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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8분

 

기억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안식일 오후

|연구범위| 창 1:27, 요 1:1~3, 롬 14:7, 고전 12:14~26, 고전 13장, 갈 6:2, 엡 4:1~16.

|중심사상|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가진 독특한 특성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만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는 자에게도 축복이 된다.

 

사랑받지 못하고, 외롭게 고립되어 있는 사람은 여러 가지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의 사망률은 다른 모든 비정상적인 사망률보다 2~5배 이상 높다. 지나친 슬픔과 고립감은 만족스런 관계에서 오는 일상의 기쁨을 앗아간다. 군인병원에서 출산 전 간호를 받고 있는 직업군인 아내 170명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정서적, 심리적 지원이 없는 여자들은 적절한 지원을 받고 있는 여자들보다 3배 합병증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립감을 조장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질병과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과 친밀감, 유대감과 동질감을 조장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치유와 건강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서로 교제하며 공동체 속에서 살아야한다는 의미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치유와 절제에 관한 이번 기 교과의 마지막 주제를 공부하면서, 인간 상호 관계의 중요성과 관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 핵심 본문 | 고전 12:25~26

| 학습 목표 |

1. 깨닫기 :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과 그것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2. 느끼기 : 친척, 친구, 교인, 이웃 사이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3. 행하기 : 그리스도인의 연합과 충만함 속에서 친절과 용서와 관용과 인내와 격려로서 서로를 돌본다.

 

교과 개요

01. 깨닫기: 사회적 유대는 마음을 묶어 줌

A. 하나님은 우리가 가족과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도록 은사를 주셨다. 그대에게 있는 은사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키는가? 반대로 다른 사람의 은사는 그대의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키는가?

B.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은사를 가지고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지원하며, 가까워질 수 있는가?

 

02. 느끼기: 관계를 맺음

A. 그대의 사회적 건강은 어느 정도인가? 그대는 다양한 사교적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대가 지속시킬 필요가 있는 관계는 무엇인가?

B. 사교적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만족은 무엇인가? 그대가 다른 이에게 제공하는 정서적인 지원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

 

03. 행하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

A.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는 방식으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도록 의도하셨다. 우리가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돌보심을 반사할 수 있는가?

 

요점: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우리가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위대한 성취를 이루게 된다.

 

일요일(6월 20일) 본래의 형상

 

죄에 너무 깊이 빠져 있는 탓에 우리는 그것의 심각성을 종종 잊고 산다. 오랫동안 지속된 영적 저하의 상태에서 타락의 깊이를 헤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 창 1:27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예수님을 아는 것은 인류의 조상이 태초에 가졌던 품성을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답: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 예수님은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더욱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아버지께서 어떤 분인지 친히 보여 주심으로 인간 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성경의 주장은 명백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도 분명하다(참고 요 1:1~3). 따라서 예수님의 도덕적 특징은 첫 조상의 인성에 반영되어 있었다. 예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시고 취하신 인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을 배신할 자의 발을 씻기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자 했던 예수님의 모습은 인간 본연의 품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죽어가는 강도를 위로하고,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탄원하셨던 모습 속에도 죄가 들어오기 전 인성이 나타났다.

예수님의 삶을 특징지었던 다른 이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과 관심은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타락 전 아담과 하와의 삶에 어느 수준만큼 반영돼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은 원래 지어졌던 모습으로 재창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의 의미는 그분을 바라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그분의 삶의 방식을 보고, 그분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셨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품성의 중심에는 다른 이에 대한 이타적 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들도 원래 이웃을 사랑하고 이타적으로 돌보도록 지음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씀 속에는 분명 이런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창조되었다. 이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사랑받을 필요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것이 공동체와 가족이 있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만이 영혼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의 아들에게서 나타난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명상하면 마음은 감동될 것이요 어떤 다른 것이 할 수 없는 그런 영혼의 힘을 분기시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재창조하기 위하여 오셨다.”(시대의 소망, 478)

 

<부가설명> 창조되던 당시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완전하였다. 하나님이 불어넣어주신 생명은 생명 그 자체였다. 사망이 없었다. 사망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그것을 거절할 때 이르는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그가 거절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그 모습 그대로 완전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였다. 이것은 사람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창조주께서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유전되는 성질도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사람도 부모가 자기를 선택한 그것을 거절할 수 있다. 그것이 자살이다. 아담의 상태로 그렇게 비유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완전하게 창조해 주셨는데, 아담이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자유의지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창조된 상태까지 자유의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의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신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한 사람은 완전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할 때 그는 사망이 된다. 그의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으면 끝날 것인데, 하나님께서 구원의 복음을 주시고 구주 안에서 다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 되었다.(히9:27) 즉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숨을 쉬는 것은 육체의 생명이고 육체가 된 상태이다. 이것은 참 생명이 없기 때문에 썩게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없는 이유이다.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날 때 이 형상이 회복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이것을 구원받은 것이라 하고 거듭났다고 한다. 이렇게 되지 않는 한 그는 아직도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일 뿐이다.

 

교훈: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처음에 가졌던 인성을 회복해야 한다.

 

월요일(6월 21일) 사람: 사회적 존재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아담을 창조하시자마자, 하나님은 그에게 동반자를 주셨다. 그분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창 2:18).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의 중요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롬 14:7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에서 어떤 중요한 원칙이 나옵니까? 이 진리가 실제 삶에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그대는 어떤 식으로 경험하고 있습니까?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답: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결국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다 죽는다. 가장 이기적인 사람에게도 이 말씀은 적용이 된다. 문제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는가, 이타적인 마음으로 사는가이다.

 

살아있든지, 죽었든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 특별히 가족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고 돌보는 것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2. 다음의 성경절들은 사회적 관계가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방식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창 2:18, 전 4:9~12, 고전 12:14~26, 갈 6:2.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전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고전12:14~26]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22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답: 처음부터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죄는 이런 인간의 존재방식을 깨뜨렸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관계적 삶을 회복할 수 있다.

 

좋은 관계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친절하게 관계를 주고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내 몸이다.’ ‘다른 사람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사람이든지 건강치 못한 선택을 했을 때 그 사회는 직간접적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귀중한 창조물이기 때문에 최상의 보존가치가 있다. 곳곳에서 생명의 가치가 경시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따라서 그대의 건강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 의사가 사회적 연대와 지원이 질병발생이나 사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조사하였다. 그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전통적으로 친밀하게 결속되어 있는 일본사회로부터 모범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사회적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을수록, 사람들이 더 건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은 건강이 좋지 않고, 사망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연합은 사랑의 증거임

“그리스도와 연합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사랑이 있다. 우리들이 아무리 다른 열매들을 많이 맺는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 열매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본질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는 자는 그분의 자녀들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갖게 된다.”(가려뽑은 기별 1권, 337)

 

<부가설명> 하나님의 생명은 그 본질이 사랑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다면 사랑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사랑은 온 우주를 유지하는 힘이다. 인간 사회는 죄가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명의 사랑이 없다. 소위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다 이욕과 탐욕이 이름만 바꾸어 나타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런 세상에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는 것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예수께서 보여주신 것이 참 생명의 성질인 진짜 사랑이다. 이것이 사회에 충만해야 하는데 재림하시고 이루어질 신천신지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인 사회에서는 최소한의 모습이라도 나타나야 한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면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는 새 계명을 생활로 드러낼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친교의 기본이다.

 

교훈: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더불어 사는 삶이다.

 

화요일(6월 22일) 구원 속에서 연합

 

모든 인류는 한 조상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행 17:26). 인간은 우리 모두를 사랑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단 한 사람도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벧후 3:9).

성경은 예수님 안에서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인간들 사이의 모든 장벽이 허물어 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 앞에 동등하며, 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1. 바울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엡 4:1~16. 이 말씀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까?

[엡4:1~16]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답: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연합한다. 우리가 완전하게 되는 길은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할 때, 비로소 ‘온전한’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구원받고 성화된 사람들의 삶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자신의 몸을 미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엡 5:29~30). 그리스도도 자신을 믿는 공동체를 자기 몸으로 여기시고 돌보신다. 인체의 각 부분들이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갈수록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격적으로 반응하고 도움을 베풀 때, 우리의 건강은 향상된다. 276명의 건강한 자원자들에게 평범한 감기 바이러스를 노출시켰다. 다양한 인간 상호 관계의 효과를 조사하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인간관계를 가장 적게 보고 한 집단은 가장 많이 보고한 집단보다 감기에 걸릴 확률이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차이점은 면역력, 흡연, 운동, 수면, 음주 그 밖의 요인을 가지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는 관계의 다양성이 개인들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수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가 적어도 병균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교과를 통해 말하려고 했던 전부이다. 우리의 정서적, 정신적, 영적 건강은 신체적 건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의 성격은 우리의 정서적 영적 건강에 핵심적인 요소이다.

물론 누구나 혼자 있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때에 나를 든든히 받쳐 줄 수 있는 큰 공동체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이 힘써야 할 연합

“연합되기 위하여 진지하게 힘쓰라.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일하라. 연합은 영적 건강과 고결한 생각과 고상한 품성과 경건함을 일으켜서 그대로 하여금 이기심과 악한 억측을 이기게 하며 그대를 사랑하사 그대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승리자가 되고도 남음이 있게 한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290)

 

<부가설명> 그리스도의 공동체 곧 교회는 그 구성과 조직이 사람의 몸의 구성과 조직에 비유되었다. 세상에 교회 외에 이런 조직이 없다. 이 조직은 유기체로서의 조직이며 한 목적을 위하여 모든 조직 기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것을 운영하는 것은 뇌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바로 이 뇌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며 모든 교인들은 그 몸의 지체들이다. 몸의 모든 지체들은 몸에 붙어 있을 때 제 기능을 수행하며, 지체들이 제 기능을 올바르고 건전하게 잘 수행할 때 건강하며 몸의 목적을 이룬다. 이렇게 각각 제 기능을 행하지만 완전한 연합과 통일이 되어 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의 교회 공동체이다. 몸의 지체들에게 연합에 힘쓰라고 누가 말하는가? 당연히 연합되어 있고, 오직 머리가 지시하는 대로 몸의 존재를 위하여 활동한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도 이와 같다. 지체가 고장이 나지 않으면 그래서 제 기능을 그래도 수행하면 그것은 건강한 조직이 된다. 우리교회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

 

교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공동체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조건이다.

 

수요일(6월 23일) 서로 후원함

 

서로에게 봉사함으로 얻는 최고의 유익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엘렌 G. 화잇의 언급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친절과 진실한 헌신은 삶을 통해 변함없이 나타나야 한다.”(의료봉사, 204) 세상의 모든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만약 친절과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러한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바울이 고전 13장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겠는가? 그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어 보라. 그리고 바울이 말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따르고 있는지 자문하여 보라.

 

1. 다음의 성경절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요 13:35, 롬 15:7, 엡 4:32, 골 3:13, 살전 4:18, 약 5:16, 벧전 3:8~9, 요일 1:7.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롬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엡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골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살전4: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약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벧전3:8,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일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답: 흔히 ‘서로’ 성경절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서로 사랑, 서로 받음, 서로 용서, 피차용서, 서로 위로, 서로 기도, 서로 대접, 서로 사귐.

 

그리스도인 최고의 미덕은 사람들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부족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그들을 돌보고 포용하셨다. 우리는 그분처럼 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때만이 가능하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께 굴복하고 그분께서 일하시도록 허용하는 것만큼 일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와 자비를 베푸셨는지 깨닫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와 같이 할 수 있게 된다.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친절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 그 정도는 한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함께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들, 우리를 거칠고 부당하게 취급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부르심이 있을 때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2. 사랑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런 일을 잘하는 방법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그들에게 가서 그분처럼 하십시오.

 

답: 그것은 우리의 선천적인 마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변화된 마음이 필요하다. 오순절의 제자들이 그런 마음을 구했을 때, 주님은 성령을 부어 주셨다.

 

사랑의 기술

“우리들은 바라봄으로 변하게 된다. 거룩한 모본이신 주님의 완전하심을 명상할 때에 우리들은 완전한 변화를 입으려는 욕망을 품게 될 것이며 주님의 순결하신 형상을 따라 새로 지음을 입게 될 것이다. 품성의 변화가 이루어지며 진노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때문인 것이다.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가게 되며 신령하게 되어 신령한 사물들을 분별한다.”(가려뽑은 기별 1권, 338)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서로”가 되게 창조하셨다. “우리의 형상”이라고 하신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시는 복수(複數) 존재이시다. 하나님도 “우리”로 계시면서 “서로”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직 여자를 만드시기 전에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서로”가 안 된 상태이고 “우리”가 안 된 상태이다. 여자를 창조하셨을 때 “서로”와 “우리”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범죄로 “우리”가 깨어져서 “내가”되어버렸고 사망이 되어 썩어져가는 이기심으로 차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셔서 사랑을 실천하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그분 안에서 우리도 사랑을 회복할 수 있게 하셨다. 이제는 “서로”와 “우리”가 될 수 있게 되었다. 가족 사이에서 항상 실천하고 교회에서 먼저 실천하고 세상에서도 실천해야 한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질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교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셨던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목요일(6월 24일) 서로 섬기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봉사의 생애를 사셨다. 봉사의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내내 그 분은 인간들을 섬기셨다. 성경말씀에 따르면 그분은 오늘도 우리를 섬기고 계신다. (히 2:17~18)

 

1. 우리는 각자 봉사에 필요한 특정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성경절에서 볼 수 있는 영적 은사와 봉사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롬 12:4~8]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전 12:1~5]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엡 4:8~11]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답: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셔서 우리가 서로를 섬기게 하셨다.

위에 열거된 것들은;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로, 권위하는 일, 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등등. 이 모든 것은 성령으로 각 사람에게 가장 합당하게 나누어 주신다. 이것은 서로 보완하며 서로 섬기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창조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만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다른 사람을 돕고 구제하기 위해 나아갈 때, 아무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심 없이 자기를 내어줄 때, 기분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보라. 우리 안에 깊은 감동이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는 좋은 것을 느끼는 감각이 있다. 우리는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주는 것은 우리가 찾아야 할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 때 행복하도록 창조되었다.

우리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이 우리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았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긍정적이고,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때 더 잘 반응 한다. 놀랍게도 다른 이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우리의 기분이 좋아지고, 우리의 기분이 좋아지니까 우리의 건강도 향상된다. 이 얼마나 완벽한 조화인가!

 

봉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함

“그대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공헌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포착하라. 진정한 기쁨은 오직 이기심 없는 봉사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인내와 이타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애를 사는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의 특징이 된다.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고자 애쓰고, 자아와 이기심을 정복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봉사하고자 노력할 때 그대들은 승리에서 승리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의 감화력은 세상을 복되게 할 것이다.”(치료봉사, 362)

 

<부가설명> 섬기는 것은 실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섬기려고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다.(마20:28)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요, 죽음에 이르는 병자들이었다. 살아 있고 건강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었다. 섬기기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약하면 업고 가야할 병자를 업고 갈 수 없고, 내가 힘이 없으면 약한 자를 도울 수 없다. 내가 무지하면 무지한 자를 도울 수 없고, 내가 가진 것이 없으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섬길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자들이요, 성령으로 권능을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섬기는 자가 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전에는 다 죽은 자들이더니 이제는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섬길 수 있는 자들이 된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훈: 남을 돕는 것은 나를 돕는 것이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금요일(6월 2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치료봉사, 95~107 “봉사를 위하여 구원해 줌”, 497~502 “향상과 봉사”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생애 하시던 장소들을 방문하여 그분께서 걸어가 곳을 걸어 보고 그분께서 가르치기 좋아하시던 호숫가를 바라보고 그분의 눈이 그처럼 자주 머물렀던 들과 골짜기들을 바라보는 것이 큰 특권이 될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하여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이나 베다니로 갈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병자의 침상 곁에서, 가난한 오두막에서, 사람이 많은 대도시의 뒷골목에서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님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주린 자들을 먹이고, 벗은 자들을 입히고, 고난과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해야 한다. 우리는 낙심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고취시켜야 한다.

이타적 봉사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악을 행하는 자를 개혁시키는 일에 있어서 칼이나 공의의 법정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일을 할 것이다. 칼이나 공의의 법정은 범법자에게 공포감을 안겨 주기 위하여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봉사하는 선교사는 그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때때로 견책 때문에 굳어지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아질 것이다.”(치료봉사, 105~10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은 구주에 대한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 구주를 통하여 처음 창조된 그 형상을 회복할 수 있다. 구주 예수 없이는 결코 이것을 회복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게 때문이다.

 

2. 그대가 다니는 교회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성도들 간의 교제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교과 반에서 토의해 보십시오.

* 각 반에서 토의해 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인 각자가 진정으로 정직하게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그렇게 자기를 훈련해야 한다. 예수님의 생명이 있으면 이렇게 할 마음이 용솟음칠 것이다. 할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받으시고 그렇게 이끄신다.

 

3. 다른 이들을 섬김으로 얻는 만족이 그토록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을 자주 돕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그대의 경험에 따르면 이기적으로 살아갈 때 느끼는 불만족과 공허함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 섬김으로 만족하게 되는 것은 사랑의 성질이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으면 사랑이 된다. 그런 사람은 섬길 수밖에 없고 사랑이 성취되는 것은 놀라운 만족을 준다.

 

4. 이번 한 기 동안 공부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십시오. 배운 내용 중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무엇이며, 내 삶에 일어난 한 가지 분명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 건강한 몸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히 갖추어야 할 몸이며, 그럴 때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지장 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곧 성소정결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영육 간에 참된 건강을 위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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