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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5분

 

기억절: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 활기찬 토의를 위해 ‘토의를 위한 질문’을 적극 활용합시다.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레 23장, 마 19:17, 행 15:1~29, 갈 1:1~12, 히 8:6, 계 12:17.

 

기독교의 첫 번째 회심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신약성경에는 그들이 할례를 포기했다든지 유대교 절기를 무시하도록 요구받았다는 어떤 암시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범위까지 유대 법을 지켜야 하는가?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 총회가 소집되었다(행 15).

이방인들을 율법과 규례의 무거운 짐으로 괴롭게 하지 말자는 공회의 강력한 결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교사들은 믿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할례를 행하고 율법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형태만 다를 뿐이지 오늘날도 동일한 문제가 존재한다.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신자로서 십계명에 순종하며 안식일을 고수하는 경향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유대주의자나 율법주의자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가? 또한 이제 신약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안식일 계명과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듣고 있는가? 반면 더 많은 구약의 율법과 규범들을 준수하려는 자들의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로마서는 당시의 교회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기별을 전하고 있다.

 

|핵심본문| 요1:17

|학습목표|

깨닫기 : 율법주의와 믿음으로 얻는 의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느끼기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옹호했던 사도 바울과 초기의 지도자들의 노고를 인정한다.

행하기 : 각자의 삶이 빛의 증거, 은혜의 능력과 함께 순종을 위한 선물로서 역할을 다하는지 점검한다.

 

교과 개요

01. 깨닫기: 행위로 돌아감

A. 어떤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 신자들도 유대인의 법과 전통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어떤 이들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가?

B. 바울과 다른 지도자들은 교회의 첫 번째 분란을 어떻게 수습하였는가?

 

02. 느끼기: 더 좋은 약속

A. 바울과 교회 지도자들이 이방인들로 하여금 과도한 종교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던 이유는 무엇인가?

B. 신자들에게 주어진 더 좋은 약속은 무엇인가?(히 8:6) 교회가 여전히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규례들은 무엇이었는가?

 

03. 행하기: 은혜를 붙잡음

A. ‘전통’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그대의 입장은 무엇인가?

B.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은 그대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C. 그대는 일상생활과 선교활동을 통해서 어떻게 은혜의 중요성을 옹호하고 있는가?

 

요점: 초대 교회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과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대신 우리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일요일(7월 4일) 더 좋은 약속

 

❶ 히 8:6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이 전하는 기별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더 좋은 약속”이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까?

[히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답: 예수께서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다는 기별이며 그것은 곧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는 것이다. 더 좋은 언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것이다.

 

구약 종교와 신약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신약이 메시야, 즉 나사렛 예수의 출현으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세상의 구주로서 하나님으로 부터 보내심을 받았다. 그분 없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그가 베푸는 속죄를 통해서 인간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 오직 그의 완전한 삶의 전가를 통해서 인간은 정죄함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예수의 의가 아니면 구원은 이루어 질 수 없다.

구약의 성도들도 메시야 시대의 축복과 구원의 약속을 내다보았다.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또는 구세주로 영접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께 헌신한다면 값없이 주시는 의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율법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품성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유효하였다. 도덕적 율법에 대한 순종은 구약과 마찬가지로 새 언약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❷ 다음 신약의 말씀들은 도덕적인 법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마 19:17, 계 12:17, 14:12, 약 2:10~11.

[마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약2:10,11]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답: 성경의 도덕법들은 아직도 유효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지키게 된다. 거듭난 사람들은 그 생명의 성질이 하나님의 계명이 되기 때문이다.

 

제사제도와 의식법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종교 문화였으며 옛 언약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가리키고 있었던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대제사장으로서의 봉사를 통하여 종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좋은 약속”에 기초한 새 질서가 소개되었다.

로마서의 주된 목적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환되는 것과 관련된 문제들을 이해 할 수 있도록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돕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전환을 위해서는 많은 이해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표상의 실체이신 그리스도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사망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가리킨 모든 예언들을 성취하셨으며 모든 예표와 표상된 그림자들의 실체이셨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31)

 

<부가설명>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 내용은 출애굽기 19장부터 24장까지 읽으면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스라엘 민족에 실행할 때 이루어지는 언약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5,6) 이스라엘 자손은 이 말씀을 듣고 한 목소리로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19:8)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을 확인하시고 20장에서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반포하셨다. 십계명은 언약의 말씀이다.(신4:13) 출애굽기 19장부터 24장까지 이런 대답을 세 번이나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리시고 40일을 같이 있었고 십계명 돌비를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40일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이 준행하겠다고 약속한 언약을 깨뜨렸다. 인간이 자력으로 행하여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좋은 언약을 체결하시는데 그것은 예수님과 맺은 언약이다. 예수께서 인류를 대신하여 언약을 이루시는 것이며 예수께서 이루신 이 사실을 믿을 때 그들이 예수 안에서 언약을 이룬 사람으로 여김을 받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언약을 다 이루셨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진정으로 믿으면 된다. 그러면 그 좋은 언약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어 더 풍성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된다.(요10:10)

 

교훈: 신약 교회는 구약 교회보다 더 좋은 약속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하지만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도덕적 요구에는 변함이 없다.

 

월요일(7월 5일) 유대인의 법과 규례

 

❶ 시간이 있으면 레위기를 훑어보십시오. 특히 레 12장, 16장, 23장을 보십시오. 레위기 에 나오는 모든 규례와 의식들을 볼 때에 어떤 생각이 듭니까? 많은 것들이 신약 시대에 중단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레위기에는 다양한 율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율법의 구체성은 마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다양한 사역이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제사와 관련된 법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성취되었고, 그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성전봉사는 실제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레위기 12장은 아기를 낳은 여자들이 어떻게 정결 예식을 하는지 가르친 것이고, 16장은 대속죄일 제사에 대한 것이며 23장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절기들에 대한 것이다. 이것들은 다 예수께서 이루실 구원사업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고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몸은 그리스도이시다.(골2:16,17)

 

구약의 율법들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범주로 구분될 수 있다. 1) 도덕법, 2) 의식 법, 3) 시민법, 4) 각종 규례와 법도, 5) 건강법.

이런 구분은 인위적인 면이 있다. 사실 각 범주는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중첩되어 있다. 구약 백성들은 그것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지 않았다.

도덕법은 십계명으로 요약된다(출 20:1~17). 십계명에는 인간들이 지켜야 할 도덕적인 의무들이 요약되어 있다. 이 열 개의 조항으로부터 모세오경의 수많은 규례와 법도들이 확대 적용되었다. 심지어 시민법조차 도덕법에 기초되어 있다. 시민법은 이웃과의 관계, 공적 권위에 대한 시민들의 의무들을 정의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위반 사항에 대한 처벌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의식법은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제의(祭儀)에 관한 규정들과 여러 제사들 그리고 백성 개개인의 책임들을 다루고 있으며, 지정된 절기를 준수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건강법은 다른 법들과 함께 다뤄지고 있다. 부정과 관련된 여러 규례들은 제의적인 부정을 정의하고 있지만, 위생과 건강의 원칙까지 포함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고기에 관한 규정은 건강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체로 유대인들은 이 모든 율법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달된 하나의 꾸러미라고 인식하였지만, 개념적인 구분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전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다른 율법들은 모세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제사제도는 성소가 운영되는 동안만 준수될 수 있었다. 시민법의 경우 유대인들이 독립성을 잃고 다른 나라의 식민 지배를 받은 이후로는 거의 적용될 수 없었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제사법도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었으며, 메시야가 등장한 이후에 표상들이 원형을 만남으로써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의문의 율법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의문의 율법에는 어떤 효력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의문의 율법은 도덕적인 율법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영광스러웠다. 그 전체가 신성(神性)의 표적을 지니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과 의로우심을 나타냈다. 폐지되어야 할 율법의 직무가 그처럼 영광스러웠거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고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시고 성화케 하시는 성령을 주실 때 그 실체(實體)는 얼마나 더욱 영광스러웠겠는가?”(가려 뽑은 기별 1권, 238)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셔서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오경을 기록하게 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을 인류가 깨닫기를 원하신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하시는 구원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그 일을 이 세상에 이루는 도구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택하신 것이다. 그들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자세하게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 법칙도 되게 하신 것이다. 그들의 생활법칙을 통하여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를 설명해 주신 것이다. 그것이 교과에 구분해 놓은 법규들이다. 즉 1) 도덕법, 2) 의식 법, 3) 시민법, 4) 각종 규례와 법도, 5) 건강법 등이다. 이것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도리를 사람들이 깨닫고 그 길을 받아들여서 영생에 이르기를 소원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것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를 깨닫게 하는 것들이다. 도덕법은 범법할 때 죄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의식 법은 죄를 어떻게 처리하는 지를 가르치는 것이며, 시민법은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또 각종 규례와 법도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며 정결하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고, 건강법은 하나님의 백성의 몸이 정결하고 건강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백성은 심신이 다 정결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들이 다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하는 것들이며,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도덕법이 마음과 생각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훈: 율법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왔지만, 그 가운데 어떤 율법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반면 십계명은 여전히 유효하며 중요하였다.

 

화요일(7월 6일)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❶ 행 15:1을 읽으십시오. 의견 차이를 야기시킨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이것이 단지 유대 국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창 17:10 참조)

[행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라.

[창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답: 안디옥을 방문한 어떤 유대인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구약의 제도들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도들이 안디옥에 있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들과 협력하여 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 바리새인들의 분파로서 유대 지역에서 온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내부에 논쟁을 확산시키고 이방인 신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교사들은 할례와 구약의 모든 의식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확신하며 그것들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의식들에 관하여 항상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기독교로 개심한 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친히 제시하신 예배의 어떤 변화도 인정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의 율법과 의식들이 기독교의 의식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고집하였다. 그들은 모든 희생 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예표 했으며, 표상이 원형을 만나면 율법시대의 제의들은 더 이상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분별하는 데 더뎠다.

 

❷ 행 15:2~12을 읽으십시오. 이 논쟁은 어떻게 진정되었습니까?

[행15:2~1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답: 바울은 이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로 가져갔다. 교회 안에 다른 의견이 있었으나 베드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상기시켰다. 이 총회는 기독교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확산시키는 일에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바울은 직접적인 지도를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향하는 반면, 항상 교회의 교제를 통해 연합을 이룬 신도들의 몸, 즉 교회에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는 자문이 필요함을 느꼈고, 중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이것들을 교회 앞에 제출하여 형제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기를 기뻐하였다.”(사도행적, 200)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종종 자신의 선지자적 부르심과 예수님과의 만남과 사명에 대하여 언급하면서도 광범위하게 교회를 위해 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의 부르심이 어떠하든 그가 전체 교회의 일원이며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세계 교회와 협력하여 일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실한 대면을 외면하지 말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으며 저들의 의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었고 저들의 희생 제물과 예물들이 그 중대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완고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저들 스스로 가리운 수건은 아직도 저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만약 저들이 율법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 수건은 벗겨질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39)

 

<부가설명> 구원은 하나님의 창조역사이다.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사45:8) 창조에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외에 함께 할 수 있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해야 할 어떤 역할도 없다. 왜냐하면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무엇을 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할 수 있다면 썩는 것뿐이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실 때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원리를 몰랐다. 에스겔을 통하여 이상의 골짜기에 심히 마른 뼈들에 대한 계시를 주셨는데도 그 본래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아직도 살아서 무엇을 행하여야 구원을 얻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상은 지금도 여전히 재림교회 안에 도사리고 있다. 깊은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주신 모든 제도의 법들과 기타 모든 법규들이 구원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창조의 방법을 가르쳐준 것인 줄 그들이 몰랐다. 혹시 우리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올바르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유대인 신자들의 주장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세계 교회를 통해 이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수요일(7월 7일)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

 

❶ 행 15:5~29을 읽으십시오. 총회가 내린 결론은 무엇이며, 그 논리는 무엇이었습니까?

[행15:5~29]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26 (25절에 포함되어 있음)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답: 사도들은 할례와 모세의 법을 이방인들에게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은혜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영적, 도덕적 순결을 강조하는 몇 가지 지침을 제안하기로 하였다.

 

결론은 유대주의자들의 의견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유대주의자들은 이방인 신자들도 할례를 받고 모든 의식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유대인의 율법과 의식이 그리스도교의 의식 속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사도행적, 189)

10절에서 베드로가 구약의 율법들을 짊어질 수 없는 “멍에”로 묘사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주님께서 백성들의 멍에가 되도록 그러한 율법을 제정하셨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대신 오랜 세월 동안 종교 지도자들의 구전을 통해서 내려온 많은 율법들이 처음에는 축복이었지만 점차 짐으로 변했을 것이다. 예루살렘 총회는 이런 짐으로부터 이방인들을 보호해 주려고 노력하였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여기서 이방인들에게 십계명 준수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를 멀리하라”고 말한 총회가 간음이나 살인을 금하는 계명의 폐기를 수용했다고 상상할 수는 없다.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어떤 규칙들이 적용되었습니까? 행 15:20, 29. 특별히 이런 항목 들이 채택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행15:20,29]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답: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 하는 것이 옳으니”(행 15:20). 이것은 신앙생활의 순결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길이다. 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조화를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이기도 하다.

 

유대인 신자들은 그들의 율례와 전통을 이방인들에게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이방인 신자들은 예수 안에서 함께 연합해야 할 유대인들에게 거리낌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행하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사도와 장로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의 고기를 삼가고 간음과 목매여 죽은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교훈하는 데 동의하였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안식일 준수가 특별히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이방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짓말이나 살인을 금하는 계명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논쟁은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1

“건조한 이론이 제시되고 있지만 귀한 영혼들은 생명의 떡이 없어 굶주리고 있다. 이런 설교는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늘의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모습이 백성들 앞에 계속 제시되어야 한다. . . . 그분을 바라봄으로 인간은 그분을 공경하고 그분께 더욱 매료되고 이끌릴 수밖에 없으며, 그분의 형상에 동화되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기까지 그리스도와 같아지기를 더욱 소망하게 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169)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도들은 멍에가 아니라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곧 구주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진정한 의미를 잃고 율법의 형식에만 매일 때 그것은 멍에가 된다. 유대인들은 구원을 가리키는 율법을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가르쳤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모든 율법을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이 창조라는 것을 전혀 모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해석해서 멍에가 된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신 후이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여도 구원의 공로가 되지 않는다. 멍에만 될 뿐이다.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생명으로 옮긴 사람은 생명의 본질인 사랑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상태이다.(요일3:14, 히10:16)

 

교훈: 왜곡된 종교적 의무들을 이방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복음의 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율법의 사상은 여전히 존중되어야 했다.

 

목요일(7월 8일) 갈라디아의 이설

 

총회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방인들도 유대인의 전통과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순수한 믿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가볍게 다룰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갈 1:1~12을 읽으십시오. 바울은 갈리디아에서 직면한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까? 본문은 이 문제의 중요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갈1:1~12]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답: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강력하게 호소하며, 갈라디아 교인들이 진정한 복음에서 물러나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사실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갈라디아서는 로마서보다 훨씬 이전의 상황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주제를 더욱 발전시켜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유대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으며 이방인 신자들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진정한 위치와 기능을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에서 했던 것처럼 로마에서 발판을 마련하지 못 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의식법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도덕법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묻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쟁점은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를 받고 모세의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의무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총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이미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 결정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읽고 어떤 이들은 도덕적 법과 십계명(특별히 제4계명)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이상 유효 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신의 핵심과 역사적 정황 그리고 바울이 다루고자 했던 문제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지 율법 심지어 도덕법을 지킴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도덕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십계명에 대한 순종은 다뤄지지 않았다. 문제를 그렇게 끌고 가려는 자들은 바울이 다루지 않은 현안을 본문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2

“우리들은 바라봄으로 변하게 된다. 거룩한 모본이신 주님의 완전하심을 명상할 때에 우리들은 완전한 변화를 입으려는 욕망을 품게 될 것이며 주님의 순결하신 형상을 따라 새로 지음을 입게 될 것이다. 품성의 변화가 이루어지며 진노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때문인 것이다.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가게 되며 신령하게 되어 신령한 사물들을 분별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정신을 일깨워 주며 하나님의 율법의 기이한 이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38)

 

<부가설명> 구원을 받는데 인간의 공로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이단이며 다른 복음이다. 이미 앞에서도 말했듯이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기 위하여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아담이 흙으로 있을 때 사람이 되기 위하여 흙 한 덩어리가 노력했는가? 아니다. 사람은 아담이 범죄했을 때 아담과 함께 아담 안에서 다 흙이 되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한 말씀으로 분명하게 가르쳐주셨다.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흙덩어리일 뿐이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재창조되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을 때, 그는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 그때 하나님의 법이 그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되어서 그의 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계명이 된다. 즉 life style이 하나님의 계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느냐 안 지켜도 되느냐는 논의는 구원의 실상이 무엇인지 모를 때 나오는 논제이다. 구원을 받기 위하여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 아니 율법을 지킬 수도 없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이 그의 생명의 성질이 되기 때문에 생활 자체가 계명을 실행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교훈: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금요일(7월 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사도행적, 188~192, 194~197 “유대인과 이방인”, 383~388 “갈라디아에서의 배교”, 부조와 선지자, 310~312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시대의 소망, 27~30 “선택된 백성”

 

“그러나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구원의 약속이 포함되었다면 왜 시내산에서 다른 언약을 세우셨을까? 백성들은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의 원칙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 . .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새겨져야 할 더 큰 진리가 있었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부패 가운데서 살았으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 찬 죄악,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기에 전혀 무능함, 구세주의 필요 등에 대하여 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그들은 배워야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371~372)

“예루살렘 신자들 중에서 일어난 거짓 교사들의 감화로 갈라디아 신자들 중에는 분열과 이단과 육욕주의가 신속히 유행하고 있었다. 이 거짓 교사들은 복음의 진리를 유대인의 유전과 혼합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의문의 율법의 준수를 주장하였다.”(사도행적, 38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대는 어떤 방식으로 교회나 가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멍에”를 짊어지게 합니까?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요? 반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져야 할 높은 부르심과 관계없이 우리의 생활 방식과 표준에 대하여 지나치게 느슨한 것은 아닙니까?

* 이 질문은 각 자가 대답해야할 내용인 것 같다. 우리는 때때로 믿음이라는 굴레를 씌우면서 활동할 것을 자극한다. “믿음이 없다”는 생각을 일어나게 한다. 열심을 내는 것은 좋지만 열심이 믿음의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믿음의 굴레를 씌우지 않을 때 전혀 주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소위 자유라는 이름으로 복음을 값싸게 여길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두 유형에서 벗어나서 정말 믿음으로 진리를 아는 자유로 충성해야 할 것이다.

 

2. 십계명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그런 주장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합니까? 그들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 잘못됐습니까? 그들이 실제 십계명을 완전히 무시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 십계명의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새 언약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한다. 십자가에서 율법이 완성되고 폐하였기 때문에 계명은 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랑하라 하셨으니 사랑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살인, 간음, 도둑질, 사기, 불효 등에 대하여 아주 강력히 정죄한다. 그것은 다 십계명의 내용들이다. 그들이 십계명을 폐했다고 주장하는 유일한 이유는 제칠일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서이다.

우리는 살인, 간음, 도둑질, 불효, 사기 등을 일상적으로 행하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겸손하게 물어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똑 같은 십계명의 한 계명이 안식일은 폐했다고 하는지 성경적 대답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새 언약이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는 것임을 성경으로 증거할 것이다.

 

3. 갈 1:1~12을 다시 읽고 복음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바울의 열정을 보십시오. 본문의 말씀은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는 구원의 복음을 우리 스스로 확증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타협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여야 한다. 성경에 계시된 복음을 성경이 해석하고 설명하는 대로 믿고 따르지 않으면 갈라디아의 저주가 임할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참으로 기도하며 올바르게 성경의 바른 길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다원주의 상대주의는 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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