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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일 안식일

일몰오후 720

 

연구 범위 : 3:26~4:20, 6:1~11, 2:14~18, 4:14~15, 9:4~5

기 억 절 ;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4:7).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종이 아니라 모든 권리와 특권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젊은 마르틴 루터가 들어야 할 진리였다. 죄의식이 깊어짐에 따라 그는 자신의 행위로 용서와 평화를 구하려고 했다. 그는 금식기도, 철야기도에 힘쓰며, 자신의 악한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채찍을 가하면서 가장 엄격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수도원 생활은 죄로부터 그를 해방시키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 같은 마음의 정결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규율을 엄격하게 따르는 경건한 수도사였지만 마음에 평화를 얻지는 못했다. “만약 자신의 수도 행위로 하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나는 분명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후에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영적인 자유와 마음의 희망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 세상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우리가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후사가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느끼기 : 우리 마음속에 주신 그리스도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과 누리는 부자간의 친밀한 관계를 인식한다.

행하기 : 율법 아래 있는 억눌린 미성년자가 아니라 후사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

 

율법에 얽매이는 태도는 왜 미숙한 것일까요?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다는 말은 어떤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권리를 얻었다는 뜻이다. 권리에는 책임도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아들 아닌 자가 노력으로 아들이 될 수 없다.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의 후사로서 당장 누릴 수 있는 특권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 안에서 얻은 기쁨으로 찬양하며 감사하며 죄와 사망의 두려움에서 자유를 누린다.

우리가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꿔야 할 것은 무엇이며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아들답게 생활하는 것과 아들답지 못한 삶을 버려야 한다.

 

결론: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은사 덕분에 그분의 나라를 물려받는 상속자로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아버지와 정답게 교제합니다.

 

 

첫째 날()

813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상태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3:26).

 

1. 3:25을 염두에 두고 3:2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와 율법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3:25,26]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초등교사 아래 있을 때는 스스로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선생의 지시를 따라야 하지만 장성하면 스스로 아들의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초등교사의 지도를 받지 않아도 모든 것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주인의 아들이 미성년자일 때까지 초등교사 아래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자들은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이기 때문에 그들과 율법 사이의 관계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아들은 남자와 여자를 모두 포함한다(3:28). 바울이 자녀라는 말 대신 아들이란 말을 사용한 이유는 남자 자손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구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이스라엘의 특별한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14:1, 11:1). 어쨌든 이제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국한되었던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2. 무엇이 침례를 특별한 사건으로 만드는가?(3:27~28, 6:1~11, 벧전 3:21)

[3:27,28]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6:1~1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게 하며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며 그리스도를 옷 입은 사람이 되어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전진하게 된다.

 

바울은 침례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중대한 결심으로 보았다. 그는 로마서 6장에서 침례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상징으로 묘사하였다. 그런데 갈라디아서는 다른 비유를 사용한다. 즉 침례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행위이다. 바울이 사용하는 용어들은 의와 구원으로 옷 입는다는 구약의 아름다운 성경절들을 떠올리게 한다(61:10, 29:14). “바울은 침례를 그리스도께서 마치 의복처럼 신자를 뒤덮는 순간으로 본다. 비록 그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바울은 의가 신자에게 부여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 Frank J. Matera, Galatians, p. 145.

침례로 표상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이 곧 우리에 대한 설명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그리스도와 함께후사”(8:17)가 된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과 맺은 언약을 잇는 상속자가 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44회 있는데 바울이 40회를 사용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43회는 바울 서신에만 있다. ‘예수 안에라는 말은 7회 있는데 바울서신에만 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말은 모두 94회 사용했는데 바울이 90회를 사용했다. 주 안에라는 말이 48회 있는데, 바울이 45회 사용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바울의 신앙의 핵심이다. 그것은 또한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의 핵심이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나오면 교회에 다녀도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참된 신자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설 수 없다. 나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선다. 하나님이 아무리 샅샅이 나를 살펴도 보이는 것은 예수님뿐이다. 나는 예수 안에 깊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국 나를 예수님과 똑 같다고 인정하신다. 그래서 심판 날에 흠도 점도 티도 주름 잡힌 것도 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한 순간이라도 예수 밖으로 나오면 그때 나는 존재와 생명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고 또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신 가장 간절한 이유이다. 내가 예수 안에 있으면 동시에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신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활동하시는 대로 활동하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생활하는 생명의 생활이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교훈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을 상속자가 되었다.

 

 

둘째 날() 초등 학문의 종이 됨

814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4:1).

 

아들과 후사로서의 관계를 비교한 후에 바울은 갈 4:1~3에서 유업의 주제를 덧붙이면서 이 주제를 정교하게 다듬는다. 바울의 말은 대지주가 모든 소유를 장자에게 남긴 채 죽은 상황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 아들은 아직 미성년자이다. 오늘날의 유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버지의 유언은 그의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후견인이나 관리인의 감독하에 있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유산의 법적 소유주임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인 아들은 사실상 종과 다름이 없다.

바울의 비유는 갈 3:24의 초등교사 이야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경우 청지기 또는 관리인들의 권한은 훨씬 크고 중요하다.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양육할 뿐 아니라 아들이 스스로 일들을 처리할 만큼 성숙해질 때까지 모든 재정적, 행정적 사무를 책임져야 한다.

 

1. 4:1~3을 읽어 보라.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후에 우리의 삶 속에서 율법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4:1~3]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 아들의 권리라고 말한다. 아들은 율법의 요구를 수행할 능력이 있게 된 것이다.

 

바울이 초등학문”(4:3, 8)이라고 말한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그리스어 스토이케이아의 문자적 의미는 기본이다. 이 말은 우주를 형성하는 기본 원소(벧후 3:10, 12), 이 악한 시대를 지배하는 마귀의 권세(2:15), 또는 아주 기본적인 신앙생활의 원리 또는 신앙 입문을 뜻하기도 한다(5:12).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인간의 상태가 미성년자였다는 것은 여기서 신앙생활의 기본 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4:1~3). 그렇다면 율법과 제사가 있었던 구약시대는 구원의 기초를 요약한 일종의 복음 입문서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너무나 중요하고 교육적이었던 의식법도 장차 올 것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 대신에 율법의 조항들로 어떤 사람의 삶을 규범화시키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신 이후에 다시 기본적인 요소로 돌아가려는 갈라디아인들은 마치 미성년자로 되돌아가려는 다 큰 아들과 같았다.

 

<부가설명>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거나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옷 앞자락에 손수건을 달아준다. 코흘리개가 코를 흘릴 때 닦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스스로 콧물 흘리는 것을 관리하고 토제할 수 있을 때 손수건을 뗀다. 초등교사는 바로 이 손수건 같은 것이다. 장성하면 손수건을 달지 않는다. 손수건을 달지 않기 때문에 콧물을 흘려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다. 손수건을 달지 않아도 콧물 관리 통제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손수건을 떼는 것이다. 율법은 바로 이 손수건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로 장성했다면 손수건 달지 않아도 율법의 요구를 예수 안에서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31)는 의미를 확인하게 된다. 장성한 아들, 정상적인 의식 활동이 있는 아들이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다니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무슨 새로운 패션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는 율법 조문을 보wl 않고서도 율법의 내용을 생활하는 능력을 얻었다.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멘.

 

교훈 : 유업을 이을 후사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모두 율법의 종과 다름이 없었지만, 이제 장성하였으므로 더 이상 종이 될 필요는 없다.

 

 

셋째 날()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81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4:4).

 

때가 차다라는 말은 인간 역사에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역할을 암시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정확한 시간에 오셨다. 당시는 팍스 로마나(로마의 지배에 의한 평화)’ 시대였다. 로마 제국 전체가 약 2백 년 동안 비교적 평화와 안정을 누렸다. 지중해 세계를 로마가 지배함으로써 평화가 찾아왔고, 언어의 통일, 문화적인 통일, 편리한 이동 체계가 이루어져서 이로 말미암아 복음의 신속한 전파가 촉진되었다. 이를 다시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실 때가 된 것이다(9:24~27 참고).

 

1.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1:14, 4:4~5, 8:3~4, 고후 5:21, 2:5~8, 2:14~18, 4:14~15)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14~18]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대신하여 죄가 되어 십자가에서 죄를 처리하시고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셔서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사람되어 오셨다.

 

4:4~5은 성경에서 가장 단순하게 복음을 요약한 말씀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님의 강림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에 앞장서셨다.

또한 이 말씀에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에 대한 기독교의 기본 신조가 드러나 있다(1:1~3, 18, 2:5~9, 1:15~17).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오셨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선재(先在)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여자에게서나셨다. 물론 이 말은 처녀 출생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분의 참된 인성을 더욱 분명하게 확증하고 있다. “율법 아래에 나셨다는 말은 예수님의 유대적인 기원뿐 아니라, 그분께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실 필요가 있었다.

거룩한 신성과 연약한 인간의 본성이 연합함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속자, 구주 그리고 대제사장이 될 법적인 자격을 갖추셨다. 그분은 둘째 아담으로서 첫째 아담이 불순종하여 잃은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오셨다(5:12~21). 그분은 온전한 순종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으며 아담의 비극적인 실패를 만회하셨다.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의 죽음을 요구하는 율법의 공의를 충족시키셨다. 그렇게 해서 주님은 진실한 믿음과 굴복의 정신으로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구원할 자격을 얻게 되셨다.

 

<부가설명> 때가 찼을 때 예수께서 사람이 되어 여자에게서 나셨다. 때가 찼다는 것은 예언의 때가 찬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115절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작정하신 때가 찼겠지만 동시에 다니엘 924~27에 예언한 70 이레로 말씀하신 그 때가 찬 것이다. 바로 그때에 말씀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여자에게서 탄생하셨다. 여자에게서 탄생했다는 것은 창세기 315절에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예언을 이루신 것을 나타낸다. 그분은 남자의 후손으로 오신 것이 아니다. 다른 말로 아담의 씨로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그 생명을 생명의 씨가 되게 하시고 여자의 몸에 잉태하여 사람으로 탄생하신 것이다. 그분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니다.(고전15:22 참고) 그분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다. 아담의 후손들은 자기 안에 생명이 없고 사망만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의 사망을 대신 하실 자격이 있으신 것이다. 그가 사람이 되신 것은 아담이 죽은 그 죽음을 대신 죽어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분이 죽음으로 사망이 폐하여졌다.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이 완전히 드러났다.(딤후1:10)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된다. 아멘.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5:24)

 

교훈 : 예수께서 인성을 쓰고 율법 아래 태어나신 이유는 자신의 완전한 생애와 거룩한 희생을 통해 죄의 저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넷째 날() 입양의 특권(4:5~7)

816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4:7).

 

4:5~7에서 바울은 그의 주제를 확대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셨다고 강조하였다. ‘속량이란 말은 되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은 노예나 하인이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을 뜻한다. 이런 배경에 따르면 속량이란 어떤 사람이 해방될 필요가 있다는 부정적 상황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가? 신약성경은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마귀와 그의 속임수(2:14~15), 죽음(고전 15:56~57),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죄의 권세(6:22), 율법의 정죄(3:19~24, 3:13, 4:5).

 

1. 속량함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목적은 무엇인가?(4:5~7, 1:5, 8:15~16, 23, 9:4~5).

[4:5~7]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8:15,16,23]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9:4,5]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일을 구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구원은 바울이 사용한 양자됨(휘오데시아)’만큼 생생하고 묘사적이지는 못하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신약의 저자이지만, 입양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널리 알려진 법적 절차였다. 법적 상속자가 없었던 바울 당시의 몇 로마 황제들도 후계자를 얻기 위해 입양을 선택하였다. 입양은 수많은 특권을 보장하였다. “입양된 자는 입양한 자의진짜 아들이 된다.… ⑵ 입양한 자는 그 아이를 잘 양육하고 음식과 의복을 제공한다. 입양한 자는 입양된 아들을 버릴 수 없다. 입양된 자녀는 종으로 신분이 강등되지 않는다. 입양된 자녀의 친부모는 그를 다시 달라고 할 수 없다. 입양은 상속의 권리를 설정한다.” - Derek R. Moore-Crispin, “Galatians 4:1~9: The Use and Abuse of Parallels,” The Evangelical Quarterly, vol. LXI/No. 3 (1989), p. 216. 땅에서도 이런 권리가 보장된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우리는 얼마나 더 큰 특권을 누리겠는가!

 

<부가설명> 양자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교과의 설명이 확실하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성경에는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8:23)이라고 하였다. 양자가 된다는 것은 속량이 된다는 뜻이다. 속량은 몸값을 지불하고 포로나 종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죄의 종 사망의 포로가 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속량하셨다. 몇 번 말한 것 같지만 예수께서 피로 우리 죄 값을 지불하셨는데 누가 그 죄 값을 받았는가? 예수께서 누구에게 죄 값을 지불하셨는가? 어떤 성경교사가 마귀에게 지불했다고 말하는 것을 나에게 와서 말하면서 사실이 그러냐고 물었다. 그것은 전혀 말도 아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죄를 지었는지 알면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 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 값을 하나님께 지불하셨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9:14) 이렇게 예수께서는 자기의 피를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속량하셨다. 이 예수님의 피는 또한 하나님의 피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가르치는 말씀이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20:28) 말씀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우리를 사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답게 생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그렇게 생활하도록 하신다.(8:2)

 

교훈 :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구원의 과정을 입양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당시의 사회가 보장했던 특권보다 훨씬 큰 특권을 암시하였다.

 

 

다섯째 날() 왜 다시 종이 되려 하는가?

817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4:10~11).

 

1. 4:8~20을 읽어 보라. 바울이 말하려는 요점은 무엇인가?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존재하는 거짓 교훈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겼는가?

[4:8~20]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 유대주의의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종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부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앙 관습의 성격을 정확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영적 속박을 야기할 수 있는 거짓 예배 제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이 저지르는 일이 아들의 지위를 떠나 종으로 돌아가는 일과 같다고 기록할 만큼 상황을 매우 위태롭고 파괴적으로 보았다.

 

2.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이 저지르는 불쾌한 일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4:9~11)

[4:9~11]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되어서 그를 믿는 자들이 행해야 할 필요가 없는 예식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려 고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렇게 하면 바울의 수고가 헛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바울이 날과 달과 절기와 해”(4:10)를 언급한 이유에 대하여 많은 사람은 그가 의식법뿐 아니라 안식일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해석은 근거가 없다. 우선 바울이 정말 안식일과 특정 유대의 관습을 구체적으로 집어 말하고 싶었다면, 그것을 하나씩 거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로 갈라디아인들이 하고 있던 행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바울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에서 떠나 속박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7일 안식일 준수가 사람을 속박하는 것이라면 창조주도 세상의 첫 안식일을 지켰을 때 속박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재림교회 성경주석 12, 551). 만약 올바른 안식일 준수일지라도 그것이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누려야 할 자유를 박탈한다면 예수께서 어찌 스스로 안식일을 준수하시며, 그것의 준수 방법까지 사람들에게 가르치셨겠는가?(2:27~28, 13:10~16).

 

<부가설명> 많은 개신교인들은 10절 말씀을 인용하여 안식일도 폐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율법주의에 대한 것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성취하신 구속의 방법들을 가르친 율법의 일들을 수행하여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구원하실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 사람을 구원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구약에 가르친 날과 달과 절기와 하례를 하여 예수께서 충분하지 못하게 행한 것을 보충해야 한다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다니엘 927절에는 70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이 되었을 때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때가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때이다. 제사와 예물이 가리키던 실상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그것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그런 율법의 행위에서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준 것이다. ‘금지라고 번역된 말은 -바트인데 쉰다는 말이다. 안식일이라는 명사의 동사형이다. 안식일은 샤바-이다. 그러니까 제사와 예물을 드려야 하는 노동에서 쉼을 주신다는 말이다. ‘율법의 행위라고 했을 때 행위라는 말은 에르곤이다. 이것은 ‘work’이다. 노동, 노력이다.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데는 노력이 필요했다. 행위라는 말이 'act'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보충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오해하지 말자. 그들은 율법을 행해야 하는 노력의 노예로 떨어진다.

 

교훈 : 갈라디아인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예배 제도를 따랐던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처사였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818

 

하늘 총회에서 인간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었다. 인간은 비록 범죄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자와 보증인으로 믿음으로써 불순종 가운데서 멸망하지 않게 되었다. 인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양자가 되도록 예정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바라시는데 이는 속전을 지불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주심으로써 충분한 준비를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멸망당하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교만이 구원의 방편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인간의 공로로는 한 영혼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용납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그에게 전가되는 구주의 은혜 때문이다. 나아질 것 같은 행복한 감정 또는 인간의 행위는 사람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증거와 아무 상관이 없다. 택함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선택된 것이기 때문이다”(영문 시조, 18932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지 또는 무엇을 의미하지 않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관계의 문제에서 우리가 본으로 삼아야 할 자녀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또한 이 개념을 극단적으로 취급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토의해 봅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으니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들어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 얻은 구원과 은혜를 불안하게 여길까요? 왜 많은 사람은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 행하려고 할까요?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 구원받는데 자기가 무엇인가 보태야 직성이 풀릴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체면도 세우고 자기 보람도 맛보고 싶은 의식 못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재림신도들이 이미 자유롭게 된 문제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무엇입니까? 그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자유롭게 될 수 있을까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죄에서 자유를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그런데 자기가 생활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내가 과연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당장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아가야 한다.

 

요약: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입양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런 가족적 관계에 수반되는 모든 권리와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따라서 법과 규율만을 토대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들은 마치 노예가 되고 싶어서 자신의 지위와 유산을 단념하는 아들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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