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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45분)

 

기억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연구범위: 마 5:13, 요 14:6, 엡 4:25~5:21, 딤전 3:15, 요한일서.

 

학습 포인트: 요한은 하나님의 사역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교회는 어떠한 곳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그는 어떤 상징을 사용했는가? 우리 구원의 유일한 기초는 무엇인가? 요한은 진리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안식일 오후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 D. C.에 일어난 테러의 비극 가운데서도 우리는 한 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건은 도덕적 상대주의의 패배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밝은 낮에 TV 시청자들이 보는 데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처참한 살인극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량 살상에 따른 공포감으로 치를 떨게 하였다. 아무리 문화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악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명확해졌다. 9월 11일에 사람들은 모든 문화와 전통과 시대를 초월한 악의 모습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도덕성, 특히 악의 객관적인 본질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물론 요한에게 도덕적 상대주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께 중심을 둔 절대적인 진리를 알고 있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언제나 도덕성의 기초를 이루는 진리의 본질에 관해 요한일서의 중요한 주제들과 함께 복습해 볼 것이다.

 

핵심본문: 요한일서 4:7

 

<학습 목표>

깨닫기: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계명들을 지키며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함을 느낀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원하시는 바를 실천한다.

 

< 교과 개요 >

I. 깨닫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A. 요한일서에 제시한 하나님의 가족과 교회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

B. 요한은 구원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의 어떤 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는가?

C. 신학은 우리의 윤리와 도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II. 느끼기: 은혜 가운데 거함

A.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더 쉽게 해 주는가?

B.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이상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을 때에도,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가?

 

III. 행하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것

A. 계명과 율법은 폐지되었고 우리는 오로지 예수님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B.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문화적이고 개인적인 요인을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요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문제와 구원의 주제를 다룬 이번 주 교과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과 현재의 삶에 대한 용기를 제공해 준다.

 

일요일(9월 6일) 하나님

 

요한일서에서 우리는 성부(요일 2:16), 성자(23절), 성령 하나님(요일 5:6)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러나 주로 예수님과 아버지에 대한 강조가 대부분이었다. 요한은 이 서신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조금도 어두움이 없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사랑이시라고 말한다. 참으로 우리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자녀’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는데 이 표현 자체가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을 나타내 준다. 간단히 말해서, 요한일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이 서신은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에 관해서도 말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소망과 용기를 얻게 된다.

 

1. 요한일서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으며, 또한 지금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심

요일2:1~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우리의 대언자(중보자)로 봉사하심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우리에게 기름 부음을 주시고 그를 통해 우리를 가르치심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당신의 독생자를 나타내심으로 마귀의 일을 멸하심

요일4:8~10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화목제로 보내시고 우리를 살리심

요일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우리에게 영생을 주심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의 구하는 바를 들으심

 

요한일서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과 우리에게 영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죽으신 사실을 언급한다. 동시에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원수인 마귀의 일을 소멸하였다. 이 서신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정결케 하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다. 요약하면, 다른 무엇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

“죄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수님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 전부터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와 성령으로 더불어 함께 계셨다. 이분들은 상호간에 전적으로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속에서 동일하게 영원성을 지니신 채 공존하셨다.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있는다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내부에 존재했던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40)

 

<부가설명> 요한은 아들 예수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잘 소개하고 있다. 그분은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그는 독생자를 주셨기 때문에 그를 통하여 무엇이든지 주시는데,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 죄를 용서해주시고 기도를 응답하신다. 그러나 가장 주시기를 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은 영생을 얻는데 방해가 될 것은 결코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은 영생을 얻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약속한 모든 것이 나의 욕망의 모든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교훈: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제공하신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였다.

 

월요일(9월 7일) 교회

 

신약에서 교회는 소금(마 5:13), 기둥(딤전 3:15), 건물 또는 집(엡 2:21~22), 성전(고전 3:16~17), 어머니(계 12:1~2), 신부(계 21:2), 그리스도의 몸(엡 1:22~23) 등 여러 가지 상징으로 나타나 있다.

1. 요한일서에 교회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그 개념은 나옵니다. 이 서신에는 교회가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어떤 이미지가 나옵니까?

요일 2:9~11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요일 2:13~14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일 2:12, 18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답: 요한일서는 교회를 하나의 가족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우리 모두는 그분의 자녀로서 형제자매들이다. 요한일서에는 '아비들', '아이들' 등 가족을 가리키는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요한일서에서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가족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12회나 언급하고 있다. 요한 자신도 교인들을 “어린 자녀들”이라고 부름으로써(요일 2:18)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교인들은 ‘자녀’(13회), ‘아비’(2회), ‘청년들’(2회), ‘형제들’(13회) 등으로 불린다.

이 용어들은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소속되는 느낌을 준다. 각 사람은 필요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고유한 위치를 차지한다. 덧붙여서, 이 가족에는 하나님도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이 공동체는 수평적이며 수직적인 차원을 가진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다.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 4:7). 이 구절은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를 어떻게 나타내 줍니까?

 

답: 우리가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므로 그분의 품성을 반사하여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며 교인들은 그분의 자녀로 입양되었다. 교인들은 새 언약의 기초 위에서 산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 신앙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성결하게 하고 깨끗케 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신부이다. 그리스도께서 승리자로 다시 오실 때 그분은 당신의 피로 사셨고,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모든 시대를 통하여 충성을 다한 영광스러운 교회를 맞아들이실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201)

 

<부가설명> 교회는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된 공동체이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께서 교회의 생명력이 되신다. 성령의 생명적 역사가 없으면 그것은 죽은 교회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들은 지체들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버지요, 예수는 머리이시며, 교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예수의 지체들이며, 교인 서로는 형제와 자매들이다. 이것은 기막히게 조직된 유기체인 한 몸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주관하는 것은 사랑이다. 몸의 지체들끼리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럴 경우는 병든 경우이며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경우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으로 연합하고 도우고 보호한다. 이렇게 될 때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요한일서의 교회는 그렇게 사랑이 주장하는 교회이다.

 

교훈: 요한일서에서 교회는 가족으로 표상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수직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수평적으로는 형제자매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간다.

 

화요일(9월 8일) 구원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모두 예수님에 관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공허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구속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관한 기록이다. 이는 우리를 원래의 상태보다 더 낫게 회복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놀랍게 자신을 희생하신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간단히 말해서, 성경은 구원에 관한 기록이며 그것은 또한 요한일서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1. 다음 구절들에 따르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가 회목제물이 되심으로 그를 믿을 때 죄 사함을 받고 영생에 이른다.

 

그리스도의 보혈(요일 1:7, 5:6, 8), 곧 그분의 구속적 희생(요일 2:2, 4:10)이 우리 구원의 수단이다. 요한일서에는 십자가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피와 속죄의 희생이란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모본이 아니라 그분의 죽음이다. 그러나 그분의 모본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처럼 행하라고 촉구한다.(요일 2:6)

요한에게 있어서 신자들의 구원은 ‘현재적 실제’였다. 그는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요일 2:2~3)

* 그들은 그분 안에 있었다.(요일 2:5, 5:20)

* 그들의 죄는 용서를 받았다.(요일 2:12)

* 그들은 악한 자를 이겼다.(요일 2:13)

* 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요일 3:14)

* 그들은 영생을 가졌다.(요일 5:12~13)

이것은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놀라운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십자가 위에서 베푸신 구원

“예수께서 약속의 말씀을 하실 때에 십자가를 덮고 있던 어두운 구름 속으로 밝고 활기찬 광선이 뚫고 들어왔다. 회개한 강도에게는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확신으로 완전한 평화가 이르러왔다. … 숨을 거두시면서 그분은 자신의 신성과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셨다. 그분의 귀는 들으실 수 없을 만큼 둔하지 않으며 그 분의 팔은 구원하실 수 없을 만큼 짧지도 않으시다. 당신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이 그분의 대권이다.”(시대의 소망, 751)

 

<부가설명>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선행으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먼저 구원을 받지 않으면 선행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하면, 구원을 받지 않은 상태는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죽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행동 할 수 없다. 그래서 썩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 예수가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는 사람은 생활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선행을 하겠는가.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으로 사망을 처리하시므로 속죄 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생명을 드러내셔서 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서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은 상태로 옮긴 것이다. 성경의 기록대로 말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요5:24)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비로소 선행을 할 수 있다.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구원에 대하여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훈: 성경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요한일서에는 십자가라는 단어가 안 나오지만 그분의 속죄의 희생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수요일(9월 9일) 그리스도인의 행실

 

요한은 그의 첫 편지에서 그릇된 신학의 해악을 다루고 있지만 도덕적인 삶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두고 있다. 요한은 분명히 신학이 윤리를 특징짓고, 잘못된 신학은 잘못된 행동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신학을 갖는 것은 중요한다. 예를 들어 율법과 은혜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안식일을 짓밟도록 이끌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를 성숙시키고 발전시켜 정확한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바른 신학을 올바르게 실천해야 한다. 소위 정통 신학을 크게 옹호한다는 사람이 이웃집 아내와 함께 도피행각을 벌인다면 얼마나 기막힌 일이겠는가? 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시험시간에 부정행위를 저지른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는가? 구원과 하늘 성소와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한 진리를 아는 안식일 준수자가 거짓말을 한다면 얼마나 통탄스런 일이겠는가?

 

1. 다음 구절들은 도덕적 행실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요일 1:7, 2:1, 15~16, 3:4, 7, 15, 17~18, 4:7, 5:2~3)

요일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2:1,15,16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일3:4,7,15,17,18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5:2,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답: 요한은 신앙생활의 매우 구체적인 지침을 말해 주었다. "빛 가운데 행하라." "죄를 범치 말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아무도 우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궁핍한 형제가 있으면 말로 아닌 행동으로 도와주라."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들을 지키라."

 

요한은 직접 혹은 간접적인 호소와 함께 도덕적 행실을 강조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말며, 형제자매를 미워하지 말고, 세상에 속한 정욕을 사랑하거나 자랑하지 말며, 불법을 행치 말라고 호소한다. 그 대신 순종하고, 옳은 일을 행하며, 실제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보다 더 세부적으로 말했으나(참조 엡 4:25~5:21), 요한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하라는 말로써 이 개념을 잘 요약했다.(요일 2:6)

요한은 하나님께로 나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요한에게 있어서 진리는 단지 신념이 아니라, 생활이었던 것이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요일 3:7)라는 말씀은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해 준다.

 

복음의 원칙과 우리의 행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심령이 성화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질을 사람 속에 부식(扶植)하는 것이다. 복음의 신앙은 곧 그리스도께서 그 생애 가운데 사시는 것이니 곧 살아서 활동하는 원칙을 말한다. 이 신앙은 품성 가운데 그리스도의 덕성이 드러나고 그것이 선한 행실을 하게 하는 것이다. 복음의 원칙들은 우리 실생활의 어떤 부문으로부터도 분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경험과 활동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대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눅 10:25-37)

 

<부가설명> 우리는 도덕적 행실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도덕이라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오는 것 같다. 선, 의, 덕, 사랑, 겸손,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신실함, 절제, 즐거움, 화평, 구제, 희생 등등 이런 말들은 많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도덕적 행실이라고 설명한 곳은 없는 것 같다. 참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나 도덕적 삶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문화가 그렇게 정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덕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맞은 말이다. 그런데도 성경에 그런 표현이 없는 것은 무슨 암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말들이 생긴 것은 죄와 악 때문이 아닐까? 만일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런 표현들이 있을까? 왜냐하면 그런 것들뿐인 세상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가 표현하는 도덕적 선들만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생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은 그런 것들만 나타내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도덕적 선행을 하라고 강권하는 것이기보다는 예수 생명이 정말 우리의 생명이 된다면 그 생명이 나타내는 생태가 바로 도덕적 선들 뿐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요 빛의 열매 곧 예수 생명의 열매이다. 우리는 참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는가?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생명은 제쳐놓고 도덕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도덕 이야기에는 사단의 속임수도 기어들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 부활의 생명, 예수가 바로 나의 생명인 그 생명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 생명이 바로 나의 생명이 될 때 나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고 그 생명이 맺는 열매가 소위 말하는 도덕적 선행들이다. 이런 열매들이 열리지 않으면 아직 이 생명이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교훈: 요한은 우리가 믿는 진리가 결코 이론에 그쳐서는 안 되며, 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목요일(9월 10일) 진리와 오류

 

고대 헬라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리는 상대적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념이 존재해 왔다. 즉 인간은 어떤 뛰어난 절대적 표준에 의해 그 행동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들 스스로 옳고 그름, 선과 악, 도덕과 비도덕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왔었다. 이러한 개념을 상대주의라고 부르는데, 비록 그것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근본적인 개념은 같다. 즉 절대적인 진리와 선과 도덕의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화와 공동체의 전통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님은 절대적인 진리의 본질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답: 예수님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선언하셨다.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개념을 예수님은 분명히 거부하셨다. 그분께서는 결코 모호하지 않은 명확한 말씀으로 절대적인 진리의 실체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며, 그 진리가 그분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나의 인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셨다.

 

2. 요한은 진리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요일 2:4, 21, 3:19, 4:6, 5:20)

요일2:4,21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요일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요일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일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답: 진리이신 예수님을 아는 자는 그분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

 

요한은 절대적인 것이 있음을 알았으며, 더군다나 그는 흐릿하고 상대적인 세상의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진리와 오류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절대적인 진리가 있고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예수님과 성령님이 진리이시라는 것이다. 한편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자와, 사랑을 고백하면서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이다. 반대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알고,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에 속한다. 따라서 진리는 우리가 지적으로 파악하는 것인 동시에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

“그리스도는 성경의 초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엡 4:21)를 이해하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다(요 14:6). 우주적 쟁투에서 사단의 전략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없이도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시키는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43)

 

<부가설명> 죄가 들어와서 비로소 세상 선악에 대한 개념이 생겼다고 생각 된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그대로의 사람에게는 악에 대한 개념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창조된 그대로의 존재가 바로 선 자체이기 때문이다. 죄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소위 그런 상대적 개념이 생길 틈이 없다. 그래서 사단은 죄를 끌어들이고 사람들을 도덕적 선악 개념 속에 빠뜨렸다. 누구든지 도덕적으로 선을 행하면 그 선으로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고 세뇌시킨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세상은 생명을 제쳐놓고 도덕적 선악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그것으로 영생과 영벌을 받을 것이라는 사상에 완전히 빠졌다. 그런 사상은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다. 그래서 예수 생명을 강조하기 보다는 사람이 행하는 도덕적 선행과 도덕적 완전을 강조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것은 다 예수 생명이 나타내는 생명의 능력일 뿐이다. 그런데 생명 없이 이렇게 되려니까 신앙생활이 힘들고 두렵고 고된 것이다. 우리는 정말 예수님이 나의 생명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복음의 오해

 

김 명 호

 

하나님은

생명을 말씀하시는데

사람은 행위로 듣고 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것

그를 떠나서는 모두 주검이라서

부패 외엔 어떤 행위도 없다.

 

도덕과 율법은 행위를 요구해도

생명 잃은 사람들의 썩는 냄새 파다한데

방부, 방취제 살포하며

아름다운 성품이라고 우기는 폐허

 

주님은

십자가로 죽음을 처리하시고

부활로 생명을 드러내어

이것을 믿는 누구라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선언하신다.

 

도덕도 율법도

생명으로 옮긴 자의 것

오직 산 자에게만 행위가 있다.

 

자비의 천사들이

창조, 재창조의 생명을 다시 전해도

살아 있다는 착각으로

사람들은 아직도

도덕과 율법이라 듣고 있다.

 

김명호 시집 “묵도의 여행” 중에서

 

교훈: 요한일서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주제는 진리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상대주의가 우세한 듯 보이지만, 진리는 절대적이며 실제적이다.

 

금요일(9월 1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사도행적, 제54장 “충실한 증인”(546~554).

 

오늘날 온갖 종류의 그릇된 사상들이 머리를 들고 있기 때문에 요한일서가 매우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요한은 그의 독자들과 우리에게 모든 사람을 믿지 말고 분별없이 새로운 교리를 받아들이지 말며, 어떤 가르침이든지 성경으로 시험해 보라고 권면한다. 진리와 오류를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요한에 따르면,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특징은, (1)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2)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3)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요한은 그의 독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고자 굳건한 토대를 놓기 원하였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도덕적 절대주의를 믿는 자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상대주의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만일 하나님이나 창조주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순전히 우연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다면, 도덕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도덕적 기준을 바꿔버릴 경우엔 어떻게 되겠습니까?

* 오늘날 문화가 그렇게 바꾼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동물을 닮아가도 있다.

 

2. 라과디아(Fiorello Enrico La Guardia)는 미국에 경제 공황이 계속되던 시절에 판사로 재직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아버지가 빵을 훔친 죄로 법정에 끌려왔습니다. 라과디아 판사가 그 사람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흐느끼면서 배고픈 아이들을 먹이려고 그랬다고 대답했습니다. 라과디아는 그 사람에게 “당신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압니까?”라고 말하자, 그 사람은 뉘우치면서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머리를 끄덕이며, “네 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주머니에서 10달러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유죄이지만 형벌을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의 벌금을 내가 지불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복음과, 예수님처럼 사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그 죄 값을 물어주시고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함께 영생하게 하신 사실을 조금 이해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도덕과 참 생명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게 하였다. 나는 진정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는지 말씀 앞에서 확인하고 그 생명의 생태가 나타내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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