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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모세와 아론의 죄 (11/28/09)

거룩한 분노가 죄가 될 때

이스라엘 광야시대의 최대의 위기가 왔다.
백성의 죄를 돌이키고 그들을 인도해야할 지도자가 백성의 수준으로 떨어지면
이것은 국가적인 위기다. 목자는 양들과 싸울 수 없다.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
양과 함께 시시콜콜 다투면 목자는 더 이상 목자가 아니다.

어른과 아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우문현답이 나오겠지만, 아이를 이겼다고 어른은 기뻐하지 않는다.
애시당초 싸움이 되지 않는 싸움이다.

우주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시시콜콜 대응하시지 않은 이유중에
하나이다. 말도 안 되는 전쟁에 휘말려들 수 없는 일이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대항하여 일어났으니 무슨 그런 해괴한 일이 있는가?

광야에서 만난 이 위기는 지도자로서 적절하지 못한 대응이 기록되어 있다.
광야에서 물을 달라, 먹을 것이 없다, 굶주려 죽게 하는 구나, 애굽은 얼마나
좋았을까? 등등 시도 때도 없이 잊혀 질 만하면 불평이 나왔다.

모세는 묵묵히 잘도 참으면서 견뎌왔으나 민수기 20장에 기록된 말씀은 모세의
반응이 색다르게 나온다. 그야말로 거룩한 분노일까? 그런데 거룩한 분노는
인간들에게 안 어울리는 용어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인간이 하고
거룩한 분노라고 한다면,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닐까?

성전을 청소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거룩한 분노의 모습이다.
요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  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이 모습은 우리가 교회에서 소위 말하는 거룩한 분노와는 많이 다르다.
교회에서 큰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는 것이다. 교회는 신성한 곳. 죄가 사함을 받아야 하는 곳이지
세력 다툼의 장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모세의 혈기 (느즈막한 나이에...)는 무엇이 문제가 되었을까?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물인데 우리가 물을
낸다고 해서 그랬을까?

출17:6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반석 위에 올라서시고, 그 반석을 치라고 하신다.
이 장면은 예수님을 대표하는 반석을 침으로써 물이 나오는 것인데, 실지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그의 몸이 망신창이가 되었다.
그로부터 생명의 물이 흘러나온 것이다.

여기서 반석을 쳤냐 안쳤냐 말로 물을 내라 했다 안 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세가 지금 그 행위에 있어서 어떤 마음과 누구의 위치에서 그런 일을 하였나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 위치에서 백성들을 지휘하고 훈계하며 분노와 감정으로
말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분의 의를 드러내지 못한
큰 과오를 저지르게 되었다.

지도자의 큰 덕목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평상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위기가 닥치면 지도자의 진가가 발휘된다.

지난 겨울 차가운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하였던 설렌버거 기장은 요동함없이
침착하게 평소에 그가 프로답게 준비한 그 일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함으로
승무원과 승객 전원이 강 위에 비행기가 비상착륙하여도 살 수 있는 그 일을
하였다.

그 후에 60 minutes 와의 인터뷰에서도 마치 전투를 담당하게 치르고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온 전투기 조종사와 같은 면모를 보여주었다. 훌륭한 지도자는
외부의 자극에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끝까지 평상심을 잃지 않는다.

인생의 처세를 다룬 채근담에는 이러한 말이 전하여 내려온다.

『채근담』중에서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오매
바람이 지나가면 대가 소리를 남기지 않고,
 
기러기가 차가운 못을 지나매
기러기가 가고난 뒤에 못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겨야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느니라.
 
 
Cai Gen Tan (채근담)
 
When the wind has passed through a grove of bamboo,
the rattle of the stalks dies away.
 
After the wild geese are gone,their reflection in the deep pool disappears.
 
In such a way, things come up for you as a noble person,
and when they are gone, your mind is empty once again.

광야에서 40년 수업을 받았던 모세가 여기서 흔들렸다.
전후좌우를 살펴보면 민수기 20장 시작에 그는 그의 누이 미리암을 잃었다.
그리고 계속된 피로의 누적으로 아마 온전한 행동이 나오지 못한 것 같다.

큰 인물 모세의 실수를 보면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삼는다.
그리고 그러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하신다.
모세는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편애하심이 없으신 분이시다. 어느 누구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또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히 대하시지 아니하신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최측근과
오른팔 왼팔은 무언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끝내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와 요청에 대하여 무응답으로 일관하셨다. (마27:46)

인생의 불안

이스라엘 민족은 그 많은 기적과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면서 왜 그런 배도의
길로 들어섰을까? 우리는 광야세대의 미스테리라고 한다. 매일 만나를 먹으면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현현한 하나님의 존재를 목도하면서 왜 그들은 그렇게
믿음없음을 보였을까?

모세가 40일동안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과 대면할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기적의 만나를 먹으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호위를 받으면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배도했다. 눈에 안 보이면 믿지 않는 광야세대의 한계다. 지도자가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들의 믿음이 연약해 진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행적을 되돌아보고 그들의 불신과 원망에 몹시 놀란다.
그리고는 그들이 그때에 있었더라면 그처럼 배은 망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은 시련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이 시험을 받을 때에라도 그들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나은 신앙과 인내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과정에 대하여 불평한다. 그들의 현재의
필요가 공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장래를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빈곤이 그들에게 이르러오지 않을까, 저희 자녀들이 고통 가운데 버려진 바
되지나 않을까 늘 걱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불행을 예상하거나 실제로 존재하는 어려움들을
과장함으로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그들이 감사해야 할 많은 축복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만나는
장애물들이 그들을 힘의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도록 이끄는 대신에 그들을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불안과 불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부조, 293-294)

영감의 글을 통하여 그 이유를 분석하면 3가지이다.
첫째는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를 잊었고
둘째 현재 필요가 공급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선택된 과정 (일시적인 고통)에 대하여 불평하고
셋째 미래에 대한 근심이다.

사실 이러한 3 가지는 고대 이스라엘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르면 몰라도 똑같거나 오히려 더 많은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그리스도를 보는 것

정답은 있다.
그것은 매일 매 순간 놓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고통 너머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약속을 믿으라.

이것이 광야 여행 중에 만나는 불뱀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미워서 불뱀을 일부러 보내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떠나면 그러한 광야 인생길에 더 큰 시련이 온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어려움을 제거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신다.
그대신,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운 길 가운데 함께 하시고, 힘 주시고, 해결책을
이미 다 마련하여 두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다.

불뱀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그것은 구리로 만든 놋뱀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선택은 두 가지. 그 은혜의 복음이 이스라엘에게 왔을 때에 그것을 믿고
감사하며 쳐다보는 사람들은 병에서 나음을 입었고,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불평 속에서 사로잡힌 사람들은 놋뱀을 쳐다보지 않고 다 죽었다.

오늘도 그리스도는 우리를 부르신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라 초청하신다. 우리의 선택도 두 가지가 있다.
이 은혜로운 초청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
예수를 선택한 사람은 구원의 초청에 들어가는 것이요, 예수의 초청을
거절하는 사람은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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