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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과 신약 속의 신명기

(121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16)

 

연구 범위: 4:1~11, 8:3, 10:34, 3:1~14, 7:37, 10:28~31

기억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4:4).

 

신약은 구약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말은 신약의 기자들이 자신들의 글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구약의 내용을 인용했다는 뜻이다. 예수님 자신도 기록되었으되”(4:4)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었으며, 또한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14:49)라고도 말씀하셨는데 이 또한 구약 성경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를 만나셨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 주시기 위해 기적을 일으키시는 대신,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24:27)하셨다.

구약 성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했든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인용했든지, 아니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이나 예언들을 언급했든지와 상관없이, 신약의 기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고, 때론 옹호하기 위해 구약을 사용했다.

시편과 이사야와 더불어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약의 책이 바로 신명기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히브리서, 목회 서신,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신약의 많은 책들이 신명기를 인용하였다.

이번 주에 우리는 그중 몇 가지 예를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 진리를 찾아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신약의 많은 책들에서 신명기를 직접 인용함으로 그 의미에 깊이를 더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신구약의 말씀들이 함께 합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귀한 영적 기별을 주고 있음을 감사한다.

행하기

재림 성도로서 먼저 깨달은 진리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간다.

 

TMI 위로

1.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구약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런 주장에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요?

신약 기자들이 구약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인용한 사실을 지적하여 설명할 수 있다.

2.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인용하셨던 신명기의 말씀은 무엇입니까?(4:1~11, 8:3, 6:16, 6:13)

모두 신명기에 있는 말씀이다.

3. 신명기에 나타난 차별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이 신약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신약성경에도 똑 같은 사상으로 기록하였다.

4. 바울이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구원의 방법은 무엇입니까?(3:10~14)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량하신 사실을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5. 베드로와 스데반은 신명기 18:18의 말씀을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하고 있습니까?(3:22, 7:37)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했다.

6.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하나님을 떠나기로 선택한 자들에게 내려질 형벌은 무엇입니까?(10:28~31)

사망이다. 결코 피할 수 없다.

 

결론

신명기는 시편 그리고 이사야와 더불어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약의 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르치고 설교하실 때 신명기의 말씀을 자주 인용하셨고 사도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함께 연구할 때 더 완전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1212() “기록되었으되

 

마태복음 4:1~11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에 어떻게 대응하셨으며 우리는 그 모습을 통해 어떤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진리와 신앙에 관한 모든 권위와 대답은 오직 기록된 말씀에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사탄과 말다툼하거나 논쟁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다만 성경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4:12) 때문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받은 말씀을 인용하셨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시험에서 신명기 8:3을 인용하셨다. 모세는 만나를 내려 주신 것을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급해 주셨는지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때 모세가 준 교훈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씀이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음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양식 또한 주신다. 영적인 양식을 취하지 않고 육신의 음식만 취할 수는 없다라는 뜻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 사탄과, 그가 예수님의 마음에 심어 넣으려고 했던 의심을 물리치기 위하여 떡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시험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라고 이야기하며 맛사에서의 반역(참조, 17:1~7)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신명기 6:16을 인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실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보여 주셨지만, 어려움을 마주하자마자 그들은 즉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17:7)라고 외쳤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이야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탄을 물리치셨다.

세 번째 시험에서 사탄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신에게 절하고 경배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이것이야말로 사탄의 실체가 무엇이며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노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도 사탄과 논쟁하는 대신 그를 꾸짖으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거짓 신들을 섬기게 될 경우 일어날 일들에 대해 경고하고 계신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라”(6:13).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라는 분명한 말씀이었다

 

<묵상>

예수님처럼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기록하였으되라는 말씀처럼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깨닫고 기억하고 준행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시험하는 자에게 토론하지 않으셨다. 오직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제시하셨다. 성경의 기록은 신학적 신앙적 토론의 끝이다. 기록된 말씀이 제시되었는데도 토를 달고 다른 말로 장황한 논리를 전개하면 이미 틀린 것이다. 성경은 성경이 해석하고(4:3 참고) 해석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40:8). 마귀의 둘째 시험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기록하였으되라고 대들었다. 우리가 성경으로 토론할 때 상대가, 마귀가 예수님께 한 것처럼 성경 구절을 대며 시험할 수도 있다. 그때는 우리도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또 기록하였으되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그렇게 하였다. 그러려면 우리가 성경 말씀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통독하고 명상하고 연구해야 한다. 언제든지 기록하였으되’ ‘또 기록하였으되를 활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해야 하겠는가?

 

<교훈>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자신을 시험하는 사탄과 논쟁하는 대신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들을 인용하심으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1213() 차별하지 말라

 

모세는 신명기 10장에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충성하도록 훈계하였다. 그 훈계 가운데에 이런 말이 들어 있다.

 

신명기 10:17~19을 읽어 보라. 여기에서 백성들에게 주어진 핵심 기별은 무엇이었으며 이와 같은 기별이 오늘날의 교회에도 적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10:17~19]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 사람을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말고 차별하지 말고 대하라는 원칙이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라는 말씀은 히브리어에서 비유적으로 쓰는 표현을 번역한 것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들지 않으신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표현은 법정의 상황을 묘사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재판관 또는 왕이 재판에 나온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신분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신명기가 암시하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신다. 이와 같은 진리는 사회에서 가장 무시당하던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대하신 예수님의 삶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났다.

 

사도행전 10:34, 로마서 2:11, 갈라디아서 2:6, 에베소서 6:9, 골로새서 3:25, 베드로전서 1:17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에서 신명기 10:17이 어떻게 인용되고 있는가?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2: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6: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 10:17을 문자대로 인용하였는데, 다양한 경우에 인용하였다

 

각각의 성경절의 배경이 되는 상황이 무엇이었건 간에, 이 구절들은 모두 신명기에 나오는 하나님은 얼굴을 들지 않으신다라는 개념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주인들에게 그들의 종들을 선하게 대하라고 말하고 있다. , 로마서에서는 구원과 정죄함에 있어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만일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께서 차별하지 않으신다면 우리 역시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바울이 로마서에 기록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복음의 계시를 보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신분이 무엇이건 같은 위치에 놓인 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필요로 하는 타락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우리의 신분에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은혜가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묵상>

우리가 얼마나 자주, 때론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그러한 행동이 얼마나 큰 죄인지 십자가가 어떻게 보여 주나요?

 

: 십자가는 모든 인류를 동등한 상태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었다. 우리가 사람을 인격적으로 차별하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부가설명> 사람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차별한다. 그리스도인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경우는 항상 있다. 상태가 어떻든지 차별하지 않고 대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옷이 더러운 것과 낡은 것은 차이가 있다. 낡아도 깨끗하게 빨아 입고 단정하면 사람이 단아해보인다. 그런데 새 옷이라도 때가 끼고 냄새나면 우선 코가 느낀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지고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외모로 차별하게 되는 아주 작은 예이다. 그런데 너저분하게 차려입고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누가 환영하겠는가? 그러므로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은 인격과 빈부와 귀천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즉 신분과 관련하여 거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저분하고 더럽고 냄새나게 차리고 있으면 누가 가까이 가려고 할 것인가? 주님은 나병 환자도 만져서 고치셨는데, 주님은 그런 능력과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해서 건강하게 해주시고 가난한 자를 동정하여 위로를 베푸시고 이방인도 무시하지 않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전혀 차별하지 않았다. 차별받는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스스로 반성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경우이든지 예수님의 정신으로 대하도록 성령께서 우리들을 강하게 주장해주시기를 기도한다.

 

<교훈>

하나님은 사람의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 또한 그분의 모본을 따라 행해야 한다.

 

 

1214() 나무 위에서 저주받음

 

갈라디아서 3:1~14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바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바울은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신명기 27:26과 신명기 21:22, 23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3:1~14]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27: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저주아래 있기 때문에 구주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신 것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한 것이라고 복음의 핵심을 설명하였다. 예수님은 인류를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감당하셨다.

 

안타깝게도 이 편지는 십계명, 특히 넷째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이용되고 있는데, 그들은 바울이 여기서 다루고 있는 율법주의의 문제를 안식일의 준수에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바울은 본문에서 율법에 반대하고 있지 않으며, 본문 어디에서도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근거가 될만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바울이 한 말의 핵심은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라고 기록한 후에 신명기 27:26을 인용한 갈라디아서 3:10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이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율법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구원에 있어서 율법의 행위를 의지하는 것과 관련되는데, 율법의 행위를 의지한다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같이 타락한 인간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바울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바울은 다시 한번 신명기의 말씀(21:23)을 인용한다. 바울은 예수님과 같이 기록된바라고 말하며 구약의 권위를 나타낸 다음, 죽을죄를 범하여 사형을 당한 후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죄를 짓지 않게 하도록 나무 위에 달아 둔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성경절을 인용한다.

바울은 그것을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마주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셨는데, 이는 율법을 어김으로 모든 사람이 마주해야 하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복음의 좋은 소식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3:14)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받으셨다는 사실이다.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리스도밖에는 아무도 타락한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하늘과 조화시킬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에 대한 책임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매우 가증하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틀림없이 분리시킬 죄의 수치를 자진해서 떠맡으실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63).

 

<묵상>

우리가 져야 할 죄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의 희생을 묵상해 보십시오.

: 예수님이 인류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율법의 저주의 내용은 사망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죄 그 자체가 되셨다는 말씀과(고후5:21, 소망 755) 율법의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리셨다는 말과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고후5:15) 말은 같은 의미이다. 그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받을 대우를 자원하여 친히 우리를 대신해서 당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저주에서 벗어났고,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죄가 의로 바뀐 것이다(고후5:21).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 그 자체가 되어주셨기 때문이다. 구주 예수님의 이런 속죄 봉사에 관하여 성소봉사와 구약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사람들이 충분히 알만큼 계시하셨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겸손히 말씀 앞에 신발을 벗고 무릎을 꿇으면 생명의 성령께서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실 것이다. 모든 일에 그렇지만 특히 말씀을 연구하는데는 인간이 자기 명철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한다. 성경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3:5)라고 강력히 경고한다. 말씀을 연구할 때 더욱 이 말씀을 명심할 것이다.

<교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1215()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 주변에 있는 이방 민족들의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계속해서 경고하셨다. 오히려 그들이 그 민족들에게 증인이 되어야만 했다(4:6~8). 모세는 신명기 18:9~14에서 다시 한번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18:12)는 구체적인 관습들에 대해 경고하였다. 모세는 이런 맥락에서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18:13)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명기 18:15~19을 읽어 보라. 모세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 말씀을 사도행전 3:22 그리고 사도행전 7:37과 비교해 보라. 베드로와 스데반이 신명기 18:18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18:15~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3: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7: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고 그것이 성취된 것을 베드로와 스데반이 확인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이 계시되는 현장에서(20:18~21)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로서 모세가 어떤 역할을 해 주기를 원했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모세는 두 번에 걸쳐(18:15, 18)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주어진 문맥을 통해 볼 때, 모세와 같은 이 선지자 역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중재자가 될 것이었다.

수 세기 후에 베드로와 스데반은 이 성경절을 예수님께 적용하여 사용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거룩한 선지자들”(3:21)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것들의 성취이며, 그러므로 지도자들이 그분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보여 주고자 했다. 베드로는 그들이 예수님께 저지른 일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3:19)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던 이 말씀을 예수님께 직접적으로 적용했다.

사도행전 7:37에서는 스데반이 베드로가 처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전하게 되었을 때, 그 역시 이 유명한 약속을 언급하며 그 말씀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을 이끌었던 모세의 역할이 예수님을 예시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스데반 역시 예수님이 예언의 성취이시며 그들에게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6:11)했다는 사람들의 고발과는 달리, 스데반은 예수님을 메시아, 곧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약속의 성취라고 선언했다.

 

<묵상>

성경의 모든 말씀을 예수님 중심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성경이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구원의 주님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여러 사건과 인물을 통하여 사람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고 있다. 그중에 모세가 예수님의 표상 인물이라는 것을 신명기 18:15,18에 너무나 분명히 예언했다. 요한복음에는 침례요한을 그 선지자인가? 라고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을 적었다.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1:21, 25, 6:14, 7:40). 예수님 당시에 그 선지자라고 하면 메시아를 뜻하는 말인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약 기자들은 이 사실을 당시의 유대인의 인식과 관련하여 신명기 예언의 성취임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 선지자로 오셨다. 예수님의 칭호인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구약의 메시아와 같은 뜻이다. 구약에는 세 직분을 기름부어 임명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이다. 모든 선지자가 다 예식적인 기름부음을 받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는 분명 기름부음을 받았다(왕상19:16). 그런데 예수님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무를 다 수행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통칭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어(10:38) 구주로 임명하신 분이시가. 그는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이다. 구약에 이 세 직무에 기름부은 것은 예수님의 구주로서의 직무를 예표하는 것이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왕, 제사장, 선지자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에는 신앙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과 구주로 기름부어 임명받으신 분인 것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이 이름의 뜻을 알고 신앙고백적으로 부를 수 있다면 은혜가 될 것이다. 아멘.

 

<교훈>

베드로와 스데반은 신명기에 기록된 모세의 말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약속된 선지자이시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1216() 두려운 일

 

매우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는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보낸 하나의 긴 권면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 권면은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된다.

물론 이와 같은 충성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그분의 성품과 선하심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하지만 때로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났을 때 생기는 비참한 결과에 대하여 일깨워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위해 이루어 주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그에 대한 대가를 우리 스스로가 지불해야 하며, 그 대가는 슬피 울며 이를 갈다가(22:13)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히브리서 10:28~31을 읽어 보라. 바울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10:28~31]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 모세를 통하여 주신 법을 폐한 자도 죽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의 언약의 피를 부정하고 은혜의 성령으 욕되게 하는 자는 당연히 죄의 값으로 죽는다.

 

바울이 유대인 신자들에게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라고 권면하기 위해 그들보다 앞서 살았던 유대인 신자들에게 똑같은 권면을 주었던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바울은 죽을 만한 일을 행한 사람을 죽이기 전에 두세 사람의 증언을 들은 후에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신명기 17:6의 말씀을 인용한다.

바울은 만일 옛 언약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의 불충실함으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10:29)라고 말하기 위해 이 말씀을 인용했다. 다시 말해, ‘너희는 그들보다 더 많은 빛과 진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너희의 죄를 위한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 또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떠난다면 너희가 감당해야 할 형벌은 그들이 받았던 것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즉시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신명기로 돌아가서 신명기 32:35을 인용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것과, 그들을 위해 준비된 것에 관한 그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배도하고 불충실한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의 유대인들처럼 십자가에서 나타난 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를 알지 못했던 그들의 조상들을 심판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도 주의하라고 경고한 것이었다.

 

<묵상>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32:36). 심판의 날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무엇입니까?(참조, 8:1)

 

: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순간마다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거해야 한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말씀을 오해하는 것 같다. 이 사랑은 감성적인 사랑 이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생명의 본질적 성질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사랑으로 나타나는데(요일3:14 참고)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붙드시고 우주를 유지하시면 창조한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힘입어 살며 활동하며 존재한다(17:28).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물이나 무생물이 존재와 생명과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런데 피조물 중에 여호와와 상관없이 존재하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은 그렇게 해보라고 하신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생명과 존재를 반납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생존한다면 그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자가 되고 그도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여호와 삼위일면 외에는 절대로 없다. 루시퍼처럼 기어이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다고 주장하면 그대로 두신다. 그것이 형벌이요 사망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으면 이런 상태에 빠진다. 그냥 두면 사망이 되고 존재를 상실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선전하고 퍼뜨리면 여호와를 의지하여 생존하려는 모든 존재를 여호와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미 돌아오지 않기로 굳게 결심해서 그는 사망이 되었는데, 굳이 그를 두어서 생존할 수 있는 존재들까지 사망에 빠지게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그분의 명령을 준행하지 않고 거역하여 결코 돌아오지 않는 자들을 사형에 처하신다. 이것이 형벌이다. 우리가 성경에 계시된 이 사실을 올바르게 분명히 깨닫기를 하나님께서는 열망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18:32).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16:6).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을 오해하지 말자.

 

<교훈>

바울은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유대인 신자들에게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며 절대로 떨어져 나가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1217()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이 모세오경의 글을 인용하거나 참조했던 것처럼, 신약 역시 구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거나 참조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시편, 이사야, 그리고 신명기는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책들이다. 신약의 기자들은 헬라어 구약 성경으로 알려진 70인역(LXX) 성경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히브리어 성경 최초의 헬라어 번역본이다. 토라 또는 모세 오경이라고 불리는 성경의 첫 다섯 책은 주전 3세기에 번역되었고, 구약의 나머지 책들은 주전 2세기경에 번역되었다.

신약의 기자들이 구약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살펴보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오늘날의 많은 성경 학자들과 달리 신약의 기자들은 구약에 있는 책들의 진위 여부나 권위에 대해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약의 기자들이 기록한 글들 속에서 구약에 기록된 이야기들(아담과 하와의 존재, 인류의 타락, 대홍수부터 아브라함의 부르심 등등)의 역사성에 대해 의심을 나타내는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의 주장은 인간적인 회의론에 근거한 것일 뿐, 우리 재림 성도들은 그런 주장에 그 어떤 영향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인으로서 우리가 받은 모든 빛을 생각해 볼 때, 그와 같은 빛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진리에 충성해야 하는 우리의 큰 책임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말고 말씀 그대로 준행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2. 신명기 18:9~14을 다시 한번 읽어 보라. “여호와께 가증한 일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들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가?

[18: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12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강신술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형태를 바꾸어 문화로 사회를 공격하기 때문에 교회가 무심코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우리는 깨어 조심해야 한다.

 

3.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음을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을 절대로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차별하고자 하는 본능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가?(그 누구도 이와 같은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십자가를 우리 앞에 두고 사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이런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아 줄 수 있는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언제나 굴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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