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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일 안식일

일몰오후 644

 

기억절 :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27~28).

 

연구 범위 : 1:1~3, 12:1~5, 4:16~21, 5:16~17, 24:20.

 

예수님의 지상 봉사 기간 내내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의 안식일 준수를 문제 삼았다. 예수님은 비난을 받으셨지만 안식일의 주인에게 있는 권위를 강조하시고(12:8, 2:28, 6:5), 올바른 안식일 준수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올바른 안식일 준수 문제뿐 아니라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이 휴식의 날이라고 믿는 대중적인 견해와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일요일을 주장하는 자들은 복음서에서 그들의 눈에 띄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안식일 논쟁은 단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이지 그것이 언제인지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보면 제칠일 안식일이 줄곧 휴식의 날이자 여호와의 날임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실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이번 주에 우리는 안식일의 기원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날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논하고 안식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본을 연구한 다음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켰던 예를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안식일에 대한 율법주의적인 접근과 예수님의 모본 및 가르침을 비교한다.

느끼기 :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안식일의 쉼과 사귐의 복을 감사하게 여긴다.

행하기 : 몸과 마음의 회복 그리고 관계 증진을 위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

 

A.

율법주의적인 안식일 신앙과 안식일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는 신앙의 차이점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보십시오.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지키는 것과 구원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기쁨으로 지키는 차이가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식일의 복을 최대한 누리는 방법이 무엇일지 토론해 보십시오.

성경이 계기한 대로 안식일을 생활하는 것이다. 생명을 회복시키는 일에 초점을 두고 생각해보자.

 

B.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안식일 준수의 모본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정신과 태도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교훈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중심에 자기 생활의 편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안식일이 폐지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안식일을 정말 즐겁고 유쾌하게 거룩히 지키는 것이다. 생활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론 :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영적 소생과 육체적 회복을 위해 안식일을 제정하셨습니다.

 

 

첫째날() 그리스도 : 안식일의 창조자

97

 

1. 다음의 성경절들은 창조 사역 속에서 예수님의 역할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안식일의 기원을 연구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1:1~3, 1:16, 1:1~2)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 예수께서 친히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 안식일의 기원을 바르게 알 때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은 다음의 유명한 진술로 요한복음을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1~3). 요한과 바울은 둘 다 창조 사역 속에서 예수님이 하신 역할에 대하여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1:16).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주를 창조하셨고 우리 태양계와 지구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만드셨다.

인류의 구원자가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의 창조주이셨다. 창조 주간의 마지막 날에 바로 그 자리에서 여호와는 우리에게 휴식의 날을 주셨다.

휴식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휴식의 방편도 마련하셨다. 그날에 인류는 한 주의 고달픔과 어려움을 제쳐두고 창조주이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한다. 창조를 마치신 뒤에 하나님은 피곤해서가 아니라 안식일에 복을 주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시며 그날을 지키는 모본을 보이시기 위해 친히 제칠일에 쉬셨다. 또한 그분은 십자가에서 구속의 사역을 마친 후에도 휴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안식일의 영속적인 가치를 확증하기 위해 안식일에 쉬셨다. 쉬지 못하는 인류를 그분 안에 있는 안식으로 초청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매주일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이 특별한 날에 안식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11:28~29).

 

<부가설명> 안식일의 휴식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은 오늘날 사정을 근거로 설명하는 것이다. 창조 당시에는 오늘과 같은 그런 의미의 휴식, 즉 수고를 그치고 쉬는 그런 휴식이 아니다. 휴식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창조하셨다는 표현이 혹시 그런 의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적어보았는데, 필자의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다. 안식일의 쉼은 수고를 그치고 쉬는 그런 쉼이 아니라 창조주와 특별히 친교를 나누는 즐거움의 극치로서의 쉼이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사귐이 있다고 했고 그 사귐은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요일1:1~5) 안식일은 창조주께서 그의 형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인 사람들을 창조주의 안방으로 놀러오라고 초대하는 날이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과 놀면서 만나는 사람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 반 상순 장로가 그런 설명으로 안식일의 기쁨을 잘 나타내었다.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한다. 사실 성경의 종교와 신앙의 극치가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 안식일 그날은 창조 여호와와 함께 노는 즐거움의 극치를 맛보는 날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것이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16:29)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교훈 : 예수님은 창조의 기념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우리에게 그날을 휴식의 날로 주셨다. 십자가 이후에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안식일로 초청하신다.

 

 

둘째날() 그리스도 : 안식일의 주인

98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12:1~2).

 

1. 12:1~2을 읽어 보라. 여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바리새인들은 왜 이 행위를 적법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12:1,2]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면서 밀 이삭을 따서 손을 비벼 먹었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안식일에 일했다고 정죄하였다. 손으로 밀 이삭을 비비는 것은 방아를 찧는 일로 보기 때문이다.

 

23:25을 보면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23:25)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행위가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한 날이었다. 랍비의 규례는 추수, 타작, 키질과 같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명시하였다. 바리새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곡식의 이삭을 뽑아 손으로 문질러서 껍질을 벗겼으니 제자들은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

 

2.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대답하시면서 드신 예를 통해 우리는 어떤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12:3~5)

 

: 이 대답의 핵심은 안식일에 사람의 생명 구하기 위한 일은 합당한 일이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안식일의 근본정신이 바로 생명을 증진시키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첫 번째 예를 보면(삼상 21:1~6) 일반적인 상황에서 다윗과 부하들은 제사장들에게 구별된 떡을 먹어서는 안 되었다(24:9). 그러나 예수님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은 용인할 만한 의식법 위반이라고 주장하셨다. 예수님은 두 번째 예로서 안식일에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언급하셨다(12:5).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평소보다 두 배 많은 제물이 바쳐졌기 때문이다(28:9~10). 유대인들도 성전 봉사가 안식일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예를 드신 다음, 예수님이 선언하신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부담스러운 안식일 준수 태도를 재평가하는 그분의 권위를 입증하였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2:27). 여기서 예수님은 에덴에서 비롯된 안식일의 기원을 재확인하시고 사람과 안식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우선순위를 바로잡으셨다.

안식일은 인류의 유익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날은 인류의 필요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지 사람이 안식일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28)고 말씀하심으로 창조주요 안식일을 제정한 입법자이신 자신의 지위를 밝히셨다. 따라서 그분만이 인간의 법에 얽매인 안식일을 자유롭게 할 권위가 있었다.

 

<부가설명> 사람이 범죄하여 사망이 사람을 주관하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사람들에게 지키도록 계속 유지하셨다. 사람이 창조주와 관계를 유지하는 죄의 세상의 교두보가 되게 하신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되고 그날에는 창조주와 친교하는 기쁨을 누리는 날이 되게 하셔서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재창조의 소망을 마음에 새기면 창조주께서 재창조로 사람을 영생에 이르도록 복을 주실 것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감사하게 하신 것이다. 이런 정신이 안식일 정신이라는 것을 사람이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보다 크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신 말씀은 안식일이 바로 사람을 재창조하실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는 날임을 강조하신 것이고 재창조의 생명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날인 것을 교훈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이렇게 기쁘고 복된 날이며 창조주의 안방에서 함께 친교하는 특별한 날인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제정된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하시면서 창조주요 그날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의 의미를 재정립하셨다.

 

 

 

셋째날() 예수님의 모본

99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4:16, 개역).

 

1. 4:16은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왜 이 점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가?(14:15, 벧전 2:21 참고)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예수께서 안식일을 규례대로 회당 예배에 참석하신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안식일에 예배에 당연히 참석해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본을 보여주신 교훈이다.

 

누가가 16절에서 사용한 규례라는 단어는 때마다 행위를 반복하는 습관과 관련된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안식일마다 정규적으로 회당에 출석하셨다. 더욱이 누가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참석하신 경우를 네 번이나 언급할 정도로 이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다(4:16, 4:31, 6:6, 13:10). 특별히 누가는 안식일이 주일의 일곱째 날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23:54~24:1).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유대인들과 함께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가르치시고 심지어 태초에 제정하신 7일 주기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예수님의 안식일 준수는 안식일과 그것을 준수하는 태도에 관하여 신자들이 따라야 할 훌륭한 모본이다.

 

2. 예수님은 회당에서 진행되는 그날의 순서에서 어떤 말씀을 읽으셨는가?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4:16~21)

[4:16~21]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셨다. 61:1,2의 말씀이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이 말씀은 메시아의 사명을 예언한 말씀이기 때문에 중요한 선포이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거나 말씀하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신 지 이미 일 년 이상이 지났지만 목공소를 떠난 후 나사렛 방문은 처음이었다. 그곳은 주께서 앞선 30년 동안 지역 회당을 참석하셨던 곳이다. 청소년 시절에 그분은 종종 안식일에 회당에서 선지자의 교훈을 낭독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것을 듣는 자들의 마음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성경의 말씀에서 새로운 빛이 비춰나오는 것을 느끼고 감동을 받았다”(시대의 소망, 74).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예수님은 메시아의 지상 사명과 그가 와서 어떻게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4:19)할 것인지 설명하는 성경절 사 61:1~2을 선택하셨다. 그 해란 안식년 또는 희년이자 안식의 시대를 말한다. 휴식의 날인 안식일은 예수님이 이루실 구원과 해방, 치유의 사역을 선포하기에 적절한 날이었다. 진실로 우리는 안식일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진정한 쉼을 경험한다.

 

<부가설명> 안식일에 하나님의 은혜의 해에 대한 예언을 풀이하신 것은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전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을 드러내시고 안식일이 바로 이런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날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구속(拘束)의 날과 같이 보냈다.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것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길 가다가 길가의 잡초에 침을 뱉는 것고 금하였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안식일의 원래 의미와 의도를 깨닫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날은 생명을 회복시키는 날이었다. 그날은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의 신비와 경이를 감사와 찬양으로 함께 즐겁게 지내는 날이다. 그래서 예배하고 그래서 세상적인 사무나 놀이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날인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은 신명나는 일이고 그 자체가 생명력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60:6)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의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뛰놀게 되는 것이다.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 앞에서 뛰놀지어다.”(68:3,4) 아멘. 우리교회는 안식일에 대하여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는가?

 

교훈 : 안식일 준수는 예수님의 신앙 규례였으며 그분은 자신의 메시아 사명을 선포하는 날로써 안식일을 선택하셨다.

 

 

넷째날() 안식일에 행하신 이적들

910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12:11~12).

 

복음서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행하신 여러 기적적인 치유의 사건을 언급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른 날에 할 수도 있었는데 마치 의도적으로 그날에 하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어난 치유를 직접 주도하셨다. 예수님이 주장하시고자 했던 점은 안식일에 치료하는 행위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것은 많은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이 안식일에 의례적으로 행하는 일보다 훨씬 적법하였다.

 

1. 다음의 성경절들은 각각 어떤 논리로 예수님이 안식일에 행하신 치유 사역을 정당화하는가?(12:10~12, 13:15~16, 5:16~17)

[12:10~12]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15,16]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5:16,17]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고, 안식일에 짐승을 살리기 위하여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짐승을 끌어내는데,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일이 당연하고, 아버지께서 피조물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하여 일하시기 때문에 안전과 건강을 회복하여 생존하게 하는 것은 옳다.

 

물론 우리는 안식일에는 개인적인 관심사를 내려놓아야 한다(20:9, 58:13). 하지만 그렇다고 안식일을 할 일 없는 게으름의 시간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바리새인과 논쟁하면서 예수님은 분명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12:12)다고 지적하셨다. 랍비들의 전통에 따르면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는 환자가 안식일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양이나 소가 구덩이에 빠져 있으면 안식일이라도 건져내 생명을 구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인간의 생명이 동물의 생명보다 가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불행히도 예수님을 비난하는 자들은 고통받는 인간보다 그들의 가축에게 더 큰 동정심을 보였다. 그들은 안식일에 가축에게 물을 주는 것은 허용하면서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허용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조물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5:17)고 하셨다.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지속적으로 생명을 주시며 우주를 지탱하신다(1:2~3).

예수님은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 율법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일로부터의 휴식을 의미하며(4:10) 더 나아가 스스로 구원을 얻으려는 불가능한 노력을 중단하라는 의미이다. 사탄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안식일을 지키도록 우리를 설득하려고 한다. 안식일을 반대하도록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이상 그는 우리를 다른 극단 곧 율법주의로 몰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부가설명>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일까지 쉬라는 날이 아니다. 제사장이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안식일의 규식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안 된다.(12:5 공동, 현대인의 성경 등) 성전 안에서 하는 봉사는 속죄의 봉사이다. 속죄는 영생을 얻도록 하는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께서 바로 그 일을 하신다. 영육 간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은 안식일에 할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가르치신다.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과 친교하는 기쁨을 누리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할 일이다. 교과 저자의 설명대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 하나도 없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을 행하셨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바울은 로마 4장에서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안식일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잘 나타내고 있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4:1~8을 잘 읽어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믿도록 유혹하고 있고 또 구원받은 사람은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유혹하고 있다. 안식일 얼마나 복된 날인가! 생명을 넘치도록 주시려는 창조주 하나님의 초청으로 그 안방에서 함께 기뻐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며 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치료하셨다. 율법주의적이고 이기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다섯째날() 부활 이후의 안식일

911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24:20).

 

많은 그리스도인이 여러 이유로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고 있는데 그 중에 주된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하지만 소소한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부활에 관한 신약성경의 기록에는 일요일이 안식일을 대체했다는 가르침이 없다. 오히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이후에도 그분의 안식일이 지켜지기를 바라셨음을 보여준다.

 

1. 24:20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의 안식일에 대해 뭐라고 하는가?

[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 말세에 대한 예언을 하시면서 그때 그리스도인이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부탁으로 말세까지 안식일은 기억되고 지켜져야 할 것을 확실히 하셨다.

 

24:20은 예수님이 죽으신 지 40년 후인 기원 후 70년에도 안식일이 이전과 같이 거룩하게 간주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예루살렘에서 탈출하기 위한 여행과 소란, 흥분, 두려움은 안식일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었다.

 

2.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도 제칠일 안식일이 여전히 거룩하게 보존되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신약의 다른 증거는 무엇인가?(13:14, 42, 14:1, 17:1~2, 18:4)

[13:14, 42]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42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17:1,2]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 사도바울 일행이 선교지에 갈 때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회당을 찾은 사실을 기록함으로 사도시대에 안식일이 여전히 기억되고 지켜졌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제자들이 회당에 가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 출석하는 것과 같았다. 이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사도 바울이 교회가 없는 곳에서도 안식일에 회당 예배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그가 비록 이방인의 사도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챔피언이었지만 그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도 관례적으로 회당을 찾아 갔다.

어느 안식일에는 회당 예배가 마치자 이방인들이 복음을 알려 달라고 바울에게 간청하였다. 바울은 다음날 즉 일요일에 그들을 초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주일을 기다렸다. “그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13:44). 이 말씀은 초기 교회가 일요일을 안식일을 대체한 날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부가설명> 안식일은 창조주일(創造週日)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로 제정하셨다. 그날은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은 사람에게 주셨다.(16:29) 그날은 창조주와 피조물인 사람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뛰노는 날이다.(60:6)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한 일을 즐거워하신다.(104:31) 안식일은 창조주의 즐거움이 흠뻑 배인 날이다. 안식일을 버리는 것은 창조주와의 관계를 버리는 것이다. 죄가 들어온 후에 이 죄의 세상에서 피조물과 창조주의 유일한 접척점이 안식일이다. 사단은 기를 쓰고 이것을 없애려고 한다. 그가 한 주일이 칠일이 되는 것을 고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날을 잊어버리게 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마지막 때에는 폭력으로 그 일을 이루려고 할 것이다. 안식일은 그만큼 창조주 하나님을 이 세상에 높이 드러내는 거룩하고 존귀하고 복된 날인 것이다.

 

교훈 : 신약 성경에는 안식일이 일요일로 대체되었다는 증거가 없다. 오히려 부활 이후에도 여전히 거룩하게 준수해야 할 날로 제시되고 있다.

 

 

여섯째날()

912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281~289 “안식일을 읽어 보라.

 

“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이 말씀은 교훈과 안위로 차 있다.안식일은 그리스도를 창조자와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 가리킨다. 안식일은 하늘과 땅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시는 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과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었다고’(20:12)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이다. 그리고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성결하게 하시는 능력의 표징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시대의 소망, 288~28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우리는 창조 그리고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안식일은 어떻게 이런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상기시킵니까?

안식일을 창조하신 후에 창조하신 이유를 바탕으로 거룩하게 지키라고 사람에게 명하셨고 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 된 후에 그것을 기억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사실에서 창조와 구원의 진리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2:1~3, 5:12~15)

 

넷째 계명에 대한 율법주의적인 순종에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반대로 느슨한 안식일 준수가 율법주의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식일 준수가 진정한 축복이 되게 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요?

율법주의적인 태도는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이고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성경이 계시한 안식일 진리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안식일의 참 의미를 깨달아서 창조주와 기쁜 친교를 나누는 복된 날로 창조주 앞에서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안식일에 주님을 더 깊이, 더 풍성하게 경험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치료 봉사를 하셨던 예수님의 모본에서 우리는 안식일 준수 방법에 대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이런 치료 봉사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됩니까?

안식일은 생명을 회복시키는 날임을 깨닫는다. 아울러 안식일이 하나님의 생명을 풍성하게 얻고 누리는 날인 것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안식일에 하는 활동을 헤아려 보십시오. 그것들은 얼마나 거룩합니까?

각각 생각해보자. 안식일의 삶이 누구에게 중심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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