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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열조의 율례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겔 20:18,19)

소제와 전제

소제(Grain offering)는 히브리어로 ‘민하 minchah’인데, 이는 ‘선물’ ‘헌물’을 의미하는 말이다.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로서(레 2:1-16)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일반적으로 소제는 단독으로 드리지 않고 번제(출 29:38-42; 레 9:17)나 화목제(레 7:11-13)와 함께 드려졌다.

전제(Drink offering)는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붓는 의식이다(출 29:40-41; 민 15:5). 제물을 제단에 올려놓고 불사르기 전에 그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었다(출 30:9; 레 23:13). 번제물이 일 년 된 어린 양일 때는 포도주 힌 사분의 일(출 29:40)을, 숫양일 때는 삼분의 일(민 15:6-7), 수송아지일 때는 반 힌(민 15:9-10)을 부었다.

전제를 신약 성경은 관제로 번역했다. 바울은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니라’(빌 2:17)고 했으며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딤후 4:6)고 했다.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한다면 전제는 인간의 모든 것, 그의 생명까지라도 바친다는 의미이다.

생명을 바쳐 사랑한 자에 대한 반응은 생명으로 나타나야 한다. 열의 사랑을 바친 사람에게 아홉의 사랑으로 반응한다면 그들의 관계에는 이상이 생긴다. 하지만 열의 사랑을 주시고 열의 사랑을 기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열의 생명이 아니라 열의 짝퉁으로 만족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짝퉁으로 포도주를 받으시고 전체의 짝퉁으로 십일조로 받으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전심전영이다.

주석가들은 감사하여 드리는 소제는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라고 했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레 2:1) ‘그 예물을 드리는 자는’(민 15:4)이라는 표현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은 것 같은 표현이다. 하지만 ‘자발적’이라는 말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은 게 아니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쁨으로 솔선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원어에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감사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라, 하면 관계가 유지되고 하지 않으면 관계가 끊이지는 대단히 중요한 필수사항이다.

영어의 think와 thank의 발음이 비슷한 것은 우연일지 모른다. 하지만 감사는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일이다. 앞을 보면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은 감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며 생각하는 사람은 그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한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주어 거하게 할 땅에 들어가서’(2절) 소제와 전제를 드리라고 하셨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시이며 안정에 대한 보장이다. 목축을 주업으로 하며 떠도는 자들에게 땅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안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또 다른 뜻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인도해주신 손길 뿐 아니라 앞으로 가야할 길에도 주께서 함께 하실 것을 감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의 ‘마더 테레사’라고 불리우는 벨기에 태생 에마뉘엘 수녀는 파스칼의 『팡세』를 명상하며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썼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은 실존하시는 분이지만 인생에 개입하는 분은 아니다’(에마뉘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88쪽)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분이지만 우리들 인생에는 참견하지 않으시는 분이실까? 하나님은 인간 각자의 삶에는 관심이 없으실까?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에 개입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실존을 믿을 수 있을까? ‘내 앞에 행하라’(창 17:1)는 하나님은 당연히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다. 언제 하나님이 보일까? 부모 앞에서 뛰어가던 아이가 넘어지면 그제야 ‘앙〜’하고 울면서 뒤를 돌아본다. 그때 아이는 뒤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의 행보에 개입했던 아빠를 본다. 이때 울면서 제 갈 길로 가는 자를 고아라 하고, 울면서 돌아가 아빠에게 매달리는 자를 아들이라고 한다. 아빠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은 아들의 감사다. 아빠의 얼굴빛은 감사하는 아들에게서 잠시도 떠나지 아니한다.

이방인과 타국인

1942년 까뮈는 실존철학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준다는 『이방인』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가해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다가 다음 날 여자 친구 마리와 해수욕을 즐기고 영화를 본 뒤에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건달인 레이몽과 함께 떠난 바다에서 레이몽과 말다툼을 하던 아랍인을 권총으로 사살한다. 살해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뫼르소는 자기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자기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으나 유대인들은 한 마디로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히틀러에게 무참히 학살당했다. 자기의 의견과 상관없이 운명이 결정되는 사람은 이방인이다. 세상 나라에서 타국인은 자기들의 의견과 관계없이 그들의 운명이 불리하게 결정된다.

성경 세계에서 타국인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성경 세계에서 이방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믿으면 그들은 그들 가운데 우거하는 타국인일 뿐이다. 하여 이스라엘 회중에게는 너희에게나 너희 가운데 살고 있는 외국인에게나 같은 율례가 적용되었다.

“이것은 대대로 지켜야 할 율례이다. 외국인들도 주 앞에서는 너희와 같을 것이다. 같은 법과 같은 규례가 너희에게와 너희 가운데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함께 적용될 것이다.”(15,16절 새번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잔인하게 취급하시는 것을 보고 ‘어느 부족이든 그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잔인한 신을 모시지 않을 수 없었다’(오강남『예수는 없다』 141쪽)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거하는 타국인도 본국인과 똑같이 보호하셨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은 뒤에 ‘이방인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는 것을 그대로 다 들어 주셔서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이 주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주님을 경외하게 하시며 내가 지은 이 성전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곳임을 알게’(왕상 8:43) 해달라고 기도했다. 부지중에 지은 범죄에 대해서도 똑같은 법이 적용되었으며 부지중에 사람을 죽은 자도 본국인과 똑같이 도피성에 피할 수 있었다.(민 35:15)

안식일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있을 때였다. 한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 들켰다. 나무하는 이를 본 사람들은,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에게로 데리고 갔다. 그에게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명확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그냥 가두어 두었다. 그 때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온 회중은 진 밖에서 그를 돌로 쳐야 한다.”(민 15:35 새번역)

그래서 온 회중은, 주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다.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민 15:30,31)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추호의 용서도 없었을까? 사람을 죽였더라도 고의로 죽이지 않았으면 속죄의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죄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안식일은 기억하여 지키는 날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지 않는 것은 짐짓 짓는 죄에 속한다. 짐짓 짓는 죄는 입법자에 도전하는 역적에 해당하는 죄이다.

청색 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옷 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게 하셨다.(민 15:38,39) 왜 청색일까?

구름 한 점 없는 바다 한가운데서 하늘의 푸른 물감이 그대로 푸른 바다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청색을 선물하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파란색을 선물하셨을까? 색채 물리학자요 색채 심리학자라 불리는 마가레테 부룬스는 ‘야훼가 그 백성과 맺은 단단한 연대를 입증해주는 무지개처럼 빛나는 파랑은 충성을 상징하는 색이다’(마가레테 부룬스 『색의 수수께끼』 145쪽)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뒤에 하늘을 보니 하나님의 발아래는 ‘청옥을 편듯’(출 24:10) 청명하였다.

언약은 충성에 의해 이행된다. 그리고 충성의 시금석은 계명이다. 지키면 충성이요 지키지 않으면 불충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하신 뒤에 청옥 같은 하늘을 펴신 것이나, 그가 인도한 백성의 옷단에 파란 줄을 달게 하신 것이나, 지구를 덮고 있는 하늘과 바다를 파란 색으로 물들이신 것은 모두 인간이 하나님께 바쳐야할 충성을 되새김질하게 하신 게 아닐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하지 못할(대하 2:6)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옷단의 술까지 신경을 쓰실까? 그 이유는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민 15:41)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말씀하실까? 아버지는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본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아래 질문을 생각해보셨나요?

1. 하나님께나 나를 위해 생명을 바치셨다는 나는 무엇을 그분께 바쳐야할까?

2. 감사제를 자발적으로 드려야한다는 말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 도 좋다는 의미일까?

3. ‘내가 주어 거하게 할 땅에 들어가서’ 소제와 전제를 드리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4. 하나님은 실존하시지만 인생에 개입하지는 않으실까?

5.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빛을 인간에게 비추게 할 수 있을까?

6. 타국인을 이방인 취급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잔인하다 할 수 있을까?

7. 고의로 죽이지 않았다면 살인자도 용서 받는데 왜 안식일을 범 한 자는 용서 받지 못할까?

8. 왜 청색 끈을 달게 했을까?

9.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하지 못할 하나님께서 왜 이렇 게까지 꼼꼼하게 참견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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