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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25분)

 

기억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연구범위: 창 3:5, 시 51:4, 사 1:2, 요 1:12, 히 9:26, 28, 요일 3:1-10.

 

학습 포인트: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어떤 면에서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해야 하는가? 요한은 죄를 어떻게 정의했는가? 예수께서는 초림 시에 죄에 대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라는 요한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안식일 오후

새로이 회심한 어떤 사람이 설교자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해도 주님께 충실할 수 없나 봐요. 나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자 설교자가 대답했다. “여기 이 강아지를 보세요. 저의 강아지입니다. 집에서 훈련을 시켰는데 집안을 어지럽히지 않고 순종을 잘 합니다. 정말 저에게 기쁨을 주지요. 저기 주방에는 저의 아들이 있는데 아직 어려요. 집안을 어질러 놓고, 음식도 사방에 흩어놓고 옷을 버리기 일쑤입니다.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 놓지요. 그렇지만 누가 저의 유산을 물려받을까요? 저의 강아지가 아니라 저의 상속자인 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셨으므로 당신은 그분의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고 그분의 상속자들이 된 것은, 우리의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이번 주에 이 약속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핵심본문: 요일 3:1~10

 

학습 목표

깨닫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분과 같이 되라는 요청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행하기: 죄의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한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하늘 아버지와 같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음

A. 예수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된다(요일 3:2)는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사실을 통해 이 개념을 얼마나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가?

B. 사단도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고,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욕망은 우리가 그분을 뵐 때에 그분과 같이 되리라는 소망과 어떻게 다른가?

 

II. 느끼기: 하나님의 사랑의 품속에 안김

A. '아낌없는 사랑'이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통해 무엇을 느끼는가?

B.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약속된 하늘의 유업을 기쁘게 인내하면서 기다릴 수 있는가?

 

III. 행하기: 유혹을 물리치고 주 안에서 기뻐함

A. 십자가는 우리의 불완전함에 대한 어떤 해결책이 되는가?

B. 우리의 삶에서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왜 어떤 대가라도 치를 각오를 가져야 하는가?

 

요점: 하나님께서는 아낌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셔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죄에 대한 승리를 보장해 주셨다.

 

일요일(8월 9일) 하나님의 자녀들(요일 3:1)

 

1. 요한일서 3:1에는 어떤 놀라운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약속에는 무엇이 수반됩니까?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줍니까?(참조 요 1:12, 요일 2:29, 3:9)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일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답: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 3:1)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 곧 하나님의 자녀답게 생활해야 하는 책임이 수반된다.

요한일서 3:1은 영적인 탄생을 강조하고, 요한복음 1:12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믿음에 대해 강조한다. 요한일서 3:1은 신자들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일을 시작하셨다. 새롭게 태어나는 일은 그분의 사역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거듭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질 수도 없다. 한편 우리가 그분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그분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이처럼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묘사되어 있는데, 좋으신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약속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라. 우주에는 관측 가능한 은하계가 4천억 개나 되며, 각각의 은하계에는 수십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한다. 이 별들 가운데서 행성이 몇 개나 되며, 거기에 지적인 존재들이 살고 있는 행성은 몇 개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우리가 사는 행성을 비교해 볼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며,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개념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놀라운 의미를 부여해 주는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우리는 미래에 대해 놀라운 소망과 확신과 담력을 가져야 한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다. 새국제역(NIV)성경은 요한일서 3:1을 그 의미를 잘 살려서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번역하였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 부으셨도다.”

 

인류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사랑

“사단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인간을 회개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멸망 받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이 깨닫지 못하게 하리라고 굳게 결심하였다. 아, 우리가 어떻게 깊고도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라고 외치는 것 외에 우리가 달리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길이 없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84)

 

<부가설명> 요한은 즐겨 자녀라는 단어를 썼다. 자녀는 헬라어로 “테크논”이다. 이것은 주로 혈연관계로 태어난 아들딸에 대하여 사용한다. 그런데 법적 권리가 있는 아들, 곧 상속권이 있는 아들을 가리킬 때는 휘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 바울은 이 휘오스를 양자와 관련하여 사용하였다. 양자라고 번역한 말은 “휘오데시아”이다. 아들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참으로 하나님의 테크논이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휘오스가 되었다. 테크논과 휘오스의 차이를 간단히 말하면 (물론 이것을 절대적인 구분이 아니다.)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테크논이다. 그가 그 아버지 호적에 올라가면 또한 휘오스의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집에 양자로 가면 그를 낳은 아버지에게 테크논이지만 휘오스는 아니다. 또한 양자로 간 양 아버지에게는 휘오스이지만 테크논이 아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테크논이면서 또한 휘오스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신분인가! 이 신분을 아름답게 보존하는 것이 성도의 책임이며 특권이다.

 

교훈: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 기쁜 소식이다. 그 놀라운 약속을 굳게 붙들자.

월요일(8월 10일) 결과와 의무(요일 3:2~3)

 

요한일서 3:1은 이번 주에 공부할 나머지 구절들에 대한 서론에 해당된다. 이 구절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 따른 결과와 그에 수반되는 의무를 다루고 있다. 신자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음으로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순결한 삶을 살고 있다(3~10절). 그러나 요한은 우리가 그분을 뵐 것이며, 그분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현재의 신분을 알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완전히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미래는 보다 아름다울 것임을 안다. 우리가 주님을 뵈올 것이라는 사실과 그분처럼 변화된다는 사실이 우리 마음속을 기쁨과 확신과 경이로움으로 채워준다.

 

1. 하나님과 같이 되려했던 사단과 하와의 소원과(창 3:5, 사 14:14, 겔 28:2) 요한일서 3:2에서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될 것이라는 약속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14: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겔28: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요일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답: 사단은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갖기 원했으며, 그분과 같이 피조물들의 경배 받기를 원했으나, 그분과 같은 품성 갖기를 원치는 않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그분을 닮은 사랑의 품성을 소유하는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의 경배를 받기 원했으나, 그분의 품성을 닮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갖고자 했던 그의 욕망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관계를 파괴하고 말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소원할지라도 그분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욕망은 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무아적으로 봉사하는 일에, 생각의 순결과 행동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일에 그분과 같이 되기를 소망할 것이다. 그들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인정하고 그 경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랑이지 권세가 아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이셨듯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하나님을 닮은 품성을 계발함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정신 기능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게 하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존재의 창조주시요, 우리의 구속주이시기도 하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품성과 아주 닮은 품성을 계발할 것이다. 하나님의 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 외에는 거룩한 하늘에 하나님과 함께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속량함을 입을 사람들은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고상하고, 순결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105)

 

<부가설명>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정되어 있다.(롬8:29)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이 예수님의 형상을 닮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그것은 구원받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어 있다.(엡4:13) 그럴지라도 구원받은 사람이 예수님과 동등할 수 없다. 그분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이며, 그분은 구주요 우리는 그분에게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그분은 우리가 없어도 계시는 분이지만 우리는 그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사단은 창조주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것이 바로 그런 주장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창조를 거절하고도 존재한다면 그는 자존자(自存者)이지 피조물이 아니다. 사단이 된 루시퍼나 그에게 유혹을 받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사람은 다 창조주 없이 그들도 창조주와 같이 되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절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존재를 상실하는 것일 뿐이다.

 

교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품성을 닮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분의 자녀인 우리가 그분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은 하나의 의무이다.

 

화요일(8월 11일) 죄의 정의(요일 3:4)

 

요한이 그의 서신들에서 거짓 가르침에 대해 반대했던 까닭은, 그 가르침이 구원의 현재적 축복은 강조하지만 순결한 삶을 사는 것은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다. 거짓 교사들은 죄의 문제나 그 결과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우리의 미래는 지금의 삶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음을 강조했다. 이것은 행위로 말미암는 의와는 관계가 없다. 우리는 오로지 은혜로 구원 받으며,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 속에서 풍겨나야 한다. 그래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1. 다음 구절들은 죄의 본질에 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출 9:27, 시 36:3, 51:4, 사 1:2, 렘 3:13, 마 7:23, 롬 6:17, 20, 요일 1:8, 3:4, 5:17)

출9: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시36:3 그 입의 말은 죄악과 궤휼이라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시52:4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사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렘3: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롬6:17,20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요일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일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답: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배반과 반역, 불신, 불의 등을 가리키며 불법, 불의, 사악함, 죄악적 본성 등을 말하기도 한다. 특히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고 지적하고 있다.

성경에서 죄는 표적에서 빗나가는 것, 거짓, 하나님의 진리의 표준을 고의로 범하는 것, 반역, 사악함, 불순종, 범죄, 불법, 불의 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요한일서 3:4에 죄는 "불법"으로 정의되어 있다. 요한은 이어서 불법의 명백한 예로서, 아우를 죽인 가인의 이야기를 한다(요일 3:11~20). 그런 다음에 그는 계명들을 가리키면서 그것들을 지킬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22, 24절)

우리는 또한 '불법'이라는 용어를 통해 데살로니가후서 2:3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우두머리로서 재림 직전에 대대적인 활동을 펼칠 "불법의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불법은 요한일서에 나오는 적그리스도들에게서도 나타나는데, 이들은 하나님을 맹렬히 대적하고 사단과 동맹을 맺는다. 요한은 교인들에게 이러한 태도와 죄를 버리라고 간접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계의 아이러니한 사실 중 하나는, 수많은 설교자들이 죄를 짓지 말라고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기 때문에 그분의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설교하는 것이다. 은혜에 대한 얼마나 두려운 왜곡인가!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

“죄는 불법이다. 이것이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이다. 율법이 없으면 범함도 있을 수 없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롬 3:20). 의의 표준은 아주 광범위한 것이요, 모든 악한 것들을 금하는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51)

 

<부가설명> 죄에 대한 부가설명은 3과에서도 말하였다. 죄에 대한 모든 정의가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법도 없고 표준도 없고 사악함도 없고 반역도 없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위에 기록한 모든 것이 죄가 된다. 그런데 성경은 최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했다. 그것을 먹는 것이 죄라고 정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의 후손의 약속으로 그 죽음이 유예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죽은 사람이라고 하셨다.(마8:21,22) 죽었기 때문에 썩고 있다.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다.(엡4:22) 위에 말한 것들의 대부분이 이 썩어져가는 모습이다.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단언했다.(고전15:22)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참 생명으로 산 사람이 없다. 다만 죽음이 일정기간 유예된 죽은 사람들이 썩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성경에서 깨달으면 죄는 단지 율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잘못하는 것 이전의 하나님의 생명을 잃고(엡4:18) 죽은 자가 된 사실임을 이해하게 된다. 최초에 죽을 때에 하나님을 반역한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영생하도록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사망으로 택함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무효하게 했으니 반역이고, 생명의 법칙을 버렸으니 불법이다. 그래서 사망이 되었다. 이 세상은 이런 사망이 주장하기 때문에 다 썩어져가고 있다. 예수께서 사망을 처리하셨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만 생명을 얻고 그 생명으로 사는 것이 성도들의 삶인 것이다.

 

교훈: 요한은 죄를 불법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므로 그 은혜를 가치 있게 여기고 죄와 상관없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수요일(8월 12일) 예수님의 나타나심(요일 3:5, 8)

 

1. 다음 구절들은 예수님의 초림과 성육신의 의미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요일 1:2, 3:5, 8)

요일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3:5,8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답: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요일 1:2)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제하시고(요일 3:5)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요일 3:8) 이 땅에 초림하셨다.

 

예수께서는 초림 시에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셨다. 그분은 죄 문제를 해결하고, 마귀의 일을 파하려고 오셨다. 이 일에 있어서 신자들은 죄와 그 창시자인 마귀에 대하여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 우리는 죄에 빠져 사단과 결탁함으로써 예수님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2. 요한일서 3:5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이 진술은 요한복음 1:29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히 9:26, 28, 요일 2:2, 4:10, 계 1:5~6)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히9:26,28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요일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계1:5,6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답: 예수께서 초림하신 목적 중 하나는 우리 죄를 제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 죄를 친히 짊어지심으로 그 일을 이루셨다.

 

요한일서 3:5은 예수께서 어떻게 죄를 제하셨는지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의 문맥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일을 이루셨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자아 희생을 통해 죄를 제하신 사실을 명백히 진술한 반면에, 요한계시록은 예수께서 당신의 보혈로써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셨다고 가르친다.

요한일서 3:5의 첫째 부분은 간접적으로 십자가를 암시하고, 둘째 부분은 예수님의 절대적인 무죄하심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를 위한 그분의 십자가 죽음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요한일서의 적그리스도들은, 어리석게도 십자가와 우리를 대신하신 그분의 대속적 죽음의 진정한 가치를 충분히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르시고 구원의 계획의 기초를 완성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가 구원 받아 영생의 약속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전체 복음의 핵심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한 매일의 승리

“이생에서 형성된 품성은 미래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은 어떤 한 사람의 품성도 변화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귀한 유예의 시간이 우리 품성의 옷을 씻고 그것을 어린양의 피로 희게 하여 향상시키도록 주어졌다. 이 죄의 녹을 제거하는 데는 일생의 노력이 요구된다. 매일 자아를 억제하고 부인하는 데는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매일 싸워야 할 전쟁과 얻어야 할 승리가 있다. 매일 영혼은 십자가의 힘 있는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열렬히 간구하도록 강권함을 받아야 한다.”(교회증언, 4권, 429)

 

<부가설명> 죄인이라는 말은 아담 안에서 죽어서 계속 썩어지고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죄인이 죄인인 상태, 곧 썩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노력하여 썩지 않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에게 생명이 없기 때문에 썩는다.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면 죄의 세상에 처하여 살면서 매일 죄와 싸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죽은 자가 아니요 산 자이기 때문이다. 이 영원한 생명 진정한 삶의 능력은 그 생리가 죄를 거부한다. 그래서 거룩한 투쟁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우리의 생명을 자주 손상시킨다. 악한 자는 멀리서 불화살을 쏘아댄다.(엡6:16) 우리가 믿음의 방패를 느리게 움직이면 불화살은 빠르게 날아와 우리의 급소를 맞힌다. 그래서 우리는 길르앗의 의사이신 예수께 치료를 위하여 신속히 나아가야 하며, 우리의 흰 옷에 죄의 때를 짙게 칠한다. 그래서 우리는 신속히 보혈로 씻김을 받아야 한다. 그날까지 이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우리가 주님과 같게 될 것이다.(요일3:2)

 

교훈: 예수께서 초림하신 것은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모든 죄의 값을 치르시고 그들에게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안겨 주시기 위함이었다.

 

목요일(8월 13일) 죄를 짓지 아니함!(요일 3:6, 9)

 

1. 요한일서 3:6, 8~9은 요한일서 1:6~2:2과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요일3:6,8,9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1:6-2:2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답: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한 요한일서 3:6의 말씀은 요한일서 1:6~2:2의 말씀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첫째 “죄를 범치 않”는 것이요(요일 2:1), 둘째는 “죄사함” 받는 것이다.(요일 1:9, 2:2)

 

요한일서 3:6과 3:9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대담하게 진술한다. 이 진술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고민해 왔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죄의 실체와 더불어 씨름해 보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도 요한이 서로 상충되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1장에서, 그는 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스스로 기만하는 자라고 했다. 2장에서, 그는 우리의 목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지만 만일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 아버지와 더불어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고 지적했다. 오늘의 본문은 이미 앞에서 다루었던 죄 문제에 관한 논의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지만, 그들이 만일 죄를 범한 후에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자백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된다.

신학자들은 이 난해한 구절들을 해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 왔다. 두 가지만 간단히 언급해 보자.

1. 요한이 요한일서 3:6, 8~9에서 묘사한 이상(理想)은 같은 책 2:1에도 언급되어 있다. 요한은 그의 독자들에게 죄 문제에 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라고 권면하였다. 죄는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2. 이 구절들에서 '죄를 짓다'라는 동사가 현재 시제로 나타나는데, 이는 계속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때때로 죄에 빠질 수 있지만 죄로부터 떨어져 나와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새국제역(NIV) 성경은 "계속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번역하였다.

어느 해석을 받아들이든지, 3장은 1장과 2장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비록 죄는 실제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의 삶에서 죄를 떨쳐버려야 한다.

 

 

죄를 이기는 삶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고, 하나님의 소유인 몸과 정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가장 엄숙한 서약에 매여 있음을 느낀다. 죄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아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속에서 정복된다. 그는 날마다 이렇게 물어 본다. '여호와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주여, 나로 무엇을 하게 하시려나이까?'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멍에가 목을 괴롭히고 있다고 결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가장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교회증언, 5권, 220)

 

<부가설명> 죄를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잘못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요일3:9은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물론 1장부터 2장에 있는 말씀을 기반으로 이해하면서 설명할 수 있다. 또 죄를 짓지 않는다는 동사의 시제(時制)를 생각하여 계속적으로 죄를 짓는 자가 아니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죄를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로 이해하면 사언행(思言行)은 죽은 자의 썩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데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이기 때문에 이제 사망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썩을 이유가 없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으면서 냄새가 나고 있었지만 예수께서 그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후에는 더 이상 썩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썩는 냄새를 풍길 이유도 없다. 요일3:9을 이렇게 읽어보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썩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썩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그렇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은 더 이상 썩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다만 사단의 불화살에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요, 거룩한 옷에 세상이 묻혀주는 때로 더럽혀지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속히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불화살을 계속 맞지 않도록 살아야하고, 때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도 날마다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으면서 살아야 한다.(계7:14, 22:14).

 

교훈: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계속해서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죄를 떠나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금요일(8월 1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로마서 8:12~17, 빌립보서 2:14~16.

 

“하나님의 요구 중 하나쯤은 고의적으로 범해도 거룩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속지 말라. 죄인줄 알면서 범하게 되면 깨우쳐 주는 성령의 음성을 침묵케 하고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게 한다. … 요한은 그의 편지서들을 통해 사랑을 충분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애를 살면서도 거룩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류의 사람들의 참 모습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성결에서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가 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472-47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긍정적인 면에서 "하나님과 같이" 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 태초에 창조해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형상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죽어주시는 일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요일3:16)

 

2. 어떤 이들은 우리가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개념을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의 의(義)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에 의존한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까?

* 구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요5:24,25) 이렇게 된 사람은 썩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는 사단이 쏘는 불화살을 맞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산다는 말이다. 화살을 맞으면 아프고 괴롭다. 이런 화살을 맞고도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다면 그는 아직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지 않은 사람이다.

 

3. 어떤 사람이 십자가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나의 죄를 변명하거나 덮어버리는 수단이 되는 대신 내가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을 아주 버리지 않게 하는 방편이 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십자가에서 사망이 처리되었다. 그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의 사망이 처리되었고 부활을 믿음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다. 어떻게 죄를 짓고 평안하겠는가.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사단의 공격으로 입은 상처를 인하여 황송하게 생각하며 그 피로 치료되기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4. 성경에는 분명히 죄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 공부하는 각 자가 생각해보자. 어쩌면 먹는 것, 마시는 것, 보는 것, 읽는 것 등등에도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5. 예를 들어, 중독증에 걸린 사람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도우심에만 의존해야 합니까?

*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처방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그는 전문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도해야 할 것이다. 모든 참된 치유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6.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믿음의 방패로 악한 자의 불화살을 최대한으로 막으면서 성령의 역사로 승리하는 생활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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