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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분)

기억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 3:12)

연구범위: 삼하 9:1~13, 잠 15:1~5, 25:11~15, 마 5:43~48, 눅 6:35, 38, 엡 4:32, 골 3:12~14.

안식일 오후

바울은 사랑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말할 때, 맨 먼저 ‘오래 참음’을 떠올렸다. “사랑은 오래 참고…”(고전 13:4). 그는 오래 참음 즉 인내에 대해 말한 다음, 이어서 “사랑은 친절합니다.”(고전 13:4, 현대어 성경)라고 말함으로써 사랑과 자비 혹은 친절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했다. 친절이 빠진 행동은 참으로 사랑의 행동이라 할 수 없다.

앞에서 보았듯이 인내는 참는 사랑이다. 그러나 친절은 활동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종종 인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친절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느냐, 더 나아가서 그것을 어떻게 말하고 행하느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그것을 왜 말하고 행하느냐로 나타난다.

누구나 친절을 나타낼 수 있겠지만, 시간과 정력을 기울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친절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동사(動詞)이다. 그리고 친절은 사랑과 가까운 ‘사촌’으로서 실로 엄청난 힘을 내포하고 있다. 자비 혹은 친절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다.

핵심본문: 엡 4:32

<학습 목표>

깨닫기: 친절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숙고한다.

느끼기: 다른 이들의 감정과 행동을 존중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해 본다.

행하기: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친절을 나타내기로 결심한다.

< 교과 개요 >

I. 깨닫기: 회심한 사람의 증표인 친절

A.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예수님의 생애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B. 예수께서는 그분을 반대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하셨는가? 그분께서는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을 어떻게 대하셨는가?

C. 우리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친절을 받아 볼 때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최고의 친절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D. 친절과 존경은 우리가 증거할 때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

II. 느끼기: 다른 이들에 대한 불친절의 영향

A. 불친절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그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가?

III. 행하기: 친절을 나타냄

A. 하나님의 친절에 관한 위의 핵심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동기를 유발시켜준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친절은 어떤 면에서 중요한가?

B. 무례하게 행하는 것은 우리의 영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요점: 친절은 그리스도인 문화의 핵심이다. 무례하고 거친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 뿐 아니라 나 자신도 해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게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친절 모델이시다.

일요일(1월 31일) 자비의 표준(마 5:43~48)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분명히 예증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43~48을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마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1. 여기 예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높은 표준으로 초청하십니까?

답: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은 높은 표준으로 초청하였다.

2. 우리를 이와 같은 높은 표준으로 부르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답: 온전하신 하늘 아버지를 본받아 우리도 자비를 베풀 때 그분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3. 48절에 그리스도께서 ‘완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여기서 ‘완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단어의 용례를 살펴볼 때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마태복음 5:48의 평행절인 누가복음 6:36은 ‘온전하라’는 말 대신 ‘자비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 6:36)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사란 그야말로 자애로운 선물이다. 어떤 사람도 그것을 획득할 수 없고, 공로로 얻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그분께 스스로 죄를 범했고 그분을 멸시하고 무시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가장 큰 죄인이거나 가장 거룩한 성도이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도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베푸시는 자비하심과 선하심을 받을 가치가 없다.

이 구절들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하라고 호소하신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에게 친절히 대하지 않는 자들에게 친절히 대하라.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정의하신 ‘완전하게 되는 길’이다. 우리가 철저히 자아에 대해 죽고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교회와 가정은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해 보라. 우리는 지옥의 문이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능력과 증거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장애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로 하여금 ‘세리’처럼 행동하게 하며, 죄악으로 가득하고 복수심으로 불타는 마음뿐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신 예수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사랑과 자비와 인자와 긍휼이 충만하신 분으로 세상에 나타내고자 오셨다. 사단이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어 버리고자 노력한 짙은 흑암은 세상의 구속주에 의하여 제거되어 버렸고,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다시금 드러나셨다.”(증언보감, 2권, 335)

<부가설명> 먼저 생각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없는 사람들은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안에 사랑이나 자비가 없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께서 맺게 하는 것이다. 그 열매의 아홉 가지 맛은 성령의 열매의 성질이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며 사랑이시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그 생명을 얻으면 이런 성질들이 의식 속에 발아한다. 새 생명은 새로운 의식을 낳기 때문이다. 전에는 이런 것을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새 생명이 속에서 역사하면 이런 것이 생각된다. 이것을 성경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가르친다.(롬8:5)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영에 있는 사람들이다.(요3:6) 그들에게 영의 생각 곧 영의 의식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식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요4:24) 이 의식은 성령의 의식이며 성령의 열매의 성질을 나타내게 된다. 그래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 등이 솟아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같이 자비하려면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거듭난 경험을 해야 한다. 자아는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셔야 한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이르는 아름다운 결과이다.

교훈: 자비와 친절에 대한 높은 표준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귀한 특성은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월요일(2월 1일) “죽은 개”에게 나타낸 친절(삼하 9:1~13)

1. 사무엘하 9:1~13에서 다윗은 어떻게 친절을 나타냈습니까? 그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이 어떻게 드러났습니까?

삼하9:1-13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 사울의 종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은 시바라 저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저에게 묻되 네가 시바냐 가로되 종이 그로소이다 3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4 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5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 6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7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8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9 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11 시바가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12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13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답: 다윗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베푼 친절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단면을 보여준다. 두 발을 다 저는 장애를 가졌고, 므비보셋 자신의 표현처럼 “죽은 개 같은”(삼하 9:8) 그를 다윗은 극진히 보살폈다. 이는 다윗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과분한 자비와 은총을 다른 이에게 나타내고자 함이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원수들의 보고를 통하여 다윗이 왕위의 찬탈자란 강력한 편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왕이 그를 관대하고 정중하게 영접해주고 끊임없이 친절을 베풀어 주자 이 젊은이의 마음은 감동을 받았고, 다윗을 아버지 요나단처럼 열렬히 사랑하게 되어 자기의 이해관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의 이해관계와 하나임을 느꼈다.”(부조와 선지자, 713)

사울의 집에 나타낸 다윗의 친절은 그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표본으로 삼아 그렇게 행하였음을 보여준다.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던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과분한 은총과 자비를 받았음을 깨닫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였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참조 눅 7:47). 여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에 대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중요한 원칙이 나타나 있습니까?

눅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답: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자비를 베풀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라. 나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하나님은 나에게 그렇게 하실 의무가 있으신가? 나의 생각과 행동과 말은 너무나도 이타적이고 거룩하고 사랑스럽고 합당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한 대로 하나님도 나에게 그렇게 하셔야 하는가? 대답은 분명히 ‘아니다.’이다.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핵심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됨됨이와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참으로 자비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자비와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우리 각자가 십자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항상 기억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망해버린 적의 집안에 친절을 베푼 다윗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 사울과 함께 길보아 산 전투에서 죽었다(삼하 1:4, 17). 그 때 그의 아들은 겨우 다섯 살이었다(삼하 4:4). 이제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 관련된 이야기는 다윗이 보좌에 오른 지 여러 해 후에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과의 깊은 우정을 잊지 않고, 친구에 대한 추억에서, 망해버린 적(敵)의 집안에 친절을 베풀고 싶어 하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삼하 9:1)

<부가설명> 자기에게 잘 하는 사람에게 잘 대하게 되는 것이 아담 후손들의 본성의 경향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그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바울을 그것을 극적인 표현으로 기록하였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 하나님은 원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당신이 대신 죽으시는 자비를 베푸신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할 때 이런 의식이 생기고 이렇게 살 수 있다고 성경이 가르친다. 그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심, 곧 자비하심과 같이 자비한 것이다. 하루하루를 이런 의식이 샘솟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성령이 우리 안에 생명으로 역사하시면 이렇게 된다고 보증하시니 감사할 뿐이다.

교훈: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을 앙망하는 죄인들에게 주어진다.

화요일(2월 2일) 친절한 말(엡 4:32)

엡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2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엡 4:32)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구절은 어제 우리가 살펴본 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말씀과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인자한 태도를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특히 우리가 친절히 대해야 할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째, 우리는 영적인 갓난아기들에게 친절을 나타내야 한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살전 2:7)

둘째, 우리는 연약한 자들에게 친절과 격려를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셋째, 우리는 영적으로 병든 자들을 섬기고 보살펴야 한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시리라.(딤후 2:24~25)

어떤 사업가가 말하기를, “나는 온 종일 친절을 베푸느라 지쳤기 때문에 집에 와서는 더 이상 친절을 베풀 기력이 없다!”라고 했다. 얼마나 서글픈 인생의 태도인가?

친절, 특히 가정에서의 친절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가정에서 친절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가정의 분위기는 우리가 하는 말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우리가 무엇을 말하느냐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조심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문제와 상처와 긴장과 다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할 때에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화나게 말할 수도 있고, 같은 말을 할지라도 정반대의 기분이 들게 말할 수도 있다. 열쇠는 우리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의 언어는 단어의 의미 그 이상의 것을 통해 전달되는데 어조, 얼굴 표정, 몸짓, 억양 등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친절한 태도로 말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해야겠다.

우리 입술에 있는 친절이라는 율법

“친절이라는 율법이 우리의 입술에 있게 하고 우리의 가슴 속에는 은혜의 기름이 있게 하자. 이것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부드럽고 동정적이며, 예모가 바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은혜가 필요하다. 틀림없이 우리는 성령을 받을 것이며 그 성령께서 분명히 우리의 품성 속에 역사하실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품성은 거룩한 불같이 될 것이며 향기를 발하며 그 향기는 하나님께 상달될 것이다. 그 향기는 정죄하는 입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하는 치료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날카롭고 비판적이며 거칠고 퉁명스러운 말은 한 마디도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다른 불로서 우리가 회의할 때나 우리의 형제들과 교제할 때에 반드시 내어버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불의 핀 숯불에서 그들의 향로에 불을 붙이라고 하신다. 우리의 입술에서 그토록 쉽게 흘러나오는 천박하고 사납고 거친 말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이 인간이라는 대리자를 통해 말씀하시게 해야 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3권, 1164)

<부가설명> 온유한 말, 친절한 말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돈 들이지 않는 도구이다. 우리 주님의 말씀은 은혜로웠다.(눅4:22) 그리스도인도 말을 덕을 세우는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가르친다.(엡4:29)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품격을 드러낸다. 그래서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약3:2) 우리는 언어생활을 그리스도인 답게 하도록 혀를 주님께 맡기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 나를 주장하시면 이루어질 수 있는 열매이다.

교훈: 친절한 말 한 마디는 상대방의 마음에 기쁨을 선사하고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친절한 말을 익히자.

수요일(2월 3일) 친절은 되돌아온다(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1. 위의 구절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인생의 어떤 원리를 말씀하고 계십니까?

답: 남에게 베푼 친절은 축복의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친절뿐 아니라 불친절도 되돌아온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접한 것은 얼마나 자주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오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친절히 대할 때 그도 우리에게 친절히 대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불친절하게 대하면 그도 우리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

물론 항상 이런 식으로 일이 전개되는 것만은 아니다. 예수께서 어떤 취급을 당하셨는지 보라. 그러나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친절해야 하며, 그 친절이 되돌아오지 않는 때에라도 친절해야 한다. 사실상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우리에게 불친절한 자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특성이다. 아무튼 대개의 경우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2. 누가복음 6:35을 읽으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이번 주에 이야기한 내용과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눅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답: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신 말씀이다. 우리가 배은망덕 하는 자에게도 자비롭고 악한 자에게도 사랑을 베풀 수 있다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친절히 대하는 것은 언제나 쉽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 그러나 특히 나에게 되갚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해 희생을 치르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이 진정한 친절의 시금석이다.

되돌아오는 축복과 저주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선한 것이거나 악한 것이거나 간에 축복 혹은 저주의 형태로 우리에게 분명히 되돌아온다. 우리가 주는 것은 무엇이나 다시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세상의 축복은 같은 방법으로 종종 그렇게 되돌아온다. 우리가 주는 것은 필요한 때에 종종 네 배의 가치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 그리고 우리가 끼친 악 또한 다시 돌아온다. 정죄하고 낙심 시키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해온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통과하게 한 그 땅을 자신도 지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동정과 친절의 부족 때문에 그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산상보훈, 136)

<부가설명>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엡4:32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서로 불쌍히 여기라고 권면한다. 타인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는지를 쉽게 가르친 말씀이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11:1) 이 말씀들은 주면 되돌아온다는 원치를 가르치는 말씀이다. 이 땅에서 되돌아오지 않을지라도 영원한 곳에서 받을 것이다. 냉수 한 그릇을 예수님 이름으로 대접한 것도 상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의 원칙은 되돌아올 것을 바라고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고 생명의 성질로 나타는 자비로 사람들에게 베풀라는 것이다. 그날 주님이 칭찬할 때 내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의식하고 행하는 자비는 갚음을 바라는 율법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생명의 성질이 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그것은 그날 의식하지 못한 사실을 드러낼 것이고 주님이 칭찬할 것이다. 주님과 같은 성질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교훈: 우리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때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무아적인 희생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참으로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는 일이 된다.

목요일(2월 4일) 자비를 옷입으라(골 3:12~14)

1. 골로새서 3:12~14을 읽고 자신의 말로 다시 정리해 보십시오.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의 핵심적인 의미를 어떻게 나타내 줍니까? 특히 '온전'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주목해 보십시오. 또한 이 말 대로 실행한다면 우리가 세상에 증거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골3:12-14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답: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인내를 입고 그 위에 사랑을 더하면 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어 놓는다. 이런 것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잘 묶어두는 것이다. 옷을 입었으니 벗어지지 않도록 띠를 매는 것은 당연한데, 그 띠가 바로 사랑이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목사였던 알렉산더 매클래런(Alexander Maclaren)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자비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다. 아무리 훌륭한 증기 해머를 동원해서 빙산(氷山)을 부순다 할지라도 한 번의 내리침으로 생기는 비교적 적은 양의 열로 작은 부분만을 녹일 뿐 빙산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빙산을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어 살인적인 냉기를 내쫓는 남쪽으로 흘려보내면 빙산은 따뜻한 바다 속으로 녹아버릴 것이다. 자비는 정복한다.”

재림교인들은 우리의 신학적 입장과 신조에 대해 매우 강력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바른 교리를 갖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고 친절하고 예모 있고 부드럽고 동정적일 것 같으면 오늘날 단 한 사람 밖에 없는 곳에 백 명의 사람이 진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9권, 189)

우리가 교회의 교리들을 가르칠 때 안식일, 죽은 자의 상태, 죄의 기원, 그리고 다른 확실한 신조들을 포함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산상수훈과 고린도전서 13장과 더불어 친절과 성령의 다른 열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는 주의를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가? 안식일은 일곱째 날이고, 죽은 자들은 부활 때까지 잠자며, 그리스도의 의가 현재뿐 아니라 심판의 날에도 우리를 덮어준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식만을 가지는 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요 14:6)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요 8:32). 즉 진리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그리스도를 닮게 해 준다. 그렇다면 진리이신 예수님께 가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참으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친절한 행동

“어떤 사람이 세속적 칭찬과 보수를 전혀 바라지 않고 집에 찾아와 병자를 간호해 주고,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헐벗은 자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분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자신은 다만 그분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면, 사람들은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감사한 마음이 솟아나고, 믿음이 타오르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봐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펼쳐질 때 그 말씀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갖추게 된다.”(치료봉사, 145)

<부가설명> 옷은 사람들 눈에 잘 보이는 것이다. 의복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갈3:27) 그 옷은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보인다. 그 위에 사랑의 띠를 띠고 있으면 언제나 그리스도의 옷이 나타난다. 그 옷이 벗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을 접촉할 때 그리스도를 옷 입은 것을 알 수밖에 없는 태도와 행동을 드러내어야 하고 드러내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을 만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은은히 풍겨야 한다.

교훈: 우리가 가진 진리는 참으로 소중하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님을 닮아 친절과 자비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진리는 빛을 발할 수 없다.

금요일(2월 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각 그리스도인 가정으로부터 거룩한 빛이 비쳐 나와야 한다. 사랑은 행동에 나타나야 한다. 그것은 모든 가족들 상호간의 교제에서 흘러 나가야 하며, 또 사랑 그 자체가 사려 깊은 친절과 상냥함으로 이기심이 없는 예모로 나타나야 한다. 이런 원칙이 실행되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는 가정이요 가장 참된 사랑이 지배하는 가정이다. 이런 가정들로부터는 아침과 저녁에 기도가 아름다운 향기처럼 하나님께로 올라가고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이 아침 이슬처럼 그 간원하는 자들 위에 내린다.”(재림신도의 가정, 37)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유약(柔弱)함으로 생각하여 다른 이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딱딱한 태도를 취한다. 이 정신이 동정심의 발로를 방해한다. 사교적이고 관대한 생각들이 억제될 때 그들은 메말라서 차갑고 쌀쌀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에 빠질까 주의해야 한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대와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이 친절과 동정의 결핍으로 굶주리지 않게 하라.”(재림신도의 가정, 10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목요일 교과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질문을 음미해 보십시오. “진리이신 예수님께 가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참으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진리는 예수님이신데 예수님께 가납되지 않는 지식은 참된 진리가 아니다.

2.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원칙은 우리에게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 사랑은 생명의 성질이다.(요일3:14 참고) 생명은 활동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이 오래 갈 수 없는 이유다.

3. ‘완전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 흔히 이 말의 의미를 어떻게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 완전하게 되는 것은 완성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갓난 아이도 완전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성숙한 사람은 아니다. 완전과 완성, 혹은 성숙의 차이이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완전하다. 그러나 아직 성숙한 것은 아니다. 완전함이 자라서 완전함이 성숙함에 이른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성숙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요일3:14) 사랑은 생명의 성질임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4. 나를 대하는 다른 성도의 태도가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험했습니까? 나의 친절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친절한 태도로 전도하는 것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 믿은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그 사람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게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 상처를 입으면 예수님께 상처를 입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하게 된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5.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생명의 능력으로 자비를 무의식적으로 나타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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