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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37분)

기억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연구범위: 마 23:25~28, 롬 3:28, 8:4, 10:3, 갈 3:6, 요일 2:3~6, 5:1~3.

안식일 오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에 대한 공부를 지난주까지 마쳤다. 앞으로 두 주 동안 우리는 두 가지 열매를 더 공부할 것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이 성경절에서 바울은 착함 또는 양선에 대해 다시 반복한 다음 ‘의’와 ‘진리’를 추가하였다. 이번 주에 우리는 의(義)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의를 두 가지로 이해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입혀주시는 의인데, 이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으로써 우리를 덮어주시는 의이며, 하늘가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나눠주시는 의인데, 이는 그분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속에서 행하시는 활동으로서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꼴 지으시는 과정이다.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義)뿐이며,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두 가지 의가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핵심본문: 롬 10:3

<학습 목표>

깨닫기: 의(義)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발견됨을 확인한다.

느끼기: 자신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갈망한다.

행하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굴복한다.

< 교과 개요 >

I. 깨닫기: 의(義)의 유일한 근원이신 예수님

A. 구원하고 성화시키는 의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발견된다. 다른 대안이 없다. 이런 기초적인 진리가 성경에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1. 예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에서 오직 그분 안에서만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음을 어떻게 예증하셨는가?

2. 거룩함에 대한 높은 견해는, 인간의 노력으로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3.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은 어떻게 우리를 해치는가?

II. 느끼기: 하나님과 화목함

A.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어떻게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이끄는가?

B. 자기 의(義)에서 돌이켜 그리스도께로 갈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III. 행하기: 의와 순종

A. 유대인은 예수님의 의를 받지 않고 율법에 순종하기만 하였다.

1. 순종이 어떻게 율법주의적 형식주의로 흘러갈 위험이 있는가?

2. 성령의 선물은 대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사랑, 평화, 친절, 온유, 믿음의 의는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가?

3. 옳은 일을 행하되 율법주의를 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요점: 예수님 안에 있는 의(義) 외에는 그리스도인이 승리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면 성장이 있을 것이다.

일요일(3월 7일) 의의 필요성(마 6:33)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시 11:7).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잠 15:9).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1. 위의 인용 구절들에 근거해 볼 때, 만일 우리가 율법에 의해 의롭게 될 수 없다면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습니까?

답: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음으로 의롭게 된다.(참조 롬 3:28)

2.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되 죄인은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지만 우리는 어떤 잘못된 결론에 이르는 것을 피해야 합니까?

답: 죄를 미워하시되 죄인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기 위해 더 큰 죄인이 되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죄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3.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을 만큼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아니면 바울이 다른 어떤 것을 말하고 있다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우리는 스스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의로써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셨다.

4.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할 때 우리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까?

답: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받게 되고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율법과 그리스도의 의(義)

“율법은 범죄자를 용서할 힘이 없고 범죄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보인다. 그분은 만일 우리가 그분을 대속자와 보증인으로 받아들이면 내가 너의 죄를 가져가서 담당할 것이요, 나는 너에게 나의 의를 입혀 주겠다고 하신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109)

<부가설명> 열매라는 말은 잘 생각해야 한다. 열매를 맺으려면 그 열매를 맺을 나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열매만 말하고 나무는 말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열매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꼭 나무나 곡식 얘기를 하셨다. 나무는 빼고 열매 이야기만 할 때 마치 나쁜 나무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 중에 나쁜 나무도 노력하여 선한 열매를 맺으면 완전해 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의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의의 나무가 되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가 다 그렇다. 성령이 그 사람을 주관하지 않으면서 나타내는 사랑이나 희락이나 화평이나 인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성령의 열매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속을 수 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이 의의 나무가 되게 의의 나무를 심으신다.(사61:3) 거룩한 씨를 심으신다.(사6:13) 좋은 씨를 심으신다.(마13:37) 그래서 의의 열매, 거룩한 열매, 좋은 열매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가시를 따 내면서 성화를 이야기하거나 엉겅퀴에서 가시 돋친 잎을 따 버리면서 의로워지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은 가지가 될 때 그 가지도 포도나무가 되며 포도를 맺히는 것이다.

열매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그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한 것이 먼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교훈: 우리에게는 의가 없으므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야만 한다. 그분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기를 기뻐하신다.

월요일(3월 8일) 스스로 만들어낸 의(롬 10:3)

1.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누구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까?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어떤 시도를 하였습니까? 인간의 죄된 본성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왜 불가능한 일입니까?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답: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의”와 “자기 의”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자기 의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힘써 하나님의 의를 대적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더러운 옷”(사 64:6)과 같은 인간의 의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

‘손수 하는’(do-it-yourself) 활동은 개인이 (목수 일이나 자기 집 수리 등) 전문적인 훈련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개인이 손수 하는 일이나 자신이 주도하여 하는 일을 가리킨다. 우리는 때때로 특히 성공적인 사람을 가리켜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부른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 참된 의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하나님 앞에 스스로 의롭게 될 수는 없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사 64:6)과 같다. 사실상 스스로 의에 이르려고 하는 노력은 종종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2. 마태복음 5:20과 23:25~28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는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자들의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 내셨습니까?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23:25-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답: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고자 했던 노력은 철두철미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가식적인 것이요 부정한 동기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더 나은 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의를 얻기 위해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 때문이지 그들 자신이 행한 일 때문이 아니다. 누구든지 이 진리에서 시선을 놓치는 순간 교만과 함께 내면의 부패가 수반되는 자기 의에 빠지기가 너무나도 쉽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경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외적인 경건의 행위에 치중한 나머지 진정한 문제에 대해서는 시선을 놓치고 말았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그리스도의 책망은 처음 사랑을 잃은 신자들에게도 적용될 수가 있다. 냉랭하고 율법적인 신앙은 결코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랑도 그리스도도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롭다는 정신으로 금식하고 기도드릴 때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098)

<부가설명> 그리스도인들이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무조건 의지해야 한다는 주장만 하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황하게 된다. 성경은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믿을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를 계시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반쪽만 공부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근본은 제쳐놓고 과정과 결과만 이야기하고 강조한다. 누가는 예수님 이야기를 기록할 때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펴서 기록하였다고 증언한다.(눅1:3) 이런 기록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근원부터 공부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계시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까닭은 모든 인류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회칠한 무덤처럼 겉모양은 아름답게 보여도 속은 썩은 송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들이기 때문에(엡4:22) 그들이 스스로 행하는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그래서 아담 안에서 죽어서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생명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야 한다. 이것을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붙은 사람들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는 것이다.(요10:10) 그럴 때만 우리는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교훈: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의를 이루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참된 의를 얻기 위해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한다.

화요일(3월 9일) 그리스도, 우리의 의(롬 5:17)

1. 로마서 5:17~19을 읽고 여기서 바울이 한 말을 자신의 말로 요약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정죄를 받으며, 또 어떻게 의롭게 됩니까?

롬5:17-19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답: 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를 받아 사망에 이르렀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동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

2. 만일 예수님의 의가 ‘선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갈 3:6, 약 2:23)

갈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약2:23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답: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예수님의 의의 선물을 받게 된다.

로마서 5:19에는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강조가 나온다. 한 사람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다. 이것은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아담의 죄는 인류의 타락을 가져왔다. 우리 각자는 매일의 삶을 통해 그 죄의 결과를 겪으며 살아간다. 아무도 예외가 없다.

그러나 같은 절에는 순종에 관하여도 언급되어 있다. 누구의 순종인가? 물론 유일하게 구원에 필요한 의를 가지신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그분의 순종은 “은혜의 풍성함”을 받게 될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의다. 바울은 같은 절에서 말하기를, 이 은혜를 받는 자들은 “의의 선물”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그것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선물이라면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며, 또한 과분한 은총임에 틀림없다. 그것을 노력으로 얻으려고 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되지 못한다.(롬 4:4)

그러나 그것은 무턱대고 주는 선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모든 이들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롬 5:17). 그 의는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고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즉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겨진 바 된 아브라함과 같이(갈 3:6) 그것을 믿음으로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 의가 주어진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그리스도의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를 로마의 회중에게 증거하였을 때 그 진리는 마치 목마른 나그네에게 주는 시원한 냉수처럼 진리에 갈급한 많은 영혼들에게 복된 소식이 되었다.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값없는 선물로 우리들에게 전가(轉嫁)시켜 주셨다는 사상은 실로 보배로운 생각이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60)

<부가설명>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는 것을 뜻한다.(요5:24)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때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들이 아담 안에서 다 죽은 자들이지만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심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기회를 주셨는데, 그 기회가 바로 은혜의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육체의 생명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그래서 비록 육체의 생명은 있으나 그 생명이 행하는 선행이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아담 안에서 죽은 사실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죽은 자가 자기 노력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꼭 같은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이 죽은 자에게 이르러 그를 살리는 것이다. 마치 나사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요일5:11,12) 비록 육체의 생명을 가졌을지라도 영원한 생명은 없다. 영원한 생명이 아닌 육체의 생명을 참 생명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사형수가 사형 집행될 때까지 살아있는 것과 같은 상태일 뿐이다. 그래서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한 것이다. 즉 예수를 믿을 때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예수 안에서 얻는 생명이 의의 실상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말은 이 생명을 얻었다는 뜻이다.(롬6:4-7 참고, 4:23-25)

교훈: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이 의는 아브라함과 같이 그것을 믿음으로 주장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수요일(3월 10일) 의와 순종(요일 2:29)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 가리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의는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의는 단지 법적인 선언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의를 소유한 사람의 삶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요한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요일 3:7)

1. 의롭게 된다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오해할 수 있습니까?

요일3: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답: 많은 사람들이 의롭게 된다는 개념을 오해하고 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이제는 순종할 필요가 없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의는 순종과 연결된 성령의 열매이다. 어떤 사람들은 순종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끔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으니, 그분을 주님으로도 영접하지 않겠습니까?” 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 속에 내포된 의미는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 문제와 따로 분리된 문제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그것은 구원의 의미를 극단적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표식이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2. 요한일서 2:3~6에서 요한이 말하려는 핵심은 무엇입니까?

요일2:3-6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답: 순종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구원 받은 자는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순종이라는 주제가 제기될 때마다 ‘우리는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물론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루스벨을 하늘에 두신 것은 그가 순종의 덕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은 그의 불순종 때문이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순종한 공로로 에덴동산에 있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불순종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원인이 되었다.

“의란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행위로써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품성은 행위로 나타난다. 우리의 행위는 믿음의 진실한 여부를 보여 준다.”(실물교훈, 312)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심으로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의무가 없다는 뜻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종말을 고한 것은 의를 얻는 방법으로서의 율법이다. …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왜곡시키고 도덕률과 의문률을 율법주의적으로 순종함으로 그들 스스로의 의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잘못된 율법의 남용을 끝내시고 믿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지적하셨다. 그러한 믿음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굳게 세우며(롬 3:31 참조) 사람들로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게 도와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롬 10:4)

<부가설명>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도덕적으로 고상하게 살지라도 그것이 그들을 아담 안에서 죽은 사실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지 못한다. 부자 청년이 예수께 와서 영생하는 길을 물었을 때, 계명들을 지키라는 말을 듣고 어려서부터 그것을 다 지켰다고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다 팔아 구제하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아담 안에서 죽은 그 상태로 율법을 지킨 것으로는 영생으로 옮겨주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오직 예수를 믿고 따를 때만 영생을 얻는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율법의 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지만, 그것이 다 해가 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자기가 행한 율법으로 생명을 얻는다고 착각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엄청 해로운 것이다. 그는 자기가 가진 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고백한 것이다.(빌3:6-9) 이 의가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이 살아가는 생태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종이 되는 것이다. 순종은 생명의 역사이지 인간의 노력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 생명을 가졌으면 순종은 생태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갈2:20의 바울의 고백이다.

교훈: 순종의 공로로 구원 받을 사람도 없지만, 불순종하고 구원 받을 사람도 없다. 불순종은 우리의 믿음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목요일(3월 11일) 의로운 생애(요일 5:1~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2~3)

1. 동료 신자들을 사랑하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계명들을 지키는 것과 연결됩니까?

답: 하나님의 계명 곧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키기를 요구하셨기 때문에 그의 계명을 단지 의무감에서 지키는 자들은 결코 순종의 기쁨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사람의 성향과 충돌되기 때문에 그것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애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생애라고 할 수 없다. 참된 순종은 마음속에 간직한 원칙이 행동으로 실행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순종은 의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 데서 생긴다. 우리의 구속주에 대한 충성이 모든 의의 진수이다. 이 충성심이 우리를 의로운 행위로 이끌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의로운 행위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실물교훈, 97~98)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치르신 그분의 엄청난 희생을 숙고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일으키는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설득력이 없다. 사람들에게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전하는 데서 능력이 나온다. 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가 예수님을 통해 용서받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음으로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데서 권능이 나온다.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지옥과 정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이 우리 삶에 동기를 유발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와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풍성한 약속에 초점을 맞추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모든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군인이 만일 그의 사령관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 군인은 그의 사령관을 따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범이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9)

<부가설명> 의로운 생애는 의인에게서 나온다. 악인이 의인의 생활을 모방한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생애를 모방한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타나는 모습은 도덕적으로 행하는 의로운 행위와 예수를 믿음으로 행해지는 의로운 행위를 구별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는 육체의 생명뿐인 사람들이 자기 노력으로 수양하여 나타나는 것이고 예수를 믿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의 것은 예수 생명이 행하는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쉽고 즐겁다. 이것은 생명이 나타내는 성질이기 때문에 그대로 하지 않게 될 때 불편하고 아프고 힘들게 된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행하는 것은 그 행함이 힘드는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 대한 참된 사랑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며, 계명에 대한 참된 존경심은 그분의 사랑을 진심으로 깨달을 때 이르러 온다.

금요일(3월 1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수님은 협잡꾼이 아니며, 성경은 공교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믿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비록 우리가 천하 인간에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사람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으로 믿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진리의 이론만을 믿는 것으로는 넉넉지 않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公言)하는 것만으로 넉넉지 않고 우리 이름이 교회 녹명책에 기록되는 것만으로도 넉넉지 않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을 알 것이요’(요일 2:3). 이것이 참된 거듭남의 증거이다. 우리가 어떠한 공언을 하든지 간에 우리의 옳은 행실로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않을 것 같으면 그 공언은 아무 소용이 없다.”(실물교훈, 312~31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어떻게 하면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율법주의와,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우리의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값싼 은혜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나는 값싼 은혜와 율법주의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습니까?

* 그것은 구원이 예수님의 생명을 얻는 것임을 확인하는데서 해결될 수 있다. 우리가 예수 생명을 소유하면 그 생명이 생활하는대로 살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바로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진 것이며 그것이 그 사람의 생태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계명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욕구가 생길 때만 선을 행하는 것에는 어떤 위험이 내재되어 있습니까? 이러한 삶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 수 있습니까?

* 욕구가 생길 때 하는 것은 생명의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적 충동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색을 내게 되고 그것을 기억하고 자기 의를 자랑 하게 된다.

3.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의로운 사람이라 생각되는 이는 누구입니까? 그의 말과 행동은 어떠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 이 질문은 각 사람이 대답할 질문이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님이 그의 생명이 된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덕을 쌓은 사람이라도 예수가 없으면 그는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다. 생명이 없는 사람의 선행은 그냥 시체에대 화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4. 우리는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공동체로서 의로운 교회가 될 수는 없습니까? 의로운 교회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 의로운 교회는 예수님을 완전히 모시고 예수님의 생명과 사상으로 운영되는 교회이다. 그런 교회는 예수님이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요14:12)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5.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왜 예수님이 아니면 의를 얻을 수 없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한 것 같다. 나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 생명으로 살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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