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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과 해석이 필요한 이유

 

59일 안식일

일몰오후 729

 

 연구 범위 : 24:36~45, 고전 12:10, 14:26, 17:16~32, 12:42~43

 

 기억절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을 해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우리는 어떤 원칙을 사용하는가? 예를 들어 성경 안에 있는 여러 종류의 글을 어떻게 다루는가? 우리가 읽고 있는 본문이 비유인지, 예언과 관련된 상징적인 꿈인지, 아니면 역사적인 기술인지 어떻게 아는가? 성경의 맥락에 대한 그와 같은 결정은 곧 해석의 행위에 해당한다.

때로 일부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신탁처럼 사용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길을 인도해 줄 성경절을 찾기를 바라며 성경을 무작위로 편다. 그렇게 연결된 성경절은 매우 이상하고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아내를 떠났는데 그 아내가 다음의 성경절을 보고 큰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 너로 ()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3:15). 그녀는 이 성경절을 보고 남편의 외도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문맥을 떠난 성경절은 쉽게 개인의 의견이나 사상을 위한 구실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그냥 읽는 것에 그치지 말고 바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올바른 성경 해석이 곧 올바른 신학과 선교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죄로 물든 인간의 본성으로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성령의 도움을 절실하게 느낀다.

행하기 : 성경적인 신학을 기초로 마지막 시대의 선교 사명에 반응하기로 결심한다.

 

성경의 일부를 잘못 해석해서 크게 문제가 된 사례를 알고 있다면 이야기해 봅시다.

2300주야 문제를 잘못 해석하는 일로 큰 실망을 경험했다.

사람들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간의 이성과 당시 교회의 문화와 신학적 경향, 교회의 전통 등등의 영향이 크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벗고 오직 말씀이 말씀을 해석하도록 겸손히 맡겨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성경 해석은 어떻게 교회의 신학과 선교 방향에 영향을 줍니까? 재림교회를 예로 들어보십시오.

바른 해석을 못하면 전체적으로 정로를 벗어나게 된다. 바른 해석의 결과로 세계적 선교사업이 진행되었고 오직 성경에 근거한 신학을 정립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성경 해석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선교적으로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우리가 그러한 사명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해야 한다. 기도와 헌금과 실제 선교로 동참할 수 있다.

 

결론 :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뿐 아니라 그것을 읽는 행위도 일종의 해석을 수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이라는 렌즈를 통해, 심지어 타락한 본성을 바탕으로 성경을 읽기 때문에 성령님의 지도가 없다면 올바른 해석에 이를 수 없습니다. 바른 성경 해석은 바른 신학뿐 아니라 바른 선교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과 순종의 자세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5 3() 전제(前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24:44~45).

 

24:36~45을 읽어보라. 성경에서 예언된 사건들이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었음에도 성경에 매우 익숙한 제자들로 하여금 그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24:36~45]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간적 상상 문화에 젖어서 영으로 생각했다. 이런 관념이 성경의 기록을 올바르게 깨닫는데 엄청난 장애가 되었다.

 

백지상태로 성경 본문을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성경 연구자들은 특정 역사의 배경과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성경을 바라보는데 그것은 불가피하게 해석의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제자들도 그 당시의 기대감을 바탕으로 메시아가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일을 하리라는 그들 나름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성경 본문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이르는 데 지장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그리고 그분의 삶과 죽음, 부활을 둘러싼 사건들에 대하여 자주 오해하였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 궁극적인 실재하나님 등에 관한 일련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할 때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신념들을 전제로 한다. 아무도 백지상태로 성경 본문에 접근하는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단호하게 배제하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행하신 진실하고 믿을 만한 보고서라고 이해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세계를 인정하는 자들과는 아주 다르게 성경을 해석할 것이다.

성경의 해석자들은 자신의 과거, 경험, 주거 개념, 이전의 사상과 견해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다. 절대 중립성 또는 완전한 객관성이란 실현될 수 없다. 성경 연구와 신학적인 반영은 항상 세상과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전제를 바탕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가 열린 마음과 정직한 심령으로 성경의 글을 읽을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의 제한된 시각을 열고 잘못된 전제들을 교정해주실 수 있다. 성경은 매우 다른 배경을 가진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16:13) 인도해 주신다고 반복적으로 단언한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경험한 모든 경험이 무슨 일을 할 때, 무슨 결정을 할 때. 어떤 해석을 할 때 무의식적인 전제가 될 수 있다. 성경에 지옥이라는 말을 읽을 때, 한국 사람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불교적 지옥을 생각할 가능성이 짙다. 그것이 한국 사회의 역사적으로 형성된 문화 배경이기 때문이다. 유교, 불교, 도교, 무속 이런 사상이 사회적 인식 깊이 스며있다. 이런 바탕 위에 성경의 영혼, 지옥, 천국 등을 생각하기 쉽다. 영혼불멸설이나, 영원지옥 설 등등은 불교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서구 쪽에서는 희랍 신화나 로마 신화, 또는 인도에서 흘러 들어간 신화들, 또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 사상도 성경을 보는 눈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저스틴 말터는 신플라톤 철학자였다. 그는 이 철학에서 만족을 얻지 못했는데 예수님에 대하여 배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에 자기의 철학이 기독교 사상에서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일요일 주일이라는 것을 최초로 변증한 사람이다.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를 영혼불멸설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였다. 이렇게 사람의 학문, 사상, 경험 등은 성경을 해석하는데 무의식적 전제가 된다. 우리는 이 전제를 철저히 겸손하게 내려놓고 오직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그 길을 따라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깨달아야 한다. 기도하고 굴복하며 성령의 인도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경험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전제들을 교정해 주시는 성령님이 꼭 필요하다.

 

 

5 4() 번역과 해석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24:27).

 

성경은 고대 언어로 기록되었다. 구약 성경은 대부분이 히브리어,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신약 성경은 코이네 그리스어’(헬레니즘 시대와 고대 로마 시기에 사용했던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현대의 세계 인구 대부분은 그러한 고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은 여러 현대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나 훌륭한 번역자들은 잘 알고 있듯이 모든 번역은 항상 어느 정도의 해석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어떤 단어들은 다른 언어로 옮길 때 정확하게 상응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본문을 면밀하게 번역하고 해석하는 학문을 우리는 해석학이라고 부른다.

 

1. 고전 12:10, 14:26, 1:41, 9:7, 9:36, 24:27을 읽어보라. 이 성구들에서 우리는 해석과 번역이라는 개념을 볼 수 있다. 24:27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의 의미를 설명하셔야 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해석은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가?

[고전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여러 구절들이 해석의 필요성을 기록하였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약성경을 풀어 설명해 주셨다.

 

영어로 해석학을 의미하는 허메뉴틱스(hermeneutics)’는 그리스어 헤르메뉴오에서 왔는데 이 말은 그리스 신 헤르메스에서 유래했다. 헤르메스는 신들의 사절과 전령으로 간주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는 인간들을 위해 신들의 기별을 번역할 책임이 있었다.

우리가 원어를 읽지 않는 한 본문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번역 성경이다. 이것은 해석학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이다. 다행히도 여러 번역 성경이 본질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데 충실하다. 물론 언어학적인 지식을 갖는 것도 좋지만, 성경에 계시된 핵심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원어를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눅 24:27에서도 볼 수 있듯이 훌륭한 번역 성경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본문에 대한 적절한 해석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것이 해석학의 핵심 목적이다. 즉 성경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고, 우리로 하여금 본문의 가르침을 현재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누가복음 24장에서 보여주듯이, 예수님이 그분의 제자들을 위해 바로 이 일을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그대를 위하여 성경을 해석해주신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라!

 

<부가설명> 성경은 사람의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의 생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왜곡할 위험이 대단히 크다. 모세가 호렙산 밑에서 양 떼를 먹이다가 산기슭에 불이 붙어 타는 떨기나무를 봤을 때 얼마나 놀랐겠나? 그가 급히 불을 끄러 달려갔을 때 불붙어 타고 있는 나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모세가 자기의 경험과 지식으로 그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께서 신을 벗어라고 하셨다. 그것은 모세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똑같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성령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상을 깨닫고 받아야 한다. 그때야 성경을 하나님의 사상으로 읽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 겸손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말씀 앞에 자아를 버리고 말씀을 들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다고 가르친다(4:12). 그러나 사람은 죽은 존재라고 가르친다(고전15:22). 죽은 사람이 산 성경을 감히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성경이 사람을 이끌 때에 죽은 사람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이 이치를 깨닫고 말씀 앞에 겸손하고 굴복하자.

 

교훈 : 대부분의 사람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 성경을 읽을 수밖에 없지만 구원에 필요한 핵심 진리를 이해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5 5() 성경과 문화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17:28).

 

17:16~32을 읽어보라.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은 새로운 맥락 곧 철학이라는 그리스 문화 속에서 복음의 기별을 전하려고 시도한다. 문화적으로 다양한 배경은 여러 개념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17:16~32] 그 후 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 성읍이 전부 우상에게 바쳐진 것을 보고 그의 영이 몹시 괴로워하더라. 17 그리하여 그가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경건한 사람들과, 시장터에서는 날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토론하니라. 18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어떤 철학자들은 그를 만나 보고 나서 말하기를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이방 신들을 전하는 자 같다."라고도 하니 이는 그가 예수와 부활을 그들에게 전파하였기 때문이라. 19 그들이 그를 붙들어 아레오파고로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교리가 어떤 것인지 알려 주겠느뇨? 20 네가 우리 귀에 어떤 이상한 것을 들려 주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고 하였더라. 21 (모든 아테네인들과 타국인들은 그들의 여가를 어떤 새로운 것을 말하거나 듣는 데 외에는 달리 쓰지 아니하더라.) 22 그러므로 바울이 마르스 언덕 한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가 보니 너희는 매사에 너무나 미신적이니라. 23 지나다니다가 너희가 섬기는 대상을 보았는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 놓은 제단도 있었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알지 못하면서 섬기는 그 대상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니, 그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계시지 아니하시며 25 또한 무슨 필요한 것이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시니, 이는 그 분이 친히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심이라. 26 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시어 온 지면에 살게 하시고, 미리 계획하신 시기와 그들이 거주하는 경계를 정하셨으니 27 이는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아 나서면 만날 수 있으리니, 그 분은 실로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 어떤 이들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그 분의 자손이라 하였으니 29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이라면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주조해서 금이나 은이나 돌로 만든 물건이 하나님이심과 같다고 생각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 30 실로 이 무지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회개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니라. 31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시고,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어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셨음이라."고 하니라. 32 그 사람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들을 때 어떤 사람들은 비웃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에 관해서 다시 듣겠다."고도 하더라.

 

: 모든 인류의 본질적 상태는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온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환경과 그곳 문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을 고려하되 본질 문제는 동일하게 해석해야 한다.

 

근동문화에 대한 배경적인 지식은 일부 성경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히브리 문화에서는 한 개인이 직접 실행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한 행위에 대해 그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래서 예를 들면 바로가 마음을 강퍅하게 한 일에 대해서 서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허용하셨다또는 막지 않으셨다라고 말할 법한 일을, 영감을 받은 성경 기자들은 보통 하나님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간주한다.”“Methods of Bible Study,” section 4.P. at www.adventistbiblicalresearch.org/materials/bible-interpretation -hermeneutics/methods-bible-study.

또한, 문화는 해석학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성경은 문화적으로 조건적인가? 그래서 그것이 주장된 시대의 문화에서만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특정 문화 속에서 주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의 기별은 그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한 사람의 문화적인 경험이 성경 해석의 기초와 척도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17:26에서 사도 바울은 이 성구를 읽는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실재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하나님이 인류를 한 혈통으로 지으셨다고 진술한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문화적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모든 백성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으니 곧 하나님이 모든 인류의 창조주라는 사실이다. 인류의 죄성과 구원에 대한 필요성은 한 문화에 제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제공된 구원을 필요로 한다.

비록 하나님이 특정 세대에 말씀을 주셨을지라도, 그분은 성경을 읽는 미래의 세대로 하여금 그 진리들이, 말씀이 기록된 시대의 지역과 제한된 상황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조치하셨다. 9세기에 바그다드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대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대수학에서 말하는 진리와 원리들이 그 당시의 그 지역에만 해당된다는 뜻인가? 결코 아니다. 동일한 원리가 하나님의 말씀에도 적용된다. 비록 성경은 오래전에 오늘날과 매우 다른 문화 속에서 기록되었을지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진리는 처음 그 기별의 대상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

 

<부가설명>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려면 성경을 주신 목적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 아담과 함께 아담 안에서 죽은 인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에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의미가 있다. 문화가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아담 안에서 죽은 자라(고전15:22)는 사실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려면 성경의 처방을 따라야 한다. 성경에는 문화적 상태에 따라 기록된 사건들이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하여 주시려는 복음적 의미는 같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요 유대 땅에서 유대문화 환경에서 생활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활동과 교훈은 온 인류에게 해당 되는 근본적 사실들을 해결하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저자는 인류의 죄성과 구원의 필요성이라는 말을 썼지만 쉽게 말하면 인류는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된 존재라는 것이고 사망하지 않는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같다는 말이다. 죄성(罪性)이라는 말은 사망성(死亡性)이라고 하면 더 쉽다. 사람들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3:11). 이 마음에 바탕은 두고 복음이 효과적으로 침투할 수 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지만 이것을 짓눌러버리는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 외에는 성경의 기별이 해당되지 않는 사람, 지역, 문화란 결코 없다.

 

교훈 :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주어진 시대와 지역의 문화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럴지라도 그 기별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

 

 

5 6() 죄로 물들고 타락한 우리의 본성

 

1. 9:39~4112:42~43을 읽어보라. 백성들로 하여금 성경의 기별에서 진리를 수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것은 무엇인가? 이 사례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경고와 주의의 말씀은 무엇인가?

[9:3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12:42~43]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 첫째 자기의 본질을 깨닫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환경과 문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 같은 확실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멸시의 눈초리로 보는 것은 쉽다. 하지만 우리도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비슷한 태도를 품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심각하게 변질시키고, 균열과 파장을 일으켰다. 죄는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우리의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사고 과정은 쉽게 죄악의 목적에 종노릇할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사상 자체가 죄로 인해 부패되어서 하나님의 진리에 이르지 못하도록 차단되었다. 우리의 생각 속에는 교만, 자기기만, 의심, 격의, 불순종 등과 같은 타락의 특징들이 감지된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보다 자신을 높인다. 이는 교만심이 그 해석자로 하여금 인간의 이성을 진리에 대한 최종결정권자로 강조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성경의 거룩한 권위를 축소시킨다.

어떤 사람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모순될지라도 자신들에게 매력적인 사상들만 들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자기기만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셨다(3:17). 의심은 우리로 하여금 흔들리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을 갖게 하는데, 죄는 그러한 의심을 조장한다. 사람이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성경 해석은 절대 확신에 이를 수 없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곧장 성경에서 무엇을 수용하고 무엇을 수용하지 말지를 판결하는 위치까지 자신을 높인다. 하지만 그곳은 서 있기에 매우 위험한 지대이다.

우리는 비판과 의심의 태도가 아닌 믿음과 순종의 마음으로 성경에 다가가야 한다. 교만, 자기기만, 의심은 하나님과의 소원(疏遠)함으로 이어지고 필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는 불순종에 이르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할 때 연구하는 자신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식은 성경을 올바르게 깨닫는데 큰 방해가 된다. 성경은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을 죽은 자라고 단언한다. 지금 성경을 연구하는 그 현장은 호흡하고 의식이 있는 상태이지만 본질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으며 세월이 가면 죽는다. 죽음으로 끝나는 사람을 성경은 죽은 자라고 잘라 말하고 죽을 때까지의 기간을 은혜 받을 만한 때, 구원의 날(고후6:1,2)이라고 계시하였다. 이 기간에 성경을 연구하고 믿고 받아들여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생명의 부활을 한다. 예수를 믿어야 생명의 부활을 할 수 있다는 기별이 성경 복음의 핵심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려면 자신이 죽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인류는 생명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성경에는 육체의 생명(17:11)과 하나님의 생명(4:18)이 분명히 제시 되어 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잃어버린 것, 즉 죽은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 죽은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표현했다(4:18).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8:22)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아담의 후손으로 출생한 사람은 다 죽은 자로 간주하신다. 죽었기 때문에, 생명을 잃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다 썩어져가는 구습이고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옛 사람이다(4:22, 8:21).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만 성경을 깨달을 것이다. 죄로 타락한 본성이라는 말은 사망이 된 성질이라고 나는 그렇게 깨닫는다.

 

교훈 : 인간의 본성은 죄로 인하여 타락하여서 성경을 해석할 때도 교만, 의심이 작용하기 쉽기 때문에 무엇보다 믿음과 순종의 자세가 필수적이다.

 

 

5 7() 올바른 해석이 중요한 이유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8:8).

 

1. 8:1~3, 8을 읽어보라. 개인의 입장뿐 아니라 하나의 교회로서 성경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8:1~3,8] 온 백성이 물 문 앞에 있는 거리로 한 사람처럼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주께서 전에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니 2 제사장 에스라가 일곱째 달 일일에 율법책을 남녀 회중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자들 앞으로 가져가서 3 물 문 앞에 있는 거리에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자들 앞에서 읽으니, 모든 백성의 귀가 율법책을 경청하더라./ 8 그렇게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의미를 알려 주어, 백성들로 낭독한 것을 깨닫게 하였더라.

 

: 교회가 바른 진리에 굳게 서서 바르게 가르칠 때 교인 개인도 바른 진리를 깨닫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된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의 문제, 곧 구원을 받는 방법의 문제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지라도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16:26)

그런데 구원에 관한 성경의 지식은 해석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우리가 잘못된 방식으로 성경에 접근하여 해석하면 우리는 구원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엉뚱한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사도들의 시대에서도 이미 잘못된 성경 해석을 발판으로 삼아 신학적인 오류가 교회에 잠입하였다.

 

2. 벧후 3:15~16을 읽어보라. 성경을 바르게 읽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벧후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인 줄로 생각하라.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가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그렇게 썼고 16 그의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어 무식한 자들과 견고하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 바르게 읽고 깨닫지 못하면 멸망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정말 오직 성경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책의 백성이고, 전통이나 교의 또는 교회의 교도권 같은 다른 권위의 원천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해주는 것은 오직 성경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성경 해석이라는 사안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 해석의 문제는 교회의 신학과 선교의 건강에 너무도 중요하다. 올바른 성경해석 없이는 교리와 교훈의 통일성도 없고 교회와 선교의 통일성도 없을 것이다. 그릇되고 왜곡된 신학은 필연적으로 결함과 왜곡이 있는 선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에게 세상에 전할 기별이 있을지라도 그 의미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면 어떻게 그 기별을 들어야 할 사람에게 그것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겠는가?

 

<부가설명>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딤전3:15) 교회가 성경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없으면 그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신자는 당연히 바른 신앙을 할 수 없다. 그릇된 교리를 마치 바른 교리처럼 가르치는 것이 바로 바벨론의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 해석학은 대단히 중요하다. 해석학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이 계시한 대로 바른 해석을 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이나, 신학이나, 교회의 전통이나, 교회의 문화환경 등을 해석하는데 영향을 끼치게 하면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게 된다. 성경은 분명히 제7일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계시했는데 신학과 교회 전통과 문화가 제1일을 성일로 지키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 교회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성수(聖守)하라고 주장한다. 또 성경은 분명히 범죄한 영혼이 죽는다고 했는데(18:4)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가르친다. 이런 해석들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라는 성경의 원칙을 떠나서 신학고 전통과 기독교 문화가 만들어놓은 오류이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인데 재림 신자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그대로 진리를 깨닫고 그 기별을 올바르게 전하는 능력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올바른 성경 해석은 올바른 신학과 선교로 귀결되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교회 전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5 8()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정로의 계단>, 105~113 ‘의혹을 어찌할까를 읽어보라.

성경 말씀을 연구할 때에는 시작 전에 그대의 선입견과 고정 관념 또는 주관을 모두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가 자신의 사상을 변호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한다면 결단코 진리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문밖에 버리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그대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들어라. 겸허한 진리의 탐구자가 그리스도의 발아래 앉아 그리스도를 배울 때 성경 말씀은 그에게 총명을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너무나 지혜로워서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만일 그대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선입견을 갖고 성경 말씀을 읽으려 하지 말라. 편견을 마음속에서 제거하고 깊이 기도하며 성경을 읽으라. 성경을 읽으면서 어떤 자각을 얻게 되거나 지금까지 가졌던 그대의 생각이 성경 말씀과 조화되지 않을 때에는 성경 말씀을 그대의 생각에 맞추려고 애쓰지 말고 그대의 생각을 성경 말씀에 맞추라. 과거에 믿고 실천해 왔던 것이 그대의 이해력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라. 마음의 눈을 열고 율법 가운데 있는 놀라운 것들을 찾아보라.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발견하라. 그리하여 그대의 발을 영원한 반석 위에 세우라”(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26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세계관, 교육, 문화 등은 성경 해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칩니까? 성경 해석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미치는 외적인 영향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진리를 왜곡할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외적 영향을 해석에 적용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죄는 어떻게 성경을 읽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까? 죄는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잘못 해석하게 합니까? 성경에서 금하는 것을 하고 싶을 때의 우리는 성경을 어떤 시선으로 읽게 될까요?

, 곧 사망적 사고방식은 사망적 욕망에 근거를 둔다. 그러므로 자기의 썩어져가는 구습의 욕심에 근거하여 성경을 이해하려는 강한 경향을 나타낼 수 있다. 당연히 자기 욕망을 행할 합리성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게 될 것이다.

 

성경의 시대적인 상황을 잘 알면 일부 성경의 구절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예를 들어보십시오.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반드시 써야 한다는 말씀이나,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에게서 자식을 낳아서 형의 뒤를 잇게 해야 한다는 등의 말씀들은 오늘날 실천해야 하는 사항이 아니고 복음적 의미를 찾아서 적용하는 사항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기록할 시대에는 그 지역의 문화였다.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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