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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과 혼자일 때

 

427일 안식일

일몰오후 718

 

연구 범위 : 4:9~12, 4:11~13, 고전 7:25~34, 19:8, 37:34, 54:5

기억절 :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2:18).

 

몇 년 전 흥미로우면서도 가슴 아픈 뉴스가 있었다. 한 젊은 여성이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죽음 자체만으로도 비극이지만 더 비극적인 사실은 그녀가 죽은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이 살고 소통의 수단이 널려 있는 이런 대도시에서 어떻게 노숙자도 아닌 한 여인이 죽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아무도 알지 못할 수 있는가?”

이 이야기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수많은 사람이 외로움으로 신음한다. 2016년에 뉴욕타임지는 외로움이라는 유행병과 마주하는 연구자들이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원래 인간은 외로워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에덴에서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과 어느 정도 교제하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온 후로 모든 것이 흐트러졌다. 이번 주에 우리는 인생의 각 단계에서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 될 친교와 외로움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만약 그대가 외롭지 않다면 스스로 복이 많은 줄로 알라.

 

학습 목표

깨닫기 : 현대인들이 흔하게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의 사례를 살펴보고 성경의 조언과 위로를 발견한다.

느끼기 : 교회 안팎에서 외로운 처지에 놓인 분들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행하기 :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움과 격려를 제공하기로 결심한다.

 

그대는 요즘 외로운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너무 개인주의 사회가 되기 때문이고 스마트폰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인간의 사회적인 활동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실까요?(4:9~12, 2:18)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여기시고 말씀을 주셨다.

미혼 또는 이혼을 선택한 신자들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으로 친교하는 것이다.

최근 1인 가구가 점점 증가하는데 이에 관하여 교회는 어떤 사역을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들이 교회 가족의 일원으로서 안정과 위로를 얻도록 해야 한다.

 

결론 :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살지 않도록 인간 사회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고, 때로 그런 삶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됩니다. 그럴 때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신앙생활에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그런 자들을 배려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421() 친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4:9~10).

 

1. 4:9~12을 읽어보라. 여기서 말하는 기본 사상은 무엇인가? 이 말씀은 일반적으로 삶의 어떤 원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인생을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친교와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 중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설령 우리가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할지라도 조만간, 특별히 절실한 상황에서는 어떤 친교를 원할 뿐 아니라 그것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친교와 공동체를 필요로 하게 창조되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에 위로와 지원을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는 자들은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교회 내에, 직장에,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에는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누군가 돌아봐 주거나, 심지어 말을 걸 사람조차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외로움은 언제든지 몰려올 수 있다. 한 미혼 남성은 가장 힘든 날은 일요일이에요. 주중에는 그래도 일하면서 사람들을 볼 수 있지요. 안식일에는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요. 그런데 일요일에는 너무 외로워요.”라고 말한다.

 

2. 특히 우리가 외로운 시기를 지내야 할 때 다음의 말씀에서 어떤 원칙들을 배워야 하는가?(16:32~33, 4:11~13)

[16:32,33]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배워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리고 우리와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에덴에서 아담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하나님조차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2:18)다고 말씀하셨다. 죄로 훼손되지 않은 세상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지라도 아담은 인간과의 우정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우정이 얼마나 더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주위에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아무도 외로워질 리가 없다고 추측해서는 안 된다. 가장 외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인적이 많은 대도시에 살고 있다.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해서 외로움과 고립감 또는 친교의 필요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부가설명> 사람은 홀로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창조하실 때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창조주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사람이 생명이 있어 살아가는 동안에는 홀로 있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거할 수는 없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의 땅으로 보내야 한다. 그러나 산 자는 다른 산 자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태초에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다. ()는 모인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태초 창조하실 때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시고 돕는 배필을 창조하셨는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로서 독처하지 않고 함께 산 자들의 무리로 사랑으로 친교하며 생활하도록 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외로운 성도가 없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업무 중에 하나가 되었다. 과부와 고아를 잘 돌보라고 권고한 말씀들은 이선 사실에 기초를 둔 권고들이다. 독거하는 것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으면 여전히 혼자 사는 것이다. 그래서 친교가 중요하다. 친하게 교제하는 것이 친교이다. 성도들은 사랑의 친교가 항상 풍성한 상태여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에 애찬(愛餐)은 이런 친교의 모임이었다. 정말 말씀의 애찬으로 성도들이 이 땅에서 하늘을 맛보도록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사람은 원래 혼자 살지 않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는 대도시에서도 진실한 교제와 관계가 없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422() 미혼의 삶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 7:26).

 

한 여성이 미혼 생활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교지역에서 봉사할 기회가 두 번 있었는데, 그때 잠시도 주저함 없이 대답했죠.” 가정이 있는 기혼자였다면 자신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들도 포함된 문제이므로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렸을 것이다.

 

1. 바울의 말에 따르면 미혼으로 남는 것이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고전 7:25~34)

[고전7:25~34]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33 장가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34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노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 남편이나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 사업에 헌신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환난의 때에 피하기가 단출한 것을 예로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성경을 보면 우리의 위대한 모본이신 예수님을 포함하여 결혼하지 않은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예레미야는 결혼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16:1~3). 그것은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일종의 심판이었다. 우리는 그 제약이 언제 해지되었는지 모르지만 예레미야가 독신이었을 때 위대한 선지자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에스겔의 아내는 돌연 사망했다. 하나님은 선지자의 삶에서 그에게 중요한 인물을 떠나 보내셔서 당신의 백성이 처한 상황에 관하여 쓰라린 교훈을 전하셨다. 심지어 그에게는 애곡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했다(24:15~18). 호세아 선지자 역시 파탄 난 결혼 생활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그는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설게 들리지만 하나님은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갈 것을 아시면서도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셨다(1~3). 돌아보면 우리는 이스라엘과 우리를 위한 당신의 짝사랑을 예증하시려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실물교훈이 되어야 하는 호세아에게 극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각 사례마다 결혼 상태는 관건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정직, 순종 그리고 그분께서 주신 대로 말하는 능력에 관심을 두셨다. 우리는 삶이 결혼 여부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혼하지 않으면 온전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그에 대하여 아마도 바울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12:1~2).

 

<부가설명> 성경의 일반적 원칙은 결혼하는 것이다. 예를 든 사건들은 특수사정에 대한 것이다. 보편적인 가정생활에 대한 것을 말할 때 이런 예를 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예수님도 천국을 위하여 고자 된 사람도 있다고(19:12) 하셨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결혼하는 것이 성경의 계시이다. 그러나 결혼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결혼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성경의 사상이다. 이미 앞에 어느 과에서 말한 것처럼 결혼은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올바르게 나타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결혼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튼 환난의 때가 되면 독처해야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믿음으로 독처하려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바친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는 이해하고 격려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교훈 : 대부분의 사람은 결혼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받아들이지만 미혼의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신실하게 순종하며 훌륭한 삶을 살았던 성경의 인물들이 있다.

 

 

423() 결혼 관계가 끝날 때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2:16).

 

죄가 인간성을 파괴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 질병과 죽음을 제외한다면 가정보다 죄로 인한 파괴적인 결과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역기능(문제) 가정이라는 어구가 불필요할 정도다. 문제가 없는 가정이 어디 있는가?

사망을 제외하면 가족이 겪게 되는 가장 쓰라린 경험은 이혼이다. 이 끔찍한 경험을 겪는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감정을 느낀다. 가장 먼저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비통함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감정은 여러 강도로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지속된다. 어떤 사람은 암담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즉 경제적인 염려,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얼마간 우울함, 분노 그리고 외로움을 겪어야 할 것이다.

 

1. 다음의 성경절에서 우리는 이혼에 대하여 어떤 보편적인 원칙을 알 수 있는가?(2:16, 5:31~32, 19:8, 고전 7:11~13)

[2: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19: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고전7:11~13]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 이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혼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배우자가 음행했을 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의 대행자로서 교인들의 모든 필요를 위해 봉사해야 하고 모든 교인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양육해야 한다. 특별히 교인들이 결혼과 같은 평생을 위한 결정을 해야 할 때와 이혼과 같은 좌절의 경험을 맛보게 될 때 더욱 그러하다. 부부의 결혼생활이 파탄의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그 배우자들과 교회에서 그들에게 봉사하는 이들 또는 가족들은 상처 입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마련된 거룩한 원칙과 조화되도록 화합을 이루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3:1~3, 고전 7:10~11, 13:4~7, 6:1).

신자들은 지역교회나 교회 기관을 통해서 견고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구할 수 있다. 이들 자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회요람, (시조사 : 2009), 290.

“1. 약혼한 예비부부를 위한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 2. 결혼한 부부와 가족들을 위한 강의 프로그램, 3. 결손 가정과 이혼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회요람, (시조사 : 2009), 290.

 

<부가설명> 부부는 결혼하기 전에는 남남이었을 지라도 결혼하면 일체(一體)가 된다. 창조주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결혼시킨 다음에 선언하신 말씀은 창조적 선언에 속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그러므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19:4~6)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는 이혼을 원칙적으로 금한다는 것이다. 재림성도는 이혼하지 않아야 한다. 성격상 난관이라고 말하지만 성령의 역사로 그것을 극복하도록 간구하며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부가 만나야 한다. 거기 시은소 앞에서 창조주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생명력을 얻어야 한다. 만일 정말 부득이해서 이혼한다면 성경의 권고대로 다시 합하든지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고전7:11) 오늘날 이 세상 풍조가 재림교회 안에 밀려들어와서 교인들 사이에 이혼율이 늘어난다고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십자가 앞에서 다시 한 번 굴복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혼을 경험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치유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을 결코 정죄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셨으나 정죄하지 않으셨다.

 

교훈 : 타락 이후에 가정은 죄의 결과를 경험하는 곳이 되었다. 그중 심각한 문제와 고통을 수반하는 이혼을 경험한 개인과 가정에는 구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424() 사별과 외로움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57:1).

 

누군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죽음에 관하여 인간과 닭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닭도 인간도 언젠가 죽지만. 인간은 죽을지를 아나 닭은 모른다. 현재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닥쳐올 죽음에 대한 이 지식이다.

알다시피 결혼을 포함한 모든 관계는 언젠가 죽음이라는 가장 큰 원수를 만날 때 종료된다. 함께 세월을 보내면서 얼마나 관계가 끈끈했고 사랑이 얼마나 위대했으며, 우정이 얼마나 깊었든지 인간인 우리는 조만간 죽음이 닥칠 것을 알고 그것이 이르면 모든 관계가 종료될 것을 안다. 죄가 들어온 이후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 되었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 중에 누가 먼저 죽었는지 말하지 않지만, 죽음이 전혀 그들의 삶의 일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먼저 상대를 떠나보낸 쪽의 고통은 특히 심했을 것이다. 앞선 과에서 보았듯이 잎사귀 하나의 죽음을 보고도 애곡했다면 배우자의 죽음을 보고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문제는 죽음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우리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절대 경험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 우리는 다음의 말씀들을 통해서 죽음과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고뇌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57:1, 21:4, 살전 4:17~18, 5:4, 삼하 18:33, 37:34)

[57: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개역)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살전4:17,18]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삼하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37: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 가족의 죽음 앞에서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프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필히 자신의 죽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아마도 삶의 동반자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조만간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이르러 오는 외로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쓰라리고 시린 경험이 될 것이기에 우리는 그러한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죄와 고통과 죽음의 세상에서 그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겠는가?

 

<부가설명> 사실 죽음은 불청객이다. 죽음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슬프지만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아담에게 죽음은 불청객이었고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삶이 당연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한 그 언약의 나무의 실과를 먹어서 생명언약을 어기고 생명에서 떠나면서 사망의 존재가 되자 사망이 찾아온 것이다. 맨 먼저 그것을 조락(凋落)하는 나뭇잎을 통하여 보여주셨다. 그것을 본 아담의 마음을 찢어졌다. 죽음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예민한 영적 감각을 지닌 아담이 알아챈 것이다. 그가 아벨의 죽음을 맞았을 때 그 애통이 어땠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것이 되어서 애통이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죽음의 실상을 모른다. 다만 죽음 현상을 알 뿐이다. 죽음은 생명을 상실하는 것이고 생명을 상실하는 것은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의 성취이다.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므로 산 존재가 되었는데 그 생명을 잃으면 주검이 된다. 주검, 곧 시체는 흙일뿐이다. 예수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얻은 자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이 영원한 상실이다. 둘째 부활을 하겠지만 그것은 예수께서 보편적으로 주신 그 생명을 반납하는 과정일 뿐이다. “죄인이 죄를 범함으로 스스로 간직할 자격이 없음을 입증한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취하신다.”(GC 544) 이렇게 하여 창조되지 않았던 것과 같이 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기간 동안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확보하면 첫째 부활의 날에 찢어지는 슬픔을 경험한 것 이상으로 벅찬 환희를 누리게 될 것이다.

 

교훈 : 우리 모두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통해 이르러 오는 외로움의 시기를 맞이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그 시기를 보내야 한다.

 

 

425() 영적인 독신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54:5).

 

나탈리라는 이름의 결혼 8년 차 여성이 친구의 초대를 받아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전도회에 참석했다. 확신을 느낀 그녀는 그리스도께 마음을 바치고 거듭남을 경험했다. 남편, 부모, 시부모, 심지어 이웃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나탈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되었다. 그녀는 최대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새로운 믿음에 맞췄다.

예상대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특별히 남편 때문에 어려웠다.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것은 우리가 결혼할 때 서명했던 것이 아니잖아. 당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버렸다구. 나는 이전의 당신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몇 년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믿음의 생애를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녀와 같은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영적인 독신이라고 부른다.

 

1. 영적인 독신처럼 느끼는 자들을 위해 다음의 성경절들은 어떤 위로의 말씀을 주는가?(54:5, 2:19~20, 72:12)

[54:5]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2:19,20]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72:12]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 하나님이 남편이 되시고 모든 자를 곤경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간구하는 믿음으로 실제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전 세계의 우리 교회 안에는 수많은 나탈리들이 있다. 남자든 여자든 그들은 결혼했지만 혼자 또는 자녀들만 데리고 교회에 온다. 어쩌면 배우자들의 신앙이 다를 수도 있고, 그들이 재림신앙을 받아들였을 때 배우자들은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처음에는 둘 다 재림신자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사람이 교회를 떠나더니 이제는 신앙에 대해 적대적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런 신자들은 배우자 없이 혼자 교회에 와서 예배도 드리고, 식사도 하며, 교회의 선교 및 봉사활동에도 참여한다. 그들은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교회 사역을 위해 재정적으로 기여할 수 없어 슬퍼한다.

그들은 결혼했지만 영적으로 자신이 과부 또는 홀아비 같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교회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사랑과 격려를 필요로 한다.

 

<부가설명> 영적 독신들이 많다. 특히 여신도들이 많다. 교회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가 깨달은 진리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고 그를 통하여 그 배우자가 진리를 깨닫게 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도록 기도하고 자녀들이 진리의 사람들이 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시면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고 영적 독신들은 배우자가 자기의 삶을 보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가정에서 본을 보이는 삶을 해야 한다. 본인의 참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교회의 기도와 성령의 감동으로 그 배우자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때가 쉽게 오지 않아도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하고 본이 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가족이 영원한 가족이 되게 하는 기회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 함께 있지 않은 가족은 영원한 남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혈연으로는 남이라도 영적으로는 영원한 가족이다. 우리는 현재의 가족이 영원한 가족이 되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교훈 : 다양한 이유로 결혼했지만 홀로 신앙생활을 하는 영적인 독신자들에게도 동료 신자들의 배려와 사랑, 격려가 필요하다.

 

 

426()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에녹은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생애 중에서도 하나님과의 교통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일이 많고 어려울수록 더 부지런하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는 정한 시간에 잠깐 동안 사람을 피하여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했다. 그는 얼마 동안 사람들 속에서 교훈과 모본을 보임으로 그들의 유익을 위해 힘쓰면서도 때로는 한적한 곳에 머물러, 주리고 목마른 자처럼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거룩한 지식을 구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온 에녹은 한층 더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였다. 그의 얼굴은 예수님의 얼굴에 빛났던 그러한 거룩한 빛으로 빛났다. 그래서 에녹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온 때에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도 두려움으로 그의 얼굴에 나타난 하늘의 감화를 바라보았다”(복음교역자, 52). 에녹의 이야기는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하는 자들에게 용기와 힘을 준다. 그러나 원치 않는 고독을 맞이해야 하는 자들도 많다. 그들은 혼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과 언제든지 정겨운 교제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인간의 우정과 친교를 갈망한다. 교회는 매 안식일마다 우리 곁에 앉지만 끔찍한 외로움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 모르는 자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 반대로 그대가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교회 안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아 그대의 사정을 알려야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쳐다보면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적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가면 뒤에 숨는 것이 쉽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어떻게 하면 그대의 교회는 교인들 중에 외로움을 느끼는 자들의 필요에 더 민감해질 수 있을까요?

잘 살피고 기도하며 성령의 지도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접근해서 직접 위로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경험을 그런 일에 영적 감각을 예민하게 한다.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4:11)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동시에 정말 마음의 아픔이 있는 자에게 이 말씀을 제시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경험이 반드시 타인의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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