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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5분)

 

기억절: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신 3:27)

 

연구범위: 민 20~21장, 요 3:14~15, 약 4:4~15.

 

안식일 오후

수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약속의 땅 남방 경계선인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다. 이제 그들은 힘든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신 교훈을 배웠을 것이다. 대담하게 반역을 일으킨 자들에게 내린 무서운 심판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분명히 여호와께서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는 도구로 준비되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준비되지 못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 백성의 불충성과 죄와 배은망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베푸시는 그분의 자비와 은혜에 대해 공부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계 3:14~18)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승리와 믿음과 성결의 약속을 주장하는 데 그토록 자주 실패한 백성을 그분께서는 어떻게 계속해서 자비와 은혜로 대하셨는지를 보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자들을 기꺼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모세는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으나, 연약한 순간에 교만을 나타내고 말았다. 그는 자기에게 그처럼 많은 일을 행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만약 모세가 넘어질 수 있었고 은혜가 필요했다만 나머지 우리들이야 얼마나 더 그러하겠는가?

 

핵심본문: 신 3:27

 

학습 목표

깨닫기: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기까지 거쳤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살펴본다.

느끼기: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함을 깨닫는다.

행하기: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심한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믿음의 보상과 불신의 비극

A. 전에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없음에 대해 진노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반석을 친 경우는 어떻게 다르며, 왜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도록 허락지 않으셨는가?

B. 아론이 죽기 전에 그의 대제사장 의복을 엘르아살에게 입히는 의식을 온 회중이 볼 수 있게 한 데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C.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으로 인해 독뱀이 그들을 공격하도록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여전히 소망이 있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은 왜 중요하며,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하셨는가?

 

II. 느끼기: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하나님만 바라봄

A. 지도자가 하나님께 믿음과 순종을 나타나는 것은 왜 중요한가?

B. 장대에 달린 뱀을 쳐다볼 때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며, 우리 삶에서 만나는 시련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게 되는가?

 

III. 행하기: 신뢰하고 순종함

A. 싸워야 할 때가 있고 싸우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 차이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요점: 약속의 땅으로 가는 우리의 여정은 철저한 신뢰와 순종에 달려 있는데, 그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일요일(11월 22일) 믿음의 거인들이 넘어질 때(민 20:1~3)

 

가데스바네아에서 물이 떨어졌을 그 때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과거에도 언제나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는데 이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를 잊어버리고 모세와 아론에게 달려와 해묵은 불평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1. 민수기 20:1~13을 읽으십시오. 모세는 여호와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 대신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이 온유하고 신실하며 헌신적인 하나님의 종이 이와 같이 믿음의 부족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민20:1-13 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백성이 가데스에 거하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답: 지팡이로 반석을 가리키라 하셨는데 두 번 쳤다. 그들이 부형들이 했던 똑 같은 원망을 듣고 모세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잊고 백성들에게 화를 내었다. 아마도 지금껏 고생한 모든 것들이 그를 압도했는지 모른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세의 좌절을 이해할 만도 하다. 첫째 그는 자기 누이를 막 장사지내어 마음의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백성이 쏟아 놓는 불평 곧 그들의 선조들이 수년 전에 하던 똑 같은 불평을 들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모세의 행동에 대한 변명의 구실이 될 수는 없었다.

“물은 군중이 넉넉히 마실 만큼 많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모세는 큰 과오를 범했다. 모세는 분노한 감정으로 말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분과는 거리가 먼 인간적 격정의 표출이었다. … 모세가 백성을 비난하기 위해 분노함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고 백성에게 해를 끼쳤다. 그는 인내심과 자제력의 결핍을 나타냈다. 그리하여 백성은 그의 과거의 행로를 하나님이 지도하셨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고 자신들의 죄를 변명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모세도 백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그들은 모세의 행위가 처음부터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을 통해 보내 주신 모든 책망을 거절할 구실을 발견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17). 가장 근실한 여호와의 종들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모세는 그처럼 큰 특권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그의 죄는 더 중한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수없이 목격하였음에도 자신을 높이고 말았다.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경고인가?

 

자제력의 결핍을 드러낸 모세

“모세는 백성 앞에서 큰 약점을 드러냈다. 그는 현저한 자제의 결핍을 보였고, 불평하는 자들이 가졌던 비슷한 정신을 나타냈다. 그는 대중들 앞에서 인내와 관용의 모본이 되었어야 했다. 회중은 그들의 실패와 불만, 그리고 불합리한 불평을 그의 편에서의 잘못 때문이라고 변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데 있었다.”(교회증언, 4권, 369-370)

 

<부가설명> 모세에게 내린 하나님의 결정은 모세나 오늘날 우리도 너무 가혹한 것같이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처음부터 종말을 보시는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은 결코 정당하지 않은 것은 없다. 모세도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로 이 사건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후대하셨다. 그를 부활시켰고 하늘에 데려가셨다. 모세가 거기서 얼만 큰 위로와 감격을 맛보았겠는가. 아마도 여호수아에게 인도되어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그가 들어간 하늘 가나안의 아름다움과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의 가나안을 보았을 것이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기가 지금 하나님과 함께 있는 그 하늘을 표상하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의 지도자가 된 사람들이 모든 경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의 근실한 종 모세도 연약한 순간에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대신 교만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경고가 되는가?

 

월요일(11월 23일) 아론의 죽음(민 20:23~29)

 

1. 민수기 20:23~29을 읽으십시오. 아론의 죽음에서 어떤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까? 우리가 주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간에 이 이야기에서 얻을 교훈은 무엇입니까?

민20:23-29 여호와께서 에돔 땅 변경 호르 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니라 가라사대 24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 25 너는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 산에 올라 26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 27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좇아 그들과 함께 회중의 목전에서 호르 산에 오르니라 28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 29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의 죽은 것을 보고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였더라.

 

답: 아론의 죽음은 세대교체를 의미했다. 그의 대제사장 예복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힌 것은, 비록 그는 죽을지라도 대제사장의 직무는 계속되어야 함을 암시하였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직분에 최선을 다함으로 그 책임을 벗는 날에는 후회함이 없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겠다.

 

민수기 20장은 미리암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아론의 죽음으로 마친다. 나이든 세대는 가고 새로운 세대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을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본다. 한 세대는 가고 다른 세대가 일어나 지도자가 된다. 중요한 질문은, 과연 새로운 세대가 이전 세대의 실패와 성공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느냐 하는 것이다.

미리암의 죽음과 아론의 죽음 사이의 차이점을 주목해 보라. 미리암의 죽음은 짧은 한 절에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마치 그녀의 죽음이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닥친 것처럼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아론의 죽음은 분명히 미리 예고되었다.

아론이 죽기 전에 아론과 모세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호르산 꼭대기로 올라가 거기서 회중이 보는 가운데, 모세는 형의 제사장 의복을 벗겨 그의 조카 엘르아살에게 입혔는데, 이는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권한이 위임되는 것을 상징하였다. 비록 아론은 곧 "열조에게로 돌아갈" 것이지만 대제사장의 직무는 계속되어야 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사업과 사명은 어떤 개인보다 크고 위대하다. 우리는 신실하게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조만간 우리는 무대 뒤로 사라질 것이고 다른 이들이 우리가 떠난 자리를 이어갈 것이다.

아론의 죽음을 지켜본 이들이 얼마나 슬퍼했을지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모세는 자신의 죽음도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는 형의 몸에서 거룩한 의복을 벗겨 자신의 조카인 아론의 아들에게 입혔다. 아론은 아마도 자신의 몇 가지 과오에 대해 몹시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다. 그의 앞에는 엘르아살이 서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이제 그는 대제사장의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개되는 모든 일들을 산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론의 죽음에 대한 모세의 슬픔

“온 회중이 아론을 위하여 슬퍼했으나 그들은 모세만큼 그런 통절한 손실을 느낄 수 없었다. 아론의 죽음은 모세에게 자신의 종말이 가까움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짧음을 알수록 그처럼 장구한 세월 동안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공포를 같이 겪은 충실한 친구 아론을 잃은 것을 슬퍼하였다. 그 사업을 모세는 이제 홀로 계속해야 했으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친구이심을 알고 더 열렬히 하나님을 의지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27)

 

<부가설명> 가나안 변경에서 아론은 죽었다. 조금만 더 살았으면 그리던 그 가나안을 봤을 것인데, 그러나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영원한 가나안에 있을 것이다. 아론과 모세의 종말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사람들이 끝 날까지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아무리 충성스러웠더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면 가나안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자기의 충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보증표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20:12)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도리를 근원부터 자세히 깨닫고 그 구원의 도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 된 그 생명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믿음으로 충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지.

 

교훈: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을 때에 모세는 형 아론의 대제사장 의복을 벗겨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혀 주었다. 아론의 죽음은 세대교체를 의미했다.

 

화요일(11월 24일) 배은망덕의 죄(민 21:1~5)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땅을 통과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멀리 돌아가야만 했다(참조 민 20:14~21). 에돔 사람들은 사해에서 남쪽으로 아카바 만에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1. 사람들은 또 무엇을 불평했습니까?(민 21:1~5). 그들이 지금까지 경험한 것에 비추어 볼 때 그 불평은 정당한 것이었습니까?

민21:1-5 남방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2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붙이시매 그들과 그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답: 길을 인하여 불평하였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의지한다면 불평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

그들이 아무리 많은 불평의 이유를 댄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날마다의 여행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의 기적으로 보호를 받아왔다. 그들은 사막에서도 필요한 물을 공급받았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 곧 “천사의 양식”(시 78:25)을 먹었으며, 낮에 그늘을 제공하는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 덕분에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내왔다. 백성 중에는 아무도 몸이 약한 사람이 없었으며, 기나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은 부르트지 않았고 그들의 옷은 해어지지 않았다(민 8:3~4, 시 105:37). 의심할 바 없이 물론 그들도 우리처럼 문제와 시련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문제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렇게 오랫동안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은 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선하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며, 의례히 베풀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서 감사함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하자 그들은 너무나 쉽게 은혜를 망각하게 되었다.

 

2. 우리의 삶에서 당연히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왜 어리석은 일입니까?

답: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대신 불평거리를 찾아 그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성토하기를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 20:5)라고 하였다.

공기, 햇빛, 비, 바람, 물, 식물 등등 많다. 이것들은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항상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으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위하여 공급하시는 줄 깨달아야 한다.

 

배은망덕에 대한 유일한 치료책은 날마다 여호와께서 베푸신 것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찬양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에 목말라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찬양하는 만큼 그것을 통해 그분의 고마우심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말할 수 없이 크다. …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하신 일을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여러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의 선하심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지나쳐 버린다.”(엘렐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4권, 1143)

 

<부가설명> 감사하기 때문에 감사하게 되지만 그것은 감사할 일들을 더 분명하게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질 때 불평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은 없다. 다 창조주께서 그의 피조물들의 필요를 위하여 미리 창조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 한 모금을 마셔도 감사할 수 있다. 그것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물 때문에 고통당하는 나라와 지역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의 존재와 생명, 생활할 수 있는 여건들, 지식과 문화, 나와 나의 주위에 어느 것 하나 받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감사할 것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그러나 이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감사대신 불평이 나오게 된다.

 

교훈: 하나님께서 지난 날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를 표현할 때에 우리의 입술에는 불평이 사라지고 더 많은 감사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수요일(11월 25일) 불뱀(요 3:14~15)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확실한 불평의 이유를 가졌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불평에 동조하지 않으셨다. 광야를 배회하는 그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았으나 그들은 반복하여 자기들을 광야로 끌고 와서 죽이려 한다고 해묵은 불평을 늘어놓았다. 여호와께서 동조하지 않으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불평이 더욱 나쁜 것은 그들이 방금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 큰 승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1. 민수기 21:5~9을 읽으십시오. 여기에 중재자로서의 모세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특히 이제 이 백성은 왜 중재자가 필요하게 되었습니까?

민21:5-9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답: 모세는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불 뱀에게 물린 사람들만을 위하여 기도한 것이 아니다. 백성들은 다 하나님을 원망하므로 범죄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그 원망의 결과가 죽음으로 다가왔다. 생명을 위한 중재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팔레스틴에는 약 35종의 뱀들이 서식하고 있다. 어떤 뱀은 독이 아주 강한데, 떼 지어 몰려다니는 독뱀에 물리면 고통이 지독하기 때문에 '불뱀'이라고도 불렸다.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이스라엘에게서 거두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독 있는 생물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뱀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분의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자 그 결과로 그들이 고통을 당한 것이다.

 

2. 예수께서는 이 불뱀의 사건과 구원의 계획을 어떻게 연결시키셨습니까?(요 3:14~15). 우리도 불뱀에 물린 존재들입니까?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으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예수님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인류는 아담으로 인하여 다 뱀에게 물린 존재들이다. 여자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한 것은 뱀이었다. 그것은 곧 옛 뱀 사담이요 마귀이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후손들은 다 뱀에게 물려 죽은 상태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놋뱀을 장대 위에 다는 것만으로는 뱀에 물려 죽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것을 쳐다보아야만 했다. 그들은 순종하기로 선택하고 그들을 위해 제공된 유일한 해결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죽음 자체가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는다. 그분의 죽음이 구원의 수단으로 제공되었으나 광야의 백성이 놋뱀을 쳐다보았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서 값없는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을 받아들이기 위해 믿어야 한다.

 

기적적으로 보호를 받음

“그들의 배은망덕한 태도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만을 징계하기 위하여 주께서는 불뱀이 그들을 물도록 허락하셨다. 이 뱀들을 '불뱀'이라고 부른 것은 물리면 살이 불에 타는 것 같이 아프고 속히 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로 이 뱀들에 물리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여행하는 광야에는 독뱀들이 득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1권, 1116)

 

<부가설명> 이스라엘 민족이 통과한 광야는 사람 살 땅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출16:35) 그러므로 거기는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곳을 40년간 지날 동안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없었으면 그들은 결코 생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이 모든 위험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그들이 가기에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셨다. 그런데 그 길에 대하여 불평하였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던 손기를 잠깐 거두셨다. 그들이 지나는 지역이 어떤 지역인지를 확인해보도록 하신 것이다. 손을 떼자마자 그 지역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독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피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독사에게 물렸을지라도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여셨다.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뱀인 사단에게 물려 시한부 생명을 가지게 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사건이며, 뱀을 쳐다본 사람이 치유되고 생명을 유지했던 것처럼 누구든지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 없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교훈: 불뱀에게 물린 이스라엘 백성은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봄으로 살 수 있었다. 우리도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아야만 살 수 있다.

 

목요일(11월 26일) 초기 정복(민 21:10~35)

 

약 4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같은 지역에서 가나안 족속을 공격하려 했을 때는 크게 패배했었다(민 14:40~45). 그 세대는 40년간 광야를 방황하다 죽었고, 이제 새로운 세대가 선조들이 떠난 자리를 이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1. 민수기 21:10~35에서 히브리인들은 이방 왕 시혼에게 어떤 약속을 하였습니까? 그들은 이 약속에서 무엇을 제안하였습니까? 그러자 누가 누구를 공격했습니까?(23절)

민21:10-35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오봇에 진쳤고 11 오봇에서 진행하여 모압 앞 해돋는 편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쳤고 12 거기서 진행하여 세렛 골짜기에 진쳤고 13 거기서 진행하여 아모리인의 지경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건너편에 진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것이라 14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15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16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17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가로되 우물 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18 이 우물은 족장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홀과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19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20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21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22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 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대로로만 통행하리이다 하나 23 시혼이 자기 지경으로 이스라엘의 통과함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24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파하고 그 땅을 아르논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25 이스라엘이 이같이 그 모든 성읍을 취하고 그 아모리인의 모든 성읍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에 거하였으니 26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라 시혼이 모압 전왕을 치고 그 모든 땅을 아르논까지 그 손에서 탈취하였었더라 27 그러므로 시인이 읊어 가로되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28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 29 모압아 네가 화를 당하였도다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멸망하였도다 그가 그 아들들로 도망케 하였고 그 딸들로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포로가 되게 하였도다 30 우리가 그들을 쏘아서 헤스본을 디본까지 멸하였고 메드바에 가까운 노바까지 황폐케 하였도다 하였더라 31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하였더니 32 모세가 또 보내어 야셀을 정탐케 하고 그 촌락들을 취하고 그 곳에 있던 아모리인을 몰아내었더라 33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35 이에 그와 그 아들들과 그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 땅을 점령하였더라.

 

답: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 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대로로만 통행하리이다 하나”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그 땅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나(민 21:22), 아모리 왕은 거절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왔다.

 

2. 이스라엘 백성이 시혼 왕을 대한 것과 옥 왕에게 한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답: 바산 왕에게는 시혼에게 한 것과 같은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냥 이스라엘 백성이 바산 길로 올라갔으며 바산 왕 옥은 군대를 이끌고 그 성에서 나와 싸우려 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치고 그 땅을 점령하였다.

 

“가나안 국경에 있는 이 민족들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여 이스라엘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멸절되지 않았을 것이다. … 원래 아모리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었으며 큰 죄를 범하였으므로 전멸되는 것이 당연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4백 년 동안이나 자비를 베푸셨다. …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실 때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434)

이 두 족속에 대한 전략의 차이점을 주목해 보라. 옥 왕에게는 그의 땅을 평화롭게 통과하게 해 달라는 예의바른 요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호와께서 “높은 성벽이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한(신 3:5) 그 성으로부터 그 왕과 그의 군대를 이끌어 내셨다. 그들이 요새를 떠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인도와 약속을 따라 옥 왕과 그 군대를 들에서 진멸하였다.

요단 건너편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왕들인 시혼과 옥을 이긴 승리는 노래로 불려지고(시 135:10~12) 민족적인 기념이 되었다.(삿 11:18~22)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

“광야에서 방황하는 사십 년간,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에 충실하셨다. 그분에게 순종한 자들은 약속된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이 언약은 여전히 힘이 있다. 순종을 통해 우리는 하늘의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설교와 강연, 2권, 228)

 

<부가설명> 가나안 변경에서 강력한 두 왕국을 정복한 것은 가나안 정복이 어려운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였다. 강력한 그들을 이긴 것은 그들이 전술이나 전략이나 군사력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한 것이며, 초기 전쟁의 승리였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 초기에 닥치는 거인 같은 대적들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면 신앙생활이 승승장구하기 쉽다. 그러나 초기 시험에 패배하면 신앙생활은 자기도 모르는 어떤 공포로 위축되며, 시험이 닥치면 승리하는 일이 어렵게 된다. 시혼과 옥을 이긴 사실은 우리 신앙생활의 초기부터 주님으로 인하여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아모리 족속에 대해 승리를 거두게 하셨다. 이것은 가나안 정복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첫 번째 승리였다.

 

금요일 (11월 2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제37장 '침을 당한 반석'(411~421), 제38장 '에돔을 돌아서'(422~432), 제39장 '바산을 정복함'(433~437).

 

“구주께서 거듭남에 대하여 니고데모에게 설명하였을 때에 그는 이 변화가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갈망하였다.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어서 회중 가운데 높이 달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진중에서 놋 뱀을 쳐다보는 자는 모두 살 것이라는 말이 전해졌다. …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에나 그들의 죄를 용서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이는 것 외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쳐다봄으로 살 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174~17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불뱀의 이야기에서 믿음에 관해 생각해 보십시오. 즉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놋뱀을 쳐다봄으로 살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생명이 초자연적인 활동에 의존하고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것은 구속의 계획과 어떤 면에서 유사점을 가집니까?

* 구속은 인류가 아담 안에서 이미 죽은 자가 되었는데, 다만 그 집행이 유예된 상태에 있을 뿐이다. 그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구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을 때만 가능하다. 우리의 존재나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창조주께서 주시는 은혜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2.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혹은 교회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자신의 영적인 취약점을 직시하기가 왜 그렇게도 어렵습니까?

* 사람들은 이미 있는 것들 중에 태어나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다 으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세뇌되어버린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기가 어려운 것이다. 구원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안에서만 얻는 것을 인간의 노력과 공로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적 취약점 중에 가장 깨닫기 어려운 것은 죄를 짓거나 연약한 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노력하고 애씀으로 경건하고 거룩하여지고 완전하여진다는 사고방식과 또 그렇게 되는 것 같아 보이는 상태가 허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잘 하는 것이며 승리하는 신앙생활 같아 보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시야에서 놓치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함정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신앙생활 초기에 믿음으로 승리하는 경험이 아주 중요하며, 날마다 주위에 공급되어 있는 것들에 대하여 진정으로 감사하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짐해본다. 그래서 날마다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승리하는 기쁨을 감사함으로 누려야겠다.

 

요약: 민수기의 이 부분은 40년간의 방황이 끝나는 시점에 해당한다. 모세와 아론은 그들의 누이 미리암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여호와께 대한 반역에 대해 분노하였다. 그 후에 불평하던 회중은 불뱀에게 물리게 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세우게 하신 놋뱀을 믿음으로 쳐다볼 때에 그들에게 육체적 및 영적인 치유가 일어났다. 이 겸비케 하는 경험 후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아모리 족속을 정복하고 그 땅을 점령할 수 있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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