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조회 수 1890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월 16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8분)

기억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연구범위: 시 139편, 눅 15:4~24, 요 15:10~11, 히 11:16.

안식일 오후

기쁨(희락)과 행복은 꼭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행복은 상황이 좋을 때 그 결과로 오지만, 기쁨은 상황과 관계없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연결된 상태에서 이르러 온다.

시편 4:7에는 기쁨과 행복이 대조를 이루어 나타난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더 큰 기쁨”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신뢰할 때 이르러 오지만 행복은 풍성한 추수와 같은 유쾌한 상황의 결과로 이르러 온다. 내적인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한 계속되지만 행복은 곡식의 수확량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내적인 기쁨은 실망을 이겨내지만 행복은 실망감에 압도되어 버린다. 내적인 기쁨은 영속적이지만 행복은 일시적이다.

기쁨은 고통이나 쾌락보다 더 깊이까지 파고드는 삶의 즐거움이다. 이러한 기쁨은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임하신다는 자각에서 오며 상황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기로 자신을 허락할 때 맛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활동하신다는 확신에서 생겨난다.

핵심본문: 요 16:13

학습 목표

깨닫기: 기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숙고한다.

느끼기: 모든 상황에서 감사와 기쁨을 표현한다.

행하기: 개인적 또는 사회적 관계에서 더 많이 긍정적인 감화를 끼친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데서 오는 기쁨

A. 예수님과의 교제는 모든 난관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무한한 능력을 제공한다. 이 능력을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B. 어떻게 하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C. 하나님을 떠나 문제에만 집착할 때 왜 상황이 더 악화되는가?

D.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또는 어떻게 그분께서 우리의 삶에 기쁨의 은사를 채우시도록 허락할 수 있는가?

II. 느끼기: 찬양의 자세를 실천함

A. 감사와 찬양이 어떻게 우리 삶에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

III. 행하기: 기쁨의 삶을 살아감

A.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

B. 하나님께 사랑 받고 있음을 알 때 어떻게 기쁨이 증대되는가?

C.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어떻게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가?

D. 찬양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정신적 및 육체적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 교과반에서 각자 3가지씩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해 보자.

요점: 기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온다. 순종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법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 구원의 즐거움과 감사를 표현할 때 기쁨이 솟아난다.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관계에서 기쁨을 나타낼 때 우리의 믿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그들을 격려하게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일요일(1월 10일) 기뻐하라는 명령(빌 4:4)

많은 신자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로 인해 쓴 감정을 느끼고 화를 낸다. 그 결과로 그들은 영적 생애에 기복(起伏)을 경험한다. 그들에게는 기뻐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성경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 4:4)고 명령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는 항상 기뻐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부정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 안에서는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그분은 선하시고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인 안정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헌신과 직접 관계가 있다. 그분을 아는 것은 환경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안정감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시의 형식과 운율을 가진 노래의 형태로 기록된 시편들을 암송하고 노래함으로써 하나님에 관한 더 심오한 지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분을 알게 되면 다른 모든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인다.

1. 시편 139편, 로마서 8:28, 베드로전서 1:8~9에는 우리가 기뻐해야 할 어떤 이유가 제시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 약속에서 어떻게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시139:1-2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13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 저희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22 내가 저희를 심히 미워하니 저희는 나의 원수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벧전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답: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는 많다. 우리는 주님의 기이한 창조 섭리와 보호의 손길로 인해 기뻐할 수 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약속과 현세에서의 축복,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기뻐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양자로 삼으시며, 예수 안에서 기업을 약속하신 사실(엡 1:1~11)은 어떤가? 예수께서 오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하며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늘 처소(요 14:2)를 보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때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이다(빌 4:19).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분을 섬기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그 특권 속에는 잃어버린 바 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동료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분께 더 많은 사랑과 봉사를 나타내도록 격려하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히 4:15~16)도 기쁨의 요소이다. 끝으로 죽음이 우리를 영원히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도 기뻐할 이유이다.(고전 15:54)

환경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기쁨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이 기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곁에 계셨으며, 그분의 임재의 빛은 하늘 궁정의 영광으로 어둠을 밝혔다. 로마에서, 바울은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차꼬를 차고 있다는 것도 잊고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그리스도께서 산상에서 하신 바로 그 말씀이, 핍박을 받고 있는 빌립보 교회에 보낸 바울의 기별 가운데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는 말로 울려 퍼지고 있다.”(산상보훈, 35)

<부가설명> 희락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이다. 이것은 외부 환경이나 자극에 영향을 받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 바로 그런 기쁨으로 기뻐하셨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슬픔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슬퍼하시지 않으셨다. 죽은 인생들을 슬퍼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 그렇게 사시는 삶에는 기쁨이 있었다.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어 살게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크겠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기쁨이 넘쳤으며 이 기쁨은 환경이나 자극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예수님의 이 기쁨이 그의 성도들에게도 충만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예수님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하려고 하셨다.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예수님의 이런 기쁨으로 기뻐하는 삶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여야 한다. 교과 저자가 말한 여러 가지 다른 기뻐할 조건들도 물론 감사한 것이다.

교훈: 기쁨은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진정 기뻐해야 할 많은 이유를 마음속에 간직하자.

월요일(1월 11일) 그리스도의 기쁨(히 12:2~3)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넉넉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쁨으로 가득 찬 생애를 사셨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그분이 가지신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분은 어떤 원칙에 따라 생애하셨는가?

1. 예수께서 말씀하신 유명한 다음의 세 가지 비유에는 기쁨이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이 세 이야기에 나오는 공통적인 요소는 무엇입니까?

눅15:4-7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15:8-10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눅15:11-24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에는 죄인을 찾고 찾으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열망이 그려져 있다. 그 죄인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잘 묘사되어 있다. 잃었던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은 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진다.

잃은 양의 비유(눅 15:4~7) 잃은바 되었으나 돌아올 길을 모르는 죄인들을 찾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잃은 은전의 비유(눅 15:8~10) 잃은바 되었으나 잃은바 된 것도 모르는 죄인들을 찾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탕자의 비유(눅 15:11~24) 잃은바 된 것도 알고 돌아올 줄도 아는 죄인들에 대한 비유이다.

이 세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는다. 기쁘게 잔치를 벌인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잃은 자를 찾아 나서는 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기쁨이다. 예수께서는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충만하셨는데, 이는 그분이 많은 사람을 구원하실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2. 히브리서 12:2~3에 기록된 말씀의 깊은 뜻을 음미해 보십시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니라(히 12:2). 이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보십시오. 그분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무엇이었습니까?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께 왜 그토록 중요한 일입니까?

히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답: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뜨거운 열망은 그분으로 하여금 그 앞에 있는 십자가의 모욕과 수치도 참으시게 하였다. 잃은 자식을 찾고자 하는 애절한 부모의 마음으로 그분께서는 모든 부끄러움을 견디셨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이 지구는 하나님이 주관 하시는 광대한 우주에 비해 지극히 작은 한 개의 원자(原子)에 불과하다. … 하늘 조정에서 사랑받는 사령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잃어버린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가 아버지와 함께 가지고 계시던 그 영광을 버리시고 그 높은 자리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다. …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잃어버린 양을 도로 찾는 기쁨을 얻으려 하심이었다.”(실물교훈, 190)

<부가설명> 예수님의 기쁨은 인간의 일반적인 정서가 원하는 안정과 평안과 형통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었다. 그분은 극심한 고통이 연속되는 상황을 아셨다. 그러나 그런 일로 하여 그분이 창조하였으나 잃어버린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을 다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는 사실이 기쁨의 원천이었다. 즉 죽은 자를 살리는 기쁨이었으며, 다시 산 자들이 그분이 제공하는 생명으로 영생하면서 함께 다함없는 사랑의 친교를 나누게 될 것을 바라보시는 데서 우러나는 기쁨이었다. 우리도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사시는 동안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셨으나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을 통해 지극히 순결한 기쁨을 누리셨다.

화요일(1월 12일) 순종의 기쁨(요 15:11)

1. 요한복음 15:10~11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는 기쁨을 무엇과 연결시키셨습니까? 실제적인 의미에서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즉 우리를 이와 같은 기쁨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15:10,11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답: 예수께서는 우리가 계명에 순종할 때 기쁨이 충만할 것을 아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0~11)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는 것은 이미 죄책감에 눌린 양심을 더 예민하게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를 죄책감에서 자유롭게 해 준다. 하늘에 전쟁을 가져오고 이 지구상에 죄와 죽음을 가져온 것은 불순종이었음을 기억하라.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과 시련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결과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기쁨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하였다.(느8:10)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의 성경구절이 잘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힘이다. 순종하는 것이 힘 드는 것이 아니라 힘을 더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 삶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이 되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기도하자.

2. 시편 19:8, 예레미야 15:16, 마태복음 7:21~27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은 순종과 기쁨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습니까?

시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렘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마7:21-2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답: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정직하게 순종하는 삶은 안정된 삶이며 기쁨의 삶이다. 그 기쁨은 주변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지만, 행함을 구원 얻음의 의미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행함은 우리의 구원의 실체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을 온 우주 앞에 드러내 준다. 어떤 사람이 단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한다고 하여 그를 율법주의자로 부른다면 우리는 이사야가 경고한 그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 5:20)

계명에 순종할 때 기쁨이 주어짐

“우리는 십계명을 사랑의 측면에서 보고 금지 조항이라는 측면에서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십계명에서 ‘하지 말라’하는 것은 그것을 순종하는 자에게 행복을 보장하는 확실한 보증인 것이다. 우리가 십계명을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일 때 그것이 우리 속에 역사하사 품성을 순결케 하고 그러한 품성은 무궁토록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십계명은 보호벽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본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85)

<부가설명> 순종과 구원에 대한 것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끊임없는 논쟁을 일으킨 내용인지 모르겠다. 교인들이 순종의 주체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순종이란 자기 속에서 나온 사상을 자기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명할 수 있는 분이 순종해야할 위치에 있는 자에게, 순종을 명할 수 있는 분이해야 할 일을 하도록 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만일 순종해야 할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해야 할 그 일을 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은 내가 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나의 행함이 아니고 명령하신 분의 행함이 되는 것이다. 그 명령이 없으면 나의 행함도 없다. 이것은 우리 몸의 지체와 뇌와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지체들이 움직이는 것은 뇌의 지시로 된다. 지체들이 움직인 것을 지체 자신의 뜻으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은 머리되신 그분의 말씀을 지체 된 우리가 당연히 하는 것이며, 그렇게 한 것을 내가 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주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분의 일을 한 것이라고 한다.(요14:10, 갈2:20, 빌2:13 등 참고) 그러나 그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의 행함이 된다. 불순종은 자기의 행함이라는 말이다.

교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죄책감과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우리 인간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기쁨을 회복하는 길이다.

수요일(1월 13일) 힘든 때에 누리는 기쁨(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만일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분명히 그가 나쁜 짓을 저질렀거나 믿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을 잔인하고 냉혹한 분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서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 하셨다. 사자굴 속의 다니엘 이야기를 누구나 좋아하지만 사실은 사자굴에 던져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맹수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겼다. 풀무불 속에서 살아남은 세 명의 히브리 청년의 이야기도 있지만 화형주에 달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화형을 당했다.

1. 갈라디아서 6:9, 야고보서 1:2~4, 베드로전서 1:6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고통의 시기에 도움이 되는 어떤 희망과 약속을 발견하게 됩니까?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답: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낸다. 인내는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성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 만나는 시련들이 우리를 단련하여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할 것을 믿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기쁨을 갖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중심적이라는데 그 원인이 있음을 생각해 보라. 물론 현실적으로 문제에 봉착한다 할지라도 오직 그 문제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생각이 사로잡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는 기쁨의 근거를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다(참조 마 10:30)고 하지 않으셨는가? 이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약속을 생각해 보라. 만약 우리가 예수님 안에 안전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시련의 때에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봉사할 것이며, 그러한 단순한 의식적 행동으로 인해 자기 연민은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 42:10)

시련을 통과함으로 기쁨을 누림

“주께서는 우리가 세속적인 것과 이기심과 조급함과 비 그리스도적 품성에서 깨끗함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신다. 그 깊은 환난의 물결이 우리를 덮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더러운 죄악에서 깨끗이 씻음을 받고자 하는 깊은 갈망을 갖도록 하시며 그 시험을 통하여 더욱 순결하고 더욱 거룩하고 더욱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실물교훈, 174)

<부가설명> 다윗은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시4:1)라고 고백하였다. 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은 재앙이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통하여 정금 같이 나올 수 있다.(욥23:10) 육신을 가진 자들로서 당장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 것이지만 인내로 주님의 섭리의 손길을 의지한다면 고난 중에도 기쁨이 마음을 채울 것이다. 이런 경험이 우리의 경험이 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교훈: 시련의 때에 기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그리스도께 집중할 때 기쁨을 되찾게 된다.

목요일(1월 14일) 지속적인 기쁨(히 11:24~25)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4~25)

1. 위의 구절에서 그리스도인 삶의 어떤 원칙들을 발견하게 됩니까?(참조 눅 9:23, 행 14:22. 빌 1:29). 우리는 이 구절들을 기쁨에 대한 약속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습니까?(참조 히 11:16, 벧전 1:6~8)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히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벧전1:6-8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답: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 뒤에는 큰 기쁨이 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모세가 애굽의 보좌를 거절하기로 결심한 것은 정치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잘못된 결정이었다. 그는 애굽의 다음 왕이 되기 위해 애굽에 머물기로 결정할 수도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란 어렵지 않았을 것인데,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그릇된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2. 최근에 '그럴듯한' 핑계거리를 가지고 그릇된 결정을 내렸던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일로 인해 어떤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까?

답: 각 사람이 대답할 문제이다.

교회가 그럴듯한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진리와 교단의 길과 다른 결정을 한 것은 없는지도 생각해볼 것이다.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알 때에 이르러 오지만, 즉각적인 결과는 종종 곤란하고 고통스런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큰 실망을 겪을 수 있다. 우리가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서 재물과 명예와 영향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핍박을 당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따라 심지어 순교를 당하기도 한다.

영원한 기쁨과 일시적 복락

“그리스도께서는 각 사람이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기를 요구하신다. 정직하게 계산해 보라. 저울 한쪽에는 영원한 보배가 되시고, 생명과, 진리와, 천국을 의미하는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기쁨이 되시는 구속 받은 영혼들을 놓고 다른 편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복락을 놓아라. 또 한편 저울에는 잃어버린바 된 그대 자신의 영혼과 그대의 조력으로 구원함을 받을 수 있었던 자들의 영혼들을 놓고, 다른 편 저울에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측정될 수 있는 그대와 그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을 올려놓았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대비하여 달아 보아라.”(실물교훈, 374)

<부가설명> 세상의 것들은 주로 감각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이 많다. 부와 명예와 지위 등. 그러나 그것이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나 생명이 경각간에 달렸을 때 그런 것들은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에 집중된다. 하나님의 약속은 생명의 약속이다. 그것은 이 세상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세상 것과 충돌되기 때문에 세상이 그것을 포기하게 하려고 모든 시련을 더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날이 이를 때까지 이런 것들을 그의 백성에게서 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는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는 생명과 생명 아닌 것을 바꾸는 미련한 생활을 결코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살았다는 기쁨과 바꿀 것이 무엇이겠는가.

교훈: 이 세상이 주는 행복은 피상적이고 일시적이지만,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영원히 지속될 뿐 아니라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다.

금요일(1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의 종교가 영혼의 낙담과 슬픔의 의복을 벗겨 주고 기쁨과 환희의 예복으로 입혀준다는 사실을 세상에 납득시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다. 그리스도를 죄를 용서하시는 분으로 받아들인 모든 자들은 그분의 빛의 예복으로 옷 입었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죄를 제하시고 당신의 의를 그들에게 부여하신다. 그들의 기쁨은 충만해진다.

그리스도인들보다 기쁨의 노래를 부를 이유를 더 가진 자들이 누구이겠는가? 그들은 왕족의 일원 곧 하늘 왕의 자녀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복음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닌가?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꺼이 그리고 충만히 받아들일 때 하늘의 광명이 우리 삶에 깃들게 된다.”(엘렌 G. 화잇, 의료 전도자와 건강 교육자로의 부르심, 2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성경에 잘 알려진 몇몇 위인들의 생애를 돌아보십시오. 그들은 기쁨을 얼마나 경험하였을까요? 노아와 아브라함과 요셉은 어떠했을까요? 다니엘과 다윗과 예레미야는 어떠했을까요? 바울과 침례자 요한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 그들은 세상적으로는 결코 항상 행복한 상태에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시련 중에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결코 잃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욥6:10)

2. 행복해질 수 있는 몇 가지 세상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런 방법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습니까? 그러한 행복은 모두 나쁜 것입니까, 아니면 그러한 행복도 나름대로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입니까?

* 부와 명예와 지위를 얻는 것은 행복을 줄 수 있다. 그것이 다 나쁜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회를 얻는다면 아주 좋은 것이다.

3.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과 기쁨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즉 병들어 고통당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며, 많은 영혼들이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행복을 가져야 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멸망해 가는 것을 알면서도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것은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 이기적일 수도 있고, 그것으로 어려운 사람을 좀 더 잘 도울 수 있는 수단으로 가지고 있다면 좋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을 오직 자기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멸망의 도구가 된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선물이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제 그 기쁨을 일상생활에서 실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3 06 엘리야와 엘리사의 외투 소하 2011.04.26 19057
342 05 하늘타리방송 - 은혜로 입는 제사장 옷 소하 2011.04.24 18337
341 2011 Q2 Lesson 5: The Priestly Garments of Grace file 소하 2011.04.24 65066
340 제5과 제사장이 입는 은혜의 옷(질문, 대답, 부가설명)4/30/11 김명호 2011.04.21 19444
339 05 제사장이 입는 은혜의 옷 소하 2011.04.21 18873
338 하늘타리 방송 제 2기 4과 채색옷 usjoy 2011.04.17 18973
337 2011 Q2 Lesson 4: The Coat of Different Colors file usjoy 2011.04.17 16576
336 제4과 채색옷(질문, 대답, 부가설명)04/23/11 김명호 2011.04.14 18688
335 04 채색옷 소하 2011.04.11 20855
334 하늘타리 방송 제 2기 3과 무죄의 옷 usjoy 2011.04.09 19574
333 2011 Q2 Lesson 3: A Garment of Innocence file usjoy 2011.04.09 18371
332 제3과 무죄의 옷(질문, 대답, 부가설명)04/16/11 김명호 2011.04.07 18364
331 03 무죄의 옷 소하 2011.04.07 20489
330 02 존귀함에서 떨어짐 소하 2011.04.05 19719
329 하늘타리 방송 제 2기 2과 존귀함에서 떨어짐 usjoy 2011.04.03 19213
328 2011 Q2 Lesson 2: From Exalted to Cast Down file usjoy 2011.04.03 18402
327 제2과 존귀함에서 떨어짐(질문, 대답, 부가설명) 4/9/11 김명호 2011.03.31 17411
326 하늘타리 방송 제 2기 1과 -하늘의 배틀 usjoy 2011.03.30 19850
325 제1과 하늘의 베틀(질문, 대답, 부가설명)04/02/11 김명호 2011.03.24 19097
324 01 입혀주시는 의 소하 2011.03.24 19938
Board Pagination Prev 1 ...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 58 Next
/ 58
Copyright© 2011 www.3amsda.org All Rights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