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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과 약속의 자녀들

(5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22)

 

연구 범위: 15:1~3, 25:8, 고전 2:9, 22:1~5, 벧전 2:9, 11:4, 12:2

 

기억절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

한 아빠와 열 살 된 딸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에 수영을 하러 나갔는데, 둘 다 수영을 잘하는 편이었으나 해안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조류에 의해 계속해서 바다로 밀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딸에게 소리쳤다. 얘야, 아빠가 해안으로 가서 도움을 청할게. 만일 힘들면 뒤로 누운 채 떠 있거라. 그렇게 하면 하루 종일이라도 떠 있을 수 있을 거야. 아빠가 꼭 돌아올게.”

오래지 않아서 많은 구조 대원들과 보트가 어린 소녀를 찾기 위해 수색작업을 펼쳤다. 이 소식을 들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해변에서 걱정스런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네 시간 만에 겨우 그 소녀를 발견했는데, 소녀는 무서워하지도 않고 물 위에 고요히 떠다니고 있었다. 애타게 찾던 아이를 해변으로 무사히 데려왔을 때 구조 대원들은 너무 반갑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했으나, 그 아이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오히려 그들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뒤로 누운 채 떠 있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떠 있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꼭 돌아오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수영하면서 떠 있기만 했어요. 아빠가 오실 것을 믿었으니까요”(H. M. S. 리처드, ‘예수께서 오실 때에’, 예언의 소리 뉴스, 19493, 5).

 

*학습 목표

깨닫기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언약이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됨을 배운다.

느끼기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의 소망을 인해 감사한다.

행하기

은혜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대하시는 역할에 충성하기로 결심한다.

 

2. 여호와께서는 왜 자신을 아브라함의 방패라고 말씀하셨을까요?(15:1)

그를 지키시고 그를 통하여 하실 일을 이루시는 보증의 말씀이다.

3. 언약 중에서 가장 위대한 약속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3:15, 3:16)

메시아를 보내서 세상을 복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4. ‘강대한 나라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요?(벧전 2:9)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펴고 복음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5.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위대함의 특징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나요?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6.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성취를 이루었으며 우리가 그 사실을 믿고 예수님께 순종할 때 우리 또한 약속의 자녀들로서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425() “나는 네 방패요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15:1).

 

15:1~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이 주어진 문맥을 생각해 보라. 왜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씀하실 때 가장 먼저 두려워 말라고 하셨는가? 아브람은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15:1~3]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 14장에 아브람은 4개국 연합군을 기습 작전으로 물리치고 롯과 그 식구들과 소돔 왕의 연합군을 구원했다. 그 후에 아브람은 패배한 나라가 군사를 정비하고 공격할까 두려워했다. 실제로는 아브람이 군사적 열세였다.

 

여기서 특히 재미있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나는 너의 방패라고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드러낸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일대일의 관계를 맺으실 것이며, 그와 같은 방법으로 그분은 우리 모두와도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실 것이다.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묘사하기 위해 방패라는 용어를 사용한 경우는 있을지라도(33:29, 18:30, 84:11, 144:2),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을 가리켜 방패로 지칭하신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누군가의 방패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브람에게 하신 이 약속을 우리도 주장할 수 있는가? 그 약속은 육체적으로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뜻인가?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가?

 

: 그를 전적으로 보호하고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도 사탄의 공격과 세상의 환난에서 지켜주시기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럴지라도 세상에서 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와 관계하여 언제나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 대해 가벼운 관심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어미의 애착보다 더 강한 관심을 가지신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 모욕과 멸시, 학대와 조롱, 거절과 죽음을 당하심으로 우리를 사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떨고 있는 자녀를 지켜보신다. 그분은 당신의 보호 아래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인 약점 때문에 하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이 차단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중보가 되셨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77).

 

<묵상>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이해일까요? 고전 10:13을 참고하여 답해 보세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시험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세상은 사탄이 자기 왕국이라고 주장하는 영역이다. 예수님은 사탄을 세상 임금이라고 인정하셨다(14:30). 그러나 그는 이미 예수님께서 그 권세를 빼앗기고 제한을 당한 상태에 있다. 히브리서 2:14에 의하면 그는 이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은 것과 같은 존재이다. 사형집행이 아직도 시행되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그는 이 기간을 자기의 행패를 한 것 펼 수 있는 기회로 알아서 크게 분내어 세상을 장악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한다(12:!2). 주님은 이것을 잘 아신다. 그러나 세상을 이기신 능력으로 우리를 지키시며 사탄의 핍박과 공격을 견딜 수 있도록 피할 길을 보이시며 방패가 되신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든지 성경이 제시하는 원칙에 굳게서서 환난과 핍박이 와도 정로에서 벗어나지 않고 하늘까지 가야 한다. 성령께서 이끄시고 천사가 지킨다(34:7).

 

교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친히 그의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믿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방패가 되신다.

 

 

426() 메시아에 대한 약속 1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28:14).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3:29).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여러 차례 그의 자손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참조, 12:3, 18:18, 22:18). 이 놀라운 언약은 반복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약속이 다른 모든 약속들보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속적이며, 다른 약속들에 의미를 더해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약속을 통해 유대 민족이 태동 되었는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에게 참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의 계획을 가르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 약속은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땅의 모든 족속의 죄를 십자가에서 갚으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완전히 성취될 것이었다.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을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구원의 약속이 없다면 하나님의 이 약속도 결국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영생의 약속이 없다면 하나님의 어떠한 약속도 결국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아브라함을 인하여, 예수님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 말은 무슨 뜻인가?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생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받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세상에 구주를 보내시겠다는 언약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약속이다. 구속주께서는 스스로 언약의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키시고 그 언약과 관계된 다른 모든 약속들이 실현되게 하셨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간에 그분과의 연합에 들어간 자들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가족과 약속의 후사로 간주된다(3:8,9, 27~29). 그들에게는 악과 고통과 시련이 다시는 없는 순결한 낙원에서 영생을 누릴 약속이 주어진다. 이보다 더 좋은 약속을 생각해 낼 수 있는가?

 

<묵상>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죄와 고통이 없는 세상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우리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이 세상에 육체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망의 종들이다.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처음 창조하실 때 사람을 영생하도록 창조하셨다. 그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된 인간들은 본래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본능적으로 영원을 향한 갈망이 존재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그 날이 속히 임하기를 고대합니다.

 

<부가설명>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2:16) ‘다윗의 혈통, ’(1:3, 딤후2:8)라고 말한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은 실제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정자(精子)를 통하여 출생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위에 제시한 성구에 씨, 혈통, 자손이라고 번역한 말은 헬라어 스페르마인데 영어의 sperm이 이 말에서 나왔다. 곧 정자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혈통, 다윗의 씨 등으로 쓴 말을 예수님의 생명이 그들로부터 받아 나온 것으로 생각하고 예수님도 아담의 자손인 우리와 똑같은 죄성을 가진 인성이라고 주장하는 것같다. 그러나 자세히 찾아 읽으면 그렇지 않다. 3:29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는 구절에서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에 자손스페르마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다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정자를 받아 출생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사람들도 다 아브라함의 스페르마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전적으로 영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 모든 사람들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출생한다(3:11). 이유는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처음에 주신 생명이 영생의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기억을 유전자에 심어주셨다고 믿는다. 이 마음은 복돈 마음이요 소망을 자아내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잘 가꾸어 예수님 안에서 회복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여 그 나라에서 주님의 얼굴을 꼭 뵙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에는 인류의 구주이신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427() 메시아에 대한 약속 2

 

진정한 행복을 누리려면 아주 먼 나라로 떠나야 하며, 또한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 토마스 브라운 -

 

1600년대에 기록된 위의 인용구에 그대는 동의하는가? 다음 성경절의 문맥에서 다시 한번 읽어 보라. (살전 4:16~18, 3:12)

[살전4:16~18]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그의 말은 사실이다. 성경은 이 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것을 약속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의 인생은 큰 불행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 출발에서부터 정죄 받은 운명임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먼저 무지의 두려운 심연을 생각해 보라. 거기서 모든 오류가 발생하여 아담의 자녀들을 어두컴컴한 웅덩이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아무도 수고와 눈물의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그런 다음 헛되고 무익하며 마음의 고통과 번민과 슬픔과 두려움만을 낳는 우리의 잘못된 애정을 생각해 보라. 광기 어린 환락과 분쟁과 전쟁, 사기와 절도와 강도, 불신과 교만과 시기와 원한, 살인과 음모와 잔인함과 포학함과 불법과 욕망, 간음과 호색과 부자연스러운 죄들과 폭행과 언급하기조차 민망스러운 부도덕한 죄들, 참람됨과 이단과 불경스러움과 거짓 맹세 같은 신앙에 반대되는 죄들, 비방과 거짓 증언과 개인 및 재산에 대한 폭력 등 이웃에 대한 죄들, 그리고 부정과 부패와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불행들이 세상에 가득하며, 미처 생각조차 나지 않는 죄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히포의 어거스틴, 제럴드 G. 월시 역, 하나님의 도성, 1958, 519).

어거스틴의 글은 비록 1500년 전에 씌어졌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 도시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로부터 달아나길 원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현재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대제사장적 봉사를 통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성취하시므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묵상>

비록 절망적인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약속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참조, 25:8, 고전 2:9, 22:2~5)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고전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22:2~5]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 새 하늘과 새 땅과 사망이 다시 없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부가설명>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의 핵심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내용이 있다(52:7). 그분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고 생명 자체이시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시고(4:17)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는 이 모든 것이 갖추어진 나라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외치신 복음도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이고 거기에는 회개하는 자가 가는 곳이라고 하셨다.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하시면서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하셨다(1:1~3). 하나님의 약속의 핵심에 이 사실이 있다. 성경은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라고 하셨다. 회개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자기가 사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현재 호흡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도 사실은 죽어가는 것이고 그것은 참된 생명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 없이 생활하는 모든 것은 도덕적으로 아무리 탁월해도 그것은 옛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썩어져가는 구습일 뿐이다(4:22). 이것을 깨닫는 것은 성령의 감화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 참된 회개의 기본이다. 이런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다(11:18).

 

교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중보사역을 통해 구원의 소망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추악한 죄 중에서 멸망했을 것이다.

 

 

428() 강대한 나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18:18, 12:2, 46:3). 아브라함의 아내는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분명히 약속하셨다. 후손도 없고 아들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둘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강대한 나라를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은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 이삭과 야곱도 그 성취를 보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강대한 나라가 되리라는 약속이 애굽에서 성취되리라(46:3)고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야곱도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는 못했으나 마침내 그 약속은 이루어졌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부터 특별한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셨는가? 여호와께서는 특정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시기를 원하셨는가? 이 나라는 무슨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워졌는가? 다음 성경절들을 읽고 답을 기록해 보라. (19:5, 6, 60:1~3, 4:6~8)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60:1~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6~8]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온 세상에 전하고 실천하도록 하여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신 것이다. 특정한 인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당신의 축복을 받아 행복하고 건강하며 거룩한 백성이 됨으로써 세상 나라들을 당신께로 이끄는 데 있었다. 이러한 나라는 창조주의 뜻에 순종할 때 수반되는 축복을 드러낼 것이었다. 천하 만민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인도될 것이었다(56:7). 그것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스라엘과 그들의 하나님께로 향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세상의 구주이신 메시아에게로 향하게 될 것이었다.

 

<묵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려고 했던 일과 오늘날 교회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시는 일 사이에서 어떤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참조, 벧전 2:9)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똑같다. 국가적 민족적 이스라엘은 실패했다. 참 교회가 이 일을 꼭 이루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이방 나라들에게 나타내므로 그들이 하나님께로 이끌려 오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온 세상에 복음의 초청을 보내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참조 실물교훈, 290)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과 협력하여 그분의 능력으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부가설명> 역사의 종말에 영원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그 여자의 씨의 남은 자손을 일으키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지고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 오늘날 세상에 예수 이름을 부르는 교회들 중에 성경이 계시한 이 조건을 구비한 교회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외에는 없다. 옛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사명이 역사의 종말에는 남은 자손들에게 위임되었다. 교회는 남은 자손, 그 여자의 씨의 남은 자손의 성경적인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이 직무를 수행하려고 말씀에 굴복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성경에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에는 여자의 씨의 남은 자손이다. ‘예수의 증거라고 했는데 원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이다. 뜻은 같으나 뺀 것이 아쉽다. 사본에 따라 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여자의 씨, 후손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남은 자손이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53:10). 이 구절에,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라고 예언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그 씨를 본다고 했는데 그가 바로 여자의 씨의 남은 자손이다. 우리는 이 직무를 올바르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아멘.

 

교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강대한 나라를 세우심으로써 천하 만민을 당신께로 이끄시고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기를 바라셨다.

 

 

429()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12:2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무리 신실하고 순종적이라 할지라도 한낱 죄인에 불과한 사람을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창대하게 하시겠다고 하셨는가? 그 이름이 창대하게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누가 있는가?(참조, 4:1~5, 2:21~24)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그를 창대하게 하셨는가 아니면 더 깊은 의미가 있었는가? 설명해 보라.

[4:1~5]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2:21~2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그 믿음을 받으시고 그와 그의 후손을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창대하게 하시기로 하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11:4과 창 12:2을 비교해 보라. 두 구절에 나타난 견해 가운데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11장은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늘 가려고 했다. 아브함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다.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아브람은 믿기고 자기를 하나님께 맡기면 되었다.

 

구원의 계획은 오직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 우리도 그 구원의 계획과 관련되어 있다.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우리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 각 시대를 통해 이어져 내려온 그리스도와 사단의 대쟁투는 여전히 우리 속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전개되고 있다. 우리 속에서 벌어지는 대쟁투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천사와 인류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전 4:9). 따라서 우리의 태도와 말과 행동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온 우주에까지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일을 행하신 주님께 우리는 말과 행동과 태도로써 영광을 돌릴 수도 있고, 그분의 이름에 욕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소위 이름을 떨친다는 개념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선한 품성, 믿음, 순종, 겸손, 남을 사랑하는 것 등 하나님 보시기에 이름이 창대케 되는 특성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창대케 된다는 개념과는 크게 다르다.

 

<묵상>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시는 것은 그가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올바르게 나타내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배우이든 정치인이든 예술가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할 것 없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들의 위대함을 아브라함의 위대함과 비교해보십시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세상이 이야기하는 위대함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위대함의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가설명> 아브라함을 창대하게 하시는 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세상에 올바르게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을 주목하시고 겸손한 사람을 주목하시고 주님의 일을 위하여 불러서 사명을 주신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육체를 따라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어렵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굴복하고 바울처럼 자아를 비워야 한다. 그러면 주님만이 우리 안에서 높아지고 나타나게 된다. 바울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4).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3:4~9). 바울은 전에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 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랬을 때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고 이런 경험에 이르렀을 때가 이삭을 바쳤을 때이다. 우리도 내게 있는 유익하다는 것을 해로운 것을 깨달을 때 진정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이르는 경험을 할 것이고 주님을 위하여 창대하게 되는 경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선한 감화가 온 세상과 온 우주에 확산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430()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132~144 ‘가나안의 아브라함’, 145~155 ‘믿음의 시험을 읽어보라.

 

아브람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가 머무를 땅을 분명히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고(12:7) 이 약속을 여러 번 되풀이하셨다(참조, 13:14,15,17, 15:13,16,18, 17:8, 28:13,15, 35:12). 400년 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그 약속(15:13,16)의 성취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겠다고 하셨다(3:8,17, 6:8). 하나님께서는 같은 약속을 여호수아에게도 반복하셨고(1:3), 이 약속은 다윗의 때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대부분 성취되었다(15:18~21, 삼하 8:1~14, 왕상 4:21, 대상19:1~19).

이제 히 11:9,10, 13~16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아브라함과 다른 믿음의 부조들이 가나안을 하나님께 구속 받을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정착하게 될 본향에 대한 하나의 상징과 그림자로 보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죄 가운데 사는 동안에는 영구적인 집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라고 기록 된 성경의 말씀처럼 인생은 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으로서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아야 한다(13:14)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할 미래에 대한 확신이 변화하고 쇠퇴해 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흔들림 없이 견디게 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새 하늘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은 그리스도인 삶의 개인적인 경험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야 하는가?(5:5, 고후 4:17, 18, 21:9, 10, 22:17을 비교해 보라.)

온유하고 환난 중에 참고 주님께로 오라고 초청하는 삶으로 드러난다.

 

2. “참된 위대함은 하나님의 명령들에 대하여 순응하고 그분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협력함으로써 이르러 올 것이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1, 278) 이 진술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아를 버리고 오직 주님의 말씀이 생명의 활력이 되어 생활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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