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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5일

제4과 빛 가운데 행함- 그의 계명을 지킴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 2:3-

빛과 계명

물감의 삼원색은 자홍(magenta), 노랑, 청록(cyan)이고, 색광의 삼원색은 빨강, 파랑, 초록이다. 색광에서 초록과 파랑이 만나면 밝은 청녹색이 되고, 초록과 빨강이 만나면 밝은 노랑색이 되고, 파랑과 빨강이 만나면 밝은 자주색이 된다. 두 색광이 만나서는 백색광에 이르지 못한다. 두 색광으로 만들어진 청녹색이나 노랑색이나 자주색이 아무리 밝다하더라도 생명을 주는 빛이 되지는 못한다. 식물에서 광합성을 일으키고 동물들에 활력을 주는 빛은 세 색광이 모두 합하여 연출하는 백색광이다.

생명을 상징하는 초록색을 인간이라 하고, 피를 연상시키는 빨간색을 예수님이라 하고,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실 때 보여주신 파란색(출 24:10)을 계명이라 하자. 초록색이 파란색을 만났다고 하여 백색광이 되지 않듯이 인간이 아무리 계명을 잘 지켜도 생명에 이르는 빛은 되지 못한다. 초록색이 빨간색을 만났다 하여 백색광이 되지 못하듯이 인간이 예수를 만났다하여 모두 생명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주여주여 하는 자가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는 것이다.(마 7:21)

초록색이 백색광이 되려면 파란색을 대동하고 빨간 색을 만나야 되듯이 인간이 생명의 빛에 이르려면 예수를 만나야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내가 만난 예수가 참 예수인지 아닌지, 나를 사로잡는 영이 성령인지 아닌지는 그의 뜻과 말씀, 곧 법에 비추어 보아 아는 것이다.

대언자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태양의 가슴에서 나오는 광채인 햇빛은 태양의 대리자다. 태양은 가슴에 품은 생명을 그의 광채로 이 땅에 전한다. 하늘에 태양이 있을지라도 땅은 그의 광채로 인하여 생명을 유지한다. 생명 유지를 위하여 빛은 자연의 계율로 이 땅에 임한다. 그 계율에 따라 큰 나무들은 작은 나무들이 빛을 받도록 활동 시기를 늦추고 키 작은 나무들은 양과 질이 떨어진 빛에도 반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법이 질서를 관장하듯이 빛은 자연의 질서를 관장한다.

“성부 하나님이 가혹하시기 때문에 대언자가 필요하신 게 아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시는 분이 아니다.”(에크하르트 뮐러 『요한서신 연구』 46쪽) 계속적인 희생이 요구되는 빛으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의 희생은 예정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지구별의 계율이 되었다. 식물 사회를 다스리는 빛의 계율에 따라 식물들이 스스로 질서를 지켜나듯이 인간 세계는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법령에 따라 질서를 유지한다. 태양의 가슴에서 나온 빛이 이 땅의 생물 세계의 애환을 알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비추신 광채로서 인간의 모든 애환을 체휼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대언자가 되신다.

새 계명은 없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해적선의 검은 기발이나 비밀결사대의 검은 머리 띠는 확고한 자기주장의 표시요, 성직자들의 검은 가운은 확고한 믿음의 표시이다. 자기의 의사를 관철하고자 하는 자는 검은 색을 사용한다. 검은 깃발을 내 세운다는 것은 어떤 요구조건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와 반대로 항복이냐 전투냐를 요구받은 나라가 가망 없는 전투를 끝내기 원할 때 백기를 든다. 입장 표명을 요구받은 자가 백기를 든다는 말은 태양 앞에 달이 되겠다는 뜻이요 모든 요구조건을 수용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백색광으로 생명을 기르시는 것은 인간이 창조주에게 백기를 들어야한다는 암시가 아닐까? 한데 왜 인간은 검은 띠를 머리에 띠고 살아가는 것일까?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다. 아버지는 아들을 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아들은 좀처럼 검은 띠를 벗지 못한다. 백기를 들지 않는 자식에게 부모의 계율은 거치는 돌일 뿐이다. 부모를 안다고 하면서 부모의 계율을 거치는 돌로 여긴다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이다.(요일 2:4) 부모가 자녀에게 말하는 계율은 자식과 부모를 연결하는 고리이다. 계율을 두지 않고 자식을 방임하는 부모는 없다. 문제는 부모의 계율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을 자식이 아니냐 모르느냐이다.

아버지의 얼굴이 ‘검으냐 희냐, 아버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그것을 아는 것은 ‘대하여 아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일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도 가능하다. 사람들은 ‘대하여 아는 일’에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대하여 아는 것’을 지식이라고 하고, ‘대하여 아는 일’에 시간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을 학자라고 한다.

‘대하여 아는 일’에는 두뇌가 필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하여’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데’는 좋은 머리도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인격적인 만남만을 필요로 한다. 아버지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어린 아들도 아버지를 알 수 있다. 안다는 것은 사랑한 경험이 있다는 말이요, 모른다고 하는 것은 사랑한 경험이 없다는 말이다. 예수를 안다는 것은 예수와 사귐을 갖는다는 말이요 그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사랑한다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요한이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요일 2:7-8)

아비와 자식 간에 새 계명이란 없다. 같은 계명이지만 그 계명이 언젠가 무겁지 않게 느껴질 때 그것은 새로운 계명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색이 반사하는 일에 충실함으로 빛의 아들로 태어나듯이 자식은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서 참 아들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땅에 주여주여 하는 자는 많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아는 자는 많지 않다.(마 7:21)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이다.(요 15:10; 요일 5:3)

형제 사랑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요일 2:10,11)

거대한 태양이 강렬한 광선을 비출지라도 그 소망은 매우 단순하다. 그 소원을 위하여 빛은 엽록소에 흡수되어 원상 복귀가 불가능한 빛의 아들로 태어난다. 자연이 광합성에 의해 생성된 화합물질을 생체 내 연료로 사용하여 에너지로 삼기까지 빛은 한 가지 소원을 품고 세포에 머물러 조용히 기다린다. 그 소원은 자연의 하모니다. 자연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태양은 곧장 분노한다.

부모를 괴롭히는 것이 형제간의 불화이듯이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고 한탄하게 하는 것은 자식들 간의 강포다.(창 6:6,11) 형제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모두 멸해버리신다. 홍수의 멸망과 소돔고모라의 멸망은 사랑을 잃어버린 향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였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습 3:17)하시도록 감동시키는 것은 오직 형제간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누구나 사랑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이다. 눈앞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요일 4:20) 하나님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먼저 사랑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일은 숨길 수 있으나 형제를 미워하는 일은 숨길 수 없다. 하여 요한은 단호하게 말한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요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 자이다.”(요일 3:15)

형제를 미워하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볼 생각은 아예 말라는 말이다. 아버지를 보기 원하면 형제가 먼저 화목한 뒤에 아버지께 가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요일 2:10) 없을 테니 말이다.

요한 서신을 통해 우리는 당시 교회가 하나님과 구원의 길에 대한 다른 이해로 말미암아 형제간의 사랑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요한서신에서 정작 깨닫는 것은 구원의 길에 대한 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형제간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이해가 달라도 하나님의 긍휼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형제간의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남아 있을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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