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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5분)

기억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연구범위: 마 8:23~27 11:28~29, 롬 5:1~11, 12:9~21, 골 3:13~15, 히 12:14.

안식일 오후

평안의 챔피언이었던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고 기록했다. 여기서 “힘써”로 번역된 헬라어는 명령형으로 어떤 수동성이나 ‘기다려 보자’는 태도를 배제하는 단어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만약 집에서 말다툼을 한다면, 만약 교회에서 편 가르기를 한다면, 만약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확립하신 하나님의 평안을 부인하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투쟁한다’는 말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말인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즈벨트(Eleaner Roosevelt) 여사는 ‘미국의 목소리’라는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화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평안은 부단한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요구한다.

이번 주 교과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쟁취하신 그 평안을 누릴 가치가 있는가? 성령께서 평안을 매일의 나의 삶에 적용하시도록 그분과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

핵심본문: 빌 4:7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을 믿는다.

느끼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받아들인다.

행하기: 여러 관계들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평안함을 나타낸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평안

A.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은 예수님과의 교제에서 발견된다. 그분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어떻게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가?

B. 예수께서는 당신께 배우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그분에 대해 배우는 것과 그분의 화평을 누리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C. 흔히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하는데, 우리 마음속의 평안을 어떻게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전달할 수 있는가?

D. 하나님의 평안이 어떻게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는가?

II. 느끼기: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안

A. 예수께서는 평안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이것을 어떻게 투쟁과 도전의 상황에서 우리 것이 되게 할 수 있는가?

III. 행하기: 화평케 하는 자

A.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남들과, 우리 자신과 화목할 수 있는가?

B. 만일 우리가 우리 삶에서 화평을 누리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을 화평케 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째서 사실인가?

C. 화평이 전혀 없는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가?

요점: 우리는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화평을 누리고 그것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화평을 유지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평안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일요일(1월 17일)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화평(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은 그분의 임재 안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골 1:21) 우리가 그분과 더불어 화목한 관계를 회복했음을 뜻한다. 전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불화하였고 그분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화평은 작게 시작하여 조금씩 커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단번에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과의 화평은 점점 증대되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더욱 분명히 깨닫고 그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 살아가는 능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화평은 참으로 성령의 열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해질 때 그분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축복과 은혜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성장은 계속되어 마침내 우리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골로새서 1:20~22은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비로소 하나님께서 자비롭고 관대한 분이 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은 영원 전부터 그런 속성을 지니고 계셨음을 말해 준다.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처음부터 우리를 용서해 주기를 원하셨음을 보여준다.

1. 로마서 5:1~11에서 중요한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신의 말로 요약해 보십시오.

롬5:1-1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답: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 죄인을 위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한 사람

“하나님과 동료들로 더불어 화목하는 사람은 불행해질 수 없다. 시기심이 그의 마음속에 있지 않을 것이며, 좋지 않은 추측이 발견될 여지가 없고, 증오심이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음은 이 세상 생애에 속한 괴로움과 시련을 초월하게 된다.”(증언보감, 2권, 190)

<부가설명> 본 교과 총론에 성령의 열매가 단수로 되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그런 측면에서 풀이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사랑과 희락을 취급하고 화평을 취급하기까지 각 항목을 하나의 열매인 것처럼 다루고 있어서 부득이 여기서 한 말을 하게 되었다. 성령의 열매는 총론에 말한 대로 하나뿐이다. 성령의 열매가 아홉 가지가 아니다. 하나인 성령의 열매의 맛이 아홉 가지이다. 성령의 열매를 먹으면 아홉 가지 맛이 나는 것이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각각 한 열매씩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이것들이 한 열매 안에 다 들어 있는 성질인 것이다. 이 중에 하나는 되는데 다른 것을 안 된다는 식의 생각은 성령의 열매에 대한 오해로 인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면 한꺼번에 이 아홉 가지 맛을 다 맛보게 되는 것이다.

교훈: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인과 더불어 화목하기를 원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주셨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월요일(1월 18일) 평안을 발견함 - 1 (마 11:28~29)

숫자 1을 ‘매우 불안함’, 10을 ‘매우 평안함’으로 할 때, 당신은 이 척도에서 숫자 어디에 해당하는가? 사람들은 개인적 평안을 찾는 일에 점점 더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마태복음 11:28~29에 기록된 예수님의 초청에는 비록 ‘평안’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지만, 쉼을 주고 새롭게 하며, 평안을 주시겠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1.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 11:28~29)는 말씀을 숙고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이 놀라운 약속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까?

답: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의 모든 생애를 그분께 맡기면 우리에게 그분의 평화가 깃든다.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서, 우리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셨는가, 아니면 단지 그것을 얻는 방법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셨는가? 그분께서는 개인적인 평안이 어떤 원인의 결과로 주어지는지 말씀하시면서 쉼을 주시겠다고 초청하지 않으셨는가?

“불안이 일어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전적으로 예수님의 보호하심에 영혼을 맡기고 또 그분의 명령에 생애를 맡기는 자들은 평강과 평온함을 얻을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임재로서 그들을 기쁘게 하실 때에는 세상의 아무것도 그들을 슬프게 하지 못한다. 완전한 순종에는 완전한 쉼이 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시대의 소망, 330~331)

2.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를 불안과 불행으로 이끌어 갑니까?

답: 자기 자신을 섬기는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 까닭은 참된 평안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떠나서 스스로 평안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편안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께서는 인간의 약점과 필요가 무엇이며 어디에 시험을 대항할 힘이 있는지를 경험을 통하여 아시는 바 이는 그분이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는 없으시다. 예수께서는 무서워 떠는 하나님의 자녀인 그대를 지켜보신다. 그대는 시험을 당하고 있는가? 그분이 구원하실 것이다. 그대는 연약한가? 그분이 힘을 주실 것이다. 그대는 무지한가? 그분이 깨우쳐 주실 것이다. 그대는 상처를 입었는가? 예수께서 고쳐 주실 것이다. … 그대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것을 지시는 그리스도께 맡김으로써 더욱 편안한 안식의 축복을 얻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329)

<부가설명> 인간이 느끼는 불안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망이다.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을 하기 때문이다.(히2:14) 만일 사람이 사망을 이길 수 있다면 결코 어느 경우에든지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고통도 별 것이 아닐 것이다. 사망이 그를 주장하기 때문에 쉼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아오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생명이 그를 주장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8:5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은 쉼이 있고 평안이 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이유이다. 영생을 가졌고 사망이 그를 주장하기 못하기 때문에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평강은 진정으로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구원을 얻은 사람에게 이르는 생명의 은총이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 자기를 의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교훈: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맡기고 순종할 때 진정한 쉼과 평안이 이르러 온다. 우리는 자신을 의존하는 대신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뢰함으로 참된 쉼을 누리자.

화요일(1월 19일) 평안을 발견함 - 2 (요 14:27)

두 명의 화가가 있었다. 이들은 ‘평안’이라는 주제로 각각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한 사람은 먼 산 그림자가 은은히 잠겨 있는 고요한 호수의 풍경을 그렸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포 아래 휘어져 있는 자작나무 가지에 둥지를 틀고 물보라에 거의 젖은 채 쉬고 있는 한 마리의 새를 그렸다.

어느 그림이 평안의 진수를 묘사했는가? 이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고적한 산속의 호수와 같은 쉼을 찾기가 어렵다. 오히려 우리는 현실의 삶의 소란함 가운데서 쉼을 찾아야할 때가 더 많다.

1. 마태복음 8:23~27에서 큰 폭풍을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읽으십시오(참조 막 4:35~41, 눅 8:22~25). 그 상황이 독특하긴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를 위한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즉 우리를 위한 메시지는 무엇이며, 이 사건을 어떻게 우리의 다양한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마8:23-27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답: 예수께서 폭풍 가운데서도 평안히 주무실 수 있었던 것은 절대적인 믿음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도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만 한다면 어떠한 주변 상황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안을 소유할 수 있다.

왜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평안을 갖는 것에 관심을 가지셨다고 생각하는가?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에 대한 아름다운 약속을 남기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세상이 주는 평안과 예수께서 제공하시는 평안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결코 평안을 ‘전혀 문제가 없는 삶’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시험과 고통과 시련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참으로 어떤 이들은 더 많은 시련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평안을 가진 사람은 그 상황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러한 상황에 대처할 줄을 안다. 평안은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나오는데, 그분은 우리가 어떤 시련을 통과할지를 아시며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오는 능력과 평안

“우리는 생각하고 행하는 생활, 조용히 기도하고 열심히 일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얻는 능력은 사려 깊고 주의성 깊은 마음을 훈련시키는 열렬한 노력과 합하여 사람을 일상생활의 의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고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모든 환경에서 마음을 평안하게 지켜준다.”(가정과 건강, 335)

<부가설명>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이 세상의 평안과 같지 않은 이유는 월요일 부가설명에서 이미 말하였다. 세상이 아무리 평안을 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망을 이기는 평안이 아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은 사망을 이기는 평안이다. 이것은 결코 세상이 줄 수 없다. 사망의 세상이 어떻게 생명을 줄 수 있겠는가.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 육체의 생명이 죽어도 사는 생명이다.(요11:25) 죽음을 이긴 생명이 확정된 사람은 사망이 두려울 이유가 없다. 사망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평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이다. 우리에게 이 부활의 생명이 확실한지 늘 주 안에서 확인해보는 것은 신앙생활을 활성화하는 좋은 방법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셔서 우리로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것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아직도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인 안정과 평안과 세상의 안락과 부와 명예도 행복감을 줄 수 있으나 그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비교가 안 된다. 우리에게 이 평안이 있는가.

교훈: 예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이 평안을 소유해야겠다.

수요일(1월 20일) 가정에서의 화평(히 12:14)

1.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위의 두 성경절이 삶 속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음을 배웁니까?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교훈을 우리의 실생활에서 실천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답: 예수께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좇으셨다. 그러나 교만한 위선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책망하셨다. 우리의 실생활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자기 정서 중심으로 화평을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해 주려는 진정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닐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이 되기에 가장 힘든 곳은 가정이다. 가정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두 젊은이가 월남전에 참전하였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포탄이 터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그런 맹렬한 전투 중에도 한 병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차분할 수 있지?”하고 동료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집에서 늘 겪던 상황인데 뭐!”

2. 로마서 12:9~12을 연구하십시오. 만일 실행하기만 하면 가정에 화평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선택한 구절을 직접 실천해 봅시다.

롬12:9-12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답: 식구들 사이에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존경은 사랑을 유발하고 우애하게 할 것이다. 그런 정신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는데, 특히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친히 제시하신 대단히 높은 표준을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 표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 말은,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통해 나타난 원칙들 곧 사랑과 자아 희생의 원칙, 죄악과 더불어 타협하지 않는 자세 등을 나타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늘 다음 가는 평화와 행복의 장소로

“부모들은 자신의 품성과 가정생활에서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선행의 모범을 보이고자 노력해야 한다. 가정에 햇빛이 넘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토지나 돈보다 훨씬 가치 있을 것이다. 가정에 대한 사랑이 저희 마음에 생생하게 간직되어 저들로 하여금 저희 유년 시기의 가정을 하늘 다음 가는 평화와 행복의 장소로 돌아보게 해야 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창 24:1-67)

<부가설명> 가정은 태초에 창조주께서 제정하신 사랑의 보금자리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복수(複數)로 창조하셔서 "우리"가 되게 하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다. 우리가 될 때에 하나님의 내적 형상인 사랑이 실현된다. 그것이 바로 가정이다. 부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그 사랑은 열매를 맺는데 그것이 자녀들이며 그들은 다 사랑으로 태어난다. 부부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이듯이 태어나는 자녀들도 다 사랑이다. 그래서 가정에는 사랑이 점점 불어나고 충만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죄가 이것을 파괴하여 "우리"를 "나"가 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좋지 못하다고 하신 독처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을 이기심이라고 한다. 이기심이 마음을 차지하면서 사랑이 없어졌고 가정도 깨어진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이것이 회복되어야 한다. 재림성도의 가정은 말세에 이것을 회복하는 가정이 되어서 세상에 하나님이 두신 가정의 실상을 보여주도록 해야 한다. 요즘 재림성도의 가정들도 사단의 역사를 따라 자주 파괴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교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화평을 실천하는 훈련장이다. 가까운 가족들과 더불어 진정한 화평의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평화의 사자들이 될 수 있다.

목요일(1월 21일) 교회에서의 화평(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1.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어떤 기본적인 원칙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까?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원칙을 실행하기가 왜 그렇게도 어렵습니까?

답: 예수께서는 교우 간에 화목하는 것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자존심과 교만한 생각 때문에 교우 간의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의 관계들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하다. 교인들 간에도 수년 동안 분노와 쓴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만일 우리 모두가 이 가르침을 따른다면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해 보라.

2. 마태복음 5:9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어떤 특성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답: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이는 예수께서 화평하게 하시는 분으로 오신 것을 지적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셨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무를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생활 특성이다.

3. 골로새서 3:13~15에는 교인들 상호간에 관계를 맺는 3가지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골3:13-15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답: (1)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납하여 피차에 용서하라. (2)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3)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야고보서 3:17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인의 충만한 은혜의 물결을 주목해 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 만일 우리가 성령께서 우리의 관계에 이러한 특성들을 배양하시도록 허락한다면 우리의 교회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겠는가? 어떤 일들이 현저하게 사라지겠는가?

먼저 화해하고 예물을 드리라

“많은 사람들이 저희와 형제들 사이에 화해해야 할 불행한 알력을 그대로 지닌 채 종교적인 봉사에는 열심을 낸다. 하나님께서는 화합을 되찾기 위해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요구하신다. 이렇게 행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봉사를 받으실 수 없다. 이 문제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명백히 지적되어 있다.”(시대의 소망, 310)

<부가설명>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화평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나는 사람들은 흔한 것이 아니다.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과는 화평이 깨어지는 일이 거의 없고, 그런 경우가 혹 있어도 자주 만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곧 잊어버린다. 그러나 교인들은 안식일마다 만나고 또 교회 집회시간마다 만나며 교회 사업을 위하여 각각 다른 성격과 의견으로 자주 만나 의견을 교환한다. 이런 상황에서 불화의 실마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정신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자주 만나는 것이 불화의 씨가 아니라 친밀함이 되도록 해야 한다. 겸손과 양보와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것으로 화평을 이루어가도록 해야 한다. 성도 개개인이 이런 정신으로 주님의 사업에 임하고 교우들을 만나면 성령께서 바르게 인도하실 것이다.

교훈: 예수께서는 형제와 화목하는 일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말씀하셨다. 성도간의 화목을 위해 작은 일부터 내가 먼저 실천해 보자.

금요일(1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시 4:3, 119:165, 사 26:3, 롬 8:6, 빌 4:7.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의 유산을 위탁하셨다. 그분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다. 이 평화는 세상과 타협함으로써 얻는 평화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악과 타협함으로 평화를 얻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평화는 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적인 것으로서, 그분의 증인들이 시련과 난관을 통과할 때 그들과 항상 함께 할 평안이었다.”(사도행적, 84)

“으뜸이 되려는 투쟁은 마침내 하늘 왕국에서 제외될 자들의 정신을 나타낸다. 단순히 상대편 사역자가 내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대로 일하지 않거나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상대방을 비난하고 허물을 찾는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깃들 수 없다. 자기 형제들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자는 사단의 일을 하는 자이므로 주님께서는 그를 결코 축복해 주실 수 없다.”(복음전도, 10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불가피하게 긴장과 불화가 생겨났을 때 교인들 간에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그런 위치에 있다면 개인적으로 만나서 말씀과 기도에 입각한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매일의 삶에서 우리의 화평을 위협하는 어떤 상황들에 직면하게 됩니까? 그러한 때에 성경의 어떤 약속들을 주장할 수 있습니까?

*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화평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대인관계에서 일어난다. 그때 그런 일이 목숨을 걸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께 오면 쉼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의지하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3.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신뢰하면 마침내 화평이 생겨난다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선택의 결과로 불편과 두려움이 초래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화평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단계들이 있을까요?

* 성경의 지시를 따라 기도하고, 유순하게 대화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함께 가지도록 설득하고,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 있으면 먼저 사과하고 그래서 화평을 이루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그리스도의 평강은 생명에서 오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정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경험이 있는지 자신을 점검하면서 진정으로 생명의 소유자로 그 생명이 일하게 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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