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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과 창조 : 성경의 토대를 이루는 창세기 2

 

530일 안식일

일몰: 오후 746

 연구 범위 : 26:7~10, 1~2, 5, 11, 대상 1:18~27, 19:4~5, 1:1~3

 

 기억절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9:1).

 

여러 위대한 학자들이 성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탐험하였다. 그 결과로 근대 과학이 탄생했다. 요하네스 케플러, 아이작 뉴턴, 존 레이, 로버트 보일 등 초기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그들의 업적이 하나님의 창조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이후 19세기의 과학은 유신론적인 세계관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연주의 또는 물질주의에 기초한 세계관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철학적 사조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그때부터 과학은 급속하게 성경적인 토대로부터 멀어졌고 이는 창세기 기사에 대한 극단적인 재해석을 초래하였다.

성경은 원시적이고 비과학적인 우주관을 가르치는가? 성경의 설명은 단지 주변의 이방 민족으로부터 빌려온 것인가? 성경은 장소와 시대에 따른 문화에 의해 조건적으로 해석되는가? 아니면 그것의 영감의 본질은 거룩한 체계 안에서 완전한 기원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고양시키는가? 이것이 이번 주에 우리가 다루게 될 쟁점들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를 역사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연구한다.

느끼기 : 고대의 창조 설화들과 달리 성경의 창조 기사에서 드러난 창조의 목적과 하나님의 성품에 감탄한다.

행하기 : 성경의 창조 기사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신빙성 있게 설명한다.

 

성경은 어떻게 지구가 둥글다거나 우주에 떠 있다고 암시합니까?(26:7~10, 40:21~22)

땅을 공간에 달았다고 했고, 하나님은 둥근 하늘에 앉으셨다고 했다.

고대의 창조 설화들과 성경의 창조 기사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들이 있습니까?

성경은 창조의 모든 것이 선한 것이라고 했고, 설화들은 반드시 악이 게재되어 있다.

성경의 창조 기사에서 우리는 창조주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선하고 자비롭고 사랑이며 생명이심을 알 수 있다.

무엇을 보면 창조가 신약성경이 전개하는 구원론의 전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담의 존재가 창조로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를 진리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이 세상과 우리 개인의 삶에 추구해야 하는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새로운 창조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결론 :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정사실로 여기며 그것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식합니다. 또한 고대의 이방 설화와 달리 성경의 창조 기사는 창조주의 성품과 창조의 목적을 고상한 언어로 묘사하며 천체를 숭배하는 다신교적 요소들을 정교하게 교정할 정도로 우리에게 세상의 기원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제공합니다.

 

 

5 24() 평평한 지구?

 

일반적으로 우리는 고대의 인류가 지구를 평평하게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근거를 가지고 지구가 둥글다고 이해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어떤 이들은 성경이 평평한 지구에 대해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1. 7:120:7~8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가? 이 말씀들은 평평한 지구에 대해 가르치는가?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0:7,8]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 ‘땅 사방이라는 말을 썼다. 이것은 상식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계시록의 기자 요한은 종말의 예언을 기록하면서 땅 네 모퉁이에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하늘의 네 천사에 대해 묘사하였다(7:1). 그는 천사들을 네 개의 방위와 연결시키기 위해 이라는 단어를 3번 반복하였다.

요컨대, 오늘날 우리가 해가 떠올랐다’, ‘바람이 동쪽에서 일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문맥은 동서남북이라는 은유적인 개념을 가리킴에도 이 예언적인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문맥을 배제한 이해이며 본문이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예수님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15:19)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인체 생리학이나 문자적으로 인간의 심장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도덕적인 요지를 밝히기 위해서 은유적인 화법을 사용하셨을 뿐이다.

 

2. 26:7~10과 사 40:21~22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지구의 특성은 무엇인가?

[26:7~10]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8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 그는 자기의 보좌 앞을 가리우시고 자기 구름으로 그 위에 펴시며 10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40:21,22]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 지구는 공간에 달려 있고, 하나님은 궁창에 앉으신데 궁창은 둥글다는 말이다.

 

26:7을 보면 지구는 공간에 달려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나님은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신다. 지구는 원 또는 구이다(26:10 참고). 40:22을 보면 하나님은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같이 치셨.

 

<부가설명> 성경은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구를 공간에 다셨다고 분명히 기록했다. 욥의 시대에 누가 그것을 알았겠는가?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셨기 때문에 감동으로 그런 표현을 한 것이다. 이사야의 궁창이라는 말은 후그인데 ()’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당연히 지구를 후그로 만드셨다는 뜻이다. 지구를 둥글게 만드신 것이다. 창세기 1장에 둘째날 궁창을 만드셨느데, 그것은 라키아인데 역시 둥글다는 뜻이 있다. 반원(半圓)을 뜻한다. 한쪽에서 볼 때의 현상을 표현한 것인데, 역시 둥글다는 뜻이 있지 않은가? 성경은 처음부터 이 지구를 둥글다고 표현한 것이다. 중세의 과학자들이 이런 성경의 기록들을 미쳐 찾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 같다. 표현된 낱말을 표현된 그대로 이해했기 때문에 사방이라고 하니 네모 났다고 생각하고 해가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이 하늘 이 끝에서 나와 저 끝까지 운행한다(19)는 표현을 그대로 천동설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시와 상징을 단어 그대로 이해할 때에는 오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이런 사실들은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문제 중에 속하는 것 같다. 성령께서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깨닫도록 복 주시기를 바란다.

 

교훈 : 고대인들은 지구를 평평하게 보았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성경은 오래전부터 지구가 공간에 달린 구()의 형태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5 25() 고대 문학 속에 나타난 창조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2:7).

 

고고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와 근동 지역에서 창조와 홍수에 관한 원시 역사를 담은 문서들을 발견했다. 이로 말미암아 어떤 이들은 성경의 창조 기사가 이러한 문화들에서 유래했거나 또는 적어도 그것들에 어느 정도 의존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1. 1:1~2:4을 읽고 다음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발췌문을 읽어보라. “인간 대신 신들이/일을 하고 짐을 졌을 때/신들의 짐이 너무 무겁고/그 노역이 너무 심하며 고통이 너무 많아/자궁여신에게 자손을 생산하게 하여/인간에게 신들의 짐을 짊어지게 하자!’지능을 가진 신 게쉬투에를/그들이 모임 중에 살해했다/닌투가 진흙을 섞었다/그의 살과 피에.”Stephanie Dalley, Myths From Mesopotamia: Creation, the Flood, Gilgamesh, and Othe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pp. 9, 14, 15.

둘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보이는가? 최초의 인간이 진흙으로 만들어졌다는 부분을 비롯해서 두 이야기 사이에 비슷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은 훨씬 극명하다.

1.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서는 인간이 신들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신들은 휴식할 수 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지구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창조의 정점에 이르러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다음 그들과 함께 휴식하셨다. 창세기에서 인간은 한 동산에 배치되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돌보며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초대되었다. 이는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는 없는 개념이다.

2.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를 보면 한 작은 신이 살해되고 그의 피와 진흙을 섞어 일곱 명의 남자와 여자를 빚는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손수 사람을 빚으시고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셨으며, 나중에 그의 돕는 배필로 여자가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어떤 살해당한 신의 피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3.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와 달리 창세기에는 어떤 갈등이나 폭력의 징후가 없다. 성경의 기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완전한 세상 속에서 인류에게 고결한 목적을 부여하시는 모습을 숭고한 방식으로 기술한다. 이런 극명한 차이점은 학자들로 하여금 그 둘이 전혀 다른 창조 기사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부가설명> 모든 것의 기원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아담이 사망의 존재가 되자, 사탄은 아담 후손들이 창조주를 찾지 못하도록 자기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사람을 혼란하게 한다.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하실 것 같은 일을 선수 쳐서 유사하게 퍼뜨린다. 하나님께서 자기 때에 구원을 위하여 일하실 때 사탄이 선수 친 것을, 지구의 시간상으로 먼저 있었으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사탄이 한 것을 모방했다고 생각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시간성을 중요한 잣대로 사용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기록을 비판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창조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사망의 존재가 되었어도 수명이 있는 한 이것저것 할 수 있기 때문에 호흡이 있는 동안 사탄의 그물에 갇혀서 자기도 모르게 썩어져가는 구습의 사고방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 사탄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 팔 생각을 넣었다고 했는데(13:2),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런 주장을 은근히 수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오직 성경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절대적인 말씀이라는 믿음 위에서 깨닫도록 성령의 인도를 따르자.

 

교훈 : 성경의 창조와 홍수 기사가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설화에서 유입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그 둘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5 26() 창세기와 이방 종교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1:16~17).

 

고대 이교 창조 신화에 의존되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창세기는 그러한 신화들을 배격하며 창조주 하나님이 그것들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다.

 

1. 1:14~19을 읽어보라. 넷째 날에 등장한 천체는 어떻게 묘사되었으며 그것들의 기능은 무엇인가?

[1:14~19]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 창조주가 그것들을 친히 창조하시고 그 기능들을 주셨다.

 

이라는 단어는 의도적으로 회피되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로 그 말이 고대 근동과 이집트의 태양신, 월신의 이름이었기(또는 그것들의 이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 광명체작은 광명체라는 용어의 사용은 그것들이 특정한 역할 곧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1:14)땅을 비추라 하”(1:15)기 위해 창조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이 본문은 해와 달이 신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듯이 특정한 기능을 가진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2. 2:7, 18~24을 읽어보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창조 과정에 얼마나 깊이 개입되어 계시는가?

[2:7,18~24]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셨다.

 

고대 근동 지역의 신화들은 예외 없이 신의 노역을 경감시키려다가 사후 계획의 결과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신화적 관념은 인간이 하나님의 공동통치자로서 지구를 다스려야 한다는 성경의 사상과 상충된다. 인간의 창조는 결코 사후 계획이 아니었다. 오히려 창세기의 본문은 인간의 창조가 창조 기사의 정점에 있음을 가리키며, 이교 설화와 성경의 기사가 얼마나 다른지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창세기는 고대 설화들의 교정본이다. 모세는 이교의 개념과는 양립할 수 없는 특정 용어들과 사상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현실 세계와 창조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떤 역할을 하셨으며 어떤 목적을 가지셨는지에 대해 성경의 이해를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부가설명> 창세기 1장에서 해와 달과 별에 대한 창조 기록은 당시로는 폭탄선언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세상은 그것들이 다 신이라고 믿었다. 지금도 그 영향은 온 세상에 충만하다. 우선 일요일 성수설의 근원이 태양을 신으로 섬기던 종교에서 유입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신사를 짓고 경배하게 했다. 그 신사에는 돌비를 세우고 그 돌에 천조대신(天照大神)이라고 새겨놓았다. 이것은 하늘에서 비추는 큰 신이라는 말이다. 태양을 신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일본에 가면 신사에 이런 것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일제 강점기에 본 것을 말한 것이다. 당시에는 교회에도 강단 뒷벽 중앙에 가미다나라는 것을 달아 놓게 하고 그 안에 창호지에 똑같은 글자를 써넣은 것을 봤다. 다 태양을 신으로 섬기는 잔재들이다. 그런 종교가 지천인 시대에 성경은 그것들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라고 담대히 선언하였다. 창조주가 주신 기능을 나타내는 것 뿐임을 너무나 명백히 기록하였다.

 

교훈 : 성경의 창조 기사는 해와 달과 별이 신이 아니라 어떤 기능을 위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이교 신화의 오류를 교정한다.

 

 

5 27() 창조와 시간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5:3~4).

 

1. 창세기 5, 11장을 읽어보라. 성경은 아담에서 노아까지 그리고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추적해 가는가?

[각각 읽어보기 바란다.]

: 족보로 추적했다.

 

이런 성경의 족보에서 보이는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즉 그 족보들은 시간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그것들을 연대기 족보라고 부른다. 이 족보들은 가계의 정보와 시간의 범위를 결부시키는 맞물림 구조를 띠고 있다. 인물 1x년을 살다가 인물 2를 낳는다. 그리고 인물 1이 인물 2를 낳은 뒤에 y년을 더 살면서 다른 아들들과 딸들을 낳는다.”는 식이다. 창세기 5장은 여기에 다음과 같은 전형구를 더한다. “그리고 인물 1은 평생 z년을 살았다.” 이런 맞물림 구조는 일부 세대의 첨삭을 불가능하게 한다. 창세기 5장과 11장은 연속적인 가계도를 보여주는데 대상 1:18~27에 의해 입증되었듯이 거기에는 추가되거나 삭제된 세대가 없다. 성경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해석한다.

2천 년 동안, 유대교와 기독교 주석가들은 이 부분이 역사를 대변하며, 창세기 1~2장에 묘사되어 있는 7일간의 창조로부터 홍수의 날짜와 지구의 나이를 산출하는 정확한 방법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런데 수십 년 전부터 일부 고고학적 또는 역사적인 자료들이 더 과거의 것으로 해석되면서 훨씬 긴 연대를 담보하기 위해서 창세기 5, 11장을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이런 시도는 성경 기록의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 개념과 역사를 통한 그것의 진행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 두 장이 모두 역사적이고 신학적일 뿐 아니라 아담 이후 모든 인류와 연결시키고, 하나님을 공간과 시간의 한계 속에 있는 사람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창세기 5장과 창 11:10~266일간의 지구 창조의 절정에서 하나님이 빚으신 사람과 그분의 백성을 이어주는 사슬과 시간 틀을 제공한다.”Gerhard F. Hasel, “The Meaning of the Chronogenealogies of Genesis 5 and 11,” Origins 7/2 (1980), p. 69.

 

<부가설명> 족보는 역사성을 확실하게 하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족보에는 복음의 신학이 있다. 세상에 있는 어떤 종교도 족보가 기록된 경전은 없다. 오직 성경만이 족보를 기록했는데 그것도 지루하도록 자세히 기록했다. 세상의 일반 종교들은 권선징악이 중심이다. 즉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다가 죽으면 그 혼백이 내세의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을 가르칠 뿐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존재와 생명에 관한 것을 계시한 경전이다. 존재와 생명을 알게 하는 가장 확실한 자료가 족보이다. 성경의 족보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 하는 기록이다. 사람은 자기의 신원과 존재와 생명을 조상으로부터 얻는다. 조상을 모르면, 가까이는 부모를 모르면 자기의 존재 근원을 모른다. 그것은 또한 자기의 신분을 모르게 한다. 신분을 확실히 하는 것은 족보이다. 성경은 창조주에서 시작하여 그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존재를 이어가며 그 생명을 받았는지 많은 족보로 계시한다. 역사와 과학적인 정보를 족보는 잘 가르친다. 한국인의 성씨들은 다 족보로 증명한다. 조상에게 닿은 후에 그 이상은 모르는 성씨들이 많다. 밀양박씨, 경주김씨, 김해김씨, 그 외에도 많다. 첫째 조상까지 간 다음에 그 윗대는 신화가 된다. 존재의 시작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조상에 관하여서도 설화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성경의 족보는 그렇지 않다. 더구나 나이를 분명히 기록하고 첫 아드을 낳은 때를 기록함으로 명백한 사실인 것을 증명한다. 얼마나 분명한 생명과 존재의 복음을 담고 있는 것인가!

 

교훈 : 인간의 역사와 과학적인 정보는 성경보다 더 오랜 과거의 시간을 전제로 하지만 성경의 족보는 아담 때부터 빈틈없는 시간 요소를 제공한다.

 

 

5 28() 성경 속의 창조

 

아래의 성경절들을 읽고 이 성경절들이 각각 창세기 1~11장을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적어보라.

19:4~5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한 몸을 이루게 하심

창세기 1:26,27을 인용함.

10:6~9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함

창세기 2:21~24을 인용함.

11:50~51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유대 백성이 감당할 것임

창세기 4:8~10, 역대하 24:20,21을 인용함.

1:1~3 태초에 계신 말씀 곧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심

창세기 1장이 배경이고, 시편 33:6,7, 잠언8:22~30 인용함.

14:15 바울이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함

창세기 1,2, 예레미야 10:10~14

1:20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음

창세기 12, 시편 19

고후 4:6 빛이 있으라고 하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그분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심

창세기 1:3,4.

3:9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주 안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드러남

창세기 12, 이사야 40:28~31

딤전 2:12~15 하와가 아담 후에 지음을 받았으므로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지 못함

창세기 2:18~24

3:9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으로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을 저주하지 못함

창세기 1:26,27.

벧전 3:20 노아의 날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는 겨우 여덟 명임

창세기 7:23

11, 14 가인의 길을 따르지 말고 에녹의 경고에 주의해야 함

창세기 4:3~8

2:7, 3:14, 22:2~3 생명나무의 열매, 창조주의 근본이신 이, 생명나무의 열두 과실

창세기 2:8~17.

예수님과 신약 성경의 모든 기자는 창세기 1~11장을 신뢰할 수 있는 역사로 언급한다. 예수님은 모세의 기록과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대해 언급하신다(19:4).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강조하는 신학적인 요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주 창조 기사를 사용했다. 그는 아테네의 학식 있는 자들에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17:24)신다고 선포했다. 이렇게 신약 성경의 기자들은 창세기의 근본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현대의 저자들에게 창조라는 문자적인 사건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로마서 5장을 읽어보라. 바울은 여섯 번 이상 예수님을 아담과 연결시킨다(5:12, 14~19 참고). 즉 그는 역사적인 아담의 문자적인 실존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진화론적인 사고가 창세기의 문자적인 이해를 대신하면서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

 

<부가설명> 성경의 저자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기자는 각각 다를지라도 저자는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된 주제로 기록되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그 기초는 창세기이다. 창세기 1,2장의 창조를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건으로 믿고 그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기록하였다. 인간이 죄인 된 것도 개별적으로 한사람, 한사람이 죄를 지어서 죄이니 된 것이 아니고 아담 안에서 모두 죄인 된 것이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그 바탕에서 속죄와 구원을 말한다. 만일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건이 아니면 예수께서 오셔서 구원하신다는 이야기도 허구가 된다. 실제 사건도 아닌 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되어 오셔서 대신 죽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오늘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이 실제적인 것처럼 실제적인 사건들이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참으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고 예수께서 행하신 구원을 받는 성도들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함께 가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 신약성경은 전체적으로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사건들을 언급하며 그 토대 위에 수립되었고, 창조의 역사와 문자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5 29()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성경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교훈적인 역사이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의 샘에서 그대로 나왔고 하나님의 손이 모든 시대를 통하여 그 순결함을 보존하였다.오직 여기에서만 우리는 인간의 편견이나 인간의 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우리 인류의 역사를 발견한다”(교회증언 5, 25).

성경의 역사가 없다면 지질학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내게 제시되었다. 땅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그때의 상황이 지금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존재했던 시대와 그것들이 지상에 존재했던 기간은 오직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의 추측이 성경에 있는 사실들과 모순되지 않는다면 성경의 역사 너머를 추측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의 역사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그분의 창조물들을 자연법칙에 따라 설명하고자 한다면 끝없는 불확실성의 대양을 표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문자적인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방법에 대해서 인간에게 계시하신 적이 없다. 그분의 창조 사역은 그분의 존재만큼이나 불가해하다”(엘렌 G. 화잇, Spiritual Gifts, book 3, p. 9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에도 논쟁과 논란이 많은데, 심지어 수백만, 수십억 년 전의 일을 추측하는 과학의 설명을 사람들이 아무 의심 없이 수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과학은 증명된 것이라는 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진화론은 가정일 뿐인데,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사람을 속인다.

 

현대 과학은 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초자연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가정에 공을 들입니다. 즉 어떤 마녀가 땅을 저주했다는 주장으로 기근의 이유를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에 묘사되어 있는 창조 기사와 관련시켜 볼 때 이러한 접근법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요컨대 창세기의 기사는 순전히 초자연적인 사건인데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창조의 방편에서 배제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제시하는 설명이 필연적으로 오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연현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후에 그런 주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현상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가정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들은 참된 과학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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