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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과 영원한 언약

(42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16)

 

연구 범위: 3:14, 17:1~6, 41:45, 1:7, 15:7~18, 17:1~14

 

기억절 :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17:7).

그대는 어린 시절에 폐렴이나 어떤 지독한 병에 걸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심하게 앓았던 기억이 있는가? 열이 떨어지지 않던 기나긴 밤, 잠에서 반쯤 깨어나 보면 희미한 불빛 아래 어머니 또는 아버지께서 머리맡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비유하자면 홍수 후 몇 세기 동안 도덕적 암흑이 깊어 가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도 죄의 병을 앓고 있는 세상의 곁에 앉으셨다. 이러한 이유로 그분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당신의 신실한 종을 통해 한 백성을 세우셔서 당신에 관한 지식을 위탁하시고 구원을 베풀기로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그의 후손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거룩한 계획이 보다 세부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처참한 상태에 있는 당신의 세상을 돌보지 않은 채로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었다. 이번 주에 우리는 더 많은 언약으로 나타난 약속들이 펼쳐지는 것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에 구원의 계획을 드러내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느끼기

언약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온전한 순종임을 기억한다.

행하기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으로 대답한다.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소개하신 이름은 무엇이며 그 뜻은 무엇입니까?(15:7)

여호와, 모든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있는 자이다.

3.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17:1)

하신 약속을 넉넉히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은혜를 나타내신 것이다.

4.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보여 주나요?(17:4,5)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그를 통하여 많은 무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5. 하나님의 은혜로 맺게 된 언약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18:19)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유지한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드러내 보이셨고 아브라함은 순종으로 화답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언약의 변함 없는 가치를 깨닫고 순종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418() 여호와 그리고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15:7).

 

이름은 종종 상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가 어떤 이름을 들으면 즉시 그 이름에 관한 어떤 특징이 마음속에 떠오르게 된다. 예를 들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 간디, 도르가 등과 같은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각각의 이름은 어떤 특징 그리고 그 이름의 주인에 대한 기대와 연결되어 있다.

성경 시대에 근동 지역에서는 이름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히브리인들은 항상,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름을 지닌 자의 개인적인 특성이나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의 사상이나 정서 혹은 그 이름을 지을 당시의 환경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1, 590).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처음으로 언약 관계를 맺으셨을 때, 그분께서는 아브람에게 당신 자신을 야훼(YHWH)라는 이름으로 알려 주셨다(15:7). 따라서 창 15:7을 문자 그대로 나는 너를 ... 이끌어 낸 야훼니라고 읽을 수 있다.

야훼라는 이름은 구약에 6,828번 등장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신비에 가려져 있다. 아마도 존재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하야(hayah)의 한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 야훼는 영원하신 분’, ‘존재하시는 분’, ‘자존하시는 분’, ‘자족하시는 분혹은 영원히 살아계신 분을 의미한다. 이러한 호칭을 통해 강조되고 있는 신적 속성은 그분의 자존성과 신실하심이다. 이러한 호칭들은 경배자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교도들의 신들과 달리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그리고 생명의 근원으로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14에서 친히 야훼의 의미를 설명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니라고 하셨다. 이러한 의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스리시는 그분의 통치를 시사하는 동시에 그분의 제한 없는 존재의 실재를 표현하고 있다.

야훼는 또한 하나님의 개인적인 이름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우르에서 인도해 내신 분으로 자신을 소개하심으로써 창 12:1~3에 나오는 아브람과 맺으신 당신의 언약을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원과 속성과 품성을 드러내는 당신의 이름을 아브람이 알기 원하셨다. 그리고 이 지식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기를 바라셨다(참조 시 9:10, 91:14).

 

<묵상>

하나님께서 직접 설명하신 야훼(YHWH)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이며 그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3:14,15]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부가설명> 스스로 있다는 말은 그의 존재와 생명이 근원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라는 뜻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외에는 우주 안에 어떤 좆내도 그 존재의 근원이 자기 밖에 있다. 자기 외의 누군가가 존재와 생명을 있께 해주었다. 사람은 부모에게 생명과 존재를 받았다. 이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다 그렇다. 창조주께서는 그렇게 창조하셨다. 그 말씀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명령이었다. 그래서 이 지구에 생물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모든 생물들이 알고 있다.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12:8~10). 유독 사람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성이 사탄의 최면에 걸려서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7:29). 스스로 지혜 있다는 생각이 참 지혜의 근원을 떠나게 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어 사람이 저질로 퇴화해버렸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1~23). 이제는 짐승이 사람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짐승으로 퇴화하고 있는 세계가 되었다.

 

교훈: 하나님의 이름에는 그분의 속성과 품성이 드러나 있다. 우리가 그 이름의 비밀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그분에 대한 더욱 강한 믿음을 갖게 된다.

 

 

419() 엘 샤다이(El-Shaddai)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여호와께서는 전에도 아브라함에게 여러 번 나타나신 적이 있었다(12:1,7, 13:14, 15:1,7,18). 위의 구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당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소개하시는데, 이 칭호는 창세기와 욥기에만 사용되었다.

전능한 하나님이란 성호는 셈족 언어에서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인 엘(El), 비록 그 의미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가장 정확한 의미로서 전능한으로 번역된(13:6, 1:15과 비교해 보라) 샤다이(Shaddai)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이 이름이 사용된 것에 있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이름에는 인간의 연약함과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강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주제를 보다 큰 문맥에서 생각하기 위해 창세기 17:1~6을 읽어라.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 아브람에게 자신의 힘과 능력을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힘과 능력을 신뢰하도록 아브람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특히 6절을 주목해 보라.

[17:1~6]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 아브라함은 스스로 자기는 자식을 낳을 나이가 지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 샤다이이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아브람에게 확인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확신하게 하신 것이다.

 

17:1~6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기를, 나는 엘 샤다이니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 ...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또한 이 이름은 이삭이,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이 야곱에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케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한 창 28:3에도 나타난다.

엘 샤다이의 비슷한 약속이 창 35:11, 43:14, 49:25에서도 발견되는데,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능력의 풍성함을 발견할 수 있다. (El), 능력과 권위의 하나님, 그리고 샤다이(Shaddai), 무궁무진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순종으로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리기를 원하신다.

 

<묵상>

엘 샤다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는 분으로 다가와야한다.

 

오늘의 주제 성결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허약한 하나님또는 연약한 하나님으로 바꾸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면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신뢰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통해 우리 믿음에 확신을 더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가설명> 성경의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사실과 그분이 당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계시한 것은 같은 사상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것과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의 믿음은 약하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두렵기 때문에 보이는 권력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그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굳세어서 환난의 때에도 견고하게 섰으면 좋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강한 믿음을 키우라고 시련을 허락하신다고 했는데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다. 연단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성경은 가르친다(5:4). 베드로는 믿음의 시련이 금보다 귀하다고 했다(벧전1:7). 죄의 세상이기 때문에 이런 시련이 있지만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믿음을 키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늙고 무자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믿음을 촉구하신다.

 

 

420()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17:4, 5)

 

하나님의 성호는 영적 및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것은 다만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사람들의 이름은 오늘날 우리가 하는 것처럼 단순히 신원을 확인하는 방편으로만 쓰인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에 여자 아이의 이름을 서아나 서윤이로 짓는 데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고대 셈족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영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모든 셈족 사람들의 이름은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데, 대개 부모의 소망이나 감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구()나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요엘은 야훼는 하나님이시다’, 나단은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한다.

이름에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생애나 환경에 극적인 변화가 생기면 그것을 반영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도 하였다.

 

다음 구절들을 찾아보라. 어떤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또한 그런 상황 속에서 이름들이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1.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인격과 생활을 바꾸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2. 41: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요셉이 애굽을 구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또 애굽적인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3. 1: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 정신을 가지라는 압력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에도 사람이 무엇으로 불리는가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멍청이혹은 못난이라고 불린다면 조만간 그 또는 그녀의 자기 가치관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이름을 주거나 이름을 바꾸어 줄 때에 그것은 그의 생각과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하나님께서 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는지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칭송받는 아비라는 뜻을 가진 아브람을 열국의 아비를 뜻하는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셨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17:6)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그렇게 개명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지금까지 임신하지 못한 늙은 여인과 함께 살고 있는 99세의 늙은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언약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묵상>

17:6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그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겠는 것을 확인시킨 것이다.

 

<부가설명> 우리는 어떤 경우에 이름 값을 해라.’라고 다그친다. 이름은 가치가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새 이름으로 얻는다. 사회에서 그들이 개인적 이름보다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 그 이름을 가지 누군가가 잘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러더라. 그리스도인이 그러더라.’라는 비난을 받는다. 어떤 군인이 군복을 입고 잘못하면 그 개인이 욕을 먹는 것이 아니고 군인이 욕을 먹는다. 이름을 이렇게 작용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4:1),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등등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살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재림교인은 남은 자라는 기능과 재림성도라는 칭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소망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야 한다. 옛날 이스라엘은 이방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모습이 되었다. 우리는 결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교훈: 히브리인들이 자녀의 이름에 그들의 소원을 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심으로써 언약의 성취를 기대하셨다.

 

 

421() 언약의 단계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1,2).

 

위의 두 성경절에는 아브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의 첫 번째 단계가 나타나 있다(모두 세 단계가 있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다가가셔서, 그에게 명령을 주시며, 그와 더불어 약속을 세우셨다. 다가가심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운 선택을 통해 아브람을 당신의 특별한 은혜의 언약의 첫 인물로 삼으셨음을 나타낸다. 명령하심에는 하나님께 대한 아브람의 전적인 신뢰심을 시험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11:8). 약속하심은 비록 구체적으로는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주셨지만(12:1~3,7)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류에게 맺으신 약속을 포함한다(12:3, 3:6~9).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의 두 번째 단계는 창 15:7~18에 나타나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본 세 가지 과정을 각각 몇 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15:7~18]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가가심 7

인간에게 순종을 명령하심 9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하심 15, 16, 18

 

두 번째 단계의 엄숙한 의식 중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조심스럽게, 놓여 있는 동물들의 조각들 사이로 지나가셨다. 각각의 세 동물들은 도살되어 쪼개졌으며 절반씩 나누어진 두 조각들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게 놓여졌다. 새들은 죽임을 당했지만 쪼개지는 않았다. 언약을 맺는 당사자들이 쪼개놓은 조각들 사이로 지나가는 것은 언약에 영원히 순종하겠다는 엄숙한 서약과 맹세를 상징했다.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소망과 계획이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에 강조되어 있다. ‘열국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포함한다. 신약에서는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고 약속된 메시아의 은혜를 신뢰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한다(참조, 3:7, 29).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시대로부터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어떤 국가에 살고 있든지와 상관 없이 그분께서 살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시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음이 분명하다.

 

<묵상>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참조, 17:1~14)

[17:1~14]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도록 하셨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순종하겠다는 표를 생명에 가진다는 뜻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과 언약을 맺으려하실 때에 먼저 사람에게 다가오신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감히 먼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다. 하나님의 오심을 받아드릴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오심을 환영하고 그분의 명령을 순복하겠다고 대답하면 하나님께서는 복을 약속하신다. 복은 이미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주시려고 가지고 오신 것이다. 그러나 명령을 거절하면 주시는 복이 그 사람에게 복이 되지 못한다. 복 자체가 자율적으로 사람에게 복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에게 복이 되려면 복을 주시는 분이 사람에게 복이 되도록 초지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복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 복이 복이 되도록 조치하지 않으면 복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명령과 순종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안약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약을 거절하려면 하나님의 명령과 우리의 순종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교훈: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셔서 순종을 명령하시고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확고한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

 

 

422() 언약의 의무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8:19).

 

지금까지 우리가 본 바대로 언약은 항상 은혜에서 비롯되며,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가능케 해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 아브라함과의 언약도 예외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구원의 계획을 선포하는 일을 돕도록 하시기 위해 당신의 은혜 가운데 아브라함을 당신의 도구로 선택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취하시는 일은, 의롭게 행하고 믿음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아브라함 편에서의 그러한 순종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실 수 없으셨다.

18:19은 은혜와 율법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말씀은 은혜로 시작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게 할 사람이라는 사실이 뒤따른다. 여기 믿음과 행위가,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나타난다(참조, 2:17).

 

18:19을 읽어 보라. 비록 순종은 구원의 수단이 될 수는 없으나,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 순종은 언약의 조건을 수행하는 것이다.

 

언약의 축복은 수혜자 편에서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을 누릴 수도, 유지될 수도 없다. 비록 언약을 세우기 위해 그 조건들이 필요 되는 것들은 아니지만, 그 조건들을 지키는 것은 사랑과 믿음과 순종의 반응이 되어야 했다. 그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킴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백성들에게 이루실 수 있는 방편이었다.

불순종으로 인해 언약이 깨어진다면 그것은 언약 관계에 충실치 못했다는 증거이다. 언약이 깨어져 버리면 그 언약은 성취될 수 없다.

 

<묵상>

하나님께서는 왜 순종을 조건으로 축복을 허락하셨을까요?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쓸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통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8: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은 은혜를 입은 자들의 삶에 나타나야 할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많은 믿음의 선구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부가설명>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약속으로 이루어진다. 양방이 동등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언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해드릴 수 있다는 말인가?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35:6,7). 사람의 도덕성이 하나님께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려면 하나님이 사용하기에 알맞도록 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순종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천하 만민이 그와 그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된다. 그 통로에 복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들이 가득 들어있으면 복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없다. 통로를 막는 것들을 다 치워야 한다. 그것이 순종이다. 그것도 스스로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성령께서 하실 때에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방해하지 않는 것이 순종이다. 행위는 살아 있는 존재에게 나타나는 당연하고 자연스론 상태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그 안에 작용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했다. 우리도 예수님의 우리의 생명이 되셨다면 순종이라는 작용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탈 것이다.

 

교훈: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인간 편에서 한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순종이다.

 

 

423()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125~131 ‘아브라함을 부르심’, <사도행적> 188~200 ‘유대인과 이방인을 읽어보라.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은 무지개이다. 17:10을 읽고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이 무엇인지 찾아보라. 할례

할례는 “(1) 아브라함의 후손을 이방인과 구별하기 위하여(2:11), (2) 여호와의 언약에 대한 기억을 영속시키기 위하여(17:11), (3) 도덕적 순결성을 계발, 육성하기 위하여(10:16), (4)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4:11), (5) 마음의 할례를 상징하기 위하여(2:29), (6) 그리스도인의 침례 의식의 전형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2:11,12) 정해졌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1, 318).

무지개는 하나님의 약속의 표징으로 세상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나, 할례의 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고 했다(4:11). 그러나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할례는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구원을 의미하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할례는 그 성경적 의의를 상실하였다. 그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그 믿음은 순종과 변화된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5:66:15, 고전 7:18,19을 읽어 보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토의해 보라. 둘 중에 어느 하나가 없이도 다른 하나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믿음과 행함이라는 이분법적 이해는 사람을 혼란하게 한다. 그것은 생명과 생명작용이라는 일원론적 이해를 할 때 바르게 이해하게 된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2:17).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오해하는 구절이다. 이 말씀은 행함을 강조하는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살았나 죽었나를 확인하는 구절이다. 살아 있는 자는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믿음이 있느냐고 묻기보다는 예수님이 네 생명이 되셨느냐고 물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행동이 생활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의 생명이 예수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일 5:11,12절을 확인하자.

 

2.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브라함이 시험을 당하였던 것처럼 시험을 당한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는 않으나, 그분은 말씀의 교훈과 섭리의 사건들을 통해 그들을 부르신다. 그들은 극기와 고난과 희생의 길인 것처럼만 보이는 길로 들어가기 위하여, 부귀와 공명을 보장하는 직업을 버리며 마음에 맞는 유리한 공동 생활을 떠나고 친족과 작별하라는 요구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가지고 계신다”(부조와선지자, 126).

우리와 동시대에 사는 사람 중에 이와 같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있는지 함께 토의해 보라.

반에서 토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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