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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5 09:15

제10과 담대함(9/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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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6분)

 

기억절: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연구범위: 요 3:36, 행 4:29, 고전 9:27, 히 4:16, 요일 5:13~21, 계 12:9.

 

학습 포인트: 우리의 확신과 담대함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의 확신이 추측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에 대한 어떤 보증이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를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인생에 있어서 확실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금이다." 그런데 확실한 것 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인생이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일터가 얼마나 안전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질병과 테러, 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 때 다음날 일어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러한 현실을 접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걱정거리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지만 결국 우리의 노력도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약속은 어떠한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확신과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가?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과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요한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핵심본문: 요일 5:13~21

 

학습 목표

깨닫기: 우리는 구원을 확신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보호를 받고, 하나님께 속하며, 예수님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과 소속감을 배양한다.

행하기: 추측이나 가정이 아닌 확신 속에서 적극적인 그리스도인 삶을 산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변하지 않는 확실성

A. 요한은 "우리가 아노라"라는 말로 시작하는 5가지 주장을 열거하였다. 우리는 구원을 확신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보호를 받고, 하나님께 속하며, 예수님을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확신을 더 강화할 수 있는가? 반원들과 함께 나누어 보자.

B. 요한은 영생을 현재적 실제로 묘사했다(요일 5:13). 이것과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개념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II. 느끼기: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진시킴

A.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축복을 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하면 우리 믿음을 증진시킬 수 있는가?

B. 우리도 요한처럼 끊임없이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가?

 

III. 행하기: 확신에 기초한 적극적인 삶

A.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어떻게 하면 바른 선택을 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B. 요한이 말한 다섯 분야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서로 나누어 보라.

 

요점: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확신과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다섯 분야를 열거하였다. 우리 자신의 부정적인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일요일(8월 30일) 담대함을 가짐(요일 5:13~21)

 

요한일서 5:14에는 '담대함'이란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확신, 담력, 혹은 진솔함(행 4:29, 31)이나 명백함(요 16:25, 29)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4:16과 10:19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왜 그런가? 첫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들을 위해 보혈을 흘리셨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그들을 옹호하시기 위해 하늘로 승천하셨기 때문이다.

같은 용어가 요한일서 4:17에도 나오는데, 심판 날에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에 의존하기 때문에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확신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이 행한 일에 근거하지 않는다. 이 확신은 전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온다.

요한은 요한일서의 끝부분에서 “우리가 아노라”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이 담대함의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아노라”라는 말이 앞에서도 두 번 나오지만(요일 3:2, 14), 결론 부분에서 다섯 번이나 반복되면서 “담대함”의 개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1. 다음 구절들에 의하면 우리는 무엇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요일 5:13, 15, 18, 19, 20)

요일5:13,15,18-20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답: 우리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분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요한일서 5:13에서 사도는 “우리가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요한일서 5:15 이하에서 그는 “우리가 아노라”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우리의 기도가 들으신바 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요일 5:15). 요한일서 5:18에는 “우리가 아노라”라는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약속이 따라 나온다. 요한일서 5:19에는 “우리가 아노라”라는 표현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는 놀라운 개념이 소개되고 있으며, 요한일서 5:20에는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또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며,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우리의 현재 상태와 미래의 운명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함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계획한다면 주께서는 우리가 실수하도록 버려두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부를 좇은 후에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는 낙담하여 물러설 것이 아니라 위기를 당할 때마다 무한한 자원을 자유로 쓰실 수 있는 분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자주 곤경에 둘러싸일 것이다. 이때에 우리는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주께서는 당신의 법도를 지키기 위하여 당하는 시련 때문에 곤란에 빠진 각 영혼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시대의 소망, 368)

 

<부가설명> 담대함이라고 번역된 “파르흐레시아”는 “확신, 담력, 혹은 진솔함, 명백함, 개방, 밝히 드러냄, 신뢰, 대담함, 솔직함”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말의 개념으로 겁이 없고 용감한 것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 담대함이라고 말한 것은 겁이 없고 용감한 이유까지 포함된 말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한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영생에 들어가는 이유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구원하시는 사랑에 있다.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까지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아들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확신에 우리의 구원과 영생이 보증되어 있는 것이다. 결코 우리의 선행이나 의로운 행위에 구원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선행이나 순종을 자랑할 것이 없다. 순종이나 선행은 다 예수 안에서 얻은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열매일 뿐이다. 스스로 속지도 말고 자랑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담대함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구원하셨기 때문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고 담대한 것이다. 아멘.

 

교훈: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뿐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켜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월요일(8월 31일) 영생을 가짐(요일 5:13)

 

1. 요한일서 5:13에서 우리는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요일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답: 우리 안에 영생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이 구절에는 요한이 그의 서신을 기록한 중요한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독자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기 원했다. 그들은 이미 영생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야만 했다. 영생은 현재적 실제이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마지막 부분에서도 비슷한 진술을 하였다.(요 20:30~31)

요한일서 5:13은 신약에서 영생에 관해 다룬 다른 구절들과는 차별된다. 다른 구절들은 영생의 조건이나 약속을 언급하고 있지만(예, 요 3:36), 이 구절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미 영생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확신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괜찮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확신을 갖기를 원하신다. 모세(출 32:32), 베드로(벧전 5:1), 바울(딤후 4:7~8),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엡 2:8), 골로새 신자들(골 1:12~14)도 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2.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확신이 하나의 추측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까?(참조 마 10:22, 고전 9:27, 계 3:11)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계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답: 우리는 시험과 유혹에 빠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므로 순종과 회개와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켜야 하며, 소망의 진리를 굳게 잡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구원의 “확신”을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 받는다”는 식의 “무조건적인 보증”으로 변질시켰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도, 그리고 우리를 하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삶을 살아도 괜찮다는 말이 되고 만다!(갈 5:21, 계 21:8).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순결하게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교리를 받아들인다면 어떠할지 상상해 보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 확실성은 우리 자신의 선택에 의해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우리는 날마다 계속해서 순종과 회개와 믿음으로 자신을 주님께 굴복시킴으로써 생명의 면류관을 굳게 잡을 필요가 있다. 사단이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벧전 5:8) 우리는 항상 경계하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영생을 얻음

“그대는 그분의 임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분은 그대의 모든 시련을 다 아신다. 둘째 아담인 그분이, 아담의 배은망덕한 타락의 결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다. 모든 면에서 그분은 대적을 이기셨으며, 그분의 힘으로 우리는 승리자의 상급인 영생을 얻을 수 있다.”(설교와 강연, 2권, 236)

 

<부가설명>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두움의 권세가 주장하는 곳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세력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공격한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리고도 통증이 없고 고칠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 그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신앙을 고백해도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럴 경우 아주 많이 아파야 한다.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어야 하고 그래서 치유 자이신 예수님께 신속히 달려가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회개요, 용서이다. 만일 상처를 입고도 치유 받지 않으면 그는 죽는다. 즉 영생의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실을 종종 목격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사상은 말도 안 되는 사상이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벧후2:20,21) 그러므로 우리는 생애의 매 순간을 주님을 의지해야 하고 악한자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해야 하며, 만일 미처 방어하지 못하여 악에 상처를 입었으면 즉시 주님께 나아가서 치유 받아야 한다. 이런 삶이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삶이다. 승리는 주께서 하셔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주신 그 승리를 잃지 않도록 매 순간마다 힘을 다해 지켜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는 물론 영생의 확신을 가져야 하지만,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식의 확신은 우리를 방종으로 이끌어 갈 위험이 있다.

 

화요일(9월 1일) 그분의 뜻을 따라서(요일 5:14~17)

 

1. 요한일서 5:14~15은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줍니까? 그 약속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일5:14,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답: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는 약속이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기대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선한 상태로 응답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고, 그 절정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며 그 생명이 생활하기에 넉넉한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영생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위하여 자주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나보다 더 확실히 아시기 때문에 영원을 위하여 나에게 가장 확실한 것으로 응답하신다. 그러나 회개와 용서는 즉시 응답하신다.

 

우리는 모든 기쁨과 부담과 필요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그분께 재정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그분께 자녀 문제를 도와달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우리는 중한 질병을 낫게 해달라고 그분께 아뢸 수 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수표를 보내주시고, 아이들을 바로 잡아주시며, 무서운 질병을 치료해주시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도록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대기 목록에 올려놓지 않으시고 용서의 확신을 주신다. 기도가 마쳐졌을 때 실제로 용서가 주어진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자녀가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드리면, 그분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즉시 응답해 주신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은 명령이나 약속으로 나타나는데, 우리가 그분의 뜻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그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끄실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주님께서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 가운데 믿어야 한다.

요한일서 5:16~17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구절이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학자들마저도 의견이 나뉜다(어떤 이들은 그것이 성령을 거스르는 죄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죄가 불의이며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요한이 이 구절들에서 말한 죄들의 특이한 점은 무엇인가? 대답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요한이 말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가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기도를 기다리는 천사들

“보다 더 깊은 경험과 경건을 위하여 매우 열렬하게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약하고 실수를 많이 범하는 그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주님은 그들의 기도와 간증을 귀기울여 들으신다. 매일 매 시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께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천사들은 그들의 뉘우치는 기도를 하나님께 전해 드리고 하늘 책에 기록하기 위하여 날개를 펴고 기다리고 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4권, 1183)

 

<부가설명> 기도의 핵심 문제는 기도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존재하지도 생존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자세이다. 기도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을 때, 아니 기도하기로 마음먹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잠시라도 생존할 수 없다. 기도하라하신 것은 우리의 처지가 바로 그렇기 때문이며 그렇다는 것을 하나님께 솔직히 시인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의 손길을 떠나서는 잠시도 존속할 수 없다. 예수께서 이 사실을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고 가르치셨다. 호흡을 멈추면 죽는 것처럼 이 사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자행자지(自行自止)하면 죽게 되는 것이다.

 

교훈: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야 한다. 나의 모든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자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수요일(9월 2일) 보호를 확신함(요일 5:18~19)

 

요한일서 5:18~19에서 요한은 두 번이나 “우리가 아노라”라는 말을 하였다. 이 두 절은 각각 이 진술로 시작된다. 그러나 요한은 단지 지식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 18절과 19절은 어떤 간접적인 도전을 던져주고 있습니까?

요일5:18,1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답: 악한 자에게 속한 온 세상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인 우리가 살고 있다. 그것은 성도들이 언제나 공격대상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방어하는 삶으로 영생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그 승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그 승리는 방어하는 삶으로 이기는 것이다.

 

18절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는 표현이 두 번 나오는데, 첫 번째 표현은 모든 신실한 신자를 가리키고, 두 번째 표현은 예수님을 지칭한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는 시제(時制)의 차이가 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는 첫 번째 표현은 거듭난 사람들의 경험을 언급한 것으로써(요 3:3, 5, 요일 3:9), 중생의 효력이 지속되는 것을 묘사하는 완료시제가 사용되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라는 두 번째 표현에는 과거에 일어난 특정한 사건을 언급하는 시제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묘사한 것으로, 그분께서 마리아의 몸을 빌려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 적용된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라는 말은 그분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고, 심지어 우리 중의 하나가 되신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2. 요한일서 5:18~19은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줍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험과 유혹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사단이 우리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지켜 보호하신다.

 

이 두 절에 각각 ‘악한 자’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참조, 요일 2:13~14, 3:12), 사단을 가리킨다. 요한은 사단을 마귀 또는 옛 뱀이라고 불렀는데(요일 3:8, 10, 계 12:9), 특히 요한계시록 12:9에는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대쟁투가 잘 묘사되어 있으며, 이 대쟁투는 이미 짧게나마 요한일서 5:18~19에 암시되어 있다.

요한은 18절과 19절에서 세상을 악한 자의 활동 무대로 언급한다. 이 싸움의 반대편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함께 서 있다. 우리 신자들은 그분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예수께서는 사단이 그들을 만지지도 못하게 지키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에 반대하고 유혹에 저항할 수 있다.

 

보호의 확신

“우리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우리는 무분별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시험을 자초하지 않도록 생애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지혜와 판단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물질을 무시하고 그가 주신 재능을 오용하면서 어려움 속으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그의 교훈을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업이니 우리가 남을 축복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야 한다.”(시대의 소망, 368)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부이다. 인간 부모 자녀 관계와는 좀 다르게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못한다.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살며 기동하며 있다.(행17:28) 인간 부모는 자식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그래도 받은 생명으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또 자녀를 남기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창조주를 떠나면 즉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영원한 상실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 안에 있어야 한다. 순간이라도 떠나지 않아야 한다. 사단은 우리를 그분 안에서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속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오관의 감각을 따라가기가 아주 쉽다. 그래서 우리는 오관의 문을 잘 지켜야 한다.

 

교훈: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대쟁투에서, 그리스도의 편에 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의 보호를 받으므로 사단이 저들을 만지지도 못한다.

 

목요일(9월 3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짐(요일 5:20~21)

 

요한은 다시 “우리가 아노라”라고 진술한다. 우리는 그분이 참되신 분이심을 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셨다는 지식은 단지 머리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1. 요한일서 5:20에 따르면 참되신 한 분은 누구입니까?

요일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답: 아버지 하나님이 참되신 분이시고 또 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그분”이라는 인칭 대명사를 아버지나 아들, 혹은 이 두 분을 동시에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기 때문에(요일 2:23)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한일서 5:20에는 “참되다”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 첫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를 지칭한 것이 분명하다(참조 요 7:28).

두 번째 언급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라(요일 5:20).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신 분이시다. 요한일서 2:8에도 “참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예수님을 묘사하는 말이다.(참조 계 3:7, 14)

마지막으로 “참되다”라는 말은 문장 안에서 나타난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이 문장은 하나님 아버지나 예수님, 혹은 두 분 모두를 가리킨다. 성경 해석자들은 이것에 대해 의견이 나뉘지만 예수님과 연결시킬 때 의미가 가장 완전하게 통한다.

 

2. 요한일서 5:21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요일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답: 요한이,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요일 5:21)고 말한 까닭은 참되신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지금까지 우상숭배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개념과 그러한 개념이 교인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씨름하였다. 그러면 요한은 왜 그의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지금까지 언급한 적이 없는 주제를 끌어낸 것일까? 아마도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한 거짓된 견해를 우상숭배로 간주했던 것 같다. 즉 예수님 안에 계셔서 모든 참된 신자들에게 영생과 담대함을 주시는 아버지 대신에 거짓 신들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로 보았던 것이다.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함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라는 명령과 대조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계 13:3, 8, 15). 즉, 각인은 참된 예배와 거짓 예배 사이에서 하나님의 방식(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혹은 우리의 방식(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로 하나님을 경배하든지 양단간에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238)

 

<부가설명> 요한은 영지주의나 가현설 사상을 따르는 것이 우상숭배라고 간주한 것이다. 아무리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경을 연구하고 예배를 드려도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따르는 것이다.(고후11:4) 그렇게 할 때 그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다. 비록 예수 이름을 부를지라도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진리를 옳게 분별해서 바른 길을 따라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정직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 자신을 시험하여 드른 예수를 따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교훈: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분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우상숭배에 비유했다.

 

금요일(9월 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엘렌 G. 화잇, 실물교훈, “주기 위하여 구함”(147~148), 선지자와 왕, “이스르엘에서 호렙까지”(157)

 

“우리가 세상의 축복을 간구할 때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지체될 수도 있고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것을 주실 수도 있으나, 우리가 죄로부터의 구원을 구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를 죄에서 깨끗케 하셔서 그의 자녀로 삼으시고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그의 뜻이다.”(시대의 소망, 266)

“만일 병자의 생애가 그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가 살기를 기도할 것이나, 그럴지라도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대로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소망을 전지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 염려 없이 완전한 신뢰 가운데 모든 것을 그분께 의탁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은 확고하여지고 더욱 의지할 만하게 된다. 우리는 약속을 가지고 있다. 그분의 뜻과 일치하게 간구하면 그분이 들으실 줄을 우리는 안다. 우리의 간구는 명령하는 형태를 취할 것이 아니라 그분께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그분이 행하시도록 간청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교회증언, 2권, 1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주로 무엇 때문에 생깁니까?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유는 자신의 행위를 예수님보다 우위에 놓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행위가 비론 예수님만큼 완전하다해도 예수 없이는 구원받지 못한다. 구원은 생명 문제에 대한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도덕적 행위는 생명을 얻은 사람들에게 그 생명이 나타내는 열매이다. 즉 생명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생명의 열매가 열 기미가 없으면 그는 아직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얻었어도 아지 어린 나무는 생명의 열매가 우람하게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떠나지 않으면 마침내 열매가 열리게 되어 있다.

 

2. 성경에는 분명히 죄에 대한 승리의 놀라운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왜 많은 이들이 반복해서 같은 죄에 빠지는 것입니까?

* 우리가 사는 세상이 죄의 세상이다. 그래서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과 세상이 쉽게 연합한다. 세상은 온갖 죄의 유혹으로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을 자극한다. 그러면 그것은 즉시 반응을 일으키려고 한다. 그때 우리는 신속히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롬8:13, 갈5:15-17)

 

3.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대쟁투의 실체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습니까? 우리의 공동체와 가정에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습니까? 사단과의 싸움에서 우리 개인이나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까?

* 그리스도인은 한 인격 안에 두 사람이 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7-49) 첫 사람과 둘째 사람이 한 인격 안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첫 사람이 곧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 아래 있다. 이것이 둘째 사람 곧 거듭난 사람을 핍박한다.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4:29) 그러나 우리가 즉시 영우로 몸의 행실을 죽이고 그리스도의 승리를 바라보며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여 이 공격을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얻은 구원과 승리의 확신으로 담대하게 하늘까지 갈 수 있게 되었음으로 감사하며 이 승리를 항상 잘 지키는 삶을 살도록 순간마다 주님께 헌신해야 하겠다.

  • ?
    소라 2009.08.30 21:24
    안교교과를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정성껏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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