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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안식일

일몰오후 559

 

연구범위 : 1:8, 5:18, 13:52, 11:8~10, 5:32, 5:16~26

 

기억절 :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우리는 기독교 신자로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성령이 없다면 우리의 증언은 힘을 잃고 기독교 신앙은 단지 짐이 될 뿐이다. 우리에게 아무리 학식과 재능과 교양이 있다고 할지라도 성령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삶을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도 없을 뿐더러 주를 섬김에서 오는 기쁨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될 뿐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최고의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 또한 우리에게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삶을 주기 바라신다. 삶이란 원래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영생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이러한 충만은 오직 그분께 연합할 때만 가능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께서 일하셔야만 일어난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령의 침례와 성령 충만의 의미에 대해 연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몇 가지 증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깨닫기 : 성령 충만의 성경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각자의 삶에서 그 중요성을 인식한다.

느끼기 :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살고 그 지도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기른다.

행하기 : 깊은 성경 연구를 통해 날마다 성령의 침례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성령의 침례와 성령 충만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성령으로 침례를 받을 때 성령 충만이 이루어진다. 성령으로 일상생활이 이루어진다.

성경이 성령 충만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거듭난 사람들의 삶이 성령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을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2:37~38, 5:32 참고)

진정한 회개와 참된 순종이 있다. 거듭난 생명은 성령으로 순종하게 된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영적 삶을 살게 된다.

 

결론 : 성령의 침례가 무엇인지에 대한 바른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성령 충만이 없는 영적 가난을 절실히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얻기 위해 성경적인 단계를 따른다면 힘과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첫째 날() 성령의 침례

129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리라”(1:8).

 

1:8(3:11, 3:16, 1:33과 비교하여), 1:5, 11:16을 읽어 보라. 성령의 침례와 병행하는 입회 의식은 무엇인가?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1:5]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11: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침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침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 성령의 침례와 함께 입교식은 물 침례이다.

 

신약성경에서 단 일곱 곳만이 성령의 침례에 관하여 언급한다. 그중에 넷은 침례 요한과 오순절에 관련이 있는데 여기서 성령은 구속사의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은 성령의 침례에 관해 말할 때에 미래 시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요한은 성령의 침례가 지속적인 유효성을 가진 어떤 것임을 암시하는 의미로 현재분사형을 사용한다(1:33 참고). 앞서 요 1:29에서도 그는 예수님의 또 다른 중요한 사역 곧 세상 죄를 짊어지는 일을 언급하면서 동일한 시제를 사용한다. 즉 예수님의 봉사는 우리의 죄를 지시는 것과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같은 이중의 경험은 행 2:38에도 기술되어 있다. 그리스도에 대해 그들의 눈이 열린 뒤에 제자들은 죄 사함과 성령을 모두 받았다. 10:43~44, 11:16에 따르면 이와 동일한 경험은 고넬료의 집에 있었던 자들에게도 일어났다. 물의 침례는 회개의 침례라고 일컬어졌다(19:4).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을 때 우리는 성령도 함께 받는다(2:38~39).

신약성경에서 침례는 성령을 받는 과정을 동반한다. 그 둘은 모두 우리의 거듭남을 암시한다. 침례를 받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능력으로 살며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신다. 어떤 이들은 성령의 침례를 기적적인 은사와 연관시키지만, 그것은 삶의 이후 단계에 주어지는 은혜의 부차적인 사역이 아니다.

고전 12:13에서 바울은 오순절에 일어난 독특한 경험이 아닌 모든 신자들의 경험을 염두에 두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한 몸이 되는 침례를 받았고 모두가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다. 바울은 연합을 강조한다. “모두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바울은 모든 신자가 교회에 가입하는 일을 성령의 침례와 연관시킨다.

 

<부가설명> 물 침례와 성령의 침례를 뚜렷하게 구분하여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물로 침례를 받으면 곧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고 할 수도 없다. 이 경계는 아주 미묘하고 애매하다. 침례는 죄 사함을 받는 침례라고 했다. 죄 사함을 받는 다는 말은 진정한 회개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회개를 경험하지 않고도 침례를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재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우려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침례를 받기 전에 상당히 여러 달 성경공부를 시켰다. 그런데 요즘은 전도회가 끝나면서 침례를 베푸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공중 전도회를 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성경공부를 하고 깨닫고 침례 결심을 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진정한 회개를 경험하고 자기를 예수님께 진정으로 맡기는 고백을 하고 침례를 받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 그것이 성령의 침례이다. 성령의 침례는 진정한 중생과 동반하는 것이다. 거듭남이 바로 성령의 침례라고 이해 할 수 있다. 거듭나는 경험이 없이 물 침례를 받을 때 성령의 침례를 함께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죄 사함을 받는 것과 동시에 예수 안에서 영생의 생명을 얻는 경험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교훈 : 우리는 회개의 의미로 물의 침례를 받는 동시에 거듭남의 보증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며 그분의 몸에 연합한다는 의미로 성령을 받는다.

 

 

둘째 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됨

130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5:18).

 

1. 5:18, 13:52, 8:9을 읽어 보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이 충만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가?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생활이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한번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되면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사람들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1:41, 67, 2:4, 4:8, 31, 9:17, 13:9).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하게 굴복하고 성령의 감화를 수용함으로 하나님의 일이 그 사람의 삶에 성취될 수 있을 때 사도 바울은 그 상태를 표현하기 위하여 충만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만약 우리가 술의 감화에 굴복하면 우리의 행위와 언어와 사고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는 삶의 모든 면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그분의 감화력에 굴복하게 되고 그 결과 우리의 행위와 언어와 사고는 예수님을 반사할 것이다.

성령이 믿음의 들음’(3:2)으로 주어지고 우리가 침례를 받을 때에 믿음을 통해 부여된다고 할지라도(3:14, 3:5~6)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작년, 지난 달, 심지어 어제의 감동적인 경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매일 그날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이 필요하다.

13:52에서 성령으로 충만하다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지속적인 행위를 암시하는 미완료 시제로 제시되었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계속해서) 충만한 상태를 뜻한다. 성령의 충만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구하고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충만은 반복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의 모든 면이 그분의 임재로 충만하고, 우리가 합당한 모습으로 살 힘을 얻게 된다.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더 많이 소유한다기보다는 우리가 그분께 우리를 더 많이 맡긴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삶의 모든 면에서 성령의 뜻에 따라 행할 때라야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실 수 있다.

 

<부가설명> 성령 충만은 은사를 받아서 방언을 하거나 신유를 행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침례요한은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했지만 아무런 이적도 행하지 않았다. 우리가 성령받은 표가 이적을 행하거나 방언을 하거나 또는 일상적인 것이 아닌 어떤 특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성령 충만은 일상의 평범한 생활에서 진리의 말씀을 따라 생활하는 것을 뜻한다. 기록된 진리의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인격과 삶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이적을 행하거나 방언을 하는 것이 성령 충만이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착각이다. 성령 충만은 생활 전반을 성령의 역사로 시행하는 것이다. 생각과 말과 감정과 태도가 성경적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할 마음이 항상 있고 그 마음이 생활로 드러날 때 성령 충만이라고 확증할 수 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13:18)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증거이다. 우리는 성령 충만의 진정한 성경적 뜻을 깨닫고 오늘도 성령 충만한 삶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교훈 : 성령 충만은 우리가 성령께 온전히 굴복하고 그분의 지도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매일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셋째 날() 조건 1

131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2:37~38).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을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틀 동안 중요한 몇 가지 조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1. 2:37~38을 읽어 보라. 성령을 받기 위한 첫째 조건은 무엇인가?

[2:37,3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회개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을 받기 위한 첫째 조건은 회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양심이 깨어나 죄 많고 타락한 우리의 상태에 대한 자각이 일어난다. 진실한 회개는 죄로 말미암은 참혹한 상태에 대한 유감의 감정 이상이다. 그것은 철저한 마음과 생각의 변화이다. 그러면 우리는 죄가 정말 무엇인지 즉 죄가 하나님께 대한 끔찍한 악행이자 반역임을 보게 된다. 우리가 진정한 회개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는 것이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2:4).

 

2. 3:14, 1:6~8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왜 우리는 성령을 받을 수 없는가?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1:6~8]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 믿음이 없는 자는 두 마음을 품은 자이기 때문에 성령을 받을 수 없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자신의 대리자로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 약속된 선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두 마음을 품은 자와 같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믿음은 지적인 동의 이상이다. 그것은 무슨 일이 생기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실 것임을 우리의 삶을 걸고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기를 거리끼지 않으신다. 우리 자녀들에 대한 우리의 마음보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훨씬 다정하고 자애롭다. 우리의 꾸준한 중보기도가 그분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키며 우리를 그분의 임재로 이끈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분께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결심을 드러내며 선물을 받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부가설명> 성령은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의 한 위이시다. 그분은 여호와이시고 개체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표현은 성령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생명의 봉사를 하신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서 성령을 부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생명의 성령이시기 때문에 날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신다.(8:2) 성령께서 우리를 날마다 도덕적 또는 불법적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활동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생명의 법으로 역사하지 않으시면 성도들은 이 죄의 세상에서 죄의 세력에게 꼼짝없이 잡히고 죄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성령을 받아서 자기가 능력행사를 하게 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성경말씀으로 지도하는 대로 따라 생활하는 것을 뜻하는 줄을 깨닫고 성령께서 성경으로 이끄실 때에 굴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것은 곧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이 생명이고 구주라는 것을 증거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사람은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도록 우리에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1:8)

 

교훈 :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동된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그분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

 

 

넷째 날() 조건 2

21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5:32).

 

1. 5:32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왜 성령을 받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되는가?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순종을 당연하고 쉽게 하도록 이끄시는 분이시다. 순종을 거절하면 성령께서 그에게 하실 역사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령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 성경에서 사랑과 순종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진실한 사랑은 순종으로 표현된다. 만약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계명에 순종할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14:23)라고 말씀하셨다. 순종은 우리를 율법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의 방식으로 이끄는 선택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로 인정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계속 순종할 필요가 있다(6:46). 요일 2:4~5에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듣는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단호한 말씀이다. 우리는 요한의 증언을 통해서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요일 3:24) 깨닫는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들을 행할 때에 우리의 심령에 평화가 임한다.

 

2. 18~21을 읽어 보라.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원한다면 모든 부정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8~21]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사는 것은 성령이 없는 삶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령은 이런 것들을 소멸시키신다.

 

우리의 생각이 세속적일 때에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의 불은 계속 불타오를 수 없다. 성령은 모든 종류의 죄와 우리 삶의 세속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에 고정시키고 기도로써 그분에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는 모든 부정을 피하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정신을 나타낼 수 있다(딤후 1:6~7). 오직 자아와의 끈질기고 치열한 쟁투를 통해서만 우리는 바람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 쟁투는 우리의 의지를 성령의 설득에 굴복시키든지 아니면 육체가 그것을 지배하게 하든지 간에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부가설명>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육체의 소욕이 생활에 나타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경 몇 곳에 아주 분명히 제시해놓았다. 갈라디아의 말씀을 부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5:16~21) 성령이 충만한 생활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육체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은 이곳 뿐만이 아니다. 로마서 1:27~31에도 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자기의 세상적 성취를 자랑하는 것이 육체를 따른 것이라고 가르치며 그런 것은 다 해로운 것이기 때문에 배설물로 버려야 한다고 분명히 가르친다.(3:3~15) 이런 것은 진정으로 거듭나고 성령이 충만할 때 성령께서 모두 소멸하는 영이 되셔서 불살라 버리신다.(4:4 참고) 그러므로 부정한 것들과 성령은 함께 하실 수 없다.

 

교훈 : 성령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고 모든 부정을 멀리하며 성령께 굴복하기로 선택한다.

 

 

다섯째 날() 자아 중심과 그리스도 중심

22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5:17).

 

1. 5:16~26을 읽고 엡 5:1~9, 17~20과 비교해 보라. 자아중심적인 삶과 성령에 충만한 삶의 차이점을 열거해 보라.

[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5:1~9, 17~20]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과 육체의 욕심대로 사는 것의 차이이다. 아래 도표를 보라.

 

성령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의 삶은 성령에 충만한 사람의 삶이나 가치관과 크게 다르다.

 

자아중심적인 사람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

속되고 하나님이 불쾌하게 여기시는 것을 좋아함

영적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좋아함

죄와 정욕의 지배를 받음

성령의 지배를 받음

자유를 남용하고 죄의 종이 됨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 부름을 받음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

방종함

자아희생적임

죄의 열매를 드러냄

성령의 열매를 드러냄

용서의 필요성을 모르고 자아를 사랑함

용서의 필요성을 깨닫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찬양함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의 삶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애정 어린 순종과 다른 사람에 대한 긍휼의 정신으로 특징지어진다(고후 5:14 참고). 우리의 생각과 사고가 새로워지고 우리가 새 마음과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의 가치관과 행위는 변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에 순복함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다(3:3).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진정한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죄가 우리 안에 너무도 깊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하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한다. 속사람의 변화는 오직 성령의 변화시키는 사역을 통해서만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저런 나쁜 습관을 교정하는 것 같은 외적인 변화만으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변화는 성령으로 새롭게 된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이 일은 평생의 과업이며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복한다면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부가설명> 오늘 이야기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교회와 상관없는 사람의 대조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대조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교과의 대조는 교회에는 다 같이 다니는데 성령으로 사는 사람과 육체대로 사는 사람의 대조이다.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하나는 예수님 마음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과, 또 하나는 자기 마음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많은 교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실을 미리 경고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7:21~23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우리는 교인인가? 성령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인가? 성령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교인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교훈 :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은 자아중심적인 삶과는 달리 순종과 긍휼의 정신을 나타낸다. 그러한 마음의 변화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23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지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의 노력에 의존한다. 많은 사람이 지배력을 갖기 위해 그들의 삶을 소모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지배력 상실에 대하여 비정상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인간의 문제점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그분에게 온전한 지배권을 드리기 바라신다. 그분은 그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며 사랑하신다. 우리의 지배권을 그분에게 드림으로써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시도록 문을 연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지도에 우리의 의지를 굴복시키기로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초자연적인 평화와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될 수 있는 한없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이러한 능력이 있기를 바랄 필요가 있다. 도덕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자유로운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악하고 타락한 삶의 방식을 내려놓고 성령의 능력 안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성령의 지배에 순종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모순도 없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를 종으로 삼고 사망으로 인도하는 죄의 저주와 권세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주께 굴복함으로 그리고 성령이 거하실 길을 마련함으로 우리는 더 이상 저주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8:1 참고)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8:4)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악하고 타락한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의 진정한 자유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어떤 사람들은 자유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원할 때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입장에는 어떤 잘못이 있습니까? 진정한 자유에 대한 성경의 개념은 어떤 것입니까?(119:45, 4:18, 8:34~36, 고후 3:17, 5:1 참고)

[119:45]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8:34~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자기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은 방종이다. 사망에 매인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생명, 곧 영생의 생명을 얻을 때 자유가 있다. 자유는 사망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없다.

 

자아중심적인 삶과 성령에 충만한 삶을 비교해 보십시오. 성령 충만한 삶의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인지 토의해 보십시오.

참된 생명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하는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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