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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일 안식일

일몰오후 635

 

연구범위 : 15:7, 7:7, 66:18, 1:6~8, 요일 5:14~15, 2:38

 

기억절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6~27).

 

진정한 영성과 기도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이다. 열렬한 기도생활 없이 진정으로 영적인 삶은 불가능하다. 회개의 필요성 다음으로 가장 절실한 필요 중 하나는 기도 생활의 부흥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성령의 도움 없이 홀로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이끈다. 기도는 그분의 임재 속에 들어가도록 우리를 끌어 올린다. 믿음의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에 반응하며 살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약속하신 복들을 주장할 때에 변화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풍성함대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능히 채우실 수 있다(4:19). 진실한 기도와 진정한 영성은 언제나 하나님을 관심의 중심에 두며 그분의 기록된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삶이 미덥지 못한 경험과 주관적인 감정에 기초하도록 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기도 생활이 미심쩍은 명상 습관에 치중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우리의 영성은 성경의 지도를 받아야 하며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우리의 간구 속에서 서로를 일으켜 세우고픈 열망을 일으키는 분은 성령이시다.

 

핵심요지

깨닫기 :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기도와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성을 깨닫는다.

느끼기 : 기도와 말씀 생활을 통해 성령의 임재를 더 깊이 경험할 필요성을 느낀다.

행하기 : 규칙적인 기도와 말씀 생활에 임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한다.

 

그대는 자신의 몸이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려면 어떤 습관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말씀을 따라 바른 건강관리를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 기본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똑 같이 영적 건강관리를 올바르게 해야 한다.

그대는 응답 받는 기도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성경의 약속들을 많이 알수록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그 약속을 따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생활에서 성령을 구하는 기도가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령께서 우리를 바른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결론 :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열망하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대사이자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겸손과 순종의 마음으로 기도와 말씀 연구를 통해 예수님과 교제할 때에 그분은 우리를 성령으로 채우십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은 결코 비밀이 아닙니다.

 

 

첫째 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

35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많은 이들의 기도가 경건의 모양으로 치장되지만 의심스러운 동기에 의해 드려지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생명을 보존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가 혼자 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이 성공하기를 기도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우리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도 우리 삶이 좀 더 편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너무도 자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우리가 원하는 것에 훨씬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는 초점이 다르다.

 

1. 15:7을 읽어 보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는 것이 왜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 중요한가?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초점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예수 안에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상과 뜻이 말씀대로 되어서 기도의 내용이 말씀대로 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함으로 먼저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 동행한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분이 우리의 삶 속에 오시면 우리는 그분이 바라시는 것을 행하기 원할 것이며 그분의 생각이 우리의 욕구를 다듬을 것이다. 하나님을 기도의 중심으로 삼으면 우리는 그분의 관점에서 기도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시선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의 기도를 고상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시다. 그분은 우리의 삶의 모든 측면 즉 우리의 두려움, 바람, 기대, 소망, 성공, 기쁨 등 모든 것에 동참하기를 열망하신다. 우리는 마치 친한 친구에게 하듯이 이런 것들을 그분께 말씀드릴 수 있다. 그러면 그분의 시선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킨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얼마나 감동적인 말씀인가!(영감의 교훈 참고) 이는 기도가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오직 기도를 통해 우리의 삶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그 임재의 보고를 열 수 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어느 정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가설명>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해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정로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주신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않는 기도는 응답되는 기도가 아니다. 그래서 기도는 성령께서 새롭게 작성해서 하나님께 올리신다. “모든 신실한 기도는 성령에 의해 작성되며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가납 받을 수 있다.(소망 189-2)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해서 바르게 간구하지 못할 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록 새롭게 작성해서 하나님께 올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렇게나 기도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교과의 가르침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서 그 말씀이 우리의 사상이 되고 생명이 되어서 말씀의 가르침대로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우리가 잘못 기도할 수 있다. 그럴 때 성령께서 기도를 받으시고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록 새로 작성해서 올리는 것이다. 진정으로 정직하게 간구하는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장 합당한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축복을 위하여 응답된다. 아멘.

 

교훈 : 우리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기도할 때가 많으나 하나님을 기도의 중심으로 삼을 때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주님과 더 깊은 관계 속에 들어갈 수 있다.

 

 

둘째 날() 성경적인 기도의 기초 : 하나님께 간구하라

36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

 

7:7을 읽어 보라.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것을 받기 전에 그것을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면 왜 우리가 간구해야 하는가? 간구는 우리의 소망을 나타내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드러낸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그분께 다가가며 그분에게 도움과 지원이 오기를 구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도록 공개적으로 그분께 우리를 맡기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께 간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이 약속하신 선물들을 받을 수 없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11:9~10).

 

1. 11:24과 요일 5:14~15, 66:18을 읽어 보라. 세상에 하나님이 이루시지 못할 너무 큰 기도 요청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풍성함으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너그러운 분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는가?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요일5:14,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만유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의 기도의 모든 것을 응답하실 수 있다. 그러나 구하는 자가 그분의 뜻대로 구해야 한다.

 

우리는 정말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할 수 있다. 그분에게는 너무 보잘것없거나 덜 중요한 기도는 없다. 그분이 처리하지 못할 큰 기도 요청도 없다. 그분은 전능하시다. 우리는 믿음으로 성경의 모든 약속을 주장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친히 주시는 약속된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후 1:20).

그런데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받으려면 충족시켜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지 않으려 한다면 또는 우리의 요청이 우리의 이기적이고 악한 욕망에 따르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59:1~2 참고).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순종하려는 우리의 자발성이다. “모든 하나님의 축복은 순종을 조건으로 약속된 것이다”(실물교훈, 145). 하나님이 관대하신 분임을 알 때에 우리는 그분께 담대하게 나아올 수 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맥없는 탄원으로는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그분은 믿는 모든 자들이 열렬함과 확신을 가지고 은혜의 보좌로 나아오기를 바라신다”(영문시조, 190187).

 

<부가설명> 우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바르게 기도하려면 성경이 제시한 기도의 공식을 무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교과가 지적한 조건들을 잘 기억해야 한다. 이 조건에 맞지 않으면 응답이 되지 않는다. 야고보는 이렇게 가르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4:3)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으나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자기 욕심대로 쓰려고 구하는 것은 받지 못한다. 그래서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을 잘 생각해야 한다. 조건을 따라 구해야 하는데 그 구하는 통로가 바로 기도의 공식이다. 예수께서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여,”(6:9)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성령 안에서 구해야 한다.(6:18) 그래야 성령께서 우리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재 작성하셔서 올리신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14:13,14) 이것이 기도 통로의 공식이다. 즉 아버지께 성령 안에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버지를 부르지 않는다. 그냥 하나님이라고 하든지 주님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공로로 기도한다. 그렇게 할지라도 진실된 기도를 성령께서 재 작성하셔서 올리겠지만 이런 기도는 성경적으로 고쳐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할 때 끝까지 아버지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바른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바른 공식을 따라서 기도하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 마칠 때 과거형으로 마치는 사람들이 많다. “기도드렸습니다.”라고 한다. 글쎄? 기도를 완료형이나 과거형으로

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기도를 끝까지 했으니 드린 기도가 이미 과거가 되었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마치는가? 기도는 지금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형으로 마치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동의하지 않으면 하는 수 없지만 이것은 필자의 생각이다. 참고할 수 있을까 하여 적었다.

 

교훈 : 간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약속을 주장하며 열렬히 구하는 기도는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셋째 날() 성경적인 기도의 기초 : 믿으라

37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4).

 

1. 11:24을 읽어 보라. 간구하는 것 외에 예수님은 기도와 관련해서 어떤 다른 요소를 언급하셨는가?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구한 것을 받은 줄 믿으라.

 

간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기도에 있어야 할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믿음이다. 히브리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11:6)한다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성경을 열어 3천 개 이상의 약속 가운데 하나를 찾아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우리를 위해 그 약속을 이루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가장 적절한 때에, 최선의 형태로 그 약속을 행하실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2. 1:6~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믿음이 부족한 자들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왜 믿음이 약속된 선물을 받는 전제조건인가?

[1:6~8]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 의심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확신이 조건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우리는 그분이 계신 것과 그분이 자신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실 분임을 믿어야 한다. 응답 받는 기도에는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믿음뿐 아니라 그분이 거룩한 뜻에 따라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동반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믿음은 신뢰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상대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그를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킬 것인지 의심을 품으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게 되며 그분에게서 어떤 것도 받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이 다르게 말할 때에라도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이 하신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이다(11:11).

믿음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6:18) 분임을 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13:8). 믿음은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1:37). 믿음은 하나님의 보물 창고 문을 연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말씀을 믿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가 믿음을 통하여 전능하신 분의 팔을 움직인다.

 

<부가설명> 사라들 사이에는 확신이 없어도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서로 비슷한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처럼 상대도 내게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 그런 상태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그분은 자기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6:17,18)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은 약속과 맹세이다. 하나님은 친히 하신 약속을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맹세로 보증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큰 안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에게 나오는 자들이 그분의 이런 성품을 반드시 신뢰하기를 기대하신다. 그런데 신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본성을 의심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여기는 것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기도가 응답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도에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훈 : 우리는 간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어야 한다. 믿음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팔을 움직인다.

 

 

넷째 날() 성경적인 기도의 기초 :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라

38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기도한 것들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

 

1. 요일 5:14~15을 읽어 보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한 것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요일5:14,15]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사실이다. 들으셨다는 것을 확신하면 받았다는 확신을 할 수 있다.

 

성경적인 기도의 세 번째 특징은 받음이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약속을 믿은 다음 우리는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고 그것을 받기 전에 주시리라 믿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그 약속들에 몰두한다. “우리는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선물을 얻고자 기도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받은 줄로 믿어야 하며, 또한 그것을 인하여 감사해야 한다”(교육 258).

8:11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의 씨앗에 비유하신다. 사과나무 전체가 사과 씨 하나에 담겨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물은 그분의 약속 안에 담겨있다. 우리가 약속을 주장하고 벌써 받았다고 믿고 감사할 때에 우리는 그분의 약속하신 선물을 이미 소유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거나 느끼기 이전에 믿음으로 약속된 선물을 받는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부활한 나사로의 일화는 예수님이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잘 예증한다. 예수님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셨다. 11:11에 따르면 그분은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으며 순종하셨다. 11:39~41에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아직 무덤 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를 부활시키시기에 앞서 아버지께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께 감사했을 때에 예수님은 기도 응답을 받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설명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 위에 살아야 한다. 비록 우리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분의 약속들을 믿을 수 있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오래 전에 쿤 목사님이 주장했던 ABC 기도를 여기에서 가르치고 있다. ABC 기도란 구하고 믿고 주장하라는 것이다. ask, believe, claim의 첫 글자를 따서 ABC 기도를 주장했다. 그때 성경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3000개 이상 있다고 강조한 것을 기억한다. 오늘 교과는 월요일이 ask, 화요일이 believe, 수요일이 claim이다. 영문 교과에 그렇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으나 내용이 그렇다. 이 주장은 성경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신다고 맹세로 보증하셨다.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구한 것은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claim은 비행기에 화물을 싣고 목적지에 내린 후에 짐 찾는 곳에 가서 화물을 찾는데 그곳을 baggage claim이라고 한다. 내 짐을 찾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처럼 믿고 기도한 것은 나의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이제 내 것이니 달라고 주장하라는 뜻이다. 건방지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약속을 지적하면서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기도에 이런 절차를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있는 연약성 때문이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서 기도하는 자신을 자세히 살피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자세로 믿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내려오시게 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그분에게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93)

 

교훈 : 응답 받는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그 약속을 주장하며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는 기도이다.

 

 

다섯째 날() 성령을 구하는 기도

39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3:16).

 

1. 3:16과 행 2:38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는가?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성령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데 성령은 회개하여 예수 이름으로 침례 받아 죄 사함을 받을 때 성령께서 임하신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위태로운 시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이다. 그것은 성령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수 없다. 이 선물에 더 보태야 할 것이 없다. 신성 자체에 무엇을 더할 수 있겠는가? 성령과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충족된다. 성령을 얻는다면 다른 모든 복이 딸려온다.

그러나 성령의 선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을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기 교회의 시대처럼 우리는 먼저 회개하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예수님께 굴복시켜야 할 필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심지어 성령의 설득만이 우리에게 그러한 깨달음을 준다.

우리가 그분의 설득에 반응할 때에 성령이 우리 삶 속에서 이루시는 첫 열매는 회개이다. 우리는 겸손과 믿음으로 우리의 죄를 자백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타락했으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분이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죄 중에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열렬한 기도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한 조건을 성취해야 한다. 그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에게 기꺼이 성령을 주실 것이다.

다른 영적 사물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선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높이고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품성을 재생산하며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다. 따라서 공중 예배에서나 개인 예배에서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높이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2:18)되었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한 위이시다. 그분을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은 참으로 황송한 말씀이다. 그러나 같은 말로 아들은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셨다. 아들 역시 선물이라는 뜻이다.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고 하늘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삼위일명 하나님께서는 함께 일하시는데 아들은 주셔서 우리 대신 죽게 하셔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을 드러내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데 이 생명은, 생명의 성령께서 계속 유지시키고 풍성하게 하신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면 우리가 얻은 생명의 성장할 수 없고 더욱 풍성해질 수 없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을 보내셔서 그분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능력으로 살도록 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셨다. 우리를 성령께 굴복시킬 때 성령께서 우리를 주장하셔서 영생의 생명이 풍성하게 하시고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끄신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성경의 약속을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오늘 우리를 말씀대로 굴복하여 성령께서 우리를 전적으로 다스리도록 맡기자. 기도로 이것을 진지하게 간구하자.

 

교훈 :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최고의 선물은 성령이다.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굴복시킬 때에 하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주신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310

 

<실물교훈>, 139~149 “주기 위해 구함을 읽어 보라.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 영적인 능력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능력의 근원이신 분과 우리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그 능력과 하늘의 선물에 대한 약속은 부인하는 빈 그릇처럼 될 것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약속들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맞는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을지라도 응답을 받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의 기도가 즉각적인 응답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낙담하지 말라. 주님은 종종 기도 속에 속된 것이 섞여 있음을 보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만족시킬 것을 위해 기도하지만 주님은 그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요청을 성취시키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시험과 시련을 허락하여 겸손으로 이끄신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타락한 취향을 만족시킬 것들을 주지 않으신다. 그런 것들은 인간 종에게 해가 되며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욕을 돌리게 한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야망을 충족시키고 자화자찬을 위해 사용될 것을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뜻에 모든 것을 굴복시키면서 마음으로 순종하며 뉘우쳐야 한다”(In Heavenly Places, 8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기도가 어떻게 우리의 영적인 생활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까? 그대가 기도할 때에 그것은 그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칩니까? 그대는 기도하기 전보다 기도한 후에 어떻게 달라집니까?

기도는 신앙생활의 호흡이다. 호흡이 없으면 생명이 유지되지 않는다. 기도를 하면 예수님께 받은 부활의 생명이 풍성하여진다. 그 생명이 생활로 드러나게 된다.

 

아픈 자녀의 치유를 바라며 기도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열심히 기도했지만 아무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그대는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 되지 않았어도 내게 가장 유익하도록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전혀 모르고 자녀의 미래를 전혀 모른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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