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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과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111일 안식일

일몰오후 533

 

 연구 범위 : 왕하 21:10~16, 1, 2:19~20, 16:24~26, 고후 4:17, 1:5.

 기억절 :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1:17).

 

성경은 타락한 인류의 연약성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창세기 3장 이후에는 인류의 죄성과 그 슬픈 결과들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반면 강력한 유혹을 마주하고도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신앙을 보여주었던 이들의 경험도 있다. 그런 신앙을 보여주는 가장 감동적인 예들이 다니엘서에 나온다.

그러나 다니엘서를 공부할 때 그 책의 진정한 영웅은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가 다니엘과 친구들의 믿음을 강조하는 이야기에 익숙하다 보니 그 네 청년이 바벨론 제국의 권세와 매혹에 직면했을 때 그들을 이끌고 지켜주셨던 분의 신실함을 찬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자기 나라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도 매우 힘든 도전인데 하물며 이방 나라, 사회, 문화의 압력을 마주할 때이랴. 그러나 인간 주인공들은 장애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그들은 자신이 믿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을 신뢰해야 했다(딤후 1:12).

 

 학습 목표

깨닫기 :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히브리 청년들이 경험하는 승리의 비결을 배운다.

느끼기 : 내가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는다.

행하기 : 믿음을 포기하라는 어떤 압박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개입과 도움을 바라며 의지를 활용하여 믿음을 붙잡기로 결심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에 가게 된 역사적인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유대 왕들이 하나님을 불순종한 것과 신흥 바벨론 제국의 정복 전쟁이다.

그들의 신앙과 신분을 고려했을 때 바벨론에서 겪었을 만한 고충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없게 되었고 신앙생활이 억압당했을 것이다.

그들이 특별히 식사법에 대해서 자신들의 신념을 밝혔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음식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식생활 하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거기서도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대는 그들에게 주어진 탁월한 결과를 보고 어떤 믿음의 동기를 느낍니까?

하나님께 굴복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느낀다.

 

결론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신념대로 행동하기를 선택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분은 놀라운 승리를 선사하십니다.

 

 

1 5() 하나님의 주권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1:2).

 

처음에 다니엘서는 패배라는 침울한 기록으로 시작한다. 유다는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했고, 성전의 그릇들은 예루살렘에서 시날 땅으로 옮겨졌다. 11:2을 보면 시날은 바벨탑이 세워진 땅이다. 그래서 그 말은 불길한 징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에 뿌리를 둔 계획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비록 하늘에 닿겠다는 옛적 바벨탑 건설자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제는 외견상으로 느부갓네살과 시날 땅에 거하는 그의 신들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을 제압했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서두는 예루살렘의 패망이 바벨론 왕의 월등한 힘 때문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오히려 그 일은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셨기 때문에 일어났다(1:2). 이 일이 있기 훨씬 이전에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잊고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그들을 이국땅의 포로로 보내리라고 선언하셨다. 그래서 다니엘은 바벨론의 군사력 이면에서 하늘의 하나님이 역사의 발걸음을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청년들이 바벨론 제국의 압제와 유혹에 직면해서도 힘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것은 이같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또렷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 왕하 21:10~16, 24:18~20, 3:13을 읽어보라. 하나님은 왜 유다와 예루살렘을 바벨론인들의 손에 넘기셨는가?

[왕하21:10~16] 여호와께서 그 종 모든 선지자들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11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케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3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보던 추로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14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를 버려 그 대적의 손에 붙인즉 저희가 모든 대적에게 노략과 겁탈이 되리니 15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 열조 때부터 오늘까지 나의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니라 하셨더라 16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왕하24:18~20]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19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3: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고 왕들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다니엘서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다니엘서에 따르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을 통해 역사를 주관하실 뿐 아니라 자기 백성의 삶에 개입하셔서 필요할 때마다 중요한 도움을 제공하신다.

나중에 보겠지만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그분의 백성들과 그들의 믿음에 어떤 공격이 닥치든지 히브리 포로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그들을 위해서도 행하실 것이다.

 

<부가설명> 다니엘서는 철저하게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외친다. 세상의 통치자들이 자기 나라를 통치하는 줄 알지만 그들의 통치를 허락하든지 거절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악인들은 악한 날에 합당할 것이기 때문에(16:4),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그 마음을 그대로 버려두신다.(1:28) 사탄이 발버둥 쳐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지 못한다. 인류를 구원하는 것과 역사를 섭리하시는 것은 다른 측면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엿보게 하는 실물교훈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가고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역사적 사건은 영적 이스라엘에게 일어날 사건의 역사적 상징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부름을 받은 교회가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던 이런 전철을 밟을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다.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다. 그들을 거기서 나오라고 불러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않는다. 귀환한 사람들 중에 바벨론 습관을 따라 진리를 떠난 사람들을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 봤다. 오늘날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정신 차리고 말씀에 전적으로 굴복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신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유다의 멸망으로 외견상 하나님이 바벨론 신에게 정복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 역사를 주관하고 계셨다.

 

 

1 6() 억압 아래서의 믿음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1:3~5).

 

1. 다니엘서 1장을 읽어보라. 어떤 압력들이 이 청년들에게 순응을 강요했는가?

 

: 이름을 바꾸도록 강요했고, 왕의 진미를 먹도록 강요되었다.

 

바벨론에 도착해서 이 네 청년은 그들의 신앙과 신념에 매우 치명적일 수 있는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그들은 왕을 섬기기 위한 특별한 훈련 과정을 밟도록 선발되었다. 고대의 왕들은 포로 가운데 우수한 자원들을 뽑아 왕궁에서 섬기게 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충성심을 그들을 사로잡은 왕과 그 나라의 신들에게 돌리려 했다. 모든 과정은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올 전향과 교화의 효과를 가져오도록 설계되었다. 그러한 과정의 일환으로 이 히브리 포로들은 이름을 바꿔야 했다. 새 이름은 그들의 운명과 소유권의 변화를 시사한다. 그래서 바벨론인들은 포로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그들 위의 권위를 확고히 하고 바벨론의 문화와 가치관에 순응하도록 강요하고자 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가리키는 그들의 본명은 이방 신들을 경외하는 의미의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게다가 왕은 이 청년들을 자신의 식탁에서 먹이기로 결심했다. 고대에 왕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왕에 대한 전적인 충성과 의존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음식들은 보통 그 제국의 신들에게 바쳐졌기 때문에 그 음식들을 먹는다는 것도 심오한 종교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명백하게 왕의 예배 질서를 수용하고 참여한다는 뜻이었다.

즉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곤란한 상황 중에 있었다.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 제국의 압도적인 권세를 견뎌내려면 그야말로 기적이 필요했다. 설상가상으로 바벨론 도성은 인간이 성취한 기념비적인 업적의 상징이었다. 바벨론 성전의 건축미와 공중정원, 도시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은 최상의 권력과 영광의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신분을 상승시켜서 이런 제도의 혜택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제시되었다. 그들은 히브리 노예라는 멍에를 풀고 왕궁의 관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신앙을 양보하고 부귀영화의 탄탄대로를 걸을 것인가?

 

<부가설명> 신앙이 정치권력과 충돌하게 되면 핍박을 받게 된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포로 되어간 유대인들이 바벨론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일제 때 기독교 핍박 경험한 나라이다. 재림교회는 당시에 해산을 겪었다. 그들 정치권력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신앙인들은 다 투옥되었다.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미국에는 그런 일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개척 당시에 청교도 신앙사상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앙의 이름으로 핍박했는지 모른다. 신앙이 정치권력을 잡아도 그 신앙을 용납하지 않는 자들에게 핍박하고 신앙이 정치권력에 동조하지 않으면 정치권력이 신앙을 핍박하는 것이 세상의 상태이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왕립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요즘 말로 하면 기숙사 집단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왕립학교이기 때문에 당연히 왕의 지시가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제공되는 것들은 전부가 이스라엘 하나님 사상에 반대되는 것들이었다. 그들을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처신하기로 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이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겠지만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고수할 수 있는 그들의 선택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 뜻을 관철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을 도우셨다.

 

교훈 :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궁에 선발되어서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그들처럼 우리도 신앙과 성공이라는 갈림길에서 타협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1 7() 굳은 결심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1:8).

 

1. 1:7~20을 읽어보라. 여기에 작용하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즉 다니엘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개입이다. 또 어떤 중요한 원칙이 여기에 있는가?

[1:7~20]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로 보시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까닭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세워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16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18 왕의 명한 바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데리고 느부갓네살 앞으로 들어갔더니 19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 히브리 청년들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담대히 그들의 신앙적 입장을 전다하고 고수하였다. 그들의 의지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원칙이 있다. 어쩌면 자유의지를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는 원칙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네 명의 히브리 노예는 바벨론식 이름을 거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들끼리는 서로 히브리식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왕의 식탁에 놓인 음식과 포도주에 관해서 그것을 먹을지 말지는 그들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즉 이 문제에 관한 선택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어떤 관원이 그들의 이름을 바꿀 수 있었다면 그는 그들의 식단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네 청년이 왕의 식단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두 가지였을 것이다

첫째, 왕의 식탁에 놓인 음식에 부정한 가축의 고기가 포함되었을 것이다(11장 참고). 둘째, 음식은 먼저 우상에 바쳐진 뒤에 왕에게 전달된다. 왕궁의 음식이 자신과 친구들을 더럽힐 것이기 때문에(1:8) 다니엘은 어떤 변명이나 눈속임을 쓰기보다 자신의 요구가 신앙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용감하게 밝혔다.

다니엘과 바벨론 관원의 대화를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점이 눈에 띈다. 첫째, 다니엘은 그 관원의 입장을 잘 이해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험해보자고 제안했다. 열흘 동안 선택적인 식단을 먹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식사의 유익을 증명하고 그 관원의 염려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둘째, 그처럼 단기간에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다니엘의 확신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셋째, 채소와 물로 구성된 식단의 선택은 하나님이 창조 때 인류에게 주신 음식을 상기시킨다(1:29 참고). 그러한 말씀은 다니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에 우리에게 주신 것보다 더 좋은 식단은 없지 않겠는가?

 

<부가설명> 사람들이 자기 신념이 있다 해도 권력으로 강압할 때 목숨을 내어놓고 신념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목숨이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다. 목숨을 잃고 나면 그에게는 신념도 없어진다. 평소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해도 좋아하는 음식을 바꾸면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하면 돈과 자기의 기호(嗜好)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기호와 돈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지위와 재물로 자기의 사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신앙생활 하는 데는 이렇게 유혹이 닥친다. 그 유혹을 물리치면 권력으로 핍박하는 일이 기다린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왕립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된 것은 유혹과 핍박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들의 이름을 바꿀 때는 그것이 자기들의 인격과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칠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름을 바꾼 것이 곧 바벨론 사람이 되어 바벨론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바꾸어도 그들의 사상과 삶이 바벨론적이 아니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은 그것을 먹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 이르렀을 때게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가장 굳게 붙들었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굴복했다. 이것이 신앙이다. 저자는 자유의지라고 말하였다. 의지를 하나님 편에 두기로 선택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가?

 

교훈 : 다니엘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자유의지를 사용했다. 그가 용감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1 8() 흠이 없고 지혜로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1:17).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느부갓네살이 정한 외모의 기준에 맞았기 때문에 왕실에 발탁되었다. 왕에 따르면 궁중 관원은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1:4)워야 했다. 흥미롭게도 성전 안에서 봉사하는 사람이나 제물도 흠이 없어야 한다(22:17~25, 21:16~24). 바벨론 왕은 자신을 이스라엘 하나님과 필적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왕궁에서 봉사하는 자들에게 그와 같은 자질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와 같은 자질은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벨론 제국에서 겪는 난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바쳐진 산 제물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했다.

 

1. 2:19~20, 16:24~26, 고후 4:17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의 교훈에 따르면 우리에게 어떠한 유혹이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하는가?

[2:19,20]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16:24~2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가 죽고 이 생명이 없어지게 되어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은 그 히브리 포로들의 충성을 인정하셨고, 열흘간의 시험이 마쳤을 때 그들의 모습은 왕의 식탁에서 먹는 다른 생도들의 모습보다 더 건강하고 튼튼해 보였다. 하나님은 그분의 네 종들에게 모든 서적을 깨달을 수 있는 지식과 재능을 주셨고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하셨다(1:17). 이 은사는 나중에 다니엘이 선지자로서 봉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바벨론 궁전에서 머무는 그분의 종들의 믿음을 영예롭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세상의 도전에 직면할 때에 우리에게도 지혜를 주신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이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들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그 사회와 문화로부터 고립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거짓, 오류, 신화 위에 세워진 문화 속에 살았을 뿐 아니라 그런 거짓, 오류, 신화에 대하여 교육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음을 지켰다.

 

<부가설명>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망의 세상이다. 우리는 살아간다고 하지만 진실은 죽어가는 것이다. 이 세상의 생물은 삶이 시작되는 때부터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부활의 생명만이 산 생명이다. 성경의 하나님을 올바르게 만난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 죽어가는 생명에 대하여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호흡이 끊어질 때까지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위하여 할 일이 있을 뿐이다. 때때로 그것을 다 하지 못하고 우리는 호흡을 멈춘다. 그것이 안타까워야 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몇 사람이나 깨달을까? 깨달았다해도 이 생의 그 죽어가는 삶을 포기하는 것은 아쉬움을 다가온다.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이것을 뜻하는 말씀이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이것을 깨달은 것 같다. 우리도 이것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죽어가는 삶이지만 윤택하게 될 것이고 주님께 더욱 충성하면서 세상인간다운 투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는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진 그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교훈 :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왕궁에서 흠이 없는 자질을 요구받았지만 오히려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지혜와 학식을 받았다.

 

 

1 9() 최종 시험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1:20).

 

1. 1:17~21을 읽어보라. 이 네 청년이 거둔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38:36, 2:6, 1:5 참고)

[38:36]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2: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 성경의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다.

 

바벨론 대학에서 3년간 훈련을 받은 뒤에 그 네 히브리인은 최종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왕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들은 다른 생도들보다 건강했을 뿐 아니라 지식과 지혜가 월등했다. 그 네 청년은 왕을 섬기는 사역에 즉각 선발되었다. 우리는 이 지식과 지혜가 물론 여러 이교 정신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그것을 배우고 익혔다. 비록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느부갓네살은 아마도 그와 같은 성과가 네 생도가 받은 왕궁 식단과 훈련 프로그램 덕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탁월한 수행 능력은 바벨론식의 교육 제도 때문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이 사실을 알았고 성경도 그렇게 제시한다. 이는 하나님이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무슨 일을 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훌륭한 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파괴하려고 위협하는 언론, 정부, 그 밖의 단체들의 압도적인 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려운 순간에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모든 역경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리라는 약속을 보장받는다. 우리의 믿음에 어려움이 닥칠 때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다니엘서 1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사회와 문화의 적대적인 분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신다. 하나님은 마음의 확신과 생활 방식을 통해서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을 영예롭게 하신다.

다니엘서 1장은 다니엘이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1:21)는 말로 끝난다. 여기서 고레스에 대한 언급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포로 생활에 한 줄기 희망을 제시한다. 고레스는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해방시켜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기 위해 선택한 인물이다. 다니엘서 1장은 비록 패망과 포로의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희망과 귀환의 암시로 마친다. 하나님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항상 소망의 문을 여셔서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고난과 고통 너머에 있는 영광과 기쁨을 보게 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다.

 

<부가설명> 성경은 이 세상 역사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여러 모로 계시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예언과 그 성취는 이 진리를 경험하게 한다. 다니엘서 2장에 계시된 예언은 호리의 차질도 없이 역사에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현재의 정치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들이 그런 권세를 누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 아래 있는 것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13:1) 그래서 세상 정세 돌아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하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뿐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건설되는 때까지 가장 합당한 길로 역사가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고 특별히 성경진리를 올바르게 깨닫는 진리를 구하여 바르게 깨닫고 바른 믿음으로 이 악한 세대를 하나님 뜻대로 사는 믿음을 다니엘과 그 친구들처럼 이루어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 있을지라도 믿음의 길을 선택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영예롭게 하시며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어 주신다.

 

 

1 10()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바벨론에서의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의 청년 시절이 애굽에서의 요셉의 초기 생애보다 행복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들도 요셉 못지않은 혹독한 성품의 시련을 겪었다. 왕족의 혈통을 받은 이 청년들은 소박한 유대인의 가정으로부터 가장 번화한 도시에 있는 당시의 최대 군주의 궁정에 옮겨져서, 국왕을 위한 특별한 봉사를 위하여 교육을 받게 되었다. 부패하고 사치한 궁정에서 그들은 강한 유혹에 둘러싸였다.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온 사실, 여호와의 성전의 기명들이 바벨론 신들의 전각으로 옮겨진 사실, 그리고 이스라엘 왕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온 사실을 가지고 승리자들은 그들의 종교와 관습이 히브리 사람들의 그것들보다 더 우수한 증거라고 자랑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떠남으로 자초한 굴욕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최상권과 거룩한 요구 그리고 복종에 대한 확실한 결과를 바벨론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보여주셨다. 또한 하나님은 그분께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를 증언하셨다”(교육, 5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그대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그대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겪고 있는 사회적인 또는 문화적인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런 문제들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서로 이야기해보자. 교회는 성경의 원칙에 굳게 서서 반응해야 할 것이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얼마나 쉽게 신앙을 양보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벨론인들은 정복자였고 유다 민족은 피정복자였습니다. 바벨론 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어떤 증거가 더 필요했겠습니까? 이런 시대에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이 붙잡아야 했던 성경의 진리는 무엇이었을까요?(5:19, 7:22~34 참고) 이로 보건대 우리가 성경을 알고 현대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성경에 예언된 사실이 성취된 것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신뢰했다. 지금도 예언을 확실히 깨닫고 말씀에 굳게 서기 위하여 현대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굳게 서야 할 것이다.

 

신실함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증언하고 섬겨야 할 자들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신실함을 통하여 그들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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