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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일 안식일

일몰오후 757

 

연구 범위 : 6:9~15, 9:1~9, 삼상 16:7, 7:1, 11:19~21, 15:1~5

기 억 절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11:18).

 

다소 사람 사울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평생 율법의 중요성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구원에 대하여 배운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이름도 없는 극악한 범죄자로 처형당했다는 사상을 참으라는 것은 그에게 지나친 요구였다.

그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율법을 배반하고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가 메시아이며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났다는 그들의 주장을 명백한 반역으로 여겼다. 그같이 허무맹랑한 주장과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자들은 누구든지 용납할 수 없었다.

사울은 이스라엘로부터 이런 신념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기로 자처하였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동료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하는 자로 성경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사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 유대인은 단지 예수를 메시아라고 설교할 뿐 아니라 그 사실을 이방인에게까지 전파해야 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들을 파악한다.

느끼기 : 바리새인에서 복음 전도자로의 전환을 둘러싸고 바울이 경험했을 긴장감에 공감한다.

행하기 : 하나님의 일에 적합한 봉사자가 되기 위해 우리의 재능과 삶을 바친다.

 

사울(바울)은 어떤 마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을까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정직한 마음으로 핍박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울을 어떻게 변화시키셨습니까?

정직한 마음을 받으시고 그에게 친지 자기를 나타내셔서 변화의 길로 이끄셨다.

하나님이 바울을 특히 이방인에게 보내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가 이방인을 위하여 잘 준비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림신앙을 핍박하는 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진리를 확실히 알고 단호한 믿음의 정신으로 말씀을 생활하면서 온유와 친절과 인내로 할 것이다.

 

결론 : 아직 미약한 초기 교회는 애국자였던 다소 사람 사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위한 선교에 큰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

625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6:13).

 

다소 사람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처형했던 사건(7:58)에 연루된 인물로 사도행전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발생했던 더 광범위한 박해와 관련하여 다시 등장한다(8:1~5). 베드로, 스데반, 빌립 그리고 바울은 사도행전의 핵심 인물로서 기독교 신앙이 유대 사회 너머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들에 개입되어 있다. 그 가운데 스데반이 특별히 중요한데 그 이유는 그의 설교와 순교가 다소 사람 사울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스데반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었고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6:3~6).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된 해외파 유대인 무리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스데반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6:9). 다소 사람 사울(바울)이 이 논쟁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1. 6:9~15을 읽어 보라. 유대인들은 스데반에게 어떤 죄목을 씌웠는가? 이 죄목이 연상시키는 것은 무엇인가?(26:59~61 참고)

[6:9~15]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11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26:59~61]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고,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고 한다는 죄목을 씌웠다. 예수님을 정죄할 때를 연상하게 한다.

 

스데반의 설교가 극심한 반대를 당했던 요인은 두 가지였다. 우선 그는 유대교의 핵심이자 종교적, 국가적 정체성의 상징으로 보존되어 온 율법과 성전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 점이 반대자들의 분노를 샀다. 그는 단지 이 보배들을 가볍게 여겼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예수께서 유대 신앙의 진정한 중심이라고 담대하게 선언했다.

그는 바리새인 사울을 자극하였다(3:3~6). 사울은 분명 자발적인 열정이 넘치며 엄격하고 호전적인 바리새 분파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고 보았으며(2, 8:23, 40~55),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이와 같은 종교적 타락을 제거함으로써 그날이 이르도록 하나님을 돕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가설명> 참 이상하게도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유대인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언의 성취로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았다. 그들의 국가와 개인적 바람이 기초가 되어 성경을 읽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메시아는 도무지 깨닫지 못하였다. 사람이 자기 욕망과 지식을 중심으로 성경을 읽으면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다. 유대인의 상태는 이것을 잘 드러내는 모습이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을 드러내면서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들이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예수는 반역죄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수인데 어떻게 메시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인식이었다. 결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처지를 성경을 이해하는 기초로 삼으면 유대인과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인도하는 그 길을 따라 성경을 깨닫도록 항상 자아를 말씀에 굴복시켜야 한다. 그리고 성경 전체의 내용을 잘 생각해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을 주신 목적을 잘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간절히 구하며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다 내려놓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바르게 잘 들어야 한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50:4) 성령께서 알아듣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며 귀를 기울여 진리의 정로에 서야 할 것이다.

 

교훈 : 스데반은 율법과 성전을 무시한다는 죄목으로 순교를 당했지만, 박해자 사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둘째 날() 사울의 회심

626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9:5).

 

초기 교회에 대한 사울의 박해가 초반부터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지만(그는 단지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의 옷을 들고 있었음) 점차 강도가 세졌다(8:1~3, 9:1~2, 13~14, 21, 22:3~5 참고). 사울을 묘사하기 위해 누가가 사용했던 몇 단어들은 그를 마치 굶주린 맹수 또는 적의 폐허 속에서 약탈을 자행하는 병사처럼 그리고 있다. 8:3잔멸할새로 번역된 말은 멧돼지의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행위를 묘사했던 시 80:13의 히브리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이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울의 성전(聖戰)은 분명 명목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박멸하려는 치밀하고 의도적인 계획이었다.

 

1. 사울의 회심을 담고 있는 세 개의 본문을 읽어 보라(9:1~18, 22:6~21, 26:12~19). 이 경험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사울에게 어떤 자격이 있기에 주께서 그를 선대하셨는가?

[9:1~18]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22:6~21]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6:12~19]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 사울을 회개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게 하였다.

 

인간의 관점에서 사울의 회심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의 소식을 들은 많은 이가 이와 같은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사울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열성적인 유대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사울의 회심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또는 강압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울은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단지 하나님에 대하여 치명적인 오해를 하고 있었을 뿐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사울에게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26:14)고 하신 말씀은 성령께서 그를 설득해 오셨음을 뜻한다. “가시채는 옛날에 소가 밭 갈기를 거부할 때마다 소를 몰기 위해 사용했던 뾰족한 가시가 박힌 막대기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역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이루어진 예수님과의 기적적인 만남을 통해 그는 결국 싸움을 멈추기로 하였다.

 

<부가설명> 사울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특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한 진심으로 예수를 핍박하였다. 사울의 생각에 예수는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는 자였다. 그를 따르는 무리도 그와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유대 민족을 위하여 예수 믿는 도를 박멸하려고 한 것이다. 그 열정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심을 받으시고 그런 진심으로 예수와 그 복음을 위하여 충성할 것을 보신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에 바른 길을 걷도록 감동해 오신 것이다. 그 사실을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고생이라고 하는 말씀으로 드러내셨다. 위에 설명한 대로 밭을 가는 소가 엉뚱한 곳으로 향할 때 바르게 가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이다. ‘뒷발질하기가라는 표현으로 예수께서 그의 마음에 계속적으로 감동하신 사실을 지적하신 것이다. 사울은 이런 마음의 감동을 계속 무시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스데반 사건으로 그는 격렬한 감동을 경험하게 되었다. 때가 되었을 때에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결정적으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회심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조용한 감화를 깨닫고 거절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 성령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극적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셋째 날() 다메섹으로 간 사울

627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

 

예수님과 만나 시력을 잃은 사울은 유다라 불리는 사람의 집에서 아나니아를 기다리도록 지시를 받았다. 사울의 시각 장애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했던 그의 영적 분별력의 장애를 말해 주고 있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보인 예수님의 출현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예루살렘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자존심 강하고 열성적인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은 영 다른 사람이 되어 다메섹으로 입성하였다. 다메섹에서의 첫 삼일 동안 사울은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았다.

 

1. 9:10~14을 읽어 보라. 아나니아가 사울에 대하여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 보라.

[9:10~14]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이것이 아나니의 대답이다. 그는 계시가 아니었으면 결코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박해자 사울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의 추종자요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도 바울이 되었다(26:16~18).

이는 아나니아에게 적지 않은 혼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바울이 회심한 이후 3년 뒤에도 예루살렘 교회는(9:26~30) 그를 받아들여야 할지 주저했다. 하물며 그가 회심한 직후의 다메섹 신자들은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아나니아가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계시가 아니었다면 유대인 기독교 신자의 원수였던 사울이 이제는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소식을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울은 기독교 신앙을 뿌리 뽑기 위해 대제사장의 권한과 명령으로 예루살렘을 출발한 자였다(26:12). 그러나 하나님은 대제사장보다 더 큰 권한과 명령을 주셨다. 사울은 이방 세계에서 복음을 전파해야 했다. 이는 사울의 회심보다 더 충격적이다.

기독교의 확산이 가로막힐 뻔했던 순간 하나님은 유대인 신자들의 상상을 뛰어넘어 그 신앙을 확신시키기 위한 도구로써 사울을 사용하기로 작정하셨다.

 

<부가설명> 사울의 개종은 참으로 극적이다. 교과에서 말한 대로 그는 예수 믿는 도리를 박살낼 생각으로 대제사장의 공문을 들고 유대지방 밖으로 나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께서는 그의 마음에 성령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감화하셨던 것이다. 바울이 그런 것을 느끼면서 이것이 무슨 마음일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진심을 보신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자기 이익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그 마음을 예수께서 귀하게 보신 것이다. 우리가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 비로 그 길이 비뚤어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바른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사울이 바울이 되는 것을 본으로 드러내셨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고백하였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13,16)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측량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위한 정직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다.

 

교훈 : 박해자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제자 바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도록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넷째 날() 이방인에게 전파된 복음

628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13:2).

 

1. 처음으로 이방인 교회가 세워진 곳은 어디인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신자들이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는가?(11:19~21, 26) 구약 시대에 언제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가?(2장 참고)

[11:19~21,26]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 시리아 안디옥이다. 핍박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의 전도로 교회가 섰다. 구약시대는 유대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스데반의 순교 직후, 예루살렘에서 발생했던 박해 때문에 유대인 신자들은 북쪽으로 480떨어진 안디옥으로 도망하게 되었다. 제국 내 시리아 지역의 수도였던 안디옥은 로마나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인구 약 50만의 대도시였던 안디옥은 이방인 교회를 위해서뿐 아니라 초대 교회의 선교 전초기지로서도 적격이었다.

 

2. 안디옥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여 바나바가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는가? 그는 후속 조치로써 바울을 안디옥으로 불러들였다. 그때 교회는 어떤 상황 가운데 있었는가?(11:20~26)

 

: 안디옥에 새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바나바를 보냈고 바나바는 바울을 불러서 교회를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바울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하기란 쉽지 않다. 그가 회심 이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다음 바나바가 그를 안디옥으로 초청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던 것 같다.(9:26~30). 그동안 바울이 무엇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갈 1:21을 기초로 한다면 그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기간에 그가 가족의 상속권을 박탈당하고(3:8) 고후 11:23~28에 기록되어 있는 고초를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도 아래서 성장하였다. 13:1은 안디옥 교회의 성격이 대도시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안디옥 교회에는 구브로 출신 바나바, 구레네 출신 루기오, 길리기아 출신 바울, 아프리카 출신 시몬, 그밖에 다양한 이방인 신자들이 있었다. 성령께서는 안디옥을 복음의 전초기지로 삼아 시리아와 유다 지역을 넘어서 복음을 더 많은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바라셨다.

 

<부가설명> 바나바는 참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 이름의 뜻이 권고하고 위로하는 자이다. 한자로 권위자(勸慰子)라는 말이다. 본명은 요셉이다.(4:36) 그가 워낙 사람들을 잘 돌보고 권고하고 위로하는 일을 잘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본명 대신 바나바라고 불렀다. 이름 그대로가 그의 인격이요 체질이 된 사람이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다. 바울이 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쉽게 바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바울이 고향 다소로 내려가서 지내는 것을 안 바나바가 거기까지 가서 바울을 데리고 안디옥으로 왔고 거기서 바울이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도록 이끌었다. 바나바가 그렇게 이끌지 않았으면 바울이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늦어졌을는지도 모른다. 바울이 뛰어나게 주님을 위해 활동했기 때문에 바나바는 그 이름이 묻혀버린 느낌이 있다. 그래도 바나바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바울이 마가를 용납하지 못할 때에도 바나바는 마가를 용납하고 마침내 마가복을 기록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했다. 오늘 이 시대에 바나나 같은 인물이 교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을 일하게 하고 자신은 그를 후원하는 것으로 기뻐한 사람이다. 이런 것이 우리 모두의 신앙체질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박해를 피해 이방인 땅에 최초로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복음을 이방 백성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전초기지로서 훌륭한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다섯째 날() 교회 내의 갈등

629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15:2).

 

이방인들의 입교를 모두가 기뻐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방인 선교 자체보다 그들의 입교를 허용하는 기준이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이방인의 입교를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믿음은 할례와 모세의 법에 대한 순종으로 실천되어야 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10:11~11:18 참고).

사마리아에서 이루어진 빌립의 사역과 안디옥의 교회를 관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부터 공식 방문단이 파견되었다(8:14, 11:22). 이는 비유대인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수용하는 데 모종의 문제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베드로가 무할례자였던 로마 장교 고넬료에게 침례를 주었던 사건에 대한 반응을 보면 초기 신자들 사이에 이방인 문제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고넬료의 경우같이 흔치 않은 이방인들의 입교도 어떤 이들에게는 심기가 불편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직 믿음만을 기초로 이방인들에게 교회의 문호를 개방하려는 바울의 의도적인 노력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의 사역을 약화시키려는 조직적인 시도를 펼치게 되었다.

 

1. 유대로부터 온 신자들은 안디옥의 이방인 신자들을 위한 바울의 사역에 어떻게 대응하려고 시도하였는가?(15:1~5)

[15:1~5]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라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모세의 법대로 하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예루살렘 총회가 할례의 문제에 관하여 바울의 손을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사역에 대한 반대는 계속되었다(15). 7년 뒤 바울이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에도 많은 이가 그의 복음에 대하여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21:28)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바울이 거의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21:20~21 참고).

 

<부가설명> 교회는 외부의 핍박이 고통스러웠지만 또한 내부적 갈등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교회가 어느 지역에 복음을 전하면 그 지역 종교와 문화와 충돌하게 된다. 유대에서는 구약을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데 해석에 차이 때문에 충돌이 심했다. 오늘날도 예수 이름을 부르는 교회 사이에 충돌이 심하다. 성경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성경적 시각으로 읽고 뜻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자기를 다 내려놓고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에 서서 성경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그렇게 깨달았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의 율법의 오랜 전통에 젖어서 예수께서 주신 복음을 복음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러나 성령께서 시대마다 역사하셔서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깨닫도록 이끄신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강하게 경험하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감의 편지서를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복음의 바른 길을 잘 제시해 놓았다. 우리는 이 기록을 바르게 연구하고 우리가 깨닫고 있는 진리에 대하여 성경으로 잘 검토해서 바르게 깨달아 이 시대에 합당한 증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믿음만으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 바울의 복음은 일부 유대인 신자들에게 반대를 받았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630

 

<교회 증언 3>, 430~434 “개인의 독립심”, <재림교회 성경주석 11>, 228~240을 읽어 보라.

바울은 전에 열렬한 유대교의 옹호자요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데 지칠 줄을 모르는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그는 용기, 자립적인 정신, 끈기, 재능과 훈련 등을 요구하는 일 등 거의 어떠한 일에도 종사할 수 있었다. 그의 논리에는 비범한 명석함이 있었고 그의 풍자는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제 유대인들은 특출하게 전도유망한 이 젊은이가 전에 박해하던 사람들과 연합할 뿐 아니라 담대히 예수의 이름으로 전도하는 것을 보았다.주께서는 다소 사람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쉽게 죽이실 수 있었다. 그리하였더라면 박해의 세력은 크게 그 힘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사울의 생명을 아끼셨을 뿐 아니라 회개시키심으로 그 용사를 적진으로부터 그리스도의 편으로 옮기셨다. 단호한 목적과 불요불굴의 용기를 가진 웅변가요 통렬한 비평가인 바울은 초기 교회가 필요로 한 모든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다”(사도행적, 124).

 

요약 :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과의 조우는 바울의 생애와 초기 교회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은 과거의 박해자를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화시키셨다. 바울의 복음에 난색을 표한 교회 내 무리들은 선입견과 편견이 선교에 어떤 장애가 되는지 보여 주는 좋은 실례가 되었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예수님을 믿는 동료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취했던 과격한 반대로부터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진리에 굳게 서서 진리 아닌 것과 바르게 투쟁하는 정신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종교적인 원칙에 굳게 섬과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온유와 겸손으로 말씀의 바른 원칙을 올바르게 인내로 증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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