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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안식일) 일몰:오후 5시 23분

기억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출 28:6, 39:2~7, 삼상 21:1~9, 22:6~23, 삼하 15:13~29.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그것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다른 주변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왕은 제사장 역할을 겸했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적 권력은 통합되어 있었다. 제사장 계급은 궁궐 내에서 막강한 힘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왕의 배후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구약에서 제사장의 역할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삶의 중심이었다. 구속의 역사는 신약의 제사장들에게도 영향력 있는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종교개혁을 통해 강조된 만인제사장설(벧전 2:9)은 전적으로 신약적인 개념만은 아니다(출 19:6 참조). 신자들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위해 중보하고, 섬기며, 구원의 계획을 전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이번 주 우리는 아비아달의 이야기를 통해 구약의 제사장 제도에 나타난 몇 가지 교훈들을 살펴보면서, 제사장 정신이 단지 혈통이나 훈련에 기초한다기보다 여호와께 대한 개인적인 헌신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비아달의 경우에서처럼 잘못된 선택은 제사장 자격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학습 도우미

| 핵심 본문 | 벧전 2:9

| 학습 목표 |

⊙ 깨닫기 :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동조하거나 등을 졌을 때, 그의 선택이 제사장 자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한다.

⊙ 느끼기 : 하나님의 목적에 충실한 것이 하나님의 일을 받드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평가한다.

⊙ 행하기 : 택하신 백성으로서 하나님 편에서 섬기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중보를 통해 봉사한다.

교과 개요

01. 깨닫기: 도망자

A. 아비아달은 제사장들을 말살시키려는 대학살을 피한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사울의 폭정을 피해 도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윗과 같은 입장이었다. 오랜 세월 다윗을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운 종에 대한 어떤 불충실한 행동이 그로 하여금 제사장직을 잃게 만들었는가?

02. 느끼기: 친구였으나 배신자가 됨

A. 사울의 핍박과 압살롬의 반역이 있었을 때, 아비아달은 다윗의 편에 있었다. 그러나 다윗의 말년에 그는 보좌를 노리는 왕자의 편에 서서 다윗을 배반하였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배신에 이르게 했는가? 어떻게 단 한 번의 행동이 봉사의 생애 전체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가?

03. 행하기: 왕 같은 제사장

A. 우리 역시 좋은 때나 어려운 때나 기도와 찬양과 중보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어떻게 할 때 아비아달처럼 우리도 자격을 잃게 되는가?

B.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봉사하는 자격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또는 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가?

요 점: 일평생 제사장으로 봉사했지만, 왕을 배신하고 보좌를 노리는 찬탈자를 지지함으로써 그는 봉사의 직분을 잃게 되었다.

일요일(11월 7일) 거짓과 비극

1. 삼상 21:1~9과 22:6~23을 읽고 아래 질문에 답하십시오.

[삼상21:1~9]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9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삼상22:6~23]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9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11 왕이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 사울이 가로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뇨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 것이 없나이다 16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인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고하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23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하니라.

종합 답: 다윗은 자신이 도망 중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처럼 속여 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았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놉에 있는 제사장 마을 전체가 진멸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은 학살의 현장에서 빠져 나와 다윗에게로 왔다.

․ 그곳에 온 이유에 대하여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뭐라고 거짓말했는가?

답: 삼상21: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 다윗을 신뢰한 결과 아히멜렉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답: 삼상22:16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인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 사울은 자기 사람들을 다윗에게서 돌이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였는가? 그는 어떤 논리를 사용했는가?

답: 삼상22: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 다윗의 인격과 성실성에 대하여 아히멜렉은 사울에게 뭐라고 대답하였는가?

답: 삼상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 것이 없나이다.

․ 이 이야기는 사울 왕이 타락하고 부패한, 복수심에 가득 찬 인물이 되는 과정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답: 그의 신하들을 윽박지르고, 마침내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학살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그렸다.

․ 이방인이었던 도엑은 왜 사울의 종들이 꺼리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답: 도엑이 사울에게 충성하는 모습으로 출세를 기대했다고 불 수 있다.

․ 학살 소식을 듣고 다윗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어떤 면에서 그의 반응이 바람직했는가?

답: 삼상22: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 유일한 생존자인 아히멜렉의 아들이 학살자에게서 도망쳐 왔을 때, 다윗은 그에게 어떤 약속을 주었는가?

답: 삼상22:23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하니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젊은이는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끊임없는 두려움에 싸여 극도의 궁지에 몰려 거짓말을 하였다. 다윗은 제사장에게 자기는 왕의 은밀한 사명을 띠고 파송되었고 먼 여행이 필요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부족을 나타내었고 그의 죄는 대제사장의 죽음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만일 사실대로 분명하게 진술했더라면 아히멜렉은 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처신할 방법을 알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위험 중에서라도 진실이 당신의 백성의 표가 되기를 요구하신다.”(부조와 선지자, 656)

<부가설명> 성경에는 우리가 납득하기 쉽지 않은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갔을 때의 언동도 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제사장 족속들이 살해당한 사실 외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어떤 조처를 취한 사실을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잔인한 결과의 원인 제공자가 다윗인데,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다만 읽는 사람들이 제사장들이 학살당한 사실을 읽으며 하나님 앞에서 독자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을 뿐이다. 예언의 신을 증언을 통하여 다윗의 이 행동은 믿음의 부족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인간의 연약성을 잘 드러낸 모습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면서 다윗이 당한 것과 같은 위기를 만나면 인간의 연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말한 대로 그것이 나의 허물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 것처럼 우리의 연약성과 허물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시인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충실하게 살도록 도움을 간구할 때 지난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사유하시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인하여 감사할 수 있다. 문제는 솔직하게 회개하는 진실한 마음과 태도이다. 사울과 같이 변명을 하지 않는 솔직한 시인이 회개의 태도이다.

아히멜렉과 그의 권솔들의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을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교훈: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자들에게 하는 우리의 거짓말은 그들의 인생을 파괴하는 무서운 무기가 되기도 한다.

월요일 11월 8일

아비아달이 어떻게 학살을 피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그가 탈출하여 다윗에게 왔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탈출 이전에 그는 에봇을 확보했다(삼상 23:6 참조). 에봇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의복으로서 제사장들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출 28:6, 39:2~7 참조). 성경 기자는 적어도 두 번 이상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삼상 23:9~ 12, 30:7~8).

오늘날과 다르게 아비아달 시대의 사람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기 어려웠다. 율법책(모세오경) 필사본이 겨우 몇 개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다. 우리는 말씀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설명해 주실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26).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여서 우리에게 거룩한 조언을 주시기도 하며(잠 20:18), 상황을 통해 일하시기도 한다(롬 8:28).

1. 아비아달은 제사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삼상 23:9 ~13, 삼하 15:24, 17:15~22.

[삼상23:9~13] 다윗이 사울의 자기를 해하려 하는 계교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 다윗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가 내려오리라 12 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 13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삼하15:24] 사독과 그와 함께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삼하17:15~22]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고 나도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으니 16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기를 오늘 밤에 광야 나룻터에서 자지 마시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 좇는 자들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17 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계집종은 저희에게 나와서 고하고 저희는 가서 다윗에게 고하더니 18 한 소년이 저희를 보고 압살롬에게 고한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19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구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도무지 알지 못할러라 20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저희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21 저희가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나이다 22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답: 그는 다윗을 위해 여호와의 뜻을 물었고, 모든 어려운 일에 다윗과 함께 하였다.

이런 역할을 하기 전에 아비아달은 다윗과 같이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경험을 겪고 정처 없이 도망하는 신세였다. 이런 경험은 함께 도망하는 처지였던 미래의 왕을 더욱 잘 보필하기 위한 준비과정이 되었다. 아비아달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박해로부터 느끼는 고뇌와 두려움 그리고 배신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동질감은 신약의 제사장 개념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우리를 완전히 이해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대제사장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히 2:17).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사람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인간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동정, 신앙,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만 감동을 받고 향상된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크신 교사로서의 자격을 구비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찍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인간의 심령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교육, 78)

<부가설명> 어떻게 보면 다윗은 아비아달의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또 다윗은 아버지의 원수인 사울을 피하여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비아달에게는 다윗은 이런 은원이 얽힌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을 것이다. 그는 쫓기는 다윗과 동고동락하면서 다윗이 왕위를 얻는데 힘을 보탰다. 동병상련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튼 다윗이 왕권을 장악하고 통치하는 동안 아비아달은 다윗과 마음이 잘 맞았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고난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서툰 것이 아닌지? 우리도 진정으로 함께 고난을 받으므로 함께 왕 노릇 하는(딤후2:11,12) 자리에 이르도록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고난을 불러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교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제사장처럼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이해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처지를 잘 헤아려야 한다.

화요일 11월 9일 압살롬의 반역

사무엘하 15~18장은 아버지의 통치에 반기들을 들고 일어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압살롬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아비아달에게는 악몽과 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전쟁터로 만들기보다 도망하기로 결심하였다. 다윗의 충신들은 그와 함께 도망할 준비를 하였다. 아비아달은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사울 왕에게 학살당했던 일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윗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려고 했다.

1. 삼하 15:13~29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런 위기에 때에도 다윗의 품성이 어떠했음을 알게 됩니까?

[삼하15:13~29] 사자가 다윗에게 와서 고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저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하노라 15 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의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하더라 16 왕이 나갈 때에 권속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남겨 두어 궁을 지키게 하니라 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머무니 18 모든 신복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하니라 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날 어찌 너로 우리와 함께 유리하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 사생하고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 종자들과 그와 함께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 온 땅 사람이 대성 통곡하며 모든 인민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24 사독과 그와 함께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으로 돌아가라 28 너희에게서 내게 고하는 기별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룻터에서 기다리리라 29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유하니라.

답: 다윗은 이 사태를 통하여 피해를 입을 사람들을 진심으로 염려하였다. 그는 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자신이 성을 빠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대신 후궁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법궤를 남겨둠으로 예루살렘이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기를 소망했다.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아비아달과 제사장들은 도성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다윗은 법궤를 움직이지 말도록 명령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옮겨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다른 존재의 조종을 받는 분이 아니다. 법궤는 있을 곳에 있어야 했다. 법궤를 남겨두는 것도 다윗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믿음의 행위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인도해 주시리라 믿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은 모든 백성이 성을 빠져나갈 때까지 제사를 드렸다(삼하 15:24). 이런 중대한 시기에 제사장 아비아달과 사독은 다윗과 백성들을 위한 중보자가 되었다.

다윗의 비밀 정보원들은 이야기의 흥미를 더한다(삼하 17:15~29). 아비아달과 사독은 도성 안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다윗의 눈과 귀가 되었다. 아비아달과 사독의 아들들은 예루살렘 밖에서 전갈을 기다리고 있었다. 믿음직한 여종이 그들에게 전갈을 건넸다. 그런데 그들 곁에서 서성이던 순진하게 보이는 한 소년이 뭔가를 눈치 채고 이를 압살롬에게 알렸다. 제사장의 아들들은 압살롬의 군대의 추격을 받다가 한 농가의 우물에 숨었다. 그 집의 여인은 천으로 우물 아귀를 덮고 곡식을 널어놓아 그들이 그곳에 없는 것처럼 꾸몄다. 이는 마치 두 명의 정탐꾼을 삼대 밑에 숨겨준 라합의 방식을 연상케 했다(수 2:6).

종종 보이는 것과 실상은 다르다. 상처 입은 마음이 미소에 가려져 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로서 그분의 손이 되어 우리 주위 사람에게 다가서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외모 이면에 있는 그들의 참모습과 현실을 헤아리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위급할 때 흔들리지 않는 비결

“믿음은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 앞을 넘어 보는 것이며, 또 우리가 보이지 아니하는 전능하신 분을 의지할 때 결코 우리의 앞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모든 위급한 때에 그리스도의 손을 굳게 잡는 것이다.”(복음교역자, 262)

<부가설명> 이 장면은 위기의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사건으로 보인다. 당장 눈앞의 유익해 보이는 조처를 취하는 것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이다. 교과의 설명대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요 언약궤를 둔 다윗의 성막이 그곳에 있다. 제사장들은 여전히 속죄 봉사와 아울러 상번제의 예배를 끊이지 않아야 하였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다윗은 이런 믿음을 확고하게 가졌다. 그의 환난의 때에 그가 있는 곳에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던 경험적 신앙이 그를 확고하게 붙들었다.

교훈: 가장 어려운 때에도 법궤가 이동하지 않았듯이, 하나님의 종들은 맡겨진 영적인 일들을 중단 없이 수행해야 한다.

수요일 11월 10일 아비아달의 선택

우리는 아비아달의 개인적인 견해나 정치적 종교적 관점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다윗에게 있어서 그가 하는 모든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보다 그의 행동이 더 크게 말했다.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남아 있지 않지만, 그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력한 진술이 되고 있다.

다윗의 시대에는 장자가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관습이었다. 왕의 자녀 가운데는 첫째 아들이 왕위를 잇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셨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때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때로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때로는 장자 본인의 결정에 의해서 하나님은 첫째 대신 다른 아들을 세우셨다(창 4:1 ~5, 21:8~12, 25:21~36, 48:8~ 19, 삼상 16:6~ 12).

1. 왕상 1:1~8을 읽으십시오. 다윗에게 그토록 충성스러웠던 아비아달로 하여금 이런 일을 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왕상1:1~8]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 5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하니 6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답: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 아도니야는 왕위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 아마도 아비아달은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묻기 전에,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여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양 주장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얼마나 자주 이런 실수를 범하는가? 제사장 사독과 의견이 갈렸다는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을 따르자면 솔로몬은 장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 장자인 암논이 형제 압살롬에게 살해되었고, 압살롬도 쿠데타를 시도하다 죽었다. 이제 넷째 왕자인 아도니야는 왕위가 자신의 차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요압과 아비아달과 모의하여 그들의 지지를 받아냈다(왕상 1:7).

솔로몬은 아도니야보다 어렸고 가족력도 자랑스럽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다름 아닌 밧세바였다. 그녀와의 불륜을 감추기 위해 다윗은 그녀의 남편이었던 우리아를 죽였었다. 이런 수치스런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솔로몬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았다(삼하 12:24). 하나님은 그를 다윗의 계승자로 선택하신 것이 분명했다(대상 22:9~ 10). 그러나 이런 결정을 언짢게 여겼던 것인지 아비아달은 그것 때문에 명예를 잃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뜻에 반대하여 전통에 의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전통을 따르는 것이 편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빛을 통해 사물을 분별해야 하는 책임에서 우리를 면제시켜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이렇게 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안전해 보이는가?

하나님이 보시는 것

“과거에 그 분은 더 이상 가망이 없거나 매력이 없는 자들을 받으셔서 그분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도록 하셨다. 그분의 영이 마음에 움직여서 모든 기능이 활발하게 동작하도록 일깨웠다. 주님은 그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돌 가운데서 폭풍의 시험과 열기와 압력을 견딜 귀한 재료를 보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시지 않는다. 그분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살피시며 올바로 판단하신다.”(가려 뽑은 기별 3권, 240)

<부가설명> 전통적인 관습은 하나님의 불문율을 만든다. 그래서 특별한 법조문이 없으면 통상관례에 따른다는 것이 법적 관행이다. 주님의 사업을 행함에도 이런 전통적인 관습을 따르려는 경향을 무시할 수 없다. 오늘날 교회는 성경의 계시가 아닌 교회의 전통과 관습을 신조로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역사적으로 동일한 일을 계속하면 그것이 바로 관습법이 되고 만다. 일요일 성수나, 영혼불멸 사상이나, 세례 예식이나, 유아세례 등등 이것들은 성경의 계시가 아니고 교회가 역사적으로 시행한 관습이다. 오늘날 교회는 이런 관습 신조에 길들여져 있어서 성경을 그대로 주장할 때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애써 공격하고 전통과 관습을 변명한다.

아비아달은 이런 관습에 안일하게 젖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철저히 성경적이어야 하고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을 따라 믿음을 지켜야 한다.

교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 전통과 관습에 의지하려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 한다.

목요일 11월 11일 아비아달의 운명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즉위한 이후 몇 문제들이 해결될 필요가 있었다. 아도니야는 처형되었지만(왕상 2:13~25), 솔로몬의 부친을 충성스럽게 섬겼던 제사장 아비아달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역모에 가담한 일에 대하여 그에게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할까?

1. 왕상 2:26~27을 읽으십시오. 솔로몬은 아비아달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습니까? 그런 조치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왕상2:26,27]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로되 네가 내 부친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부친이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답: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왕상 2:27).

언뜻 보면 아비아달은 백여 년 전에 엘리에게 주어졌던 예언 때문에 파면된 듯이 보인다(삼상 2:30~36).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지 알고 계심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 후손이 무엇을 선택할지 아시기 때문에 미래를 예언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엘리의 아들들이 그들의 행위 때문에 제사장 자격을 잃었던 것처럼 그 자손인 아비아달도 하나님의 선택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제사장 자격을 잃게 될 것을 아셨다.

2. 마 26:14~16, 20~25을 읽으십시오. 아비아달의 좌천에 비추어 이 예언을 설명해 보십시오. 공통적으로 어떤 유사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습니까?

[마26:14~16, 20~25] 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2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답: 하나님은 엘리 집안의 제사장직이 아비아달의 배신과 파면으로 끊어질 것을 아셨다. 마찬가지로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셨지만,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삼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셨지만 그렇다고 그를 내치지는 않으셨다. 유다는 열두 제자 중 하나였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였다. 그러나 아비아달처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그는 왕권이나 권력과 지배의 문제에 있어서 아마도 아비아달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유다는 예수께서 지상 왕국의 임금이 되시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가 좌절되자, 참되신 왕을 배신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향했다.

하나님의 예지를 하나님의 예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유다와 아비아달처럼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을 예지하실 뿐이지,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시는 것은 아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임

“자신을 낮추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자만심에 빠지게 되면 그것은 틀림없이 영혼들을 잃어버리게 할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들을 파멸시킬 것을 나는 보았다. 누구든지 교만해져서 자신의 힘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은 그를 떠나게 되고 그는 자기의 뜻대로 행하다가 결국에는 멸망하게 된다. 나는 한 명의 성도라 할지라도 바르게 행하면 하나님의 팔을 움직일 수 있으나 아무리 수가 많다 할지라도 바르게 살지 아니하면 연약하여 져서 아무 영향력도 끼칠 수 없음을 보았다.”(초기문집, 120)

<부가설명> 예지와 예정은 전혀 다른 것이다. 예지는 예지한 사실에 예지한 사람의 의지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일어나는 사실을 미리 아는 것뿐이다. 그러나 예정은 그렇게 되도록 정한 것이다. 그것은 예정한 자의 의지로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예언인 것처럼 주장한다면 사기(詐欺)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업과 관련하여 예언된 사실을 하나님이 예정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사기꾼으로 여기는 셈이다. 그렇게 되도록 다 만들어놓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예지라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종말을 보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생애 전반을 미리 다 보시는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을 미리 아시는 것일 뿐이다. 현재의 인생들이 생명을 택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교훈: 우리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면 우리의 운명은 아비아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금요일 11월 1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위대하고 엄숙한 사업을 위하여 그대를 선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속한 영광만을 바라보면 이 거룩한 사업이 성취되도록 그대를 훈련하시고 시험하시며 입증하시고 세련되게 하시고 고귀하게 만들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인물을 선택하시고 당신과 더불어 밀접한 교제를 하게 하시며 수행해야 할 사명을 주셔서 당신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연약한 사람이 강하게 되고 소심하던 사람이 용감하게 되며 결단력이 없던 사람이 단호하고 민첩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에게서 사명을 받게 될 때에 그 사람이 성취할 수 있는 수많은 성과의 가능성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신성한 책임과 거룩한 사명이 세속적인 야심 때문에 유혹을 받아야 할 것입니까?”(가려 뽑은 기별 2권, 16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성경의 다른 예지만 사울의 생애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토록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까?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게 됩니까? 어떤 실수가 몰락의 계기가 되었습니까? 그는 무엇 때문에 이번 주 우리가 보았던 그런 종류의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습니까?

* 그는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제사장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일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면서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길을 걷게 되었다.

2. 예수께서는 그분의 인성을 통하여 우리의 고뇌를 잘 이해하신다는 점을 깊게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리스도의 인성은 인간이 체험하는 모든 것들을 친히 체험함으로 인간과 일체되는 위치에 자신을 두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온전히 도우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은 이런 일 때문에만 취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아담 안에서 죽은 인류의 죽음으로 대신 처리하기 위하여 인성을 취하셔야만 하였다. 그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첫 아담의 사망을 대신 담당하시고 죽어주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것이다.

3. 교과반에 사별을 경험한 분이 있다면 교과반에서 그분을 도울 방법은 무엇일까요? 위로의 말 외에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경우에 따라 단지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도 있습니까?

* 사별의 경험은 다른 사람의 말로 하는 위로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 부활의 소망으로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우들은 그를 믿음으로 이 부활의 소망 중에 굳게 서도록 도와야 할 것이며, 그가 외로운 상태에 있다면 그와 더불어 가족애를 발휘하여 위로할 수 있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반생들이 서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4. 하나님의 예지와 인간의 자유 의지는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 사상가들을 고민에 빠뜨렸던 난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택을 미리 아신다면, 우리에게 정말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다면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어떻게 공정하게 심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해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시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동을 미리 아신다 해도 그것이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교과반에서 토의해 보십시오.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우주의 통치자라는 사실입니다.

* 목요일 부가설명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예지와 예정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은 구속의 사업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즉 창조되기 전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이 지구 창조의 목적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은 이 문제를 친히 해결하시기로 하여 신성의 한 분이 사람이 되어 아담의 죽음을 대신 처리하시기로 하고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는 일정기간만 생존하되 그 기간에 생육하게 하시고 구주를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어 그가 아담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을 통하여 누구든지 그분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정은 예수 안에서만 영생을 얻도록 하신 사실이고, 개인이 이 영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이 예정을 받아들일 때에 얻도록 예정하신 것이다. 누구는 구원을 얻고, 누구는 구원을 못 얻도록 예정되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개인이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간청하시는 것이다. 이 말이 모순 같이 들리는가. 결코 모순이 아니다. 이것은 참으로 진실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미리 아시며 안타까워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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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타리방송 - 제4기: 5 과 아비가일: 상황에 지배 받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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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0/23 by us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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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Q4 - Lesson 5: Abigail: No Victim of Circumst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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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 과 아비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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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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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 과 아비가일: 상황에 지배 받지 않음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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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타리방송 - 제4기: 4 과 요나단: 위대함이란 말이 제격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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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Q4 - Lesson 4: Jonathan: Born for Great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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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 과 요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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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 과 요나단: 위대함이란 말이 제격인 사람(1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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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0/09 by us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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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타리방송 - 제4기: 3 과 한나: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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