무 거룩하고 하나님과 너무 가까웠으나, 나는 여전히 굶주리고 외롭고 춥고 고통스러웠다. 너희와는 상관없는 일이냐?”

“누가 내 이웃이니이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참 종교는 제도나 신조나 의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 최대의 선을 베풀고 진정한 선으로 사랑하는 행위를 이루는데 있다는 것을 보이셨다. …

이렇게 하여 ‘누가 내 이웃이니이까’라는 질문은 영원한 답을 얻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이웃이 다만 우리가 속하고 있는 교회나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보이셨다. 인종이나 피부의 색깔이나 계급의 구별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도움이 요구되는 바로 그 사람이다. 대적에게 상처받아 죽게 된 영혼은 누구나 우리의 이웃이다. 하나님의 소유인 모든 사람은 다 우리의 이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눅 10:25~37)

<부가설명> 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하여 많은 설교를 듣고 글도 읽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이 다 누가 나의 이웃이냐고 질문한 율법사의 말로 이웃을 정의한다. 즉 사마리아인의 이웃이 강도만난 사람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질문자의 의도와 다른 대답을 하셨다. 누가 내 이웃이냐는 질문에 네가 누구의 이웃이냐고 대답하신 것이다. 이웃은 나의 주위의 사람들이 아니고 내가 나의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웃의 개념은 나 밖의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강도만난 사람처럼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든지 아니든지 나의 주위의 사람들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서 그들을 예수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되도록 돌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거기에는 치유와 돌봄이 있다. 우리는 이웃인가, 이웃을 기다리는 자인가? 위에 기록한 참고의 말씀은 참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내용이 아닌가. 정말 우리의 행태가 그와 같다고 생각된다.

교훈: 사랑은 이론이나 신조가 아니고 몸소 실천하는 행동이어야 한다. 행동이 없이 말로만 하는 사랑은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과일나무와 같다.

금요일(1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과학자인 아서 제이종크(Arthur Zajonc)는 상자 안을 빛으로 가득 채우고, 그 내부 표면은 그 빛이 전혀 반사되지 않도록 장치하였다. 상자 내부에는 오직 빛만이 있었다. 만일 상자 내부에 있는 빛을 들여다본다면 무엇이 보일까? 오직 빛 자체만 존재하는 그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

완전한 흑암, 즉 텅 빈 공간에 어둠만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어떤 물체에 반사되지 않는 한 그 빛은 보이지 않는다.

제이종크는 막대기를 상자 안의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옆면으로부터 들어간 그 막대기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가는 빛줄기가 그 막대기를 비추는 듯이 보였을 뿐, 상자 내부는 온통 빛으로 가득 차 있었음에도 다른 곳은 전혀 빛나지 않았다. 오직 막대기에서 반사되는 빛만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 빛은 어둠이었다.

지구로 쏟아지는 태양빛은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푸른색, 회색, 붉은색 등 여러 색깔로 나타난다. 달에서는 아무리 많은 태양빛이 비쳐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제이종크의 상자처럼 극히 제한된 빛만이 반사될 뿐이다. 왜냐하면 달에는 태양빛을 반사할 만한 공기나 습기가 없고 가스나 증기가 없기 때문에 화려한 빛깔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요점은 무엇인가? 반사하는 물체가 없다면 빛은 완전한 어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빛의 속성에 관한 위의 글을 읽고 무엇을 느꼈습니까? 우리는 이 글에서 어떤 영적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까?(참조 요일 1:5, 2:9~11, 4:8, 눅 11:35)

* 물리적 빛의 속성을 통하여 빛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은 창조를 통하여 그의 사랑을 드러내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것이다. 독처하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셔서 "우리"가 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나타나게 하는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환경임을 감사하자.

2. 원수를 사랑하는 것에 관해 좀 더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옵니까? 어떻게 하면 원수에 대해 저주하는 대신 기도하는 태도를 배양할 수 있을까요?

*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부가설명에서 말하였다. 그를 예수의 생명으로 살 수 있게 하려는 정신과 행동으로 그를 대하면 그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전도이다. 전도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를 예수 안에서 살게 해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성경이 계시한 사랑의 본질을 알게 된 것 같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나도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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