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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6분)

 

기억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5)

 

연구범위: 마 16:24~25, 요 1:13, 3:36, 5:24, 롬 6:16, 히 12:4, 요일 5:1-12.

 

학습 포인트: 우리에게는 어떤 승리의 약속이 주어져 있는가? 요한이 언급한 “물과 피로”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는 근거는 무엇인가?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요한은 영생의 약속에 대해 어떻게 가르쳤는가?

 

안식일 오후

예수님이 누구이셨는가에 대한 견해는 역사를 통하여 다양하게 제시되어 왔다. 어떤 이들은 '성경의 예수님'을 소위 '역사적 예수님'과 분리시키고, 이 둘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역사적 예수님은 매우 신령한 영적 감각을 지녔던 보통 사람이었으며, 그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단지 미묘한 방법으로 로마제국을 전복시키려 했던 정치적 혁명가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주제들을 단지 학문적으로나 철학적으로만 고찰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이셨는가 하는 문제와 또한 그분 자신이 스스로 주장하신 모든 것은 인류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달라지고, 구속의 경륜에 대한 이해의 정도도 달라지며, 우리가 어떻게 구원의 확신 속에 살아갈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요한이 그의 서신에서 이 주제를 다룬 이유이다.

 

핵심본문: 요일 5:1~12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시며,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승리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진다.

행하기: 예수님을 통한 승리의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예수님은 메시야이심

A. 예수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요일 5:6)는 사실은 그분의 침례와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킨다. 이 두 사건을 깊이 숙고해 보라. 이 사건들은 그 당시에 예수님이 메시야시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증해 주었는가? 오늘날에 이 두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B. 인성을 쓰신 예수님과 신성으로서의 예수님 사이에는 어떤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가? 이것은 예수께서 자신에 관해 묘사하신 것과 어떻게 다른가?

 

II. 느끼기: 승리가 보증됨

A. 예수님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에 대한 보증이 된다. 이 거부할 수 없는 진리를 통해 무엇을 느끼는가?

B.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바라볼 때 어떤 용기를 얻는가?

 

III. 행하기: 다른 사람들과 나눔

A. 요한은 물과 피라는 상징을 사용하였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희생을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상징을 생각할 수 있는가?

B. 예수님의 신성을 의심하는 자를 설득하는 역할극을 실시해 보라.

 

요점: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죄 값을 지불하셨으므로 우리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삶을 살 수 있으며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일요일(8월 23일) 예수님과 승리를 믿음(요일 5:15)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5:1)

 

지금까지는 형제 사랑에 관한 요한의 가르침을 공부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사실상 믿음과 사랑이라는 이 두 주제는 5장 첫 부분에 겹쳐져서 나온다. 요한은 그의 독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를 원했다. 그렇게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계명들을 지킨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은 또한 세상을 이긴다.(요일 5:15)

역사상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이기기 위해 싸운 싸움을 문자 그대로 군사적 전투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개념이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성전(聖戰)을 일으켜 강제로 개종시키라고 한 암시가 없다. 신약 어디에도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왕국을 동일시하거나 무력(武力)으로 공격하거나 방어하라는 지시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싸우는 싸움은 영적인 투쟁이다. 요한의 글에서 승리의 길은 폭력이나 물리적인 힘에 의하지 않는다. 승리의 길은 오직 믿음이며, 그 믿음은 신자들이 살아가는 삶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1. 다음 구절들에서 요한은 정복하고 이기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 구절들에서 우리는 어떤 약속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요 16:33, 요일 4:4, 계 2:7, 11, 3:5, 21, 12:11)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계2:7,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3:5,21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답: 우리가 세상과 싸울 때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했다는 보증을 하셨다. 개인적으로 패배한 것 같아서 아픔으로 눈물을 흘릴 때에 예수께서는 이미 내가 이겼다고 말씀하시며 그 승리를 나의 것으로 인정하신다는 보증이 있다.

 

가장 뛰어난 승리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승리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이미 승리를 얻고 있는데, 이는 그분의 승리가 그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자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는 놀라운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롬 6:16), 예수님과 그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삶을 약속 받으며, 옛 주인인 사단 대신 주님을 섬기게 된다.

 

영적 투쟁에서의 승리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끈질긴 근면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우리는 노력해야 하며 씨름해야 하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우리는 교활한 원수에게 정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투쟁을 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며 그 동안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편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거나 전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성공적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할 것을 가르치라.”(가려 뽑은 기별, 1권, 381)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에게 이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가 스스로 마귀와 싸워서, 모든 죄들과 싸워서 이긴다는 뜻일까? 물론 그리스도인은 마귀와도 싸우고 죄들과도 싸워야 한다. 바울은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12:4)라고 말하여 우리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한다고 말씀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싸워서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이기는 것으로 승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죄와, 마귀와 싸워서 자기가 이겨도 문제요 저도 문제다. 이기면 이겼다고 우쭐해질 것이기 때문에 문제요, 지면 졌다고 실망에 빠질 것이니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예수 안에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미 이기셨다. 그분 안에 있어야 한다. 한 발자국도 그분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요한15:1-11에서 주님은 그렇게 부탁하셨다. 예수를 떠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기는 것 그것은 오직 예수 안에 있는 것이며, 예수께서 내 안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교훈: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믿음이라고 요한은 말한다. 예수께서 승리하셨으므로 우리도 그분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월요일(8월 24일) 우리가 믿는 예수님(요일 5:6~8)

 

요일5: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은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이셨는지를 말한 다음, 그분이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언급하였다.(요일 5:6)

무슨 뜻인가? 요한일서에서는 물이라는 단어가 오직 오늘 본문에만 나오지만,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는 매우 자주 등장한다. 요한이 요한일서 5:6, 8에 언급한 물은 예수님의 초림과 관계된 구절과 조화를 이루며, 예수님이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세 가지 요소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물과 피'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19:34에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으나, 이것이 요한일서 5:6~8에 언급된 그 물은 아닌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요한복음 서두에 나오는 물은 침례와 연관되어 있다(요 1:26, 31, 33, 3:5, 23). 이것이 요한일서의 배경이다. 예수께서는 성육신하신 주님으로 오셨고 물로 침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지상 사역을 마치셨는데, 그 때에 그분은 피를 흘리셨다. 분명히 물은 예수님의 침례를, 피는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킨다(요일 1:7). 침례와 십자가는 예수님이 누구이셨으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경우 다 신성의 현현(顯現)과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증거하였다.(마 3:17, 27:50-54)

이 구절들에서 요한은 여전히 적그리스도들의 거짓 가르침에 관해 다루고 있다. 그러한 가르침은 신자들의 마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만약 예수님이 메시야도 아니시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시라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죽음은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개념은 구원과 하나님에 관하여 완전히 다른 이해를 갖게 한다. 즉 구속은 십자가가 아닌, 지식(그노시스)을 통해 얻는다는 오해를 일으킨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이셨으며, 그분의 생애와 죽음이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사람들이 명확히 알기를 원했다. 요한은 사람들이 거짓 가르침에 속지 말기를 바랐던 것이다.

 

요단강에서 갈바리까지

“서기 27년에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곧 이어 그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다. 그 때에 '때가 찼다'는 기별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 천사는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로 더불어 한 이레(7년)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다고 말하였다. 구주께서 공생애에 착수하신 후 7년 동안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이 복음이 전하여질 것이었는데, 삼년 반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전하실 것이요, 후 삼년 반은 사도들에 의하여 또한 그렇게 될 것이었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단 9:27). 서기 31년 봄에 참된 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에서 드려지셨다. 그 때에 성전의 휘장이 두 갈래로 찢어짐으로 제사 제도의 신성성과 의의가 떠났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지상의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때가 이르렀던 것이다.”(시대의 소망, 233)

 

<부가설명> 성경이 계시한 대로의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계시한 성경말씀이 세상 학문과 인간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용납을 못하고 이해도 못한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한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또 이해 못한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3:1)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 예수를 어떻게 하랴?”(마27:22)는 소리가 시대마다 외쳐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은 오늘도 학문과 지식과 문화와 심지어 신학으로 못 박히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요한은 이것을 위하여 이렇게 안타깝게 편지를 쓴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물과 피로 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물로 침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사명을 완수하셨다.

 

화요일(8월 25일) 예수님과 하나님의 증거(요일 5:9~10)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 대한 처음 두 증거는 물과 피다. 세 번째 증거는 성령님이시다(요일 5:6, 8).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분으로 선언되었다.(요 15:26)

이 증거가 왜 필요한가? 구약에서는 어떤 문제를 확증하기 위해 두세 증인이 요구되었다(신 19:15). 요한은 예수님에 관한 문제가 확실한 기초 위에 있음을 확신시키고자 했다. 그는 우리가 믿음의 명백한 이유를 가졌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1. 요한은 다음 구절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요일 5:9~10). 그는 우리가 무엇을 믿기를 원합니까?

요일5:9,10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답: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증거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요일 5:9)

 

요한에게 있어서 예수님에 대해 여러 증인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몇 가지 다른 증거를 제시하였다. 침례자 요한의 증거(요 1:6~7), 예수님 자신의 증거(요 3:32), 사마리아 여인의 증거(요 4:39), 예수님의 사역의 증거(요 5:36), 성경의 증거(요 5:39), 아버지 하나님의 증거(요 8:18), 나사로의 부활을 지켜본 사람들의 증거(요 12:17), 성령님의 증거(요 15:26), 그리고 사도 요한 자신의 증거가 있다(요 21:24). 참으로 매우 인상적이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증거 위에 세워지기를 원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는 잘못 해석되어 왔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삼중 증거와 함께 연결되어야 맥이 통한다. 즉 이 삼중 증거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도 받아들이거늘, 하물며 하나님 자신의 증거는 얼마다 더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를 요한은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것이면 일단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증거는 얼마나 더 받아들여야 하며, 신약에 묘사된 예수님을 얼마나 더 잘 수용하여야겠는가?

하나님은 신실하고 참되시다(요일 5:20). 만약 우리가 그분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 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사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에 대해 그분과 논쟁을 벌이고자 애썼다. 그는 그분의 허약하고 괴로워하는 상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기가 그분보다 더 강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들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 이 모든 고통과 시험 중에서도 그분을 붙들어 그로 확신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사단으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세상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아무것도 행하시지 않았음을 보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의 높은 지위와 권위에 대하여 충분한 증거들을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쫓겨났던 것이다.”(초기문집, 155)

 

<부가설명> 사단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그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그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에게 경배를 받으려한 것이다. 그가 예수님께 “내게 절하라.”고 말했을 때 그의 본심을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그가 하늘에서 반역할 때부터 그리스도를 겨냥한 것을 나타낸다. 그분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다. 사도 요한은 그가 친히 보고 듣고 만지면서 마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하면 사단의 꾐에 빠지지 말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믿도록 설득하고 있다.

 

교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여러 증거들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하다. 이것은 사람들의 증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확고하다.

 

수요일(8월 26일) 삼위일체의 문제(요일 5:7~8)

 

성경은 "하늘에서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이 세 분이 하나이시며, 이 세 분은 또한 땅에서도 증거하신다"고 말씀하는데, 요한일서 5:7~8에도 이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이 내용은 후기 사본에만 있고 오래된 성경 사본에는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성경학자들은 이 진술이 원본에는 없으며 삼위일체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추가된 것이라고 본다. 성경 본문을 함부로 변경할 수 없는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계 22:18),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만약 변경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전반에 대해 그 신빙성을 의심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 구절이 없어도 삼위일체 교리는 요한의 책들에서 튼튼히 세워져 있다. 신약의 기자들도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었지만 예수님과 성령님도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하나이심을 지지하기 위해 삼위일체의 개념은 중요하다.

 

1.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강력한 진술을 하였습니다. 다음 구절들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요 1:13~14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아버지의 독생자

요 8:58~59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 영존하시는 분

요 10:30~3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의 고백: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일 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심

 

이 구절들에서 예수님의 신성은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본문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세우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과 그분을 세상에 증거하는 일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시어 그의 살은 매 맞아 찢어졌고 그처럼 자주 축복하시려고 펼치시던 손은 나무 막대기에 못 박히셨으며 사랑의 봉사로 피곤할 줄 모르던 발도 나무에 못 박혔고 고귀하신 머리는 가시관으로 찔리셨으며 그의 떨리는 입술은 비통의 부르짖음을 발하였다. 그분의 머리와 손과 발에서 흘러내린 핏방울, 그의 몸을 괴롭힌 고민,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그의 영혼을 가득 채운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참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 자녀 각 사람을 위해 이와 같은 죄악의 짐을 지기로 동의한 것을 의미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막 15:33-37)

 

<부가설명>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삼위일체이시다. 삼위일체라는 말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삼위”는 세 개체를 뜻하는 말이고 “일체”는 동등성을 말하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삼위가 계시는데, 그분들은 다 동등하다는 뜻이다. 무엇이 동등한 것인가? 성경은 존재성이 동등하다는 것을 계시한다. 존재성이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삼위는 다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삼위 하나님은 다 같이 한 이름 “여호와”이시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쓰실 수 있는 분은 “스스로 계신 분”뿐이다. 스스로 있지 않는 존재가 스스로 있다고 주장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주장하는 존재에게 여호와가 창조하여 존재하게 한 그 존재를 반납 받으신다. 그리고도 그가 존재하면 그도 여호와가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세분 개체로 계시는 것과 그 세분 개체가 다 스스로 계신분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신학 용어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명하셨을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셋이기 때문에 복수(複數)인데 세분이 다 같이 한 이름 여호와이기 때문에 “이름”은 단수(單數)로 썼다. 이런 것이 바로 영감과 계시의 모미이다. 성경은 분명히 삼위일체를 계시한다.

 

교훈: 오늘의 본문 말씀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옹호하기 위한 구절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강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삼위일체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목요일(8월 27일) 예수님을 믿는 것의 결과(요일 5:11~12)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놀라운 선물을 제공하셨다. 이 선물은 곧 영생이다(요일 5:11~12). 그러나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유효하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선물을 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 관해 말씀하신 증거를 받아들임으로, 즉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써 받을 수 있다.

 

1.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영생에 관해 어떻게 가르칩니까?(요 3:16, 36, 5:24, 6:54)

요3:16,3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답: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과 그분이 누구이시며 왜 우리가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론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한 실제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발견되는 영생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그분의 참된 인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혹은 그분의 인성으로부터 신성을 분리하려 했던 요한의 반대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분을 성경적 의미대로 믿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생을 가지지 못했다. 비록 그들이 영생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비록 그들이 영생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 탁월한 지식과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주장은 사실일 수 없다.

 

2.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의 깊은 의미는 무엇입니까?(요일 5:11~12)

요일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답: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영생의 길이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영생의 길일 뿐 아니라 영생 자체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 예수님을 믿고 모신 사람은 생명이 있는 것이다.

요한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지만, 그 아들이 없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는 매우 강한 말씀으로 전체 인류를 위한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구원의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단지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고, 영생과 영멸의 문제이다.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죄인의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시다.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는 단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으련만 치유를 받아야 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신 자비를 거부한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무력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지를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구주에게 의뢰해야만 한다. 죄로 병들고 가련하며 실망한 영혼들이여,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라. 예수께서는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52)

 

<부가설명>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가 믿는 자의 생명이 되었다는 뜻이다. 생명의 성질은 생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으로 활동하지 않는 것은 없다. 전혀 활동하지 않는 것은 무생물이거나 죽은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한 것이다. 믿음과 행위를 각각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믿음이 생명인줄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은 믿는 자의 생명이 어떻게 생활로 나타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이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거나 잘못된 것이다. 요한서신에 취급하고 있는 소위 믿는 사람들, 영지주의자나, 가현설 주장자들은 다 잘못 믿는 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 바르다면 예수님이 그 믿는 자의 생명이시며 그 생명은 예수께서 세상에서 생활하실 때 나타났던 것과 같은 생활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을 순종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예수 생명이 사는 생태(生態)일뿐이다. 우리 안에 이 생명이 확실히 있는가?

 

교훈: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영접하는 문제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갈라놓을 만큼 중대한 문제이다. 영생과 영멸이 바로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금요일 (8월 2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마태복음 16:13~17, 요한복음 12:37~46.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여기에 기록된 말씀은 육신적인 생명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만 소유하고 계신 영원불멸의 생명을 의미한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을 가지고 계셨다. 육체적인 생명은 각 사람이 받는 것이다. 육체적인 생명은 생명의 시여자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취하여 가시는 것이므로, 영원하거나 불멸하는 생명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지배할 힘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은 다른 곳에서 빌리신 것이 아니다. 아무도 그에게서 생명을 취하여 갈 수도 없다. 주님께서는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8)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안에 있던 생명은 근본적인 것이었고 다른 데서 빌린 것이 아니었으며 다른 기원에서 파생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이러한 생명을 타고나지 못하였다.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떤 수고의 값을 치르더라도 그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다만 그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으면 값없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것은 바로 세상을 위하여 개방되어 있는 생명의 샘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96-29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님에 관한 많은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세상에 증거해야 합니까? 지난 24시간을 되돌아볼 때, 나는 얼마나 신실한 증거의 삶을 살았습니까?

* 말씀 전도와 생활 전도로 증거해야 한다. 24시간 동안 만난 사람이 별로 없으면 증거를 잘 하지 못한 것이다. 혹시 인터넷 상으로 할 수도 있도 e메일로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 영생과 영멸의 문제가 중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세상 사물에 사로잡히기가 쉬울까요? 세상 사물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 당장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그것도 아주 쾌락을 누리며 유지하려는 욕망 때문이 아닐는지? 예수 믿는 삶이 세상적으로도 아주 재미있게 되면 세상적 사물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 아닐까?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예수 믿는 믿음이 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한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믿음의 생활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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