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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일 안식일

일몰오후 624

 

기억절 :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22:20~21).

 

연구 범위 : 22, 23, 22:21~27, 24, 5:20, 33:8.

 

이번 주에 살펴볼 잠언의 말씀은 고대 이집트의 글귀와 유사한 점이 있다. 영감을 받은 솔로몬이 그러한 글귀들을 히브리식 관점에 맞게 다듬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집트의 언어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을 만나 거룩한 계시가 된 셈이다.

이러한 고찰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진리의 보편적 특성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인 것은 이집트 백성에게도 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어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이러한 훈계의 영역은 두 민족에게 공통적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누구이든지, 신자이든지 비신자이든지, 어디서 살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이 우리의 속마음과 감춰진 비밀을 다 알고 계심을 이해한다.

느끼기 : 때로 엄격할지라도 하나님의 훈계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행하기 :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처럼 정직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A.

그대는 재림교회에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무엇을 보고 확신하였습니까?

교리가 성경과 일치한 것을 보고. 또 이것을 실천하며 열심히 바르게 가르치려는 모습을 보고.

그대는 진리를 아는 것보다 아는 진리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성경의 진리는 인격과 삶이 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우리가 진리를 알 때 또한 책임도 있다는 말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진리를 따라 생활하고 증거하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B.

악인들이 누리는 성공과 부귀를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과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그들은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임을 확신하고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을 얻은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술과 진미에 대하여 경고를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건강과 생명을 하나님을 위하여 바르게 보존하라는 것이다.

깨달은 진리대로 살기 위해서 삶의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기로 결심하겠습니까?

진리를 따라 충성하고 말씀에 굴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결론 : 진리란 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단순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정하시며 복 주십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언제나 패합니다.

 

 

첫째날() 222일 진리에 대한 지식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22:17~18).

 

1. 22:17~1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22:17,18]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18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 귀를 기울여 듣고 속에 보존하고 입술에 있도록, 즉 말로 그것을 증거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의 첫째 본분은 주목하여 듣는 것이다. “너는 귀를 기울여”(17). 달리 말하면 집중하라는 것이다. 핵심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간절함이 있어야 하며 무엇이 옳은지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행해야 한다.

학생이 듣고 배운 것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머리에 성경 지식은 잔뜩 들어 있지만 진리이신 분에 대한 진정한 경험과 깨달음은 없는 사람들이 있다(14:6).

오히려 진리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해야 한다. 22:18에서 네 속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위장을 의미한다. 우리가 배운 교훈은 표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소화되고 흡수되어 우리의 내적 존재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한 번 우리의 존재 깊은 곳에 들어와 우리 속에 뿌리를 내린 기별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러면 우리는 효과적인 증거를 할 수 있다.

 

2. 22:19~21을 읽어 보라. 진리를 경험하면 무엇이 유익한가?

[22:19~21] 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20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기록하여 21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 여호와를 의뢰하게 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된다.

 

1. 믿음(19). 지혜를 가르치려는 첫 번째 목적은 지혜 자체가 아니다. 잠언은 지성적이고 능수능란한 제자를 양성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스승의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제자들의 신뢰심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2. 확신(21). 학생들은 왜 이 진리의 말씀이 확실한지 알아야 하며,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을 왜 믿는지 알아야 한다. 믿음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신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믿음을 가져야 할 합당한 이유들을 알아야 한다.

3. 책임(21). 교육의 최종 단계는 우리가 받은 진리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핵심적인 이유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귀와 코는 닫히지 않도록 만들어주셨다. 듣기 싫은 소리도 일단은 들리게 한 것이다. 온갖 소리가 들리는데 분별해서 들을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음성은 분명히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올바로 들을 때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행동할 수 있다. 신자들은 진리를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여야 하고 들은 말씀이 성경과 온전히 일치하는지 분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진리의 지식을 간직할 수 있다. 듣기를 원하지 않으면 진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있을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8:11~13) 어쩌면 지금이 그런 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바른 소리를 듣기 위하여 기를 기울이고 성경을 상고해서 진리의 지식을 간직하고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진리는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적인 이해 이상으로 그것을 내적 존재의 일부분이 되도록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날() 223일 가난한 자들을 약탈함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22:22~23).

 

1. 22:22~23, 23:10을 읽어 보라. 여기서 우리는 어떤 경고를 받는가?

[22:22,23]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23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23: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외로운 자식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 약하고 외로운 자를 무시하고 탈취하는 자는 생명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절도는 언제나 잘못된 것이지만 이 말씀은 가장 취약한 빈곤층과 억압 받는 자들에 대한 약탈을 금지하고 있다. 그들은 너무나 무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22:21~27). 밧세바를 빼앗기 위해 우리야를 죽인 다윗의 경우와 나단 선지자가 언급한 암양 새끼의 비유를 생각해 보라(삼하 12:1~4).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는 것은 단순한 범죄행위를 넘어서 여호와께 대한 범죄이다(삼하 12:13). 덜 가진 자의 소유를 빼앗는 것은 비열한 행위로서 절도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 이런 강도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보지 않으시리라 생각하는 것일까?

22:23이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그러한 강도는 사람의 형벌은 모면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는 없다. 23:11에서 말하는 고엘(구속자)’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가리킨다(19:25).

성경의 다른 경고와 마찬가지로 이 경고 역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장기적인 결과가 아닌 즉각적인 이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자들을 향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소득을 얻고 자산을 확장시키며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기뿐 아니라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현재는 풍요를 누릴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런 논리는 강도들을 낙담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의 윤리적 가치가 하나님의 주권과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에서 일부 무신론자들이 버스에 이런 광고 문구를 게재했다. ‘신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삶을 즐겨라!’ 물론 이에 대한 수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다음을 생각해 보라. 만약 하나님이 정말 계시지 않는다면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고도 그에 대한 징벌을 면한 자들은 정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 정말 큰 죄를 짓고도 벌을 면한 것처럼 보였던 자들은 정말 아무 탈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보고 있는 수많은 불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심판의 약속은 우리의 마음에 어떤 위로를 주는가?

 

<부가설명> 이 구절들과 교과 저자는 마지막 날에 있을 공평한 심판을 전제로 이야기하지만 이 죄의 세상의 현실을 지금 당장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오해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니겠는가? 왜 하나님은 지금 당장 이 억울함을 당하는 자들을 신원(伸寃)하지 않고 끝 날에 있을 심판의 때를 내다보라고 하시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런 문제를 당면한 사람이나 현실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 것인가? 참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사단으로부터 이르러 온 것이다. 사단은 세상을 이렇게 불공평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고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있고 사망에 매인 사람들은 사단의 이 술책에 자기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문제를 가르치지만 사람들은 현실에 초점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참으로 오래 참으신다. 또 이해할만한 사실들로 깨우치려고 하지만 듣지 않는 사람들의 귀와 눈에 현실을 설명하신다. 그것은 강한 자나 약한 자나 죽음 앞에는 똑 같이 힘이 없는 존재들이다. 어떤 사람은 좀 일찍 죽고 어떤 사람은 좀 늦게 죽는 것뿐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전제로 말씀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 강한 자나 약한 자나 하나님 눈에는 다 이미 죽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중심은 이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약한 자이거나 강한 자이거나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어서 그 영원하고 복된 나라에 오라고 하신다. 지혜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허락된 생명의 날 동안 강하거나 약하거나 이 생명을 얻어야 한다. 이것을 얻지 못하면 강자나 약자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교훈 : 즉각적인 부의 획득을 위해서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는 행위는 비열한 짓이며 하나님께 대한 범죄로서 반드시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셋째날() 224일 악인을 시기함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24:1~2).

 

1. 23:17, 24:1~2, 24:19~20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무엇인가?

[23: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24:1,2]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

[24:19,20]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 악인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한다.

 

사람들이 악인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악행을 통해 얻고 있는 당장의 이득(, 성공, 권력)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이유이다.

물론 성공하여 부자가 된 모든 사람이 악하지는 않다. 일부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들은 아마도 오늘 성경절에서 경고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정말 잘 산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그들은 부러움을 사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관점이다. 죄는 그 보상이 즉각적이며 현재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래서 현재를 초월하는 관점을 가져야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죄가 보장하는 당장의 이득 너머를 바라보며 훗날의 결과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죄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죄의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죄를 가장 가까운 사람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숨길 수 있다. (물론 조만간 그들도 눈치를 채겠지만.) 또는 자신의 죄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더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어떤 방식으로든 죄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우리는 그것이 죄라면 그것을 혐오해야 한다. 죄가 우리 자신과 이 세상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 저지른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한다. 진정으로 죄의 대가를 알기 원한다면 십자가를 바라보라. 이것이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치르신 값이다. 이런 깨달음만으로도 우리는 죄를 피해야 하며, 죄로 끌어들이려는 자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미래적이며 종말론적이다. 이유는 현세는 죄와 사망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무리 성공하고 부와 권력을 장악한다고 해도 호흡이 끊어지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끝이 있는 것은 변하고 부패하고 상하고 마침내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생명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부와 권력을 장악하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 만일 관심을 두신다면 그것으로 영원한 것을 얻는 기회가 될 때이다. 성경의 하나님께서 미래, 곧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에게 영원히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당면한 어려운 일들도 달게 받아들일 것이다. 욥의 고백처럼 무정한 고통 중에도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이다.(6:10) 우리는 이 사실을 스스로 분명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해 설명했는데도 이해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다. 인간은 피차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교훈 : 우리는 악인의 빠른 성공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당장의 성공과 행복보다 먼 훗날의 일들을 바라보며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넷째날() 225일 우리가 입 안에 넣는 것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23:31~32).

 

우연치 않게도 인류의 첫 번째 유혹은 음식물에 관한 것이었다(3:3). 세상에 죄와 죽음이 이르러 온 것은 불순종하여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었기 때문이다(3:1~7, 5:12). 또한 성경에서 음주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 대단히 어둡고 부끄러운 이야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9:21).

 

1. 23:29~3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음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가?

[23:29~35]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 포도주가 술술 넘어가는 것을 보지도 말라고 가르치며 술을 마시고 취한 사람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음주가 얼마나 해로운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물론 술을 마시는 모든 사람이 술주정뱅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술주정뱅이가 처음 술을 마실 때부터 그들이 술주정뱅이가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술을 마시는 습관이 몸에 배인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런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설득해서 깨닫게 할 수도 없고 이치를 따져서 알게 할 수도 없다. 그의 위와 두뇌는 병들어 있고, 그의 의지력은 약해져 있고, 그의 식욕은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흑암의 왕자의 능력이 그를 속박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그 속박을 깨뜨릴 힘이 없다”(화잇주석, 23:29~35).

 

2. 23:1~8을 읽어 보라. 우리는 왜 우리의 식욕을 제어해야 하는가?

[23:1~8]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며 2 네가 만일 탐식자여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간사하게 베푼 식물이니라 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지어다 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 식욕은 사람을 고상하게 하지 못한다.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사람을 아름답게 하지도 못한다.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둔하게 한다.

 

이 훈계는 단순한 식사 예법 이상에 관한 것이다. 이 말씀은 먹기를 좋아하고 식욕이 왕성한 자들에게 주어진 경고이다(23:2). 목에 칼을 두라는 은유적인 표현이 특히 강력한데 이는 식욕을 억제하라는 의미일 뿐 아니라 과식으로 인해 야기될 생명과 건강의 문제를 가리킨다. ‘삼가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 가운데 무엇을 먹을지 조심스럽게 결정한다는 의미를 표현한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할 때도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왕상 3:9). 영감을 받은 기자는 단순히 식욕을 조절하는 문제보다 더 많은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의 조언은 맛있는 음식을 탐하도록 유혹받기 쉬운 잔치나 친교 다과 모임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23:3).

 

<부가설명> 영생의 나라에서는 음식이 생명을 유지하고 활력을 주는 재료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시는 죽을 수도 없는 상태로 부활하기 때문이다.(20:35,36) 그들이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힘이 진하거나 기진하여 쓰러지거나 죽음에 이르게 되지 않는다. 영원한 나라에서 생명과를 먹고 하나님이 창조해주신 식물을 먹는 것은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난 후에는 이 세상은 죽음의 세상이다. 아무리 잘 먹고 기력이 왕성해도 죽고, 건강하다고 죽음이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고 또는 권력자라고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 죽음의 세상에서는 음식이 기력을 보하고 목숨을 이어가는데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서 음식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단축시키는 식물은 취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증언의 말씀으로 음식물을 올바르게 섭취하도록 사랑의 권고를 받은 사람들이다.

 

교훈 : 우리는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이유가 식욕의 방종 때문이었음을 기억하고 술을 마시거나 지나치게 음식을 탐하지 않도록 식욕을 제어해야 한다.

 

 

다섯째날() 226일 우리의 책임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24:11).

 

1.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33:8). 이 말씀에서 제시된 기본적인 영적 원칙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개념을 어떻게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하는가?

 

: 이 사망의 세상에서 아담의 후손으로서 죽음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을 생명의 주님께로 인도하려는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열심히 전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서부의 한 대도시의 밤거리에서 어느 여인이 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도와달라고 비명을 질렀고 수십 명이 그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창문으로 무슨 일인지 보고서는 다시 하던 일을 했다. 잠시 후 비명소리는 멈췄고 그녀는 흉기에 마구 찔린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녀의 비명을 듣고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던 것인가? 비록 그들이 직접 그녀를 폭행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 살인을 방조한 것은 아닌가?

 

2. 24:11~12, 23~28을 읽어 보라. 어떤 중요한 기별이 있는가?

[24:11,12, 23~28]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 무릇 악인더러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28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 사람을 해하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지혜로운 방도를 강구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것은 나아가서 죄로 영원한 사망으로 치닫는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이끌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모세의 법은 목격한 것을 증언하지 않는 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뚜렷하게 경고한다(5:1). 우리는 범죄에 대항하여 행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침묵한다면 범죄의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침묵함으로 공범이 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바른 말로 증언한다면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며 책임 의식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다(24:26).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둔다는 의미에서 입맞춤으로 비유되었다.

한 여인이 거리에서 살해를 당하고 있는데 신고도 하지 않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니 정말 비극적이다. 그러나 세상의 부조리가 어디 그뿐인가? 기근, 전쟁, 불의, 인종차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하여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부가설명> 말세는 고통하는 때이다.(딤후3:1) 그래서 부당하게 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침묵하고 외면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대드는 것이 예사인 때가 되었다. 약한 자도 나는 강하다고 흉기를 휘두르는 사회이다. 바울은 딤후3:1~5에서 말세의 이런 세태를 아주 현실성이 있는 생생한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그런 일에 관여하여 스스로 곤경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때를 위하여 법이 있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합당하게 알리는 것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은 그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동시에 영원한 안목으로는 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초청하라고 가르친다. 신자들은 이 일을 수행해야 한다. 전도는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생명을 나누어주는 길이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라고 사명을 주신 것이다.

 

교훈 : 우리가 증인으로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서 죽는 사람이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

 

 

여섯째날() 22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 주변에 있는 영혼들을 일깨워서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순간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리를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나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사람이라는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다니고자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 진리 외에 무엇인가를 원합니다. 우리는 산 원칙이 필요하며, 날마다 개인적인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맺는 열매는 부주의와 냉담, 경건과 영성의 부족 등입니다”(교회증언 1, 99).

 

믿음을 말하고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양하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심을 세상에 증거하라.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확대시켜라. 그분의 선하심을 말하라. 그분의 자비를 말하라. 그분의 능력을 말하라”(우리의 높은 부르심, 2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우리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신념을 고수하는 확고한 논리적 근거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 근거들은 무엇이며 우리가 그것들을 간직하며 주저함 없이 다른 사람에게 나눠야 할 이유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하여 우리의 신앙을 다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말씀을 상고하고 깨닫고 옆 사람과 그 말씀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다지는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화요일에 우리는 죄에 대하여 어떤 해답을 가져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중요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죄의 모습이 아무리 넉넉하고 화려하고 명성을 누리는 것으로 나타날지라도 죽음이 결론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소유하고 잘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런던시의 한 버스 광고 문구를 다시 소개합니다. ‘신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삶을 즐겨라!’ 교과에서 언급한 문제 외에 이러한 생각의 또 다른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존재가 왜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하게 하는 원인이 될까요? 이런 정서로 미루어보아 사탄이 사람의 관념 속에 하나님의 품성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왜곡시켰다고 생각합니까? 그 광고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토의로 교과 시간을 마무리하십시오.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소망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만한 짧고 간결한 문장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죽어가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살려주시려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대신 죽게 하셨다. 그를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신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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